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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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李弘燮

1965년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등이 있음. leehongsup@hanmail.net

 

 

 

두고 온 소반

 

 

절간 외진 방에는 소반 하나가 전부였다

늙고 병든 자들의 얼굴이 다녀간 개다리소반 앞에서

나는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었다

 

뭘 가지고 왔냐고 묻지만

나는 단지 낡은 소반 하나를 거기 두고 왔을 뿐이다

 

 

 

검은 비석

 

 

열여덟, 처음 시의 꼴을 갖추었을 때

평생 시를 써 검은 비석 하나를 세우고 싶었다

 

무엇을 새기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단지 삶이 제 그림자를 깔고 누운 비석 같았다

 

꼴난 시로써 저 무거운 비석을 세우려 하다니

亡者도 혀를 차며 지나갈 일이다

 

노을 지는 허허벌판, 비석은 여전히 대자로 누워 있고

앞서가는 긴 그림자, 붉은 화덕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