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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장석남 張錫南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왼쪽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등이 있음. sssnnnjjj@hanmail.net
달밤
내가 아는 한 곳은 거, 달 떠올라오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아 보름이면 수만 아이들이 깔깔대며 그 달에 매달려 못 뜨게 하는 것 같고 그래도 빙긋이 하며 뜨는 것 같고 내가 사랑한, 아마도 저승까지 갈, 바지와 홑조끼와 스웨터를 골라 사듯 사랑한 그네는 조바심으로 또 서편에서 서편에서 잡아 끌어당기는 것 같고 근데도 빙긋이 그저 그만그만히 바로 가진 못하여 하늘 정수리를 向하여 떠올라 가는 것 같고…… 내가 아는 한 곳의 밤은 그러나 오늘은 흐려 달 없겠고 이미 보름도 다 지나 이지러진 채 그네처럼 먼 데서나 지나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혼자가 다시 혼자가 되고 흐린 하늘도 또 흐려서 出家者의 버릇처럼 向도 없이 절이나 해보다가 罷하고는 무릎이나 가슴 쪽에 오그려붙인다
간송미술관 뒤뜰의 파초들
한소리 안할 수 없도록
간송미술관 뒤뜰의 芭蕉들
그 안의 蘭竹보다도1 더 많이 내겐
죽 늘어선, 견장을 한 이쁜 화분들보다도 더 많이 내겐
上品의 자비의 모양과 비애를 준다
시월, 芭蕉는 제 그늘로도 시월을 늘이고서
시월을 외고 섰다
저물어가는 헛간 그림자 속 알 겯는 소리 같은
芭蕉 그늘의 저것,
일제 말기와도 같고
유신 말기와도 같고
조선 말기와도 같고 내가 심어본 몇 묘
정권의 말기와도 같은
저 시를 외워야 해
사랑의 말기와도 같은
또다시 미루고 싶고 끝내
뒤로 뒤로 미루고 싶은, 맨 뒤의 뒤로
미루고 싶은
그 사랑의 말기와도 같은
저것을 외워야 해
시월 末,芭蕉의
저것을 외워야 해
이마로 외워야지
이마로 외워야지
무릎으로 외워야지
무릎으로 외워야지
등짝으로 외워야지
나는 나는 비애를 외워야지
온몸으로 외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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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가을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