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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우리의 귀는 그들의 외침을 향해 열려 있는가
이란주 『말해요, 찬드라』, 삶이 보이는 창 2003
김별아
소설가. ywba@sayclub.com
안나푸르나에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도시 포카라에서 만난 람은 기가 막히게 한국말을 잘하는 청년이었다. 많은 네팔 청년들의 꿈인 영국 용병 ‘구르카’를 뽑는 시험에서 떨어지고 한국에서 노동자 생활을 몇년인가 하고 돌아왔다는 그는, 낡은 토요따 택시를 운전하며 한국인 여행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택시에 실려 그레이트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펼쳐진 사랑곶 전망대까지 갔다. 안나푸르나 사우드, 히우추리, 마차푸차레…… 히말라야, 산스크리트어의 뜻으로 풀자면 ‘눈의 거처’인 그곳의 봉우리들을 람의 검은 손끝이 하나하나 짚는다. 그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괜찮았나요? 당신에게 한국은 어땠나요?”
그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좋았어요! 그때 번 돈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걸요.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어요.”
그에게 나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러워해야 할까. 젊은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여전히 ‘꿈’이며 ‘희망’인 한국, 그러나 람이 애써 강조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들의 나라’만은 아닌 나의 모국.
1995년부터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일하며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느껴온 활동가 이란주가 『삶이 보이는 창』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말해요, 찬드라』는, 시종일관 내게 네팔에서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 찬드라의 고향이 바로 안나푸르나 자락의 작은 마을 ‘김체’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한국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품은 이들이 브로커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뜯기면서까지 한국행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어느날, 네팔인 노동자 찬드라 구릉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몰인정한 식당 주인은 그녀를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1종 행려병자’로 처리해 정신병원에 보내버렸다. 육년 사개월 동안, 그녀는 병원 두 곳과 부녀자 보호소 한 곳을 거쳤지만 어디서도 그녀가 ‘외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할 뿐, 그녀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네팔 사람이에요.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라는 외침에 돌아온 것은 강제투약뿐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병원 재활병동에서 만난 의사에 의해 가까스로 구출된 그녀는, 오랜 지옥을 견디고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도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딱 한마디만 했다.
“경찰은 미워.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이제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적인 존재는 더이상 부인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2002년 3월부터 5월까지 단지 출국기간을 늦춰준다는 조건을 내건 자진등록에만 26만명이 넘는 불법체류자들이 신고를 했다. 2002년 6월 통계로 전체 33만 이주노동자 중에 75%가 불법체류자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주말의 지하철에서,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인근에서, 공단지역 곳곳에서 그들의 낯선 얼굴을 낯설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소위 3D업종이라 불리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은 노동의 힘겨움이나 노동환경의 열악함에 덧붙여 제도적인 불합리와 사회적 편견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처지다.
일본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고스란히 베껴온 한국의 출입국관리법과 외국인연수제도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는 부작용과 문제점 들이 얼마 후 우리나라에서 고스란히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법개정을 고민하기보다는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저임금에 시켜먹으려는 고약한 심보들이 판을 치는 실정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치를 떨며 두들겨맞았던 몽둥이를 들어 남을 치는 꼴이다. 『말해요, 찬드라』는 그 숱한 부끄러움에 대한 보고서이자 고발의 격문이다. 편견과 이기심, 부당과 차별, 조직적인 인권유린 그리고 치졸한 은폐…… 그 앞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도 인간이다’ ‘제발 때리지 말라’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언젠가 우리가 목놓아 외치던 그 소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말해요, 찬드라』는 그들에 대한 범인류적 애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향한 호소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언젠가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오락프로그램에 그 강파리한 얼굴을 비추었던 활동가 이란주는 뜨거운 가슴만큼 차가운 이성을 지닌 현실주의자다. 그래서 이 책에는 감상적인 동정 대신 인간에 대한 그의 냉철한 분석이 빛난다. 한국여성과 결혼하였지만 혼인신고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아내의 정신분열증이 도져 할복으로 내장까지 쏟아내는 상황에서도 그 운명적 질곡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검은 얼굴의 현주아빠, 군부독재 하의 조국을 위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한 슬픈 망명객의 이야기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넘어서 욕망과 숙명이라는 ‘인간’의 문제를 묻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싸움은 더욱 당당하고 세계적이다.
이 책을 읽은 어느 대학생은 감상문의 제목에 ‘읽지 마세요……’라고 썼다.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행동으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처럼 우울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읽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해요, 찬드라』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부당한 처지를 스스로 말하게끔 종용하고 있다. 책 말미에 실린, 언론이 ‘불법체류노동자 최초 파업’이라고 호들갑을 떤 포천 아모르 파업에 대한 꼼꼼한 기록은 그들이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들은 밀린 임금을 주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는 단순한 요구로부터 시작했으나, 분노를 넘어선 단결로 성공적인 평화파업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말할 때 가슴과 귀를 열고 들어야만 한다. 한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일을 마땅히 해야 했던 우리에게,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