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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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길

1955년 경남 마산 출생.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joengil@hanmail.net

 

 

 

숲 향기빌라

 

 

어이없이 작은 뿔이 불안해서 머리에 저리도 큰 물탱크를 이고 있나 배가 고파 저리도 많은 입을 달았나 허나 조리돌림 벌받는 듯 뱅글뱅글 돌아가는 정수리에 솟은 네 똥구멍의 치욕만으로도 너는 백악기 이후 가장 비자연적으로 진화된 저주받은 짐승이다 배가 너무 고파 동족을 잡아먹었다는 전설 속의 짐승인가 주체할 수 없는 허기에 이끌려 산기슭까지 내려와선 영영 길을 잃은 듯 우두커니 입만 끔뻑이고 있다 뭘 먹고살래 사랑은 너무 오래 굴러먹어 한입거리도 못된다 친구는 오래전에 강남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뭘 먹고살래 발아래 수만 갈래 검은 아스팔트를 뜯어먹을래 아스팔트 위를 비호처럼 달리는 저 딱딱하고 기름내 코를 찌르는 짐승을 잡아먹을래 짐승의 등에 찰싹 붙어가는 간이 콩알만한 허깨비귀신 같은 저 두발짐승을 잡아먹을래

 

 

 

순장

 

 

한창때는 앉은자리에서 말술을 비웠다는 장덕수 옹 숨 끊어지자마자 구멍이란 구멍 다 틀어막고 삼베로 돌돌 싸서 나무그릇에 꼭꼭 쟁여놓고 그의 아홉 자식들 앞다퉈 소 돼지 목을 따고 섬 쌀을 안치고 한 마지기 국화꽃의 목을 쳐 잔치를 벌인다 국화꽃 아홉 자식들 다소곳이 진을 치고 있는 삼천 궁녀 앞 임금처럼 빙그레 웃고 있는 장덕수 옹 빈소 그 옆 접견실 이미 입관을 마친 그릇그릇 쟁여진 몸들이 곡소리 염불소리 장단과 함께 꿀떡꿀떡 목구멍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장덕수 옹 아직 빙그레 웃고 있고 술잔을 돌리며 화투패를 돌리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상여꾼들 장덕수 옹 아흔두 해 묵은 장독 같은 육덕 생각하며 늦은 새벽잠을 청하는데 어떻게 기별받았는지 주먹만한 똥파리 한 마리 장덕수 옹 찰진 볼기짝에다 코방아를 찧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