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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로리 앤드루스 외 『인체시장』, 궁리 2006
육체의 정보화, 정보의 상품화
홍성욱 洪性旭
서울대 교수, 과학기술학 comenius@snu.ac.kr
황우석사태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특허 문제이다. 맨처음 의혹을 제기했던 MBC 「PD수첩」은 황우석이 특허를 신청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줄기세포 기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고 했다. 반면에 황우석 지지자들은 미국의 섀튼이 공동연구를 통해 특허의 원천기술을 빼돌렸다면서, 황우석을 징계하는 것은 미국의 음모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정작 줄기세포 관련 특허에 난자 기증자나 체세포 기증자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특허는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신청되었고, 미래에 돌아올지도 모르는 수익은 이들에게 배분될 것이었다(물론 황우석은 그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고 했지만).
인간의 몸을 상품화하려는 움직임과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역사상 항상 공존해왔다. 의대에서 사체 해부가 행해지면서 한쪽에서는 돈을 주고라도 인간의 사체를 구하려 했고, 다른 쪽에서는 법률을 통해 이를 막으려 했다. 매혈(賣血)로 돈을 벌려는 행위는 매혈을 처벌하는 법률에 의해 금지되었다. 장기매매는 불법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음성적으로, 이웃 중국에서는 준합법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책 『인체시장—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Body Bazaar, 김명진·김병수 옮김)에서 다루는 문제는 이러한 ‘오래된’문제들이 아니다. 여기서 다루는 사례는 혈액에서 채취한 세포주(cell-line)의 특허화, DNA특허, DNA감별, 유전자 질병검사, 유전자 예술 같은 문제들인데, 이것들은 유전공학 혹은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달 덕에 가능해진 첨단기술이다. 20세기 후반에 생명공학의 발전은 사람의 질병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면서 특정 경우에는 이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기도 했다. 생명공학은 생명의 본질이 DNA정보에 담겨 있다고 보고, 이 암호화된 정보의 해독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노력의 정점은 30억 달러를 투자한 인간게놈계획이었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유전자에 모두 담겨 있는가라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후기산업사회에서 정보를 소유하고 이에 독점적으로 접근하는 능력이 ‘권력’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유전자에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신체정보를 소유하고 이에 접근하는 것은 ‘생체권력’(bio—power)이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 생체권력이 발현되는 한 형태는 그것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매매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장기나 사체가 아니라 혈액이나 DNA정보가 상품화된다.
혈액이나 DNA가 고가의 상품으로 매매되기 위해서는 가공단계를 거쳐야 한다. 보통사람의 혈액은 피가 부족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같이 ‘가치있는’일에 쓰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의 상품가치는 높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의 혈액에 특정한 질병의 치료제 개발에 필수적인 세포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혈액은 천문학적인 상품가치를 띠게 된다. 과학자는 이 혈액에서 추출한 세포주에 특허를 신청하려고 할 것이며, 혈액의 주인은 자신의 동의 없이는 특허를 신청하지 못하게 하거나 특허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집단적으로 천식을 앓고 있는 마을 주민의 DNA는, 천식 유전자를 찾아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상업적 가치가 크다.
특정한 혈액이나 DNA만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진다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신(新)인체시장’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하지만 실정은 그렇지 않다. 혈액이나 DNA를 가공하기 위해 발달한 기술이 다른 부산물들을 낳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이제 질병의 메커니즘을 분자적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거의 모든 질병의 원인이 유전자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르렀다. 예컨대 폐암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이는 장기간 담배를 피울 경우 거의 100% 폐암에 걸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담배를 오래 피워도 폐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도 당뇨병, 유방암 같은 다양한 질병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받는다. 검사를 받지 않아도 의사들은 가족 중에 암이나 기타 성인병 병력이 있는지 질문하고, 그렇다면 특히 더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따라서 유전자의 상품화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유전자가 특허대상이 되면 유전자검사비가 오르고, 검사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유전병에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유전병이 내재되어 있다는 판명을 받은 사람은 언제 발병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직장과 학교는 물론 보험회사로부터도 불이익을 당할 공산이 크다. 유전자검사를 종용하는 과학자들과 제약회사들은 특정한 유전병을 가려내서 이런 사람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과 신우생학(新優生學)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18세기 이후 서양사회에서 권력과 새로운 감시기술이 공진화했듯이, 새로운 ‘생체권력’은 ‘생체감시’(bio-surveillance)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전과자의 주거제한과 지문날인이 오래된 감시방식이라면, 지금은 감시의 기제가 DNA단위까지 내려갔다. DNA신원감식은 법조인과 경찰이 꿈에 그리는 방법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DNA감별에 근거해서 성폭행범을 검거한 일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렇지만 성폭행범을 잡기 위해 주민들에게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DNA검사를 받게 하거나, 담배를 피우도록 유도한 뒤 꽁초를 수거해간 사례가 알려져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찰은 DNA검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고 하지만, 그들로서는 ‘죄가 없다면 떳떳해야지’라는 주변의 의혹어린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몸은 나의 정체성, 자율성, 통제권의 최후 보루이다. 내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이 나 몰래 DNA클리닉으로 보내져서 생체정보를 추출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서로를 구성하듯이, 나의 몸에서 비롯된 정체성과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정체성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 ‘핏줄’은 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나와 가족을 잇는 상징이기도 하다.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헌혈을 하고 장기기증을 하듯이, 나의 몸은 나와 이웃을 가치있는 방식으로 연결해준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은 내 몸에서 얻어진 정보가 내 동의와 통제하에 공동체 구성원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라지, 나도 모르게 상품화되어 벤처기업과 몇몇 과학자들의 수익에 기여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상품화는 모든 가치를 교환가치로 환원한다. 환원되기 힘든 역사적, 공동체적, 상징적, 심리적 가치는 무시되거나 지워진다. 그렇지만 시장의 논리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거기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사회의 권력을 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신체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전과정에 대한 법적 규제와 반대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운동이 인체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의미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각성에 근거해야 함은 물론이다. 『인체시장』은 이러한 문화적 각성을 위한 필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