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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 국제심포지엄 참관기
동아시아 연대를 위한 인식공동체를 형성하자
국제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맞아 본지와 세교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 비판적 잡지 편집인 회의’가 지난 6월 9~10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등의 총 13개 잡지, 16인의 편집인들이 발제와 토론에 나선 이번 행사는 각계 전문가와 독자 들의 진지한 관심과 참여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첫째날 공개심포지엄에는 쳔 꽝싱(陳光興, 『Inter-Asia Cultural Studies』) 쥬 졘깡(朱健剛, 『民間』) 쳔 이즁(陳宜中, 『台灣社會硏究季刊』) 오까모또 아쯔시(岡本厚, 『世界』) 이께가미 요시히꼬(池上善彦, 『現代思想』) 토미야마 이찌로오(富山一郞, 『IMPACTION』) 오까모또 유끼꼬(岡本由希子, 『け—し風』) 고화정(高和政, 『前夜』) 등이 참가해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와 자국 개혁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의 의미와 과제를 논의했습니다.
둘째날 워크샵에는 왕 후이(汪暉, 『讀書』) 서경식(徐京植, 『前夜』) 고정갑희(高鄭甲熙, 『여/성이론』) 이병천(李炳天, 『시민과세계』) 김명인(金明仁, 『황해문화』) 백영서(白永瑞, 『창작과비평』) 이남주(李南周, 『창작과비평』) 등이 동아시아 지역통합에서 한국의 분단극복이 지닌 역할과 영향을 토론하고, 동아시아 ‘인식공동체’ 구축의 필요성과 새로운 ‘진보’ 개념의 의미를 논의했습니다. 이번 행사에 대한 참관기를 비롯하여 발제문 중 두편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진보의 위기와 비판적 지식인의 진로
배영대 裵泳大
중앙일보 문화부 학술기자. balance@joongang.co.kr
1. 진보진영의 고민과 세 갈래 길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패배는 예견된 것이었지만 그 패배의 강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현정부에 상대적 친화성을 보여온 진보 성향 비판적 지식인들의 고민은 이번 지방선거 참패 이후 더욱 깊어졌다. 진보의 고민이란 무엇인가. 두 차례의 대선 승리를 통해 진보진영이 정치적 파워를 확보한 만큼 과연 우리 사회의 제도와 국민의 삶이 진보적 이상에 가까워졌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5·31 지방선거의 참패는 그런 고민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내년 대선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진보세력의 존재 의의 자체까지도 위협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진보지식인들이 개최한 서로 다른 세 가지 학술대회는 향후 진보의 진로와 관련해 비교 분석해볼 만하다. 5·31선거 직후인 6월 9~10일 창비와 세교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이하 ‘동아시아’), 6월 22일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한국인문사회과학의 주체화,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 안의 보편성’과 학문 주체화의 새로운 모색’(이하 ‘주체화’), 그리고 6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6월민주항쟁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이하 ‘현주소’) 등이다.
세 학술대회는 모두 공통적으로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진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최기관과 행사를 주도한 인물이 달랐던 까닭으로 서로 생각의 차이를 보였다. 그 차이는 향후 지식인들의 진로에 커다란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으리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른 진보진영의 분화 흐름으로도 읽힌다. 이 글에서는 세 학술대회 각각의 특색을 간략히 비교한 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비판적 지식인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현주소’는 진보운동권의 7, 80년대식 토론 주제와 방식에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학술대회였다. 최장집(崔章集) 교수의 기조발제를 중심으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최장집은 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 원인을 ‘정치의 실패’에서 찾으며 진보정권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볼 때 노무현정권의 정치의 실패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거세지는 흐름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면서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데 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향후 전통적 진보의 시각을 좀더 선명하게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주체화’는 현시국에 대한 진보지식인들의 고민의 깊이를 보여준 학술대회였다. 주요 발표자인 조희연(曺喜와ᇝ)·이병천(李炳天) 교수는 진보지식인들이 그동안 외면했던 주제인 성장동력에 관한 논의를 끌어들였다. 70년대 박정희정권의 경제성장주의의 부작용을 주로 비판해왔던 이들이 그 경제성장의 긍정적 요인을 진보의 관점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선보인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모두 긍정하려는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긍정의 주체가 진보진영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우리 안의 보편성’이란 우리가 품고 있는 것이 알고 보니 진주였다는 식인데, 이렇게 되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경계를 새롭게 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동아시아’는 진보지식인들의 논의 영역을 남한에서 한반도로, 더 나아가 동아시아 단위로 확장시켰다.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국제심포지엄이란 점에서 창비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현재 어디에 생각의 역점을 두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회였다. 창비 역시 앞에 언급한 ‘현주소’와 ‘주체화’에서 제기된 것과 같은 진보진영의 오랜 고민을 공유한다. 하지만 창비가 볼 때 그것은 분단체제가 강요하는 현실과 인식의 한계에 갇힌 고민이다. 창비는 새로운 전망을 펼쳐 보이려 한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연대의 공동체를 시민사회가 적극 추동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진보진영에서 제기해왔던 오랜 과제, 예컨대 양극화라든가 각종 불평등의 문제는 해체 혹은 해소된 것일까. 동아시아 공동체가 형성되면 그같은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의 차이가 창비와 다른 진보지식인 간의 생각의 차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그런 생각의 차이는 드러났다.
이 시대에 진보란 과연 무엇인가. 80년대처럼 진보의 목표가 뚜렷하게 설정될 수 없는 혼돈과 해체의 시대에, 그리고 현정부의 각종 실정(失政)과 맞물려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시대에, 우리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위의 세 갈래 길 중 어느 하나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길을 열어갈 것인가.
2. 변혁적 중도주의와 동아시아 공동체론
창비는 2006년 초 백낙청(白樂晴) 편집인의 신년사를 통해 창비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변혁적 중도주의’라고 정의했다. 이 시대 진보의 동력을 중도주의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단순히 가운데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 진보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축한다는 점에서 ‘변혁적’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왜 중도를 표방하는가. 창비는 분단체제극복을 우리 시대의 최우선 과제로 지목했다. 한반도의 대치상태를 평화체제로 바꾸며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은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극단적 급진주의를 배제하고 자유주의와 시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광범한 세력과 연대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지역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지향한다.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건설이라는 두개의 과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것이 창비의 지향점인 셈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창비는 이 두개의 과제가 별도의 사안이 아니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동아시아’국제심포지엄은 창비의 변혁적 중도주의 노선을 구체적으로 펼쳐 보인 첫 대규모 행사였다. 일본, 중국, 대만과 한국의 비판적 잡지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초국적 연대를 함께 모색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대회의 성격에 공감하고 의미를 더하고자 단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을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중국과 대만 등 중국어권 4개지, 일본어권 5개지, 한국 4개지로 총 13개 잡지의 편집진 16명이 발제와 토론에 참여했다. 10만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중국의 대표적 잡지 『뚜슈(讀書)』의 왕 후이(汪暉) 주간, 이제 막 생기기 시작했다는 중국 시민사회에 거점을 둔 최초의 잡지 『민졘(民間)』의 쥬 졘깡(朱健剛) 편집위원, 인문학·사회과학 영역에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최초의 국제지 『인터아시아 문화연구』(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쳔 꽝싱(陳光興) 편집위원, 일본의 대표적 월간 종합지 『세까이(世界)』의 오까모또 아쯔시(岡本厚) 편집장 등이 참석했다.
이 심포지엄에서 이남주(李南周,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교수가 창비의 입장을 대변해 발표했다. 그는 동아시아 시민사회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창비의 변혁적 중도주의 노선과 연결시켰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한반도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연대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창비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은 듯했다. 이남주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연결고리를, 미국적 표준을 둘러싼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역이란 점에서 찾았다. 그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의 형성과 긴밀하게 관련되면서 진행될 것”이라며 “한반도에서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반도라는 지역적 범위를 넘어서 동아시아와 지구적 차원에서 진보의 역동성을 강화하고 동아시아의 지역적 연대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진단에 대한 근거로 그는 “현재 한국, 그리고 한반도가 미국의 전일적 지배의 확대냐 아니면 미국의 전일적 지배를 극복하는 새로운 협력질서의 형성이냐를 가름하는 힘겨운 씨름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진행되는 무대가 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창비의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대로 다 수용된 것은 아니다. 이틀간 열린 심포지엄에서 변혁적 중도주의는 내내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특히 국내 참석자들로부터 다양한 지적과 비판을 받았다. 첫날 청중석의 한 참석자에게서 “남북통일이 지역평화에 꼭 좋은 것인가?”라는 도발적 질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쳔 꽝싱은 “남북통일이 동아시아지역에 나쁜 일일 수도 있다는 언급은 처음 듣는다. 혹시 동시통역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문처럼 해외 참석자들은 한반도의 통일과 동아시아지역의 평화를 긴밀히 연계시켜 사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창비의 전반적 구상에 원론적 차원에서 동의한 것이지, 한국 진보진영의 위기와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에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듯했다.
변혁적 중도주의를 둘러싼 논의는 둘째날 종합토론에서 좀더 세밀하게 전개됐다. 이병천(『시민과세계』 편집인)과 김명인(金明仁, 『황해문화』 편집주간)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집중 비판했고, 그에 대한 재반론이 이어졌다. 김명인은 “분단체제 극복의 파트너로서 현 북한체제 지도부의 진보성을 신뢰하지 못하겠고, 분단체제가 극복되어도 미국의 표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6·15선언 이후 남북 화해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전반적으로 과대평가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병천은 “ ‘통일시대’에 진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중의 삶은 갈수록 고통스러워지고 있다”며 “변혁적 중도주의는 87년 이후의 민주화체제가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는 모습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는 쥬 졘깡은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동아시아 각국간 문화적 차이가 크다. 언어적 차이도 크다. 굉장히 토론이 뜨겁지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잘 잡히지 않는다. 변혁적 중도주의라고 해서 사회변혁을 촉진하는 좀 부드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사실 한국의 지식인들도 창비가 올해 첫선을 보인 용어인 변혁적 중도주의의 의미를 짚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이같은 만남과 소통의 과정이 쌓여가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 깊어갈 것이다. 그 이해의 폭과 깊이만큼 동아시아 협력의 수준도 향상될 것이다. 종합토론의 사회를 본 백영서(白永瑞, 『창작과비평』 주간) 교수의 지적처럼 동아시아 평화와 연대를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각국이 처한 문제가 서로 어떤 관련을 맺는지에 대한 세심한 이해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결국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상호이해의 첫걸음은, 창비가 이번 국제심포지엄의 목표로 내세운 ‘인식공동체’로 가까이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3. ‘인식공동체’를 향한 동아시아 공동의 공간
생각과 이해의 공유는 평화공동체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동아시아’심포지엄에 모인 참석자들은 이미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각각의 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매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각각의 매체를 상호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둘째날 발표자였던 왕 후이가 제기했다. 그는 “각 지역의 비판적 집단들 사이에 안정적 대화의 통로를 수립해 그것을 지역에 뿌리내리고, 동시에 (언어를 포함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 비판적 지식인들의 의사가 소통되고 각국의 상황이 전달되는 공동의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에 참석자 모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각국 비판적 잡지들의 콘텐츠가 인터넷을 통해 교류되는 공동의 공간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공간이 ‘동아시아 공동의 집’을 짓는 주춧돌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그 공간을 활용하는 이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협력과 연대의 최대 장애물은 무엇일까. 참석자들은 각국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패권적 국가주의를 주요 장애물로 꼽았다. 특히 중국의 강대국화와 일본의 우경화가 지역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동아시아 지역평화와 연대를 거론하는 좌석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한국역할론도 빠지지 않았다. 토론자로 나온 서경식(徐京植, 『젠야(前夜)』 편집위원) 교수는 동아시아 각국에 사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조건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에 대한 차별의 극복방안을 찾는 데서부터 동아시아의 평화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 참석자로 오끼나와에서 온 오까모또 유끼꼬(岡本由希子, 『케—시까지(け—し風)』 편집장)의 발표는 근대 국가주의의 획일성이 우리의 무의식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하는 사례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했다. 그녀는 발표문을 통해 “오끼나와가 일본일까요?”라고 되물었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압적으로 일본인으로 동화된 오끼나와인의 독립성을 호소하는 그녀를 이번 심포지엄에서조차 단순히 ‘일본인’으로 소개한 한계를 꼬집기도 했다. 많은 참석자들이 그녀의 발표를 통해 ‘오끼나와는 일본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심포지엄을 통해 처음 소개된 중국의 계간지 『민졘』과의 만남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중국에서 환경운동 같은 시민운동을 펼치는 첫 잡지라고 한다. 중국의 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왕 후이는 대중성 확보의 문제를 제기했다. 어쩌면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잡지를 만들어도 대중이 찾지 않는다면 그 한계는 명백하다. 그는 “비판적 잡지는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각자의 사회에서 어떻게 더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운동과 관련을 맺되, 엘리뜨문화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수준 높은 토론의 질을 담보해낼 것인가. 이는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라고 지적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잡지 편집인 모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민을 대변한 소리였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창비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동아시아의 협력방안에 관한 논의가 자화자찬의 내부 잔치로 그치지 않은 것은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도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협력을 위한 각국의 비판적 잡지간에 만들어질 공동의 공간 못지않게 국내적으로도 의사가 소통되는 상시적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창비 편집팀에 넘기는 싯점에 동아시아 국제정세에는 또 새로운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북한의 도발적 미사일 발사실험 강행은 동아시아 비판적 지식인들의 역량을 시험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얼마나 엄중한 상황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남북한 민간교류의 한계를 절감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동아시아 협력과 평화로 가는 길은 먼데 짐은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