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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성희 尹成姬
1973년 경기도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등 뒤에
십삼만 킬로미터를 달린 자동차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마다 운전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손이 떨렸다. 가슴도 떨렸다. 운전대의 떨림이 손을 통해 가슴으로 전달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손톱 밑이 새까맸다. 나는 열 손가락을 코밑에 대고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그 바람에 차가 잠시 중앙선을 벗어났다. 손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단지 흙냄새뿐이었다. 어디선가 얍! 하는 기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태권도 도장과 창문을 마주하고 있다. 용기가 필요한 날이면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도장에서 울려퍼지는 기합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결심이나 하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음식에서 양파를 골라내지 않을 거야, 그녀에게 더이상 전화하지 말아야지, 성공하거든 꾼 돈부터 갚자 따위의 결심들을. “이젠 다시 결심 따위는 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 나는 말했다. 그 말이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여러 겹으로 울렸다. 나는 깊숙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킥! 몸이 앞으로 밀리면서 운전대에 가슴을 살짝 부딪쳤다. 자동차의 모든 창문을 연 다음,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다시 닫기를 서너번 반복했다. 그래도 자동차 안의 공기는 바뀌지 않았다. 다시 차를 출발시키면서 나는 내가 누구보다도 가위바위보를 잘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얼마나 잘했느냐 하면, 초등학교 사학년 때는 단 한번도 술래를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가위바위보 할래?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담임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가위바위보를 잘하다니, 넌 참 머리가 좋은가보구나.” 태어나서 딱 한번 교회에 갔었는데 그때 나는 그 선생님을 위해 기도했다. 뒤차가 경적을 울리더니 내 차를 추월했다. 나는 나를 추월한 차를 다시 추월하기 위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가 없었다. 저절로 과속 방지를 해준다니까. 차 좀 바꾸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차는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무 살 초반에 한 여자를 친구와 동시에 좋아한 적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가위바위보로 결투를 하자고 말했었다. “한판은 시시해. 가위바위보를 오백번 해서 더 많이 이긴 사람이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거야.”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미친놈.” 그건 그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미친놈.” 나는 운전석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바퀴에 튕겨오른 돌이 이마를 때렸다. 눈물이라도 좀 나와주면 나 자신에게 조금 덜 미안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자꾸 웃음이 났다. 웃는 바람에 커브길에서 운전대를 꺾지 못했다. 차가 공중을 향해 날아오를 때 나는 액셀을 더욱 힘껏 밟았다. 계기반의 바늘이 110을 가리켰다. 차가 공중을 날던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은 이랬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 패러글라이딩도 해보고 싶고. 수상스키를 타보는 것도 소원이었는데.
머리맡에서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는 천장에 매달아놓은 줄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 끝에는 동그란 버스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버스 손잡이는 좌골 신경통에 걸린 그를 위해 48호 트럭기사가 달아준 것이었다. 48호는 트럭기사가 되기 전에 버스기사였는데, 버스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자신이 몰던 버스에서 손톱자국이 가장 많이 나 있는 손잡이 하나를 떼어가지고 나왔다. 하룻밤에 500km 이상을 달리는 날이면 48호는 손잡이에 난 흠집들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깟 손잡이를 손톱으로 눌러가면서 사람들은 대체 어떤 고민을 했을까? 버스 손잡이를 그에게 선물하고 난 뒤로 더이상 48호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48호가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언제더라?” 그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날짜를 계산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기억이 뒤엉키기 시작하면서 그는 지나간 일은 모두 어제 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로, 48호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들렀던 날도 어제였다. 먼 기억들이 더 먼 기억들과 겹쳐졌다. 눈을 감으면 어제의 기억이 영상으로 떠올랐다. 눈을 뜨며 지내는 시간보다 눈을 감으며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는 과거에 묻혀 지내는 노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단지 어제의 일일 뿐이라고. 그는 접이식 침대에 걸터앉아 탁자 위에 놓인 틀니를 바라보았다. 틀니는 우유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투명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 있었다. 이곳을 거쳐간 여섯명의 미혼모 중에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던 여자가 있었다. 그들 모자가 떠나고 난 자리에서 그는 반쯤 먹다 만 분유통을 발견했다. 그는 그 분유를 아껴두었다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한잔씩 타서 마셨다. 분유를 마시는 날이면, 그는 옥수수밭 한가운데로 들어가 굵직한 똥을 누었다. 그리고 자신이 눈 똥 냄새를 오랫동안 맡았다. 다시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을 적에 그는 그 소리가 자신의 입 안에서 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잇몸으로 있는 힘껏 손가락을 깨물어보았다. 아픈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잇몸이었다. 그에게 틀니를 만들어준 친구와 했던 마지막 대화는 이랬다. “튼튼한가?” “그럼.” “적어도 자네보다는 오래가야 해.” “설마, 자넨 이 틀니보다 오래 살 생각이었나?” 그렇게 말할 때 친구의 입에서 풍기던 담배냄새를 아직도 그는 맡을 수가 있다. 어제의 일이었으니까. “틀니를 자명종으로 가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그는 틀니를 꺼내 잇몸에 끼웠다.
그가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운전대에 고개를 박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반짝반짝 작은 별. 그도 아는 노래라서 잠시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거짓말 마세요.” “정말이야. 그런데 음정이 제멋대로였어.” 그가 틀니를 끼우고 맨손체조를 시작하려 할 때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다리를 끌면서 집 밖으로 나오자 옥수수밭 사이로 찌그러진 자동차가 보였다. 그는 자동차 유리를 손바닥으로 닦았다. 이슬이 소맷부리를 적셨다. “옥수수밭이었으니까 살았지. 옥수수들이 자네를 지켜준 거라니까.” 나는 천장에 매달린 버스 손잡이를 잡아보았다. “아직 일어나지 마.” 그가 내 양쪽 어깨를 눌렀다. “거울 좀 주세요.” “없어.”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만졌다. 이마에 상처가 만져졌다. “볼 만해. 너무 걱정 마.” 만지기만 했는데도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나는 두 손을 코밑에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희미하게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손톱 밑은 여전히 새까맸다. 그가 수건에 물을 묻혀 내 발을 닦아주었다. “바지는 어쨌어요?” 나는 고개를 들어 팬티만 입고 있는 아랫도리를 힐끔 보았다. “맙소사. 그 붕대는 뭐예요?” 그는 수건을 뒤집어 이번에는 허벅지를 닦았다. “부러지진 않은 것 같은데…… 모르지, 뭐.” 수건 끄트머리가 사타구니에 닿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어릴적에는 간지럼 따위는 전혀 타지 않았다. “사랑에 실패하고 난 뒤에 간지럼을 타게 되었어요.”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전봇대 아래 서서 나는 그녀의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열려라. 열려라. 눈송이가 코끝을 스칠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전봇대 아래에서 나는 쪼그려 뛰기를 백번도 넘게 했다. 그녀가 문을 열면 나는 이렇게 말할 참이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봐.” 마침내 창문이 열렸고 그녀가 가래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거두고 창문을 닫았다. 안경을 벗고 있던 그녀는 골목길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눈 덮인 골목길에 그녀가 뱉어낸 가래침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위로 눈이 내렸지만 눈은 금방 녹았다. 다음날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졌어?” 이제 그는 손을 닦고 있었다. “맹세해요. 가래침 때문이 아니에요. 우린 서로 텔레파시가 안 통했어요.” 그는 삐죽한 나무꼬챙이로 손톱 밑에 낀 흙을 빼내주었다. “농사꾼은 아닌 것 같은데 손이 이게 뭐람. 보물이라도 캐러 갔다 왔나?” 그가 중얼거렸다. 말할 때마다 그에게서 입냄새가 심하게 났다. 손을 닦아주다 말고 그는 자주 졸았다. 그에게 손을 맡긴 채 나도 자주 졸았다. 꿈속에서 나는 간지럼을 타지 않기 위해 훈련을 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옷을 홀라당 벗고 억새밭 속에 서 있는 거였다. 그는 나를 위해 특별히 흰죽을 쑤어주었다. 침대 머리맡에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도마였고 식탁이었고 책상이었다. 내게 침대를 내준 뒤로는 그의 임시침대가 되기도 했다.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데, 그는 틀니가 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깨워준다고 했다. “안 믿지? 칼이 저절로 도마질을 해서 나를 깨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그는 엉성한 바느질 솜씨로 찢어진 바지를 꿰매놓았다. 바느질 자국이 알파벳 Z와 W를 겹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가 바지를 내게 주면서 말했다. “도저히 허리가 아파 못 자겠네. 이제부터 자네가 저 탁자에서 자게.” 탁자 다리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1981년 31호. “응. 아마도 31호 트럭기사가 만들어준 탁자일 거야.” 천장에 매달린 버스 손잡이를 잡고 겨우 상반신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탁자에 더 많은 글귀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았어요?”
*
그는 아들이랑 꼭 십년을 같이 살았다. 아들은 일곱살 때 그를 찾아왔다. 가방에는 캐러멜 열통, 빨간색 내복 한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씨앗들, 그리고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나비 모양의 머리핀은 그가 엄마를 꼬드길 때 선물로 주었던 거라고 했다. “니 엄마가 누구니?” “김숙자. 아버지의 애인이요.” 그는 김숙자라는 여인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약속다방에서 만났다고 하면 안다 그랬어요. 쌍화차에 잣을 띄우는 걸 싫어하셨죠.” 약속다방은 도처에 있었다. 그의 직업은 트럭기사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그는 트럭이 멈추는 곳마다 애인이 있었다. 그는 그 애인들과 약속다방에서 만났고 약속다방에서 헤어졌다. “얘야, 이 나라에 약속다방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아무래도 난 니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 그는 아이가 눈물을 흘릴 경우를 대비해서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절대 흔들리면 안돼. 그는 다짐했다. 자르지 않은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생기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고, 그건 다름 아니라 아버지와 목욕탕에 같이 가보는 거라고, 아이는 말했다. 목욕탕으로 가면서 그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혹시 때가 많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얼굴을 보고 아이가 말했다. “저랑 같이 목욕탕 가는 게 그렇게 설레세요?” 그는 목이 잠기도록 탕에 몸을 담갔다. 아이가 물장구를 치는 바람에 가장자리에 떠 있는 때들이 그가 앉아 있는 쪽으로 몰려왔다.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밀려오는 물살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거, 아들 교육 좀 잘 시키쇼.” 가래가 잔뜩 낀 목소리로 노인이 말했다. “제 아들이 아닙니다.” 그는 물속에 손을 담근 채 손사래를 쳤다. 물살이 그의 배를 간질였다. 그러자 아이가 갑자기 그를 향해 엉덩이를 내밀었다. “아버지도 여기에 똑같은 점이 있죠?” 아이의 엉덩이에는 점이 세개 있었는데, 그걸 이으면 뒤집어진 정삼각형이 되었다. 점 하나가 물에 잠겨 다른 점보다 더 커다랗게 보였다. 물이 출렁일 때마다 나머지 점 두개도 물에 잠겼다가 말았다가 했다. “아니다. 난, 점, 따윈, 없다.” “그럼 일어나보세요.” “싫다.” 그는 탕에 한시간 이상을 앉아 있어야 했다. 노인은 그의 엉덩이에 있는 점과 아이의 엉덩이에 있는 점이 얼마나 똑같은지 확인해야만 되겠다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게다가 탕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그가 자기 자식을 부정하는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떠들어댔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그의 엉덩이를 보고야 말겠다며 목욕이 끝나도 목욕탕을 떠나지 않았다. 탕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아이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자기 엉덩이에 난 점들을 보여주었다. 노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탕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탈진했나보네.” 누군가 말했다. 할 수 없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눈동자가 뒤로 넘어가려는 노인을 안았다. 노인을 바닥에 뉘는 순간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외쳤다. “맞네. 점 세개. 위치도 똑같아.” 아이는 두 손을 양 허리에 댄 채 가슴과 배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저 배고파요.” 배고파요,라는 말이 목욕탕에 울리고 울려퍼졌다.
그의 아들은 요리를 잘했다. 그는 일주일에 세번씩 집에 들렀다. 장거리를 뛰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아들은 혼자서 도시락을 쌌다. 김치가 맛있었다면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만 싸가도 되었을 텐데 그는 김치를 맛있게 담그지 못했다. 아버지가 담근 김치를 먹기 싫었던 아들은 할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 반찬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덕분에 요리솜씨가 해마다 나아졌다. 그가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아들은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북어해장국을 번갈아가며 끓여주었다. 해장국을 먹을 때면 그는 같이 해장국집이나 차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 고등학교 졸업하거든 같이 해장국집이나 할래?” 그 말을 들은 아들은 더이상 음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석달이 지나고, 트림을 할 때마다 라면 냄새가 식도를 타고 올라오자 마침내 그가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고등학교만 졸업시킨다고 그래서. 난 니가 공부를 싫어하는 줄만 알았다.”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했던 마지막 말이 뭔지 아세요?” 그는 김숙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마지막 말도 기억하지 못했다. “돈 벌어서 돌아올게. 그때 같이 식당이나 차리자. 이렇게 말했어요.” 김숙자라는 여인은 그 말만 믿고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요리를 하다 말고 종종 헛구역질을 했는데, 요리에 사용하는 기름 때문에 속이 메슥거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김숙자는 자신이 한 요리를 맛보지 못했다. 대신 식구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요리학원에 다니는 동안 살이 5킬로그램 이상 쪘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허리띠를 두칸 늘렸다. 그녀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살이 찌는 바람에 딸의 배가 부풀어오르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뱃속에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의 아들의 생활기록부에는 ‘낙천적’이라는 단어가 여섯번 나오는데, 그건 아마도 뱃속에서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미안한 표정 짓지 마세요. 웃겨요. 그리고 실은 저 공부 싫어해요.” 그 말을 끝으로 아들은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다만 그가 심하게 술을 마신 다음 날의 메뉴가 바뀌었을 뿐이다. 돼지비계가 잔뜩 들어간 자장면으로. 아들은 자장면 위에 완두콩을 뿌렸는데, 자세히 보면 ㅁ과 ㄹ을 그려넣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뭔 뜻이냐?” 충혈된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아들이 웃었다. 그러고는 혓바닥을 내밀었다가는 얼른 집어넣었다.
그는 H시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서른판이 넘도록 단 한번도 선을 잡지 못한 그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그를 찾는 전화가 C시로, K시로, L시로 울려댔다. 그가 두판을 내리 이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그를 애타게 찾던 경찰이 H시에 있는 어느 트럭기사의 자취방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경찰이 그에게 불에 그슬린 손목시계를 보여주었다. 아들의 것이었다. 불이 난 곳은 시 외곽에 버려진 창고였는데, 경찰은 그곳에서 몇몇 청소년들이 나쁜 짓을 하다 불을 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나쁜 짓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아들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경찰이지만 제 자식놈도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갔답니다.” 나이가 지긋한 경찰이 말했다. 두명이 사망하고, 세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망한 아이의 부모들은 누구 때문에 불이 났는지 밝혀내려고 애를 썼지만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중상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원 복도에서 여덟명의 부모들이 말싸움을 하는 동안, 그는 붕대에 가려진 아들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걱정 마라.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거울을 다 없애주마.” 면회시간이 되면, 그는 손을 세번씩 닦고 이도 세번씩 닦았다. 바퀴가 달린 동그란 의자를 끌어와 아들 얼굴 옆에 바싹 붙이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니 엄마랑 연애를 했을 적에 말이지……” 그는 조수석에 여자를 앉혔다. 트럭은 비포장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겨드랑이 부근이 땀에 젖어들자 여자가 팔꿈치를 허리에 바짝 붙이고 부끄러워했다. 개울가에 도착하자 그는 평평한 바위를 찾아 돗자리를 펼쳤다. 김밥에서는 쉰내가 났다. “시금치가 상한 모양이에요.” 여자는 나무젓가락을 이용해서 김밥에서 시금치만을 골라냈다. “알뜰한 여자라고 생각했지. 그때부터 니 엄마가 좋아지기 시작했단다.” 물론 그 여자가 지금 병실에 누워 있는 아들의 엄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약속다방에서 만났던 여러 여자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었다. 상한 것은 시금치뿐만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열번도 넘게 차를 세워야 했다. 설사를 하면서 그는 다시는 저런 미련한 여자를 만나나 봐라, 하고 결심했다. 물론 아들에게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는 여자에게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주었다. 여자는 머리를 묶었던 고무줄을 풀더니 반으로 잘랐다. 반쪽으로는 꽃다발이 헝클어지지 않도록 밑동을 동여맸고, 나머지 반쪽으로 다시 머리를 묶었다. “니 엄마가 머리를 묶으려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뻤단다.” 그는 산소호흡기 마스크 안으로 뿌옇게 입김이 찼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김밥을 먹었던 여자와 들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주었던 여자가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다음 장면만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들꽃 때문인지 트럭 안으로 벌이 들어왔다. 벌은 여자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꽃 때문에 벌이 쫓아온 거라고 그는 여자에게 말했다. 그러니 어서 꽃을 버리라고. 하지만 여자는 꽃다발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말했다. “안돼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꽃다발이란 말이에요.” 할 수 없이 그는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벌을 쫓았다. 커브길에서 제대로 운전대를 돌리지 못해 가드레일을 박을 뻔했다. “에이, 얼른 버리라니까요.” 여자가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는 트럭 바닥에 버려져 있던 신문지를 집어서 흔들어댔다. 놀란 벌이 그의 왼팔을 쏘았다. “에이! 씨발! 그러게 내가 버리라 그랬죠.” 그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여자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빼앗아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야기를 해놓고 그는 약간 후회했다. 마지막 부분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충고를 덧붙였다. “절대 여자에게 욕을 해선 안된단다.” 다음날 그는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인숙 계단을 오를 때 니 엄마가 두번이나 뒤를 돌아봤지.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귀에 대고 속삭였지. 귀가 간지러운지 니 엄마가 웃었단다.” 여인숙으로 가는 길은 좁고 더러웠다. 겨울이었는데 누군가 토해놓은 토사물에서 김이 올라왔다. “다른 곳으로 가면 안될까요?” 여자가 말했다. “시간이 없어. 곧 통금이야.” 그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엄마에게 내가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꽂아주었지.” 그의 트럭에는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 한 박스나 있었다. 훗날 여자가 생기면 선물하라며, 공장장이 장부에 기입한 갯수보다 한 박스를 더 넣어준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열개인가 열다섯개인가를 꺼내 여자들에게 선물로 주었고, 나머지는 K시의 역 앞에 있는 옷가게에서 겨울 스웨터와 바꾸었다. 그는 옷을 벗어서는 여자가 벗어둔 옷 위에 포개놓았다. “니 엄마에게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났지. 그 냄새가 내 옷으로 옮겨오길 바랐단다.” 아들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아들은 검지를 살짝 들었다가 내렸다. 그는 손을 번쩍 들어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달려오는 동안 그는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 네가 생긴 거란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내 사주는 말년에 자식 덕을 본다 그러더라.”
의식을 회복한 그의 아들은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 눈 코 입이 뭉그러진 아들의 얼굴이 붕대 사이로 보였다. “괜찮니?” 눈꺼풀이 끝까지 닫히지 않는 눈을 깜빡이며 아들이 말했다. “네, 그런데, 누구세요?” 그 목소리는 그가 알고 있는 아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망한 아이들의 시신은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부모들은 할 수 없이 두 시체를 한곳에 넣고 화장한 다음 유골을 반으로 나누었다. 그가 낯선 아이에게 수다를 떨 동안, 그의 아들은 낯선 이들의 작별인사를 받으며 K시 산에 뿌려졌고 L읍의 강에 뿌려졌다. 그는 K시를 향해 운전하다가 K시가 다가오면 L읍 쪽으로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다가 L읍이 저 멀리 보이면 다시 운전대를 꺾고 K시로 향했다. 그와 아들이 처음 만난 날, 목욕을 마친 아들에게 그가 사준 것은 보름달이라는 빵과 딸기우유였다. K시와 L읍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그는 가게가 보이면 트럭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빵과 우유를 샀다. 며칠이 지나자 트럭 가득 빵과 우유가 쌓였다. 유난히 커브길이 많은 9번 국도를 달리다 그는 아들의 유골이 뿌려진 곳을 끝내 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커브길에서도 운전대를 돌리지 않았다. 트럭은 생각보다 멋지게 날았다. 그는 깨진 유리 너머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았다. 열다섯살의 그가 마흔두살의 그를 향해 웃었다. 그는 트럭 운전석에 앉아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스무살의 그가 마흔두살의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불쌍한 놈. 넌 평생 누구도 사랑해보지 못한 거야. 달빛에도 눈이 부셨다. 그는 찌그러져 열리지 않는 운전석 문을 놔두고, 거미줄처럼 금이 간 유리를 발로 찼다. 트럭 밖으로 기어나와 상한 빵과 상한 우유를 먹었다. 며칠 동안 설사를 하자 몸이 가벼워졌다. 그는 허리띠를 한칸 줄이고 일어섰다. 그리고 트럭 옆에 천막을 쳤다.
*
“그럼 그후로 쭉 여기서 살았어요?” 옥수수를 삶고 있는 그의 등에 대고 내가 물었다. “아니. 그냥 떠나지 않은 것뿐이야.” 그가 말했다. 며칠을 탁자에서 잤더니 허리가 제대로 펴지질 않았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체조를 하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모양이야. 왼쪽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것만 빼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어릴적, 나는 화가 나면 맨바닥에서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 화가 나면, 그게 상대방에게 화가 나는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나에게 화가 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마음 편했다. “탁자가 너무 높아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 그가 냄비에서 옥수수를 꺼내 내게 던졌다. 뜨거운 옥수수가 왼쪽 가슴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장 부근이 순간 뜨거워졌다. 그는 침대 밑에서 나무로 된 사과상자를 꺼냈다. 십자드라이버와 망치와 팔이 떨어져나간 인형과 카메라 삼각대와 시침이 없는 시계를 꺼내자 그 밑에 녹슨 톱이 나왔다. 그가 탁자 다리를 잘라내는 동안 나는 옥수수를 다섯개나 먹었다. 1981년 31호라고 새겨진 글이 반으로 잘렸다. 좁은 집 안으로 톱밥이 날렸다. 듬성듬성 뚫린 천막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는데, 그 빛을 받은 톱밥들이 나비처럼 보였다. 그가 내게 등을 보이게 앉아서는 말했다. “등 좀 긁어줘. 등을 긁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 나는 옥수수를 만졌던 손으로 그의 등을 긁었다. 손톱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게 달아올랐다. 예삐라고 불렸던 다섯살짜리 여자아이가 그의 등을 긁어준 지 이십여년 만에 그의 입에서 아, 시원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안 잊히는 일들 있지?” “네?” “이런 곳에서 혼자 살려면 안 잊히는 일들이 많아야 해.” 그의 등에는 엄지손톱만한 사마귀가 많이 나 있었다. 등을 긁는데 그것들이 자꾸 손톱에 걸렸다. 나는 아직도 분수를 처음 보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나는 그 물줄기들이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줄로만 알았다. 물줄기가 솟구쳤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되었다. 아 지금 지구가 숨을 쉬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구가 숨을 내뱉을 때면 물줄기가 솟았고 숨을 들이쉴 때면 물줄기가 잦아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망쳤을 때도, 그녀가 제발 머리 좀 감고 다녀라라고 말하며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나는 분수를 찾아갔다. 바닥에 엎드려 귀를 땅에 대고는 숨을 멈추었다. “지구가 나 대신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면 약간은 위안을 받을 수 있거든요.” “더 세게 긁어봐. 거기보다 더 위쪽으로.”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더 세게 긁었다. 왼쪽 어깨에 난 사마귀에서 피가 났다. 피는 내 손톱 밑으로 스며들었다. “저는 거짓말로 사람 목숨을 구한 적이 있어요.” 동네에는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반쯤 정신이 나간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하루종일 아들을 기다렸다. 버스에서 내리면 아주머니는 나를 붙잡고는 이렇게 묻곤 했다. “우리 애 못 봤니? 같이 차 안 탔어?” 그러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척하면서 말했다. “저보다 먼저 간 것 같은데요. 못 보셨어요? 얼른 집으로 가보세요.” 누구나 그런 대답을 백번도 넘게 하면 한번쯤은 다른 말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대학입학을 연거푸 실패하고 삼수를 하고 있었다. 똑같은 공부를 삼년째 하다보면 더더욱 도돌이표 같은 삶이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저기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던데 아무래도 아줌마 아들인 것 같아요. 얼른 달려가보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는 달렸다. 하늘색 슬리퍼 한짝이 벗겨졌다. 아주머니가 사거리까지 달려갔다 다시 돌아오는 동안 하늘색 슬리퍼는 벗겨진 그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버스 한대가 마주 오는 승용차를 피하려다가 버스정류장을 들이박았다. 아주머니가 매일 앉아서 아들을 기다렸던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제가 그 아주머니 목숨을 구했어요. 아셨죠? 저도 사람을 구한 적이 있다고요.” 그는 누렇게 때에 전 러닝셔츠를 다시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내 뒤로 와서는 등 긁어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등을 긁어주면서 그가 말했다. “사람은 순간을 무서워해야 해. 자네가 비겁해진 순간이 있었다면 그 한순간이 평생을 따라다닐 거야.”
옥수수밭은 수확을 마친 상태였다. 누군가 내가 몰고 온 승용차를 빈 옥수숫대로 덮어놓았다. 저 차를 처음 샀을 적에는 십년이 넘도록 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십년 후에는 그보다 배기량이 세배 정도 더 큰 차를 몰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걸었다. 밭두렁에 버려진 드럼통이 보였다. 안을 들여다보니 장작을 넣고 불을 땠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드럼통을 굴렸다. 그의 소원은 따뜻한 탕에 들어가보는 거라고 했다. 나는 쇳내가 심하게 나는 지하수로 드럼통을 닦았다. 왼쪽 무릎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키가 닿지 않아 드럼통의 바닥을 닦지 못했다. 돌들을 구해서 가운데를 비워놓은 채 둥그렇게 원을 만들었다. 그 위에 드럼통을 올려놓고 불을 지피면 어느정도 물을 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옥수숫대에서는 연기가 심하게 났다. 물이 끓으면서 쇳내가 사라졌다. 하지만 드럼통 바닥에 묻어 있던 검은 그을음이 일어나면서 물이 검게 변했다. 물이 끓자 나는 그의 눈을 가리고는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짠. 어때요?” 눈을 가렸던 손을 내리자 그가 말했다. “날 삶아서 무슨 요리를 하려고? 아무리 내가 고기반찬을 한번도 안해줘도 그렇지.” 막상 그가 목욕을 하려 하자 문제점이 나타났다. 뜨겁게 달궈진 드럼통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의 침대 밑에 있던 사과상자를 꺼내와 계단을 만들었다. 그래도 다리가 닿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과상자를 부순 다음 잘라낸 탁자 다리를 이용해서 더 높은 계단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드럼통 안의 물이 적당한 온도로 내려갔다. 옷을 벗으면서 그가 말했다. “자넨 집에 들어가 있지. 창피하니까.”
그는 벌거벗은 채로 오랫동안 서 있었다. 수확이 끝난 벌판에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몸에 오돌오돌 소름이 돋았다. 그는 팔뚝에 솟은 소름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내가 만들어준 엉성한 계단에 오른발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왼발을 높이 들어 드럼통 안에 담갔다. 물은 따뜻했다. 발만 담갔을 뿐인데도 팔에 돋은 소름이 한순간 사라졌다. 그는 두 다리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눈을 감자, 눈동자가 있는 곳 너머, 그 깊숙한 곳에 화면이 펼쳐졌다. 아직 옥수수밭이 수확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옥수수 수염이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어쩌다 9번 도로를 달리게 되면 그의 동료들은 그를 찾아왔다. 누구는 쌀을 던져놓고, 누구는 석유를 던져놓고, 누구는 아이 낳을 곳을 찾지 못한 미혼모를 던져놓고, 누구는 마누라가 도망갔다며 자기 자식을 던져놓았다. 그를 찾아왔던 동료들이 옥수수밭에서 파티를 하고 있었다. 한 여자가 커다란 가슴을 드러내놓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에게 틀니를 해주었던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24호 기사가 장부를 속이고 샴페인을 다섯 박스나 훔쳐왔다.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에 젖을 먹던 아이가 경기를 일으켰지만, 애엄마를 빼고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코밑으로 물이 출렁거렸다. 그가 숨을 들이쉬자 콧속으로 물이 빨려들어갔다. 그는 몸을 더 동그랗게 감았다. 몇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물에 잠겼다. 드럼통 안에 몸이 꽉 끼었다. 그는 눈을 뜬 채 웃었다. 그날 저 옥수수 벌판에 터뜨린 샴페인이 오십 병이었다. 그는 아들의 눈동자에 대해 생각했다. 불에 탄 아들의 시체에는 눈동자가 없었을 것이다. 화장을 하기 전 이미 눈동자를 잃어버렸을 아들을 생각하자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들이 갑자기 흑백으로 바뀌었다. 흑백으로 옷을 갈아입은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의 성기가 커다랗게 부풀었다. 이 나이에. 그는 두 손으로 거길 가리려고 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
나는 옥수숫대를 걷어냈다. 보닛이 우그러진 자동차가 보였다. 운전석에 덜 영근 옥수수가 떨어져 있었다. 트렁크를 열어보았는데 삽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기에 넣은 것 같은데. 삽은 뒷좌석 바닥에 있었다. 나는 삽에 묻어 있던 흙을 털어냈다. 산에서 묻혀온 흙이 옥수수밭 위로 흩어졌다. 오랫동안 내 손에서 나던 흙냄새가 삽자루에서도 났다. 삽을 들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삭아버린 트럭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트럭에서 나와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삽을 꽂았다. 무릎 정도 깊이까지 땅을 팠을 때 삽 끝에 뭔가가 걸렸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흙을 헤집었다. 커다란 돌덩어리였다. 돌을 잡아당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돌덩어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흙을 파기 시작했다.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것만 같았다. 그때도 그랬었다. 기껏 파낸 지점에는 굵은 나무뿌리가 있었다. 그곳에 그놈의 시체를 묻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매일 밤 나무뿌리에 온몸이 감긴 사람이 나타나는 꿈을 꿀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무뿌리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흙을 파야만 했었다. 그의 시체를 드럼통에서 빼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드럼통을 쓰러뜨려 안에 있는 물을 빼냈다. 그러고는 드럼통을 굴려 파낸 구덩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드럼통은 멋진 관이 되어줄 것이다. 흙으로 시체를 덮은 뒤, 나는 엎드린 채 땅에 귀를 대보았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무릎에 묻은 흙도 털어내지 않았고 손톱 밑에 낀 흙도 닦아내지 않았다. 침대를 놔두고 딱딱한 탁자에서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탁탁, 하고 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리는 문 밖에서 났다. 문을 열고 나와보니, 낯선 사람들이 모닥불을 펴놓고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모두 여섯명이었다. 어떤 사람은 폭죽에 불을 붙여 불꽃놀이를 하고, 어떤 사람은 꼬치에 닭을 끼워 모닥불에다 굽고, 어떤 사람은 불꽃에서 떨어지는 불똥을 잡으려고 뛰어다녔다.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당신들이군요.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그들은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들은 촛점이 없는 눈으로 웃기만 했다. 닭을 굽던 사람이 내가 태어났나요?라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아마도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파티를 벌이던 그날 경기를 일으켰던 아이가 틀림없어, 하고 나는 짐작했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늘 샴페인 터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적에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자주 하모니카를 불어주었다. 군인들 사이에서 하모니카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모니카를 잘 불지 못했다. 음정박자가 틀린 하모니카 연주를 비웃지 않고 들어줄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두분은 나를 잊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내 귀에는 음정박자가 틀린 하모니카 소리가 들렸다. 아침이 밝아오자 그들의 몸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환해지는 속도에 맞춰 그들의 몸도 투명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졌다.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무엇인가가 밟혔다. 그의 틀니였다. 윗니와 아랫니가 벌어진 채로 땅에 박혀 있었다. 마치 땅을 먹으려는 듯이. 틀니조차도 턱관절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있었다. 그의 오래된 탁자에는 이런 낙서가 적혀 있었다. 세상엔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자. 나는 아직 그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그래. 스물다섯살의 겨울부터. 십년의 세월을 이야기해야 하니 일단 어딘가에 앉아야겠다. 의자를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이제야 모든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