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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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영 鄭 瑛

1975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laylayla@hotmail.com

 

 

 

Dakhla; 입구

 

 

어젯밤 카에스(Kayes) 마을에 있는 한 극장에서 「머리 둘 달린 사나이」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그런데 주인공 괴물이 스크린에 나타나자마자 아이들은 공포에 휩싸여 대혼란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일곱 명이나 사망했다. 먼지 낀 스크린 바깥에서 아이들은 울면서 사방으로 달려나갔다. 어떤 아이들은 복도 끝에 앉아 코란을 외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마을 전체가 마치 장례식장처럼 느껴졌다. 날이 밝자 아이들은 다시금 천진한 얼굴을 되찾았다. (로랑 몬드 「다클라에서 다클라까지」, 『GEO』 2000년 1월호)

 

젖가슴에 성경책을 품은 여자들이 한 구멍으로 줄지어 나가고 있었다

밤의 유람객처럼 재잘거리고 깔깔댔다

골목에서 숨죽이던 째진 눈의 바람들도 구멍으로 쓸려나갔다

영혼을 팔지 않는 인간들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든 밤이었다

구멍의 입구는 터진 별처럼 환했다

낮은 계단을 올라 구멍의 두번째 문을 열었을 때 알았다

무덤이었다, 길의 끝은 생에 있어 가장 환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덤 속에 있었다

촛불이 있고 의자가 있고 창문이 있고

노인과 연인과 아이들과 십자가가 있었다

여자들이 신음했다 남자들이 발을 쿵쿵 굴렀다

아버지 하나님, 대체 왜 이러시옵니까 하고 절규했다

무덤의 벽에 머리 기대어 노래했다

곧 가게 될 세계의 언어로 흥얼거렸다

종이 울리자 울음소리는 곧 잦아들었고

눈물을 닦고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었다

 

금요일 밤마다 모여 함께 죽음을 연습하는 그들은

무덤의 스위치를 내리고

천진한 얼굴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등에는 잠든 아이들을 업고서

생의 입구로 흘러들어왔다

 

 

 

평일의 고해  

 

 

절두산 순교성지 고해소엔 작은 문구 하나 문에 적혀 있다

“중요한 것만 짧게 간추려 고해하시오”

성자도 소녀도 거렁뱅이도, 역시 인간은 오늘도 피곤하다

 

더덕의 손이라기엔 너무도 여린 더덕잎 한장 씹으면

갈기갈기 찢기는 더덕뿌리 향내가 입 안에 쫙 흘러요

육즙이 고이는 것처럼 키스할 때처럼

이 생에선 독한 향내가 나를 치유해요

인간의 냄새만큼 독한 게 있으려고요, 늘 피곤하거든요

그들이 날 흉터 없이 치유해요

난 이것에 대해 고해하겠어요

인간을 내 치유제로 여기어 바르고 먹고 마셨노라고

손잡았노라고 몸 비볐노라고

슬픈 정액냄새 속에서 태어났고

비린 젖을 먹고 자랐노라고

그렇게 지구에 몸 박고 내 뿌리의 살을 찌웠노라고  

문 박차고 나가 첫사랑의 심장을 파먹고 반생을 다시 시작했노라고

휘황찬란한 도시 사람 그림자 속에서 단잠을 잤노라고

지독한 꽃 같은 어머니 손을 찢으며 시를 썼고

사랑한 발가락을 오래도록 씹으며 여행을 다녔고

지인들의 가슴을 때려눕혀 그들 눈물로 내 눈을 씻었고

그들의 달디단 입냄새로 내 시궁창을 닦아냈고

밤마다 사랑해달라고 속삭였노라고

머리채를 뚝 잘라 너도 너도 너도 순교하라고 속삭였어요

사람고기 이빨로 확 뜯으면 입 안에 육즙이 쫙 흘러요

잘 살겠다고, 이글이글 눈동자를 눈물이 확 덮칠 때처럼

 

아, 한마디로 난 독한 인간들을 한잎씩 씹으며

살았고 살고 살아갈 것이라고

중요한 것만 짧게 간추려 고해합니다

 

덧붙이자면, 누구든 날 씹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