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성기완 成耆完

1967년 서울 출생. 199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 『유리 이야기』 등이 있음. creole@hitel.net

 

 

 

공간과의 조우 20040712 月 체홉의 운명과의 인터뷰

 

 

왜 이리나에게는 크림을, 올가에게는 슈가를?

cream for irina

sugar for olga

저는 사실 망설였었어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시기는 어쨌든 지나가게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실은 말장난한 것이었을지도 몰라요. 저는 말장난에 일가견이 있답니다. 그러나 예, 인생은, 아다시피, 제멋대로 뛰는 망아지 같은 거예요. 만일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면, 멈추지 말고 계속하세요. 끝까지요. 세간살이들이 완전히 타서 회색빛 재로 변할 때까지 말이예요. 그러면 차라리 그들은 고마워한답니다. 잿더미 위에 서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크림이나 슈가를 안 주겠어요? 최소한 자기들끼리 그렇게 권하면서 즐거워하는 겁니다. 거꾸로죠. 맞아요. 거꾸로예요. 하나도 거꾸로 서 있지 않은 게 없어요. 그렇게 되면 거꾸로 힘이 난답니다. 당신에게는 크림을? 슈가를?

 

연출이 박수를 딱딱 친다. 저 젊은 연출가는 조금 느릿느릿하지만 힘이 있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학도호국단장까지는 아니었어도 최소한 부반장 쯤을 하면서 반친구들에게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세 자매」를 일종의 레즈비언 무용극으로 만든 것을 보면 그녀의 은근함 밑바닥에는 아주 철저한 사상, 무엇인가 후일을 기약하는 사상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극장은 벽이 3개인 공간이다. 나머지 벽 하나는 관객이다. 오후 4시. 아직 그 벽은 빈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모스크바 구 바스만나야 거리를 아세요?

저는 세 자매가 어린시절 그곳에서 살았던 때를 인생의 가장 달콤한 추억으로 간직하도록 설정했죠. 그러나 실은 구 바스만나야 거리를 기억한 것도 역시…… 아니, 그렇게 접근하지 말고 이렇게 해봅시다. 구 바스만나야 거리라는 곳, 그곳은 어떤 곳이어도 상관없어요. 단지 지금 우리가 그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당신은 어디에 있어요? 예전에 살던 그곳은?

 

하얀 천. 몇마인지 모르겠지만 이어붙인 하얀 천. 하얀 천이 검은 벽의 일상적인 태도, 이를테면 거기 박힌 사다리식 쇠징이라든지 먼지 따위를 가려준다. 연극이 시작된다. 배우들은 저 좁은 마루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그 선들을 따라 움직이는 순간 그들은 일종의 체스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게임만은 아니다.

 

당신이 창조한 세 자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나쁘거나 죽을 맛이거나 고통스러운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요. 예, 확실해요. 그중에서 최악은,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것이겠지만 그에 필적할 만큼 나쁜 것은 처음에 좋다가 점점 나빠지는 거죠. 점점 나빠지다가 끝내는 길에 나앉게 되고, 그러면 아이들은 이를 앙다물며 저주를 시작하죠. 그러나 저의 바람은, 바로 그게 시작이니 안심하고 이를 갈라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좋아지는 거예요. 저 나뭇잎을 보세요. 시들었지만 떨고 있잖아요. 어떻게든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그럼 마지막 말씀 한마디.

what will happen next? I am curious.―안톤 체홉, 「세 자매」

 

 

 

공간과의 조우 20040721 水 근거없는 희망 3

 

 

슈퍼컴퓨터를 이용, 시인의 상상력을 효율적인 제품생산에 적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시인별로 모든 데이터를 입력한 뒤 정리하여 새로운 제품들의 아이디어를 얻어낸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시인의 발명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 전시기간: 8월 말까지 * 티켓라운드 연락처 02-325-7579(일요일은 쉽니다)

 

김소월의 ‘코마 캡슐’

너무나 힘들어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코마 캡슐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코마 상태에 빠짐. 일종의 식물 체험. 인공호흡기 함께 제공. 당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체험관 입주시 가격 추가(주차완비. 상담요망) 코마 상태에 있는 동안의 뇌파상태를 기록한 오실로스코프 동영상은 보너스.

 

보들레르의 ‘문신 코팅용 인공피부’

문신을 했다가 나중에 지겨워지면 어쩌나 하는 분들, 헤나를 하면 너무 가짜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바로 요거! 제품 개요: 돼지껍질 바로 밑의 피하층을 원료로 만든 극도로 얇은 인공피부에 특수 DNA 접착제를 발라 피부에 붙인다(돼지껍질은 역시 최대포가 최고). 피부에 완전히 밀착된다. 그러나 떼고 싶으면 DNA 생분해제를 통해 원래의 분리된 단백질 상태로 떼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아티스트가 만든 3584개의 문신 프린트 항시 대기. 유사품 주의.

 

시인의 발명품

=근거 없는 희망

=espoir sans fondations

 

윤동주의 ‘안구 등잔’

직접 눈에다가 특수 형광물질을 주입, 극미세사를 사용하여 신경망에 연결(눈다래끼 시 사용불가). 밝게 보고 싶을 때 밝게 볼 수 있음. 어둡거나 싸이키델릭한 조명을 원할 때, 코팅된 조명을 원할 때, 어떤 시각적 욕구에도 응답하는 신개념 라이트. 스위치 없음. 생각만으로 자유자재의 on off. 운전시 상향등 켤 필요 없음. 섹스할 때 에로틱한 무드 최고조로 고조시킬 특수 홍등 물질 추가시 가격 상승(담당자에게 전화요망). 주의사항 부작용. 안구 주변에 붉은 반점이 생기거나 시야에서 파리떼 같은 것이 보이면 흐르는 찬물에 눈을 씻은 후 즉시 생각을 중지하고 대리점을 찾을 것.

 

*이 제품들을 상상의 박람회장에서 꺼내가는 것은 불법임. all rights reserved to poe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