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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윌리엄 브로드 외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미래M&B 2007
과학의 자기검증체계라는 환상
김재영 金載榮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 zyghim@snu.ac.kr
배아줄기세포 조작사건이 한창 뜨거운 화제로 떠오를 무렵 사건의 당사자 황우석씨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백억의 연구비를 받는 스타과학자가 무엇이 아쉬워서 그런 사건을 저지른 것일까? 결국 뻔히 조작임이 드러난 뒤에도 자신은 결백하다고 끝까지 주장하던 모습을 보면 일부러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기보다 스스로 속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시 지배적인 의견은 이 조작사건이 드문 일탈행위라는 것이었다. 대다수 선량한 과학자들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에서 성실하게 연구에 매진하는데, 극소수의 정신나간 사람들이 이런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연구부정은 그렇게도 자주 반복되며, 과학의 자기검증체계는 또 왜 그리 쉽게 고장을 일으키는 것일까?
『뉴욕타임즈』 과학전문기자 윌리엄 브로드(William Broad)와 니콜라스 웨이드(Nicholas Wade)는 이 책(원제 Betrayers of the Truth, 김동광 옮김)에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마치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처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선진국에서도 과학은 수없이 많은 부정행위와‘진리에 대한 배신’으로 점철되어왔음을 잘 말해준다. 데이터를 멋대로 조작한 뉴턴, 야망을 위해 진리를 포기한 밀리컨(R.A. Millikan), 지나치게 완벽한 데이터를 발표한 멘델의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것이 되었다(제2장). 하지만 키나제 캐스케이드(Kinase Cascade) 스캔들, 시토크롬 c조작사건(이상 제4장), X선에 버금가는 N선, 필트다운인(Piltdown人) 사건, 수화로 대화를 하는 원숭이 님 침스키(Neam Chimpsky) 소동(이상 제6장), 논문 도용의 천재 알사브티(E. Alsabti, 제3장) 등 수십건에 달하는 부정사례들을 읽다 보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한다.
‘진리에 대한 배신’, 즉 과학의 부정행위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대부분의 부정행위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실험을 날조하여 논문으로 발표하는 행위이다. 부정행위의 고발이 과학계에서 적절하게 처리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1978년 미 국립보건원(NIH)의 젊은 연구원 로드바드(H. Rodbard)는 예일대 의과대학의 쏘먼(V. Soman)과 펠리그(P. Felig)의 신작논문이 자신의 논문을 바탕으로 날조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제9장). 로드바드는 예일대 의대 학장에게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지만, 2년이 넘도록 적절한 대응은 거의 없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오히려 직장을 잃거나 학계를 떠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부정행위의 제보를 비교적 비밀스럽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기만행위를 적발하고 입증하기가 힘들뿐더러, 사회적으로 심각한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대개 “완고한 노인처럼 변화를 싫어하는”(193면)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일 처리가 더 강화된다(제7장). 특히 사소한 기만행위, 즉 “실험자가 그 결과를 더 매끄럽고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실제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선별하거나 왜곡”(127면)하는 경우는 대부분 발각되지 않거나 적당히 무마된다. 게다가 엄청나게 많은 학술지에 실리는 대부분의 논문들은 거의 인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과학문헌 더미에 숨겨진 채 드러나지 않는 크고작은 부정행위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적발되는 것은 전체 부정행위의 약 10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부정행위는 예외적 병리현상이 아니다.
부정행위, 특히 연구논문 조작은 왜 찾아내기 힘들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학이라는 활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이 다른 종류의 지식이나 믿음보다 더 신빙성이 있고 진리에 가깝다고 믿는 것은 과학적 주장을 검증하는 정교한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제1장).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능력을 시험받아야 한다. 그런 뒤에도 새로운 연구를 위해 연구비를 받는 과정에서 동료 전문가들의 엄정한 심사를 통해 연구의 의의와 개연성 등을 검증받는다. 연구과정을 거쳐 얻은 결과는 전문적 학술지에 논문의 형태로 투고된다. 학술지 편집자는 이 논문을 다시 동료 전문가들의 심사에 넘긴다. 동료 전문가들은 해당 연구가 새로운 것인지, 다른 연구자의 논문을 제대로 인정하고 출전을 밝혔는지, 실험에서 올바른 방법이 사용되었는지,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올바른지 등을 판단한다. 과학적 주장의 검증은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롭고 중요한 주장이 제기되면 다른 연구자들이 그러한 발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연한다. 이렇게 여러 단계에 걸쳐 과학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끊임없이 서로의 연구를 점검하고, 신뢰할 수 없는 연구를 솎아내어, 확증된 결과만을 가려내어 축적하는 공동체”(26면)이다.
그러나 현실의 과학은 이러한 이상적인 자기검증체계에 따라 굴러가지 않는다. 새로운 발견의 재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대개 실험방법을 완벽하게 알리지 않으며, 실험의 재연에는 원래 연구 못지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게다가 과학적 업적은 최초의 발견자에게만 공로가 돌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확인하기 위한 재연은 불필요하다(제4장). 이같은 재연의 한계는 진리 탐구보다 명예와 돈을 바라는 출세주의자가 활개칠 수 있는 여건이 된다(제3장). 보편주의를 신봉한다는 과학자사회에서도 명백하게 엘리뜨파워가 작동한다. 상급자의 연구에 의혹을 제기한 연구원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엘리뜨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구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후광효과’도 비일비재하다(제5장). 지도교수와 제자 사이의 관계도 진리를 배신하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한다(제7장). 심지어 정치적 압력과 재정지원에 따라 연구결과가 뒤바뀌는 일도 흔하다(제10장).
이 책의 원저작이 출판된 것은 1982년이었다. 그후에도 물리학자 쇤(J.H. Schön)의 논문조작, 미국의 볼티모어(D. Baltimore) 사건, 독일의 헤르만(F. Herrmann)-브라흐(M. Brach) 사건, 한국의 배아줄기세포 조작사건 등 굵직한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이 책의 출판 이후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심각한 무게로 다가온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브로드와 웨이드의 주장처럼 이상적인 자기검증체계에 따라 진리를 찾아나간다는 전통적 과학이념이 허구라면, 연구부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의 연구부정은 극소수의 정신나간 가짜 과학자들이 저지르는 희귀한 일탈행위라고 믿고 싶다.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과학의 진리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과학자들이 아직은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고 요구한다면 성실한 과학자들이 진실을 배반하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