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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재영 河在英
1979년 대구 출생. 2006년 『아시아』에 단편 「달팽이들」을 발표하며 등단. susanna1979@hanmail.net
고도리
1
“고도리나…… 칠까?”
나는 담요를 꺼내고 그는 화투를 꺼낸다. 나는 담요를 펼치고 그는 화투를 섞는다. 패를 돌리는 손놀림이 정확하고 민첩하다. 군더더기없는 몸짓이다. 내 손에는 청단과 홍단이 하나, 광이 세개 들려 있다. 선(先)을 잡은 그가 홍싸리를 먹고 난초까지 가져간다. 시작하자마자 어찌해볼 도리 없이 초단 비상이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그가 슬며시 웃는다.
“돈단무심(頓斷無心)해야 잘 쳐지는 거야.”
동거를 시작하고 석달이 지나면서부터 우리는 주야장천 고도리를 쳤다. 거는 내기도 다양했다. 돈이기도, 설거지이기도 했다. 식사당번이나 청소당번을 정할 때도 고도리로 결정했다. 하지만 돈이나 설거지, 식사나 청소가 화투를 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함께 눈뜨고 함께 잠들게 되자, 그러니까 헤어질 필요가 없게 되자, 서로의 존재가치는 빛이 바랬다. 우리가 고도리를 치기 시작한 그 시점은,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고 화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 시점과 일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내가 서로에게 질리지 않았던 건 효율적으로 시간을 죽여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죽일 수 있었던 건 슈퍼마켓에서 사온 삼천원짜리 하우스용 화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깔려 있던 화투와 내리치는 화투가 정확하게 맞으면서 딱 소리가 난다.
“무심해져야 해.”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광으로 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은 저녁 내기다.
2
무심해져야 해.
그녀의 뒷모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학시간, 칠판 앞에는 노처녀 수학선생이 문제를 풀고 있었다. 누군가 필통을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나도, 용변을 참지 못한 아이가 뒷문으로 빠져나가도, 선생은 우리를 향한 등짝을 결코 돌리지 않았다. 와따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소설을 읽은 것은 이십대의 일이지만, 열일곱살의 내가 그 책을 알았다면 그녀의 등짝을 그렇게 묘사했을 것이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수학선생은 아주 못생겼다. 빈말이라도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칭찬은 못 들어봤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서른 중반쯤 되었을까. 어쩌면 마흔이 넘었을지도. 화장기 없는 여드름투성이 얼굴, 그 얼굴을 반쯤 가려버린 돗수 높은 안경, 손질이 안된 숏커트 헤어스타일. 그 모든 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했다. 풍덩한 월남치마와 박스티셔츠를 입은 그녀는 더 작고 말라 보였다. 티셔츠 하단에는 붉은 얼룩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나는 교과서에 낙서를 하며 김칫국물일까, 생각해보았다.
유년, 우리는 괴롭혀도 뒤탈이 없을 아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약자를 알아보는 본능 같은 게 있는 것 아닐까. 십대가 되자 우리는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야단치지 않을 선생, 마음껏 곯려먹어도 문제가 없는 선생을 찾아냈다. 수학시간이 되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아무리 떠들어도 수학선생은 혼을 내기는커녕 뒤돌아보는 일조차 없었다.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그녀의 등짝에 냅다 발길질을 날리고 싶다. 그 욕망이 너무 강해 나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쥐가 날 것처럼 발이 찌릿찌릿했지만 힘을 풀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등짝을 발로 차버릴 것 같았으므로.
첫 수업을 하던 날, 그녀는 자기 이름을 칠판에 적은 뒤 경상도 억양이 분명한 투박하고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제 이름입니다.”
그녀는 묵연히 칠판을 바라보더니 이내 이름을 지우고 문제를 적었다. 그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공식을 써나갔다. 다른 선생들처럼 학생을 시켜 문제를 풀게 하지도 않고, 질문을 하거나 받지도 않고, 아무 설명도 없이, 그 시간이 끝나도록 줄곧 문제만 풀었다. 그녀가 등을 돌릴 때는 다음 문제를 찾기 위해 교과서를 볼 때뿐이었다. 그때조차 시선은 교탁에 놓인 교과서를 향하느라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스승의 날, 아이들은 수업을 하러 온 수학선생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앞 수업도 그런 식으로 농땡이친 뒤였다.
“첫사랑? 그런 거 없습니다.”
그녀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평소처럼 칠판 가득 공식을 써나갔다. 나는 궁금했다. 애인은 있을까? 없다면 만들 계획은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있을까?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은 적은? 저렇게 흉한 옷은 어디에서 구입할까? 아니 돈 주고 옷을 사본 적은 있을까? 수학선생의 머릿속은 난해한 수학공식으로 가득 차 다른 생각은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누군가의 언니고 애인이고 친구라는 건, 부모님이 쎅스를 한다는 것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들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것으로 치자면 수학선생을 따를 자가 없으리라. 누군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어쩌면 저 선생, 아이들에게 지독한 상처를 받은 게 아닐까. 그리하여 아이들을 미워하다, 미워하다, 미워하다, 종국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수학시간 내내 나는 두가지 욕망 사이에서 고민했다. 앙다문 입술 같은 저 모진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다. 혹은 그녀처럼 완강한, 결코 열리지 않을 문과 같은 등짝을 가지고 싶다.
모두 수학선생을 무시했다. 학교식당에서 그녀는 동료교사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었다. 학생들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나는 수학선생이 그 모든 냉대와 경멸에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녀가 진정한 승자라는 것도. 나는 사람들이 그녀를 따돌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따돌리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홀대받을수록 존경심은 커졌다.
어느날 방송국 사람들이 학교를 방문했다.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는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과 학생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 코너도 있었고, 학교 옥상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야간자율학습을 없애주세요!” 같은 이루어지지 않을 건의를 하는 코너도 있었다. 하이라이트는‘선생님을 바꿔주세요’라는 메이크오버(makeover) 코너였다. 전교생의 투표로 수학선생이 당첨되었다.
무대에 나타난 그녀는 민망할 정도로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검은 피부에 새하얀 파운데이션을 떡칠하고 두꺼운 입술에 시뻘건 립스틱을 바르다니, 메이크업 담당자는 무슨 꿍꿍이였을까.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커튼콜을 하는 관객처럼 열렬히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웃음과 박수에 묻어 있는 게 환호가 아니라 조소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개그맨 출신의 남자사회자는 “여러분, 선생님 너무너무 예쁘죠?”라는 얼토당토않은 질문으로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졸지에 전교생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수학선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의 한 점만 응시했다. 수치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듯.
마지막으로 초대가수의 공연이 남아 있었다. 나는 소변이 급해 그 무대를 지켜볼 수 없었다. 강당을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데 수돗가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수학선생, 가엾은 그녀는 클렌징크림도 없이 물로 화장을 씻어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화장은 지워지지 않고 번지기만 했다. 얼굴은 벌건 립스틱과 시커먼 마스카라로 엉망이었다. 세찬 물소리에 섞인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수학선생에 대한 존경을 거두었다. 그녀를 존경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녀의 무관심이 내 생각만큼 철저하지 않다면 존경할 이유는 전무했다. 수돗가에서 혼자 울고 있는 그녀, 완강한 등짝을 버린 그녀는 못생긴 노처녀일 뿐이었다.
3
“모든 비행(非行)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담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어선생인 그의 이름은 김철수지만 학생들은‘찰스’라고 불렀다. 우리는 선생이 없으면 당연하다는 듯 이름이나 별명을 불렀다. 나는 체육관 뒤뜰에서 담배를 피우다 찰스에게 들켜 상담실로 끌려온 참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함부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선생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반 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보다 그 광경을 목격한 스스로에게 더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건 교사의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너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너만큼 나도 이 상황이 싫다, 아무 변명이나 해라, 빨리 끝내고 가자, 뭐 그런 얼굴이랄까.
찰스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었지만 나는 고집스레 입을 열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하고 술로 허송세월하는 아빠는 좋은 핑곗거리가 될 터였다. 얼마전에는 음주운전으로 인사사고까지 냈으니 비행에 대한 당위성은 충분했다. 아빠가 구치소에 수감되자 그 딸은 불량청소년이 되었다-진부할 정도로 명확한 인과관계가 아닌가. 피해자의 가족은 엄청난 합의금을 요구했지만 망해버린 집에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쉽게 말해 아빠는, 뒷감당도 못하는 주제에 덜컥 사고를 쳐버린 것이었다.
아빠가 감옥에 간 뒤 이사를 했다. 재래시장의 어물전상가 옥상에 있는 컨테이너 가건물이 우리의 새 집이었다. 열다섯평이 될까 말까 한 공간에 방 두개와 부엌과 화장실이 있었다. 씽크대에서 음식을 하면 냉장고 옆에 붙은 화장실에서 똥냄새가 풍겨오는 형편없는 동선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빠를 제외해도 네명이었다. 나, 동생, 엄마, 할머니. 나와 동생이 함께 방을 써도 할머니와 엄마 가운데 한 사람은 부엌 겸 복도에서 생활해야 했다. 물론 방은 시어머니인 할머니 차지가 되었다. 십대의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알았다면,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건 자유의 문을 여는 두가지 열쇠 가운데 한가지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을 인용하며 이사에 반대했겠지만 그때 나는 버지니아 울프를 몰랐다.
좁은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바람결에 실려오는 비린내, 생선을 탐하며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는 도둑고양이였다. 『자기만의 방』을 읽지 않아도 비린내와 고양이에 시달리다 보면‘자유의 문을 여는 두가지 열쇠’가 뭔지 깨닫게 된다. 나는 간절히 바랐다. 내게 경제적 능력과 나만의 방이 생기는 날이 오기를.
이사하는 날 나와 동생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짐을 옮기고 할머니가 생선 가판대 옆에서 신세타령을 하는 동안, 엄마는 용달차 비용을 깎으려 애쓰고 있었다. 슈퍼마켓 아줌마가 덤이라며 귤 하나만 얹어줘도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가 아닌가. 소심한 엄마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에게 기어코 만원을 깎아냈다. 엄마의 얼굴은 자랑스러움과 의기양양함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어쩌면 용달차 비용을 깎아낸 것에 고무돼 우리에게 닥친 난관을 헤쳐갈 자신감이 생긴 건지도 몰랐다. 엄마의 순진함을 대놓고 비웃을 수 없다는 게 유감스러웠다.
가족들은 슬퍼하거나 분노했다. 늘그막에 이게 무슨 꼴이냐고 할머니가 한탄할 때, 생전 해본 적 없는 장사를 하겠다고 엄마가 포장마차를 차렸을 때, 한밤 잠든 줄 알았던 동생이 숨죽여 울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때, 나는 비운이 아니라 그 비운이 가진 진부함에 슬퍼하고 분노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사고를 내고 이사를 하고 포장마차를 차리는 일련의 과정은 아침드라마에서도 못 써먹을 만큼 식상했다. 나는 건방진 포즈로 이 상황을 냉소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관심해야 했다. 무관심은 위악과 냉소의 꼭짓점에 자리하는, 말하자면 씨니컬의 진수와 같으니까.
“이러면 부모님을 부를 수밖에 없다.”
찰스는 피로해 보였다. 더이상의 침묵은 불리할 뿐이었다. 사고, 감옥, 이사, 생선,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자 예기치 않게 눈물이 흘렀다. 찰스는 나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조금 전 한 말을 되풀이했다. 모든 비행에는 이유가 있다. 아까보다 어조가 훨씬 부드러웠다. 찰스는 그 말이 퍽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함께 상담실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나를 놓아주게 된 데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기쁜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그 말을 생각했다. 모든 비행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 찰스의 말은 옳다. 비운이 켜켜이 쌓여갈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어그러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니까. 곰팡내 뭉글뭉글 피어나는 짜증스런 사춘기를 견디는 방도는 그 시절을 낭비하는 것뿐이었다. 일탈만이 갑갑한 일상의 탈출구였다. 그것만이 진부한 불운으로부터 나를 유리시키는 방법이었다.
모든 비행에는 이유가 있다. 아니다, 찰스의 말은 틀렸다. 내가 그랬던 건 오직 그러고 싶기 때문이었으니까. 이를테면 동생은 같은 일을 겪고도 나처럼 되지 않았다. 차압을 당하고 빚쟁이가 쳐들어와도 그 아이는 방에 틀어박혀 울음을 터뜨릴 뿐, 나처럼 담배를 피우거나 일일호프 같은 곳을 쫓아다니지 않았다. 어떤 비행에는 이유가 없다. 굳이 있다면 삐뚤어지고 싶은 욕망만이 그 이유다.
4
수학선생의 등짝이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타인이 내 일기장을 훔쳐본 적이 두번 있다. 열일곱살, 엄마는 내 방 서랍에서 일기장을 찾아냈다. 내가 돌아오자 나를 때리며 울었다. 담배 피운 일, 술 마신 일, 학원 빠지고 남자애 만난 일, 그 남자애가 강제로 키스한 일, 뭐 그런 것들이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부모님과 선생님을 저주하는 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남자까지 만나? 아니, 남자를 만나는 것도 기가 막힌데 뭐? 무슨 공고에 다닌다고? 미쳤어?”
내 어깨를 쥐고 흔드는 엄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무래도 엄마는 남자를 만난다는 것보다 그 아이가 공고에 다닌다는 사실에 더 격분한 것 같았다.
엄마에게 두들겨맞은 다음날, 거울을 보니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 무식한 아줌마 같으니라고. 나는 멍든 자리에 파스텔을 칠했다. 남색과 보라색을 섞어 바르고 살짝 문지르자 옅은 멍이 진해졌다. 엄마는 그 꼴을 한 나를 보고 죄책감을 느꼈는지 도시락을 싸다 말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고소했다. 열여덟살 때 나는 골초가 되었다. 열아홉살 때는 세번이나 가출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맞은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일기장을 본 또다른 사람은 스물다섯살 때 만나던 남자였다. 그 무렵의 나는 사춘기 때 소원하던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비정규직이지만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가족들이 복닥거리는 집을 나와‘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꿈꿔온 두가지를 소유했기 때문에 풍요롭고 행복했다. 자취방에 놀러온 날 그는 예전 남자에 관해 기록한 일기장을 보고 말했다.
“더러운 년.”
그는 드라마 속 남자들이 그러듯 뺨을 때리지는 않았다. 사정없이 날아오는 주먹을 고스란히 맞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다들 일기장만 보면 때리지? 비단 일기장 때문이 아니라도 나는 그에게 자주 맞았다.
그와의 연애를 떠올리면 여러가지 의문이 밀려든다. 첫번째 불가사의는 왜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나보다 열두살이나 많았고, 이혼남인데다, 월세 삼십만원짜리 반지하 원룸에 사는 가난한 남자였다. 나를 만날 당시에는 변변치 않은 동네에서 변변치 않은 호프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가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무시로 고함을 지르고 욕지거리를 퍼붓는 통에 한달을 버티는 아르바이트생이 없다는 것을, 한시간이 멀다 하고 손을 씻는 강박증과 티끌 하나 견디지 못하는 결벽증이 있다는 것 또한. 그런데 왜 그를 사랑했을까. 시간이 지난 뒤 전혀 다른 두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내게는 불행을 자초하는 성격적 결함이 있다. 혹은 사랑에 빠진다는 건 판단력을 상실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전자는 자괴감을 주었지만 후자는 안도감을 주었다. 사랑이 원래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운이 나빴을 뿐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은가.
처음으로 내가 이별을 말하던 날 그는 눈물을 흘리며 붙잡았다. 두번째로 그 말을 하던 날 내 면상에 재떨이를 던졌다. 세번째는 굴비두름처럼 저주를 줄줄 엮어 퍼붓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두번이나 자취방을 옮겼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몇주가 지나면 이사한 집 앞에 서 있곤 했다. 마주치면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차로 끌려갔다. 그는 돌아오라고 애원을 하다가 욕을 퍼붓기도 하고 손찌검을 했다가 잘못했다고 빌기도 했다. 가장 끔찍한 건 그가 해대는 저열한 협박이었다. 나체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회사에 유포하겠다, 너랑 네 가족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
그날도 차 안으로 끌려갔다. 나는 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고 그는 헤어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궤변으로 가득한 말다툼엔 듣지 못할 욕설과 저주가 난무했다. 갑자기 머리가 뒤로 확 꺾였다. 머리채를 쥔 채 그는 내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창문에 머리를 박았지만 몸을 추스르자마자 그의 뺨을 후려갈기고 잠금장치를 풀었다. 차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무지막지한 손이 뒷덜미를 잡아챘다. 얼마나 맞았을까. 다시 문을 열고 도망치려는데 그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시동을 걸었다.
“같이 죽자.”
순환도로로 올라간 차는 중앙선을 넘어 질주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가 말했다.
“난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잃을 것도 없어.”
지킬 게 없는 삶이란 얼마나 공허할까. 그에게 잃어선 안될 존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게 나이기를 바랐다. 평일 늦은 새벽의 순환도로, 중앙선을 넘은 차 안에서 그 말을 생각했다. 잃을 게 없어…… 잃을 게 없으면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잃을 게 없다는 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가. 한때 나를 슬프게 했던 그 말을 상기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사람, 정말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다. 죽자는 말이 빈말은 아닌지 그는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나는 안전띠와 하느님을 동시에 찾았다. 하느님, 저 죽기 싫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치정에 의한 살인만은 안돼요. 그건 너무 창피하잖아요.
훗날 스토킹과 데이트폭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돌이켜보면 전문가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은 다 했던 것 같다. 그들은 절대 그 사람을 만나선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만나자는 말을 거절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번 만나서 설득하려 했다. 전문가들은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이를테면 죽인다는 협박을 받은 피해자가 실제로 살해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배신한 애인의 복부에 칼을 찔러넣고 있을지 모르는데.
전문가들의 충고를 알았다 해도 다르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 용기와 위엄을 갖추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의 말을‘믿었다’. 나를 살해하리라 믿었고 나락으로 빠뜨릴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오지 않게 된 뒤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고 그가 불쑥 나타날 것 같아 시도때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불면에 시달렸다. 잠이 들면 악몽은 내 머리채를 잡고 그악스럽게 그에게 끌고 갔다. 가위에 눌리다 깨어나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승사자처럼 그가 서 있었다. 키 큰 가로수도, 건너편 건물도, 스산한 달빛을 받으면 모두 그의 씰루엣으로 보였다.
5
그러므로 두번 다시 연애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자라면 귀신 이야기를 믿지 않듯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를 로미오나 줄리엣이라고 착각하는 정신병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조롱하는 것만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내가 결코 되고 싶지 않은 인간은,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수학선생 같은 유형이었다.
연애를 하지 않고 청춘을 소비할 방법은 많지 않았지만 전혀 없지도 않았다. 십대를 낭비하는 방법으로 비행을 선택했던 나는, 이십대를 낭비하는 방법으로 원나잇 스탠드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선택’이었을까. 선택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럿 가운데 최상의 하나를 뽑는 것 아닐까.
낯선 남자의 팔을 베고 누워 있을 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단어가 있었다.‘문란’과‘음란’. 비슷한 뜻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의미는 전혀 달랐다.
문란: 도덕, 질서, 규범 따위가 어지러움.
음란: 음탕하고 난잡함.
‘문란’이라는 단어도‘음란’이라는 단어도 어감이 퍽 예쁘다. 특히‘음란’이라는 말은 음탕하고 난잡하다는 뜻만 아니면 딸의 이름으로 지어도 괜찮다 싶을 만큼 울림이 고운 소리다. 어쩌면 나는‘란’으로 끝나는 이름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혜란, 영란, 경란, 성란 같은 이름.
사랑은 불명확했지만 성욕은 명확했다. 어떤 남자는 말이 잘 통해서 잤고 어떤 남자는 외모가 잘생겨서 잤다. 하지만 하룻밤이면 끝나는 관계의 장점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내 배 위에서 신음을 내뱉는 그가 내가 가장 증오하는 타입의 남자라 한들 무슨 상관인가. 동화는 어린이에게 사랑의 환상을 강요하고, 포르노는 청소년에게 쎅스의 환상을 종용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성과 사랑은 동화 같지도 포르노 같지도 않다. 방금 쎅스를 한 남자의 얼굴이 혐오하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외모에 백퍼센트 반했던 남자가 가장 경멸하는 남자의 전형임을 알게 되는 순간, 환상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와 헤어지면서 생긴 불면증은 불치병인 양 치료되지 않았다. 통성명도 안한 남자와 관계를 가진 날이면 속수무책으로 밀려드는 자기혐오에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우면 내 몸에서 진동하는 낯선 남자의 낯선 향수냄새가 불결해 토악질이 났다. 아무리 샤워를 해도 냄새는 코끝에 매달린 것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잠 못 이루는 밤, 머릿속에는 두 단어가 어지럽게 떠돌았다. 문란, 음란, 문란, 음란……
쎅스는 자해와 같았다. 나는 스스로를 습관적인 자해자라 여기기로 했다. 죽지 않을 만큼 손목을 긋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그들처럼, 나도 자살하지 않을 만큼만 스스로를 파괴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구원받고 싶었다. 진흙탕을 뒹굴며 “여기가 좋아”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누군가 끌어내주기 바랐다.
일기를 쓰지 않은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일상은 기록하기에 부끄러운 것뿐이었다. 더이상 일기장을 훔쳐볼 사람은 없었다. 집을 나온 지 오래였고, 타인을 믿을 수 없었으므로 가까운 친구조차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그 글을 읽으리라는 것이 두려웠다. 읽으면서, 후회와 자괴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을까 봐 겁이 났다.
6
얼마전 지인의 지인을 통해 옛 남자의 근황을 들었다. 하지만 내게 충격을 준 한마디 말 때문에 그가 잘 지낸다고 했는지 그렇지 않다고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그러는데 널 만날 때 제일 행복했대.”
캄캄한 방에서 무심코 바퀴벌레를 만진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내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상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일 수 있다니. 그에게 쌔디스트적인 성향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고 해서 그 기억까지 같은 의미일 수는 없는 거겠지.
자해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낙태수술을 받았다. 누가 아기 아버지인지 알 수 없어 혼자 병원에 갔다. 다리를 브이자로 벌리고 수술대에 눕자 문득 수술비를 함께 지불해줄, 혹은 몽땅 지불해줄 남자가 없다는 게 서럽게 느껴졌다.
하혈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세탁세제를 샀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꽃을 본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지천이었을까. 낙태를 한 뒤라 그런가, 꽃조차 위태로워 보였다. 꽃은 갑자기 피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꽃이 피는 순간을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목도한 적 없는 것처럼.
이렇게 살 순 없다. 이제 그만 진흙탕에서 나가고 싶다. 나를 구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지만 방법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눈물이 흘렀다. 처음에는 눈물이었지만 곧 울음이 되었다. 종국에는 개나리가 무덕무덕 핀 어느 집 담 아래 주저앉아, 심하게 딸꾹질까지 해가며 통곡하듯 울었다. 누군가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서른도 되기 전에 할머니가 된 기분이라고.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긴, 길에서 세제를 껴안고 울고 있는 여자를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겠지. 나도, 처음이니까.
울다 보니‘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는 진부한 문장은 이럴 때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문득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면, 낙태를 하고 꽃을 바라보다 울음을 터뜨리는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를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소상하게 기억해왔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어쩌면 무의식 가운데 잊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 마음에 깊은 바다가 있어 그 아래 고스란히 묻어두자고, 살면서 나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결심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얼굴을 하고 명랑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나 보다.
눈물을 훔치면서,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일기를 쓸 걸 그랬다고. 시간이 지나고 대부분의 기억이 이토록 허망하게 유실될 줄 알았다면, 일기라도 꼬박꼬박 쓸 걸 그랬다고.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한 순간은, 중요한 시점에 나를 증명할 신분증을 잃어버린 것처럼 황망했다.
7
이번 판은 불리하다. 시작하자마자 쌍피를 싼 것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내가 든 송학 폭탄은 나올 기미가 안 보이고 설상가상 고도리까지 비상이다. 공산이 없어 저지할 방법도 없는데 그가‘고’를 외치더니 결국 공산 광과 고도리를 먹는다. 고도리도, 광도 났다.
“고도리란 말, 여러가지 뜻이 있는 거 알아?”
태연한 척 내가 묻는다.
“글쎄…… 고등어의 새끼란 뜻이 있지 않나?”
점수 계산에 바빠 그의 대답은 다소 건성이다.
“맞아. 고등어의 새끼도 고도리고, 고스톱을 다른 말로 고도리라고도 하고, 고도리 칠 때 매화, 흑싸리, 공산에 나오는 새 다섯마리도 고도리고, 그리고 또…… 아, 조선시대 죄인을 목 졸라 죽이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고도리라고 했대.”
패가 돌고 고도리에 관한 대화는 끝난다. 이제 우리는 “났네”“쌌어” “흔들었다” 같은 말만 한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하다.
8
얼마전 남자친구와 크게 싸웠다. 동거를 시작한 뒤 크고작은 문제로 자주 다투기는 했다. 원인은 도처에 있었다. 그가 휴대폰을 꺼놔서, 늦게 들어와서,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아서, 설거지를 안 도와줘서, 예전만큼 나를 위해주지 않아서, 담배를 많이 피워서, 술버릇이 나빠서, 나는 잔소리를 하고 화를 냈다. 역시나, 사소하게 시작한 다툼이었다. 회식에 간 그가 휴대폰을 꺼놓고 새벽녘에 들어온 게 이유였다. 이라크전쟁이나 한미FTA때문에 헤어지는 연인은 드물다. 대부분의 분란은 양말이나 재떨이가 화근인 것이다. 평소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는 화가 나면 빈정거린다. 나는 화가 나면 고함을 지른다. 그는 내가 이해심이 없다고 책망한다.
싸우다 말고 그가 신발을 구겨 신었다.
“어디 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 가냐고?”
그를 붙잡는 건 “미안해”나 “가지 마”겠지만 나는 두 문장을 뭉뚱그려 “어디 가?”라고 물었다. 그때, 왜 그가 나가버리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을까. 그 사람이 현관에서 머뭇거린 이유는 나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파국을 예감한 건 처음으로 그의 등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등…… 늘 내 옆에 나란히 서 있었기 때문인지 그의 뒷모습은 타인의 것처럼 낯설었다. 등에는 거부의 표정이 있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밀쳐내고 싶을 때 등을 돌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으리라. 오래전 수학선생이 내내 등을 돌리고 있었던 이유도 그런 것이었을까. 옛 남자에게 싸늘한 표정을 지은 등을 보여줬다면 그의 집착을 단념시킬 수 있었을까. 지금, 내 등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관두자.”
그가 말했다. 뭘 그만두자는 거지? 이 싸움? 아니면 이 관계? 그만둬야 할 대상을 깨닫기도 전에 그는 현관을 나섰다. 끝이다. 붙박이장 속에 든 그의 옷을 꺼내 현관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가!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마!”
시멘트 바닥에 옷이 마구잡이로 흩어졌다. 그 위로 그의 팬티가, 신발이, 책이, 전기면도기가 쌓여갔다.
“무슨 짓이야?”
그는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엔 그가 내 물건을 꺼내 문밖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뒤엉킨 그의 옷과 내 옷은 흘레붙은 개새끼들 같았다. 그 장면이 문란하고 음란해서인지, 그를 말리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이성을 잃어서인지, 나는 손에 잡히는 뭔가로 남자친구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가 쓰러지고 난 뒤에도 몇번이나 더. 알고 보니 그 뭔가는 전기밥솥이었다. 내 손에 들린 게 전기밥솥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밥솥의 꽁무니에 붙은 전깃줄이 채찍처럼 내 팔뚝과 그의 얼굴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겨우 몸을 가누고 일어난 그가 나를 떠밀었다.
“미쳤어? 밥통으로 사람을 때려?”
“그 자리에 밥통이 있었던 게 천만다행인 줄 알아. 식칼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집요하게 달려드는 나를 그는 너무도 손쉽게 들어올렸다. 상체와 하체가 일직선을 이루도록 안은 뒤 높이 들자 잠시 공중에서 내 몸이 평행을 이루었다. 어떻게 할 작정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다음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내 몸을 바닥에 내팽개쳤고 나는 바닥에 모로 떨어졌다. 바닥에 찧은 복부와 갈비뼈에 통증이 느껴졌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가 등을 두드리자 그제야 숨이 뱉어지며 구토가 났다. 기절한 듯 누워 있는 나를 업고 그는 응급실로 달리면서 엉엉 울었다. 사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며 미안하다고,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등에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왜 무단횡단을 하고 그래……”
9
유행가 제목처럼‘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서로 악수를 나누고 뒤돌아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녕”. 그리고 몇번이나 뒤돌아 서로의 등을 보며 천천히 멀어지는, 그토록 아름답고 처연한 이별은 환상일 뿐이다. 진저리나는 밤.
엑스레이에 찍힌 갈비뼈에는 선연한 금이 가 있었다. 응급실을 나오자 그는 내 앞에 다가와 등을 내밀고 쪼그려 앉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그 등에 업혔다. 돌아가는 길, 그는 횡단보도의 빨간불 앞에 멈춰섰다. 휴일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는 차도 행인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힌 뒤 다시 신발을 신었다.
“또 어디 가?”
“그냥…… 담배 한대만 피우고 들어오려고.”
집은 엉망이었다. 쓰레기처럼 쌓인 옷가지와 나동그라진 물건들 사이로, 부서진 전기밥솥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는 홀로 그 난장판 속에 누워 훌쩍훌쩍 울다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점심때였다. 그가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식사를 했다. 밥을, 찌개를, 김치를,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넣었다. 살겠다고 밥을 처먹는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눈물도 먹어야 나오는 거니까. 처음 수저질을 하는 사람처럼 숟가락이 자꾸 이에 부딪쳐 달그락 소리가 났다. 설거지를 하는데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자꾸 목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울컥 치받쳤다. 집요하게 목구멍을 넘어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았다. 남들도 알까, 슬픔은 심장도 허파도 아닌 목구멍에서 시작된다는 걸. 설거지를 마쳤을 때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왔을까 싶어 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오기를 기대하는 건지 올까 봐 두려운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내 갈비뼈에 날렵한 선을 그은 남자. 그는 한때 내게 구원이었다. 자의식도 자존심도 없이 자해 같은 쎅스만 되풀이하던 내게 그는 이십대의 마지막에 찾아온 선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과거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상처를 그가 알았을 리 없다. 따라서 그에게 나를 치유하려는 생각 또한 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곪아가는 상처를 어루만져 낫게 했다. 그를 만난 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니, 그런 표현은 우습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기실 달라진 건 광범위한 남자를 대상으로 해온 무의미한 쎅스를 그만두었다는 것뿐이다. 그것 외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만큼의 변화가 굳이 있다면, 모든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정도인 듯하다. 인생이 거대한 퍼즐이라면 달갑지 않은 과거 역시 퍼즐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조각이다. 역시 사랑은 불가사의하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인식의 변화가 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 사랑을 정의할 기회를 준다면‘구원’이니‘선물’이니 하는 말은 쓰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사랑은 양극성우울증을 닮았다. 기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수척한 얼굴을 하고 그가 돌아온 건 일주일 뒤였다. 그가 슈트케이스에 옷을 넣는 동안 나는 또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을 잊는 날이 오더라도 슬프고 유약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등만은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그의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짐을 싸는 일은 싱거울 정도로 금세 끝났다. 그는 커피 한잔만 달라고 했다. 커피가 식어가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워진 커피를 개수대에 부어버린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고도리나…… 칠까?”
10
나는 화투를 정리하고 그는 중국집에 전화를 건다. 우리는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으며 아홉시 뉴스를 본다.
“이제 뭐하지?”
그릇을 내놓고 들어온 그가 묻는다.
“글쎄…… 쎅스나 할까?”
우리는 고도리를 치던 담요에 누워 쎅스를 한다. 둘 중 누구도 헤어지자거나 헤어지지 말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으므로 이별은 유예된다. 이제 그와 나는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