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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신경숙 장편소설 『리진』(전2권), 문학동네 2007
우울한 응시, 애도의 글쓰기
복도훈 卜道勳
문학평론가 nomadman@hanmail.net
신경숙(申京淑)의 장편소설 『리진』은,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이다. 최근 한국소설에서는 드물게 완벽에 가깝도록 아름다운 주인공을 창조했기 때문에 그렇고, 독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그 형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것은 순전히 작가의 빛나는 공력 덕분이다. 소설 속 리진은 아름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려 들면 독자들은 당혹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소설의 대단원,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후 교태전(交泰殿) 후원에서 독을 묻힌 불한(佛韓)사전을 한장씩 찢어 씹으며 자살하는 장면에서도 그녀가 죽었다기보다는 사라졌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남는다. 이렇게 말한 까닭은 리진이 재현 불가능한 존재임을, 나아가 『리진』이 재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서사라고 강조하기 위해서다. 『리진』은 표상할 수 없는 것, 말없는 우울(melancholy)의, 또는 우울에 대한 글쓰기다. 글쓰기가 무엇을 대신하고 표상하며 대표하는(represent) 행위라는 것, 또한 주요 작중인물들이 모두 글을 쓰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도 아울러 언급해두기로 하자.
물론 소설에는 리진에 대한 재현, 이른바‘묘사’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녀를 형상화하는 다음 장면을 과연 묘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녀가 재현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검은 눈동자 때문일까. 붉은 입술 때문일까. 눈과 같이 밝은 피부 때문일까. 리진의 얼굴은 꽃과 같았다. 윗눈썹은 가지런했고 숱 많은 속눈썹에 둘러싸인 눈동자는 검고 맑고 깊었다. 뺨은 붉고 손가락은 희고 길었으며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고 이마는 매끄럽고 미간은 넓고 손목과 발목은 가늘었다. 검을 곳은 검고 붉은 곳은 붉었다. 가늘 곳은 가늘고 밝은 곳은 밝았다. 풍부할 곳은 풍부했다.”(1권 124면) 간단히 말해, 관찰대상의 세목(細目)들보다 관념과 상징이 부각되는 묘사다. 소설 속에서 구한말 왕실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과 제3공화정 시기 빠리 부르주아들의 삶의 세목을 밀도있게 재현한 작가의 능력을 염두에 두면, 리진의 형상에 대한 작가의 묘사에는 뭔가 의도적인 것이 있다. 소설에서 리진은 결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의 현신(現身), 곧 피와 살을 가진 구체적인 인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데아를 온몸으로 체현하는 개성에 더 가까운 존재다. 그렇기에 그녀는 미(美)처럼, 생성과 소멸 사이에 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리진의 형상에서 그녀의 검은 눈동자만 잔상처럼 남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독자들을 도리어 응시하는 듯한 이 검은 눈동자야말로 작가가 남기고자 했던 리진의 참모습은 아닐까. 리진은, 그녀의 삶을 바라보는 독자들까지 포함해서, 뭇시선에 의해 관찰되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응시를 받고 그 응시를 되돌려주는 사랑의 대상이자 주체로서만 존재한다. 반대로 사랑의 대상을 상실한 리진의 검고 깊은 눈은 우울증자의 텅 빈, 공허한 눈이 된다(『리진』이 신문에 연재되던 당시의 제목은‘푸른 눈물’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행위가 상대방을 사랑하게 할 수도, 또 다치게 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럼 누군가가 사물과 사람을 바라볼 때 그가 보는 것은 실제로 무엇일까? 낯설고 신기한 대상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보는 자의 시선을 얼어붙게 만드는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다. 소설에는 리진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있고, 그것들은 종종 뒤섞인다. 먼저 빠리의 부르주아들이 이국의 춤을 추는 조선의 무희를 바라보는 호기심의 시선이 그 하나일 것이며, 리진을 둘러싼 작중인물들과 서술자가 보내는 사랑의 응시가 다른 하나일 것이다. 호기심의 경우 대상은 구경거리로 변하며, 아름다움의 경우 대상은 사랑을 낳는다.
그런가 하면 리진의 남자가 되는 프랑스 외교관 콜랭, 리진에 대한 그의 시선과 응시는 따로 감별하기 쉽지 않다. 그는 리진 몰래 그녀의 사진을 찍는가 하면, 그녀의 깊은 눈에 무방비로 이끌리기도 한다. 따라서 콜랭과 리진의 만남은 사랑의 시작이자, 훗날 있을 비극의 예고가 된다. 그 비극은 리진이 프랑스에서 근대를 체험해나가는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중층적인 부피와 무게를 지니게 된다. 리진을 둘러싼 사적인 삶과 사랑은 구한말 조선을 놓고 전개된 동아시아의 공적 역사라는 회오리바람을 타게 되면서 서구와 조선의 갈등, 약소국과 제국주의적 열강의 불화, 전근대의 쇠락과 근대의 부상, 대한제국의 몰락 등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정점에 리진의 눈으로 지켜본 명성황후 시해라는 비극적 사건이 자리잡고 있다.
『리진』은 무언가를 표상하고 대표하는 자들을 작중인물로 내세워 리진의 사적인 삶과 그녀의 삶을 둘러싼 공적 사건을 매개하고 있다. 그들이 글을 쓰는, 무언가를 대리 표상하는 존재임은 앞서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임오년의 난을 기록하고 명성황후에게 프랑스에서의 삶을 편지로 쓰지만 결코 부치지 않는 리진, 리진에게 부치지 않은 연서(戀書)를 쓴 강연, 대통령에게 보낼 조선과 관련된 공문서를 작성하는 콜랭, 『춘향전』 『심청전』 등을 번역하고 그것들을 통해 조선을 소개(대표)하려는 홍종우, 리진이 낭독하는 『여자의 일생』의 작가이자 부르주아사회의 문화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모빠상 등 주요 작중인물들은 모두 글을 쓰는 자들이다.
리진과 콜랭의 이별은 외교관이자 수집가인 콜랭의 존재, 즉 무엇인가를 표상하고 또한 대표하는 존재로 시종일관하려는 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콜랭은 이국의 풍물들을 수집하여 빠리를 세계의 중심=대표로 만드는 데 일정부분 공헌하는 빠리지앵이자, 소설 전반부 그의 편지에서 드러나듯 외교관으로서 대통령에게 조선과 관련된 공무를 보고하는 프랑스의 대표이며, 귀족이라는 아버지의 평생 꿈을 이어받고 대신하려는 부르주아의 성공한 자식이다. 그런 콜랭에게 리진은 사랑하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존재이다. 또한 빠리에서 그녀의 삶은 조선에서 온‘무희’의 그것이며, 콜랭도 그런 방식으로 그녀를 사교계에 소개한다. 『리진』에서 재현되는 제3공화정 빠리의 부르주아 사교계는, 제2제정 빠리에 대한 보고서인 벤야민(W. Benjamin)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도 암시된 것처럼, 빠리꼬뮌(1871)의 붕괴로 혁명적 가능성이 사라진 대신 엑조티시즘의 무대인 박물관, 미술관, 심지어는 시체전시실과 흑인수용소 들로 가득찬, 온갖 데까당스의 집합소다. 당시‘무희’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엑조티시즘의 대표적 이미지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리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조선의 이미지로 표상되고 그녀에게 호기심을 나타내는 수많은 시선들을 더이상 견뎌내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점점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우울증적 주체가 된다. 무도회장에서 있었던 두번째 유산(流産)을 계기로 찾아온 오랜 실어증과 몽유증 속에서의 말없는 춤사위, 각별한 사이였던 모빠상의 자살 소식을 듣고도 애도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전적으로 우울증자의 그것이다.
리진에게는 두개의 죽음이 있었고 그녀는 두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존재가 된다. 모빠상의 죽음이 그 하나였고 명성황후의 시해가 다른 하나였다. 모빠상과의 만남과 그의 죽음을 통해 리진은 시체전시실과 흑인 여자가 갇힌 수용소로 표상되는 모더니티의 조락(凋落)을 목격했으며, 그녀의 상징적 어머니이기도 했던 마지막 왕조의 국모가 시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함으로써 전근대의 죽음을 몸소 체험했다. 리진의 삶과 죽음은, 전근대의 몰락과 근대의 시작을 당연한 듯이 여기고 그것을 역사라고 명명하기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대문자 역사 속에서 리진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그녀의 죽음을 표상하지 못하는 이방인, 죽었으나 죽지 못한 산주검(un-dead)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신경숙이 『리진』을 썼고, 근 한세기 만에 리진을 애도했다. 최근의 소설들이, 맑스의 말을 빌리면, 살아 있는 자를 짓누르는 악몽인 역사로부터의 휴가를 즐기려는 듯, 역사를 깃털보다 가벼운 어휘로 취급한다고들 한다. 그런만큼 역사의 울혈(鬱血)을 풀려는 노력이 많지 않았던 것도 진실이다. 『리진』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