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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2007
신이라는 망상
김재영 金載榮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zyghim@snu.ac.kr
“에 뿌르 씨 무오베”(E pur si muove).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하지만 움직이는걸” 정도가 되겠지만, 흔히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번역한다. 근대 과학혁명의 주역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로마에 불려가 종교재판을 받고 가톨릭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주장을 설파하지 않겠다는 서약과 더불어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은 후,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는 바로 그 말이다. 주제뻬 바레띠가 처음 이 말을 글로 기록한 1757년은 갈릴레오가 죽은 지 115년이 지나서였고, 빈첸쪼 비비아니가 쓴 첫 전기에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서술된 것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이 일화는 틀림없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에 뿌르 씨 무오베”라는 말은 여전히 과학적 사실이 종교에 의해 억압될 수 없음을 말하는 표어처럼 사용된다.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반대가 되어버렸다. 이제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종교가 근거 없는 상상일 뿐 아니라 대단히 해로운 망상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의 원제‘The God Delusion’을 그대로 번역하면‘신이라는 망상’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이 책이 전세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내용을 비판하는 글이 여럿 나왔지만, 도킨스를 초청하여 특별강연을 듣는 일도 많아졌다. 미국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랜돌프 칼리지에서 열린 강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시간 가까운 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이 무려 70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 교수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나는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서 내내 나 자신이 모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킨스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왜 당신이 모욕당했다고 느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모욕한 것이 아니라 신을 모욕한 것입니다”라고 재치있게 대답했다.
도킨스가 모든 종교를 모욕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히브리 성서’(TANAKH)에 바탕을 둔 세 종교의 인격신이 문제다.‘스피노자의 정신’(L’ésprit de M. Benoît de Spinoza)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저자가‘Traité des Trois Imposteurs Moïse, Jésus, Mahomet’라는 제목으로 ‘세명의 사기꾼’ 즉 모세, 예수, 무함마드(마호메트)를 공격하는 책을 낸 것이 1712년의 일이다.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한 전면공격이었고, 당시에도 이미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비슷한 성격의 책들이 꾸준히 세상에 선보였고, 그 성격에 따라 혹독한 또는 풍자적인 비평을 받곤 했다.
새삼 왜 이제 와서 도킨스의 이 책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작년 9월에 출판된 원서는 꾸준히 전세계에서 베스트쎌러로 군림해오고 있고, 한국어판이 나온 것은 올해 7월인데 9월초에 이미 17쇄를 찍었다. 흔하지 않은 일이다. 한국어판의 경우, 이러한 흥행의 원인에 대해 쉬운 대답을 찾자면,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갔던 무모한 기독교인들이 여름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01년 9월 11일의 미국 무역쎈터 붕괴사건이나 그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일, 부시가 십자군 운운하던 일을 떠올린다면, 존 레넌을 따라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는 도킨스의 얘기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없다면 마녀사냥도 쎄르비아-크로아티아 전쟁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왜 새삼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역시 그의 진화생물학 내지 동물행동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30여년 전에 출판된 『이기적 유전자』와 그에 이은 『확장된 표현형』 『눈먼 시계공』 『에덴의 강』 『불가능한 산 오르기』 『조상 이야기』 『악마의 사도』 등의 저작으로 얻은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18세기초 유럽의 지하출판물에서 인격신을 믿는 세 종교를 비판한 근거는 스피노자의 철학이었다. 이제 과학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과연 도킨스의 과학은 종교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까? 도킨스는 종교의 효용으로 설명(explanation), 도덕률(exhortation), 위로(consolation), 영감(inspiration)의 네가지를 든다(531면).
먼저‘설명’이란 이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가 왜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한 모든 궁극적 해석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근대 과학혁명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행성이 전체 우주에서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19세기의 진화론과 자연선택론으로 인간이 자연계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대폭발우주론이나 인지심리학 같은 최신의 과학이론들 역시 존재론적 물음에 대하여 과거에 종교가 제공하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답을 주고 있다. 반면 종교, 특히 인격신에 바탕을 둔 종교는 2천년 전의 구태의연한 관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4장).
‘도덕률’이란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윤리규범과 가치의 표준을 뜻한다. 하지만 히브리 성서에 담긴 지극히 성차별적이고 변덕스러우면서 잔인한 인격신의 황당한 이야기들에서 도덕률을 끌어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시도이다(6, 7장). 과학은 종교보다 훨씬 더 강렬한‘영감’을 주며, 거짓말에 기대어‘위로’받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10장). 이와같은 도킨스의 주장은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특히 종교와 관련된‘위로’나‘영감’에 대해서는 이제 막 운을 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 책에서 매우 부족해 보이는 또다른 문제는 종교의 기원에 대해 과학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도킨스 자신은 종교가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어린아이는 생존을 위해 권위있는 부모나 어른의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했을 것이고, 그것이 종교적 순종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 종교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생존을 위한 어린아이의 순종’이라는 유치한 수준에서 그다지 나아가지 않는다. 이른바 종교의 밈 이론(memetics)은 5장(특히 292~ 307면)에서 잠시 다루어지지만 역시 조금 말을 꺼내다 만 정도이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했듯이 생물학적 형질의 자연선택이 유전자(gene)에 있는 것처럼, 밈(meme)은 문화의 자연선택에 대한 기본단위가 되는데, 특히 종교와 같은 밈은 마음의 바이러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예전 책들에서 하던 얘기에서 그다지 더 진전되지 못했다.
도킨스는 옥스퍼드대학에서‘과학의 공공이해 교수’(Professor for the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라는 특이한 직위에 있다. 과학의 공공이해라는 용어는 과학이 소수 전문가의‘계몽’에 의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교육되는 것이라는 낡은 관념을 거부한다. 비전문가들에게 필요한 과학은 따로 있고, 그것을 통해 훨씬 더 넓은 영역(가령 종교나 예술)에서 과학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과학자라는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도 합리적 사유를 거쳐 직접‘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셈이다.
갈릴레오의 소심한 “에 뿌르 씨 무오베”는 이제 “신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라는 과감한 주장으로 대치되고,‘스피노자의 정신’이 철학적 사유에 기대어 공격했던‘세 사기꾼의 사기행각’은 이제 과학의 힘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이 책이 이렇게까지 베스트쎌러로 인기를 누리는 것은 부당한 일인 것 같다. 도킨스가 이 책을 통해 뭔가 더 심오한 사상적 혁명을 가져오고자 한다면, 이 리바이어선 같은 종교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자연선택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종교라는 특이한 믿음의 체계가 가져다주는 위로나 영감이 그저 거짓되고 허황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왜 그런 믿음을 중히 여기는지 해명해주고 그를 통해 진정한 인격신의 비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