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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존 맥닐·윌리엄 맥닐 『휴먼 웹, 세계화의 세계사』, 이산 2007

매끈해서 불편한, 세계화의 자기인식

 

 

양희영 梁希英

서울대 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mituns@hanmail.net

 

 

휴먼웹9·11테러 이후 아랍지역 곳곳에서 정치적 긴장과 물리적 대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국제적 갈등의 대표적 주체들, 즉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미국의 신보수주의자 들은 모두‘우리’와‘그들(타자)’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지역적 차이와 문화적 경계를 넘어 인류가 실은 다양한 방식의 접촉과 연루, 상호작용을 통해서‘하나의 단일한 세계’를 이루어왔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같은 인식은 이미 그 자체로서 공존과 평화의 정치적 초석이자 자민족 내지 자문화 중심 사유틀을 극복할 수 있는 의미있는 지적·문화적 자극이다. 더욱이 9·11의 충격과 그 여파 이전부터 이미 전지구적 물류·자본·노동·정보의 이동과 교류에 능동적으로(심지어 과도하게!) 참여하며 세계화의 흐름에 온몸과 열을 바치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자못 당연한 세계상인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공존을 내세우든 개인이나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든 지적·학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제‘그 단일한 세계’의 자기인식, 즉‘세계화의 세계사’이다.

존 맥닐(John R. Mcneill)과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부자(父子)가 쓴 『휴먼 웹, 세계화의 세계사』(The Human Web, A Birds-Eye View of World History, 김우영·유정희 옮김)는 번역서의 제목 그대로 세계화라는 현재의 화두를 인류의 과거 전체로 확장한 세계사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세계화는 현대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사가 곧 세계화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인류의 역사가 개인들, 사회들, 문명들 사이의 크고 작은 관계망, 즉‘휴먼 웹’을 통해 물자·정보·사상을 주고받으면서 발달해왔고 이러한 웹의 존재가 인류 발달의 핵심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곧 인류의 역사는 웹이 주기적으로 확대·강화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①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기 전 아주 느슨한 형태의 월드와이드 웹이 존재하던 시기 ② 1만 2000년 전에서 6000년 전까지 농경의 시작과 함께 더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더 촘촘한 지역적 웹들이 형성된 시기 ③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문명·이집트문명·인도문명·중국문명이 생겨나고 이 문명들을 중심으로 메트로폴리탄 웹이 형성되어, 서기 200년경 유라시아의 대부분 지역과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아우르는 아주 견고한 올드월드 웹(OldWorldWeb)이 창조되기까지의 시기 ④ 이 올드월드 웹이 지속적으로 확대·강화되는 1500년경까지의 시기 ⑤ 올드월드 웹과 아메리카 웹, 소규모의 퍼씨픽 웹 등이 하나로 융합되어 코스모폴리탄 웹을 형성하는 1800년까지의 시기 ⑥ 이 웹이 더 촘촘해지고 꽉 짜이는 이후의 시기로 구분된다.

인류 역사를‘글로벌 웹’형성과정으로 파악하는 맥닐 부자의‘세계사’는 단순히 지구적 층위에서 벌어지는 역사 현상이나 과정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그 공동체의 상호 관련, 상호 의존성에 주목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예를 들어 ③의 시기에 문명들은 자발적 교역뿐 아니라 강압에 의한 복종, 약탈, 군사적 충돌을 통해 다양한 재화·기술·사상을 교환하고, 질병과 종교적 관념을 퍼뜨렸다. 그런 점에서 이 문명들은 처음부터 상호 작용하는 통일체를 이루고 있었고, 인류의 역사는 그 통일체가 같은 방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다. 그것이 곧 웹의 확대와 강화로서의 세계사인데, 웹에 통합된 지역에서는 활발한 교류와 협력으로 더 많은 부와 권력이 창출되어 웹 외부의 사회와 격차가 벌어지는 한편, 웹 내부에서도 웹에 적응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수준에 따라 지역별·집단별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이러한‘세계사’를 주장하는 저자들은 웹의 확장과 강화를 중심부에서 주변부로의 일방적인 영향력 확대로 보지 않는다. 양자의 상호관계가 세계사의 내용인만큼, 다양한 종류의 접촉에 대한 주변부의 대응과 변화에 공정하고도 충분한 관심을 보이려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메트로폴리탄 웹의 주변부에 있던 우리나라가 벼농사와 불교의 확산, 해상무역 등에서 세계사 내의 여러 흐름들과 어떻게 결부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상이한 지배문명의 흥기(興起)를 서술하는 방식도 이 책의 의의를 더해준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서기 1000년 이후 급부상하게 된 것은 서아시아로부터 오랫동안 유용한 문물을 도입하고, 내륙의 운하를 통해 농촌을 상업화함으로써 ③의 시기에 형성된 올드월드 웹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쿠빌라이가 세운 제국 아래서 유라시아의 나머지 지역과 한층 견실하게 통합됨으로써 ④의 시기에도 새로운 기술을 전파하는 중심부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라시아의 변방이자 올드월드 웹의 주변부였던 유럽이 ⑤의 시기에 세계를 하나의 전지구적 웹으로 융합하고 중심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올드월드 웹 안에서 유통되던 사상·재화·관행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응용한 덕이다. 동시에 저자들은 15세기 말 해양 탐험을 중단하고 의도적으로 상업적·제국주의적 팽창을 거부한 중국의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정책이 유럽에는 기회가 되었음을 지적함으로써, 유럽의 흥기를 유럽문명에 내재한 요소들의 본질적 우월성이 아니라 웹에의 참가와 후퇴라는 우연적 계기와 특정국면에서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세계사 서술은 일견 인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이고 균형잡힌 설명을 제시하고 기존 역사서술의‘유럽중심주의’에서 탈피한 대안적 역사상을 제공하는 듯하다.

그러나 웹의 확대와 강화로서의 세계사라는 이 책의 시각은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장점 및 의의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 책은 각 장의 결론에서 내용을 요약하는데, 각 장이 앞에 열거한 각각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도 결론은 늘 한결같다. 즉 웹 내부의 교류와 협력은 부와 권력을 창출하므로 웹의 강화와 확대는 인류사의 중단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긴장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상 역시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저자들에 따르면 어디에서나 소수의 엘리뜨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일부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새로운 관계와 교환의 잇점을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과 불평등의 심화가 웹의 불가피한 부산물이며 사회 내부의 문제는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하다고 여길 뿐, 특정 사회 내에서 인간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가했는지, 엘리뜨가 부와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기제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결과 세계사는 양상만 다를 뿐 세계화라는 동일한 원리에 의해 진행되는 셈이므로 상이한 역사적 체계들간의 본질적 차이는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왜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했는지, 근대 자본주의 세계질서가 어떤 특징을 갖는지 묻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는‘자본주의’라는 단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⑤의 시기를 여전히 상업화와 도시화, 무역의 세계화를 통한 단일한 코스모폴리탄 웹의 형성으로 설명하고, 18세기와 19세기의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을 ⑤ 시기에 진전된 웹의 확장과 공고화의 산물이자 ⑥의 시기에 다시 웹을 통해 발생지를 넘어 확산될 수 있었던 사건들로만 설명한다. 제국주의 역시 웹의 확장과 공고화라는 현상으로 설명될 뿐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대의제 정부, 내셔널리즘의 확산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로 귀결되는 메커니즘은 탐구되지 않는다. 즉 유럽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는 인류사의 출발에서부터 진행되어온 일관된 과정의 한 변형이며, 그 불안정과 불평등 역시 체제 고유의 문제로 특별히 문제시되거나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1980~90년대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본의 신세계가 사회들 사이의 그리고 사회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염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인류의 공동번영, 나아가 생존의 토대임을 의심치 않는다.

최근 국내외 역사학계에서의‘탈유럽중심적 세계사 서술’을 둘러싼 토론에서 분명해졌듯이, 세계 여러 지역과 문화권 들에서 유사한 발전과정을 찾아낸다든지 아니면 더 나아가 상호 연루와 영향관계의 내밀한 과정들을 들추는 것만으로는‘새로운 방식의 세계사 쓰기’가 지닌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세계화가 역사적으로 빚어낸 차이와 균열, 대결과 갈등, 인간 고통의 증대와 부담의 가중, 그 파괴적 발현양상 등을 비판적으로 다루지 못한다면, 왜 현재 즉 세계화가 전에 없는 규모로 강화되는 이 시점에 새삼‘우리’와‘그들(타자)’의 차이에 기반한 근본주의적 정치가 등장·융성하고, 다른 한편 반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국제적 연대가 새롭게 조직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찬반을 넘어 비판적 역사화가 화급히 요청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