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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임세화 林世華
1984년 대전 출생.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 farewell_i@hanmail.net
모래늪의 기억
종이컵을 내밀자 아이는 비칠비칠 뒷걸음질을 쳤다. 어른들은 겁에 질린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킬킬거렸다. 나는 다시 한번 아이를 향해 컵을 받아가라고 턱짓을 했다. 도리질을 치며 내 눈을 노려보던 아이는 제 뒤에 선 엄마를 잡으려는 듯 공중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어른들은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면서도 내심 빨리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내가 왼쪽 입꼬리를 비틀어 웃음을 지어 보이는 순간, 제 엄마의 치맛단을 붙잡으려던 아이는 사슴분이 깔린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듯 입술을 옴짝거리자 어른들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대신 컵을 받아들었다. 나는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안아올리는 모습을 흘끗거리며, 새로 받은 녹혈에 소주를 부어 휘휘 저었다. 어른들은 배식을 받는 초등학생들처럼 착하고 질서정연하게 컵을 받아들었다.
얌전히 누워 있던 갈록이가 마취기운에 젖은 혼몽한 눈을 껌벅거렸다. 벌써 스무 컵째였다. 아무리 튼튼한 사슴이라도 열 컵 이상을 뽑아내면 힘들어진다. 종이컵으로 반 컵씩 스무번을 따라냈으니 이제 갈록이의 피는 그만 뽑아야 했다. 나는 피를 뽑아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눈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버지는 지혈제와 고무줄 대신 새 컵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이건 한철 장사다. 너도 알잖니.”
어제부터 계속 일어나지 못하고 축사에 누워 있는 갈록이를 보며 아버지는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흙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던 아이처럼 입술을 씰룩거렸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갈록이의 피를 콸콸 따라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늘 주저하며 나를 어렵게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유난히 거슬렸다. 나는 뜨거운 볕에 벌겋게 익은 아버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슴농장에 온 후로 아버지는 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굴었다. 숲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흠칫흠칫 놀라고, 커다란 안경 속에 숨은 작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두리번댔다. 특히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사슴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를 더 답답하게 했다. 그런 아버지의 태도에 나는 자꾸 부아가 치밀었다. 뿔이 잘린 채 힘없이 늘어진 갈록이보다 더 기운없이 서 있는 아버지를 외면하고 나는 축사 밖으로 나왔다.
종이컵에 담긴 피를 보고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던 아까 그 아이가 제 동생과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의 동생은 녹혈을 마신 덕분인지 발그레한 혈색으로 내가 가꾼 잔디 위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동생은 내가 아이에게 주었던 녹혈을 아침에 갓 배달된 우유 마시듯 벌컥벌컥 마셔댔다. 박카스가 섞인 녹혈에서 약간 달달한 맛이 났던지 윗입술에 묻은 검붉은 핏물을 혓바닥으로 게걸스레 핥아대기까지 했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두살 터울이라는 제 오빠와 몸집이 비슷했다. 외려 동생이 오빠보다 우람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부모와 친척들은 파란 비치파라솔 아래 앉아 사슴육회를 먹고 있었다. 아이들이 발정난 사슴처럼 뛰어다니며 잔디와 꽃을 밟는 데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마 아이들이 적당히 먼 곳에서 놀다가 마침맞게 돌아와 자신들을 방해하지 않길 바랄 것이다. 아이들은 둘이서 하는 술래잡기에 금세 싫증이 났는지 잔디에 앉아 맨손으로 흙을 파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땅굴을 만들기 전에 나는 작게 소리치며 손짓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의 키는 새끼사슴과 비슷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절대 사슴을 꼬집거나 괴롭히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농장에 오는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들은 내 말을 대충 흘려 듣고 새끼사슴에게 다가갈 것이다. 마치 자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사슴이 꼬리를 흔들고 자신들의 몸에 털을 부비며 사랑스럽게 안기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화가 난 새끼사슴이 그들의 엉덩이나 가슴을 치받으면 울까 말까 고민하며 두리번거리다 애꿎은 사슴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는 제 엄마에게 돌아갈 것이다. 나는 작은 울타리 곁에 있는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제 동생의 등 뒤에 숨어 사슴을 훔쳐보고 있었다. 동생은 손을 뻗어 사슴의 등을 쓰다듬더니 점점 대가리 쪽으로 손을 옮겼다. 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동생은 점점 과감하게 사슴을 만졌다. 내 기대와는 달리 지난달까지도 사람을 경계하던 새끼사슴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변해 있었다. 그들은 게으르고 무신경했고 순하게 굴었다. 나는 나태해진 사슴들을 경멸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렇게 자란 사슴들은 매년 뿔이 잘리고 피가 뽑히고 종내는 육회와 불고기가 되어 식탁에 오를 것이다. 동생은 불쌍한 생을 살다 죽을 것이 뻔한 새끼사슴의 등에 제 무거운 엉덩이를 올리고 있었다. 새끼사슴은 가느다란 네 다리를 부들부들 떨다가 푹 주저앉았다. 새끼사슴은 검고 큰 눈으로 날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당장 내려오세요, 꼬마 아가씨. 불쌍한 어린 사슴의 등에 올라타면 다음 생에 사슴으로 태어날지 모른다고.”
“난 사슴 좋은데. 일어나, 사슴. 이랴, 이랴.”
“……그래, 넌 꼭 사슴으로 태어날 거야.”
나는 새끼사슴의 가냘픈 등에서 거칠게 동생을 끌어내렸다. 동생이 땅에 떨어지며 사슴분이 섞인 냄새나는 흙이 분홍 스커트에 묻었다. 동생이 난리법석을 피우며 내 손에 끌려 내려오는 동안, 아이는 검지와 중지로 사슴의 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였다. 나는 요란하고 정신없게 구는 아이의 동생도 싫었지만, 곧 죽을 노인처럼 구는 아이는 더 끔찍했다. 나는 아이의 손목을 덥석 그러쥐고 한참 동안 사슴의 등을 되게 문질렀다. 아이는 요양원에 끌려간 노인처럼 무력하고 공포에 질린 낯빛으로 사슴 털을 부비는 제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럽게 뭘 만지는 거니?”
아이의 엄마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반바지 차림으로 휴가를 즐기고 있던 아이들의 엄마. 새끼사슴이지만 털에 사슴분이 덕지덕지 묻은 건 다 큰 사슴과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나는 익숙해서 잊고 있던 냄새, 더운 날씨에 사슴분과 사슴의 체취가 풍기는 역한 냄새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육회 양념에 섞인 고춧가루가 잇새에 낀 채로 아이들의 엄마는 아이들을 나무랐다. 특히 동생이 연한 분홍 스커트 아랫단에 잔뜩 분뇨를 묻힌 것을 보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나에겐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그곳으로 데려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손에 삽을 쥔 아버지는 건너편 축사에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손님들이 가져갈 녹용과 사슴고기를 포장했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듯 싱싱해 보였다. 아이스박스에 꼼꼼히 고기를 담는 아버지의 손놀림은 몹시 날렵했다. 노파가 한차례 손질을 끝내놓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스박스 포장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저울의 눈금을 응시하며 묵묵히 포장하던 아버지는 여러번 헛기침을 했다. 아버지의 어깨가 저울의 바늘처럼 너울거렸다. 나는 식탁에 턱을 괸 채 저울의 눈금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다리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아버지가 입을 뗄 떼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규칙이었다.
아버지는 괜히 완성된 포장을 풀어 아이스팩을 더 넣었다가, 녹용을 조금 덜어냈다가, 포장 테이프를 덧붙이는 일을 반복했다. 먼저 입을 뗀 건 때마침 부엌에 들어온 노파였다. 뒤미처 입을 열던 아버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파는 숙박을 하루 연장하겠다는 손님들의 말을 전했다. 대신 펜션의 객실료를 조금 깎아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아버지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칠순이 넘은 노파는 그러나 노파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고왔다. 분홍빛이 감도는 고운 볼과 굵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노파와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를 부를 일이 없었다. 마땅한 말이 없어 그저 노파라고 지칭할 뿐이었다. 퉁명스럽고 붙임성 없는 노파는 이 지방 토박이로 인근 농가들의 사정과 사슴농장의 생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농장 옆에 펜션을 함께 짓지 않으면 망해버릴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듯 씨부렁거린 것도 노파였다. 어느새 노파가 없으면 농장 운영이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노파는 가족 아닌 가족으로 아버지와 내 곁에 머물렀다. 들어오라는 말도 나가라는 말도 없이, 아버지와 나 그리고 노파는 그렇게 가족도 계약관계도 아닌 이상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노파가 나가자 아버지는 주방세제로 손을 닦기 시작했다. 피와 세제가 섞인 비릿한 냄새가 식탁까지 전해졌다. 개수대의 물을 틀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손금과 손톱의 틈을 정성스럽게 문지르던 아버지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처럼 졸졸졸 흐르는 듯한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이제 아이들에게 그만 다가가는 게 좋지 않겠니? 손님들이 싫어할 거다, 아마.”
기역과 지읒 발음은 마치 이응처럼 들렸다. 내 귀에 분명하게 박힌 건 시옷이었다. “싫어할 거다”라는 말이 마치 이응처럼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아버지씨는 왜 그렇게 발음이 새요? 그렇게 바보같이 발음하면 손님들이 분명 싫어할걸요.”
나는 아버지가 배꼽을 잡고 웃거나 아님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아버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아버지는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웃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편이 서로를 덜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행주에 손의 물기를 닦은 아버지는 오른쪽 어깨를 휘돌리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늙고 힘없는 퇴역군인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자주 어깨근육을 풀곤 했다. 그러나 스트레칭과 상관없이 아버지의 몸피는 점점 작고 볼품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한때 넓은 어깨와 당당한 풍채로 거리를 거닐던 아버지는 점점 못난 밤톨처럼 우툴두툴 발갛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사병들 앞에서 번뜩이던 눈빛은 가늘게 휘어져 손님들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고, 굵고 튼튼했던 다리도 새끼사슴의 그것처럼 가늘게 휘청거렸다. 아버지가 자꾸 어깨를 돌리는 건 예민해져 있던 사슴에게 어깨를 치받혔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어깨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 좁고 깡마른 어깨에 손을 대는 순간, 늙고 힘없는 시간과 맹렬한 죽음의 냄새가 내게로 옮아올 것만 같았다.
“세마리 남았구나.”
“예약된 건 한 팀뿐이에요. 아버진 늘 그렇게 태평하시죠.”
“남은 녹용은 냉동해서 팔면 되잖니.”
“피는요? 절정은 피가 샘솟는 순간이라구요.”
아버지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여 장부에 무언가를 끼적거렸다. 모르는 척하지만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농장에 오는 손님들이 감탄과 환희를 마지않는 순간은 절각(截角)한 자리에 피가 흐르기 시작할 때다. 마취총에 맞은 사슴이 비실거리며 다리를 접고, 날카로운 톱이 말랑말랑한 사슴의 뿔을 비집고 들어가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날을 내밀면, 사람들은 잘린 뿔의 단면과 마취된 사슴의 표정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바라보는 것이다. 하대를 바짝 조였던 고무줄을 느슨하게 풀고 심장을 지나 흘러나오는 날것의 피를 기다리는 그 순간, 끔찍하리만큼 강렬한 희열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직접 농장을 찾는 것이다. 살아 있는 피가 죽어가며 응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주와 박카스를 섞고, 방금 전까지 살아 숨쉬던 짐승의 살을 참기름과 고춧가루로 버무려 날것으로 먹는 순간, 그 순간의 젊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사나운 욕망은 내 미지근한 침샘까지 자극하곤 했다.
싱싱하게 빛나는 녹혈은 사실 온도감이 없었다. 산것과 죽은것의 중간. 내장에 들어가 곧 산자의 피에 섞일 그것은 용한 무당이 노란 종이 위에 흩뿌리는 주사(朱沙)처럼 붉고 진하게 빛났다.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해주는 그것들이 미친 듯 붉은빛을 띠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늙은 아버지는 끝끝내 나를 외면하며 장부를 덮었다. 빳빳한 가죽장부 위에 얹힌 손가락이 낡고 오래된 문양같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풀이 죽어 앉아 있었다. 제 엄마에게 단단히 혼이 난 모양이었다. 어른들은 어느새 평상으로 자리를 옮겨 화투장을 돌리고 있었다. 날것을 먹었다는 자만 때문인지 부러 세게 내리친 화투장이 어중간하게 미끄러졌다. 나는 훈수를 둘 것처럼 평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옆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놀라 달아났다. 아이들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노인은 도박꾼처럼 비굴한 웃음을 보이며 모포 위의 동전을 쓸어모았다. 나는 노인보다 더 비굴한 웃음을 띠며 얻은 개평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났다. 아이들의 고모가 광이나 팔고 가라며 낄낄거렸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난 농장을 떠날 것이다. 높여 부른 숙박료와 녹각 부스러기를 판 돈, 개평 등을 모으고 모아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 전에 아버지가 죽는다면 농장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동전을 두드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한여름의 열기가 섞인 바람이 앞머리를 흩트렸다. 어차피 어머니의 몸값으로 사들인 농장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머니와 그 뱃속에 들어 있던 동생의 몸값이 합쳐진 돈을 몽땅 바쳐 마련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쉰이 넘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 있던 동생은 그러나 아버지의 아이가 아니었다. 아니었을 것이다. 두개골을 뚫고 흐르는 핏줄기가 선연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아버지와 공통점이라고는 사람이라는 점밖에 없는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다른 것은 잘 모르지만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남들보다 더 자세히, 찬찬히 집중해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통스럽게 벌어진 입과 사후에 억지로 감긴 듯한 눈 위로 끈덕지게 붙어 응고된 핏물을, 피가 돌지 않는 살결의 거친 색깔을, 달달하고 비릿한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응시했다. 나는 어머니가 어쩐지 웃는 듯한 얼굴이었다고 생각했다. 한껏 모아 휘파람 불던 입을 길게 벌려 웃어보았다. 으흐흐. 으흐흐. 작달막한 입술 사이로 바람소리가 귀신처럼 났다.
갈잎과 산야초를 손수레에 싣고 가던 노파가 입가에 비웃음을 띤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일하던 노파는 이제 아버지가 하던 일까지 맡아서 하고 있었다. 사슴을 죽여 탐욕스럽게 정력을 채우는 인간처럼 노파는 아버지의 기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자신의 시간을 동여매는 듯 보였다. 노파는 절각할 때마다 가장 귀하고 부드러운 분골 부위를 조금씩 빼돌려 먹고 있었다. 노파의 입에선 늘 달달하고 들큼한 피비린내가 났다. 나는 노파를 처음 만난 때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오래전에 잊혀 사라진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기억은 늘 떠올리려 하면 사라지고 잊으려 하면 더 강렬하게 떠오르는 골치아픈 존재였다. 잊고 싶은 기억들은 아마 죽는 날까지 뇌리를 감싸며 날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이 진실인지 환상이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나는 평생을 괴로움에 휩싸인 채로 살아갈 것이다. 농장을 떠난 후에도 아버지의 얼굴 같은 과거에 짓눌려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이 막막해졌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뒤로한 채 노파는 시계 초침처럼 정확한 걸음으로 수레를 밀고 갔다.
농장의 풍경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적막했다. 해가 진 이후에는 농장 곳곳에 농밀한 어둠이 들어차고 괴괴한 기운까지 흘렀다. 적요를 견뎌내는 것이 농장에서는 가장 힘든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와 달리 아버지와 노파는 종일 부산스럽게 농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저녁에 집 안으로 들어가면 해가 뜰 때까지는 결코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잠든 사이에 나는 사슴우리에 가서 사슴들을 바라보곤 했다.
절각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갈록이는 여전히 몸을 추스르지 못했다. 절각하고 사나흘이 지날 때까지 수사슴들은 풀죽어 지낸다. 넓고 당당한 어깨를 으스대며 하늘 높이 화려한 뿔을 치켜들기를 좋아하던 사슴들은 자신의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자랄 테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기가 무엇보다 힘이 든 것일 게다. 그러나 대개의 동물이 그렇듯이 사슴 또한 사나흘 만에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새봄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갈록이도 그래야만 했다. 잘 먹지도 않고 대가리를 푹 수그리고 다니는 짓은 나흘 안에 끝내야만 했다. 나는 어둠이 견고하게 들어찬 축사의 한구석에 앉아 풀죽어 누운 갈록이를 쓰다듬었다. 어둠의 빛깔이 너무 단단해서 갈록이의 눈빛이 보이지 않았다. 이래선 안된다고, 더이상은 안되는 거라고 손끝에 힘을 담아 토닥였다.
갈록이는 농장의 종록(種鹿)이었다. 처음 분양받았을 때는 비실비실한 새끼이던 것이 점점 자라 건강하게 윤기 흐르는 아버지사슴이 된 것이다. 종록인 갈록이가 아프면 농장의 사슴들도 따라 비치적거리게 마련이다. 가장 아끼던 사슴인 갈록이에게 문득 까닭 없는 적개심이 생겨났다. 내년이면 더 크고 아름답게 자랄 뿔 때문에 뜨거운 여름을 시름으로 삼켜버리는 것은 어리석고 한심한 짓이었다. 그것은 꼬박꼬박 겪어야 하는 월경이나 겨울감기와도 같은 것이다. 사슴들은 그렇게 매번 고통과 분노에 젖어 있었다. 시간만이 약이 될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이겨내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조금 슬퍼졌다. 해쓱해진 갈록이가 한숨을 쉬듯 거친 숨을 내뿜었다. 나는 어둠속에 흐릿하게 자리잡은 슬픔의 농도를 느끼며 하염없이 갈록이를 쓰다듬었다.
그때 아버지는 울고 있었을까? 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왠지 익숙한 장면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혼기가 찬 딸과 함께 산골의 농장에서 사슴을 키우며 살아가는 게 아버지의 꿈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모르는 남자와 함께 죽어버린 어머니를 잊기 위해서였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말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을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늘 짐작하고 추측하고 상상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눈물처럼 그것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막막한 장면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모르는 남자 앞에서 스르르 옷을 벗는 모습.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살의를 견디지 못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여버리는 모습. 아버지가 죽어버린 어머니를 상상하며 침착하게 자위하는 모습, 모습, 모습들. 나는 상상하기 싫은 것을 자꾸 상상하고 있었고, 그러면 어느새 그것들은 정말 기억이 되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모래늪에 발을 빠뜨린 사람처럼 원치 않는 기억들을 모두 그러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운좋게도 한 팀의 손님들이 녹용 39kg을 모두 사갔다. 두마리에서 채취한 것 전부였다. 죽음이 가까웠을 할아버지 일행은 좋은 것을 골라 먹으러 다닌 덕분인지 젊은이들보다 더 쾌활하고 활동적이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비릿한 살비듬내 대신 시큼한 땀냄새가 풍겼다. 그들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가진 저승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어쩐지 박제된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농장에 온 이후로는 쭉 그래왔다. 봄마다 새것처럼 자라나는 사슴뿔을 자르고 다시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고 다시 자르고…… 시간은 사슴뿔이 완전하게 자라기까지의 주기로 흐르고, 완결되는 듯했다. 상처 부위의 딱지가 떨어지고 새 뿔이 돋아나기까지의 시간. 80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미라처럼 멍하니 앉아 뿔이 돋아나는 자리만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견고하게 굳어버린 내 시간과는 달리 아버지의 시간은 늘 성큼성큼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래뵈도 7학년 8반이라며 호기롭게 외치는 할아버지들 틈에서 예순의 아버지는 성급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나는 노인들 속에서 아버지를 밀어내고 수저 다섯벌을 내려놓았다.
“아가씨가 아주 참하네. 실할 데는 실하고.”
“그려. 요즘 색시들은 삐쩍 말라가지고.”
“그게 다 요 사슴 먹고 튼실해진 거 아닌가그래.”
노인들은 내 엉덩이를 흘끔거리며 한바탕 낄낄거렸다. 나는 지방기 없는 붉은 육회를 접시에 나누어 담으며 노인들의 몸을 힐끔거렸다. 흐물거리는 근육이 잡힌 종아리는 맛이 없을 것이다. 뽀얗고 탱탱한 허벅지 안다리와 지방이 적당히 섞인 윗배의 살을 도려내 양념에 버무린다면 어떤 맛이 날까. 그들이 견뎌온 길고 긴 시간의 맛이 고기에 배어나올까. 노인들의 맛을 상상하는 동시에 나는 얼마전 농장에 찾아왔던 아이들의 여린 살결을 상상했다. 참기름이 듬뿍 들어간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다면…… 누구라도 아이들의 허벅다리를 먹고 싶어하겠지. 그러나 나는 저승꽃이 간간이 잡힌 얇고 흐늘거리는 껍데기를 소금에 찍어 정성껏 씹고 싶었다. 그러면 그들의 시간이 나의 내장 속에 섞여, 나는 아주 길고 긴 시간을 다시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노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그들은 먹을 때만큼은 조용했다. 젓가락이 바쁘게 오가는 가운데 들리는 것은 식기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와 부산하게 쩝쩝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접시에 핏물만 흥건해지자 그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미 농장에서 2박을 한 노인들은 자기들끼리 놀기에는 지쳤는지 자꾸만 아버지와 나를 잡았다. 몇번을 손사래치며 나는 아버지를 평상에 밀어 앉히고 화투장을 가지러 갔다. 죽음의 냄새가 텁텁하게 자리한 장례식장에서 맨 처음 화투장을 꺼내 돌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견딜 수 없는 무료함과 적막함. 농장에서도 화투는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었다.
노파의 2층방 창문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일을 끝낸 노파가 방에서 나와 노인들과 시간을 때워주면 좋을 텐데 노파는 손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도 없는 방에서 노파가 혼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노파가 집을 비운 날 나는 그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갖은 수입 화장품이 놓인 크고 화려한 화장대와 때에 찌든 금침이 세간의 전부였다. 텔레비전이나 책, 하다못해 뜨개질거리도 없었다. 구석의 바구니에 담긴 빨래들을 보면서 나는 몸서리치며 방문을 닫았다. 스스로 나오지 않는 노파를 끌어내 굳이 노인들에게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노파도 아버지도 불편해할 것이다. 나는 계단 위에 있는 노파의 방문을 힐끗거리며 조용히 신발장 위에 놓인 화투를 가지고 나왔다.
노인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왕년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사투리도 쓰지 않는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화의 주역이라고 으스댔다. 왕년의 무용담은 그러나 그들이 중년에 접어들 때의 이야기였다. 그다지 믿음직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해가 기울 때까지 노인들이 튀겨대는 침을 맞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본 적 없는 장면, 맡아본 적 없는 냄새 들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합해 여럿의 풍경으로 만들어냈다. 참혹하고 비루한 상상이었다. 이미 모든 핏물이 말라버린 이야기가 나는 참을 수 없이 지루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버지는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이야기에 감복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더 많은 침을 튀기며 손짓발짓을 섞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자신들이 이 나라의 역사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사회가 자신들의 희생을 얼마나 작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무기고에서 총을 집어든 순간 죽음을 각오했다는 그들은 그러나 지금은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전국 각지로 보양식을 먹으러 다니는 노인일 뿐이었다. 작고 힘없고 못생긴 노인들. 김 빠진 감탄들을 내지르던 나는 정말 존경스럽다는 말과 함께 엉덩이를 털고 평상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도 나를 따라 급하게 신발을 꿰었다. 노인들은 아쉬움과 자긍심, 교활함이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냈다. 배가 꺼져서인지 입에서 단내가 올라와서인지 헛기침 소리와 함께 여럿이 함께 쩝쩝 입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지치고 처진 어깨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잔디 위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는 바지 주머니에 든 화투장을 만지작거리며 축사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다가가자 그르렁거리는 콧김소리가 났다. 갈록이는 오늘 절각을 당한 사슴보다 더 우울하고 슬픈 얼굴로 누워 있었다. 가늘게 휘어진 눈 속으로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다. 웅장한 뿔과 함께 당당히 뻗어 있었을 귀는 밑으로 힘없이 늘어졌다. 사슴우리에 가득한 것은 어둠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튼튼하고 아름다웠던 뿔을 잊지 못하는 갈록이는 뿔이 잘린 것을 잊어가는 다른 사슴들의 기억까지 되살리고 있었다. 나는 갈록이의 뭉뚝한 뿔과 멍한 눈을 바라보며 낯선 혐오를 느꼈다. 낯선 그 느낌은 매우 익숙한 것이기도 해서 나는 자꾸만 숨이 거칠어졌다. 기억을 더듬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살의에 휩싸였다. 미끈하고 날렵하게 뻗은 갈록이의 등허리가 들썩거렸다. 충동처럼 일어난 살의는 어떤 확신처럼 변해갔다. 버리지 못한다면, 내가 죽여주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축사 끝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두려워서, 정말 갈록이를 죽일 것만 같아서 나는 도망치듯 축사를 빠져나왔다. 쿵쿵쿵. 발이 울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나는 어둠속에 숨어 있을 수많은 눈빛들을 경계하며 집을 향해 마구 내달렸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맞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부엌의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았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가 말을 꺼내면 이내 입을 닫아버리는 아버지를 위한 최선의 배려였다. 아버지는 저녁식사 내내 묵묵히 밥을 먹었다. 설거지를 하며 내게 등을 돌리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건 거짓말이다.”
바싹 무릎을 감고 있던 팔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나는 잠자코 아버지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농장에 온 후 처음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낼지도 몰랐다. 나는 작고 예민한 짐승처럼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건 폭도들이었다. 총을 빼앗아 동료들을 죽였다.”
뜬금없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는 무료함과 우울함에 지쳐 그만 미쳐버린 것일까.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애써 명랑한 척 말을 이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투사가 아니었다고. 그들이 투사라면 우리가 폭도였다는 게냐. 우린 그저……”
그제야 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반나절 넘게 들은 익숙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허탈감이 폭풍처럼 몸을 감쌌다. 낮은 조도의 불빛이 사위를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그 불빛 사이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놓인 경계가 다시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든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난 듣고 싶지도 동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
“아니라면 넌…… 이 세상에 없었을 게다.”
창밖으로 구성진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노인들의 목소리였다. 나는 쓸데없이 논쟁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변명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든 내게는 버거운 일이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굳이 내게 그런 말을 꺼내는 아버지의 구차함에 화가 났다. 게다가 출생을 거들먹거리는 아버지의 무성의함에 코끝이 맵싸해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나는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대화의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잔인하리만치 단호하고 냉정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그럼 그들은 누가 죽인 거죠?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아버진, 살인자예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등 뒤로 축축하고 어두운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서 있는, 그러나 사라진 듯한 허공을 응시했다. 막막한 기분이었다. 아득해지는 머릿속을 추스르며 문득 나는 모든 게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에 대한 내 기억을 바로잡는 일은 어쩌면 기억을 지우는 일보다 어려울지 몰랐다. 어쩌면 그건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억은 자르거나 떨어지면 내년에 새로 돋는 뿔이 아니니까. 자르지 않고 둔 뿔은 점점 단단하게 굳어져 새 뿔이 돋기 전에 저절로 떨어진다. 나는 아버지가 모두 잊기를 바란 게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휘어질 수 있을 때를 기다리는 일은 아버지와 나 모두를 외롭고 지치게 했다. 다시 기억은 어떻게 덧씌워지는 것인지.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딱딱하게 굳어 저절로 떨어져버리는 낙각을 찾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부드럽고 말캉거리는 녹용을 좋아한다. 내가 너무 오래 아버지를 홀로 둔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아주 많이, 어쩌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나는 행주로 같은 자리를 계속 문지르고 있는 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보듬듯 아버지를 안았다. 꼼짝도 않고 있지만 아버지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눅눅한 통증이 느껴졌다.
거짓말. 아버지를 안는 순간 나는 아버지의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장면들을 보았다. 한명을 쓰러뜨릴 때마다 마치 씨뮬레이션 게임 속의 괴물을 처치한 것처럼 짜릿한 쾌감이 올라왔다. 아니면 내가 죽는다. 급박하고 소란스러운 가운데 잔인한 미소들이 떠돌아다녔다. 부산스러운 건 상황이었지 사람이 아니었다. 놀라울 만큼 침착한 태도로 아버지는 목표물에 명중시켰다. 사슴뿔을 자를 때처럼 능청스럽고 여유있는 낯빛이었다. 갈록이의 뿔에서 거침없이 피를 뽑아내던 순간의 공기가 사위를 휘감았다.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미지근한 공기였다. 쏟아져나오는 말간 피를 바라볼 때처럼 온몸이 희열로 뒤덮였다. 당연하게도, 죄의식은 없었다.
아버지의 기억은 그 순간에 멈춰 있었다. 당연히 참회의 고백이리라 생각한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기억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롭고 쓸쓸했던 건 나뿐이었다. 아, 어머니.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를 죽일 것이다. 더러운 자궁을 갈기갈기 찢고 튀어나와 탯줄을 목에 칭칭 동여매 함께 죽을 것이다. 나는 잔혹한 쾌감에 젖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행주로 같은 자리를 계속 문지르고 있는 아버지를 있는 힘껏 안았다. 그 심상한 쾌락은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싫지만, 될 수만 있다면, 아버지 같은 뿔을 갖고 싶었다. 채 잘리지 않은 아버지의 뿔은 단단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올여름 농장의 마지막 손님이 될 노인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농장을 떠났다. 승용차 트렁크에 아이스박스 포장이 된 녹용과 사슴고기를 싣는 그들은 들떠 보였다. 아주 멀리서 그들을 바라본다면 새 장난감과 사탕을 얻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출발을 준비하는 내내 불알 밑이 근질근질한 사람처럼 굴었다. 내내 정력팬티 속의 고환을 주무르던 말라깽이 노인은 정말 불알 밑이 근질근질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노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거렸다. 조악한 틀니로 후물거리며 육회를 씹어 삼키던 집요하고 탐욕스러운 노인의 얼굴을 봐도 크게 불쾌하지 않았다. 마지막 손님이라고 생각하니 한껏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아버지와 노파도 펜션과 농장의 이곳저곳을 쓸고 닦으며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도 이제 긴 휴식에 들어갈 것이다. 농장일이란 게 워낙 손이 모자라긴 하지만 아버지와 노파는 가볍고 노련하게 모든 일들을 후딱 해치웠다. 절각기가 지나 손님이 들지 않는다면 그들은 한가롭고 평화로운 무료함 속으로 다시 안착할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시간의 흐름이 반갑기도 하고 혐오스럽기도 했다. 내가 이 농장을 견딜 수 없어하는 것은 내가 이 농장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아무런 역할도 없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없으면 그들은 마음껏 행복해할지도 몰랐다.
노파의 새된 신음과 아버지의 윤기 흐르는 눈동자. 비릿한 땀냄새마저 정력적이고 활기 넘치는, 절묘하고 아름다운 하모니. 노파와 아버지가 시시각각 나눠 가지는 젊음과 늙음이 나는 여전히 낯설고 무감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노파의 딸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처음부터 나의 아버지가 아니지 않았을까. 핏물이 줄줄 흐르는 어머니의 얼굴이 웅장하고 매력적인 멜로디에 맞춰 입을 움직이고 있다. 아에이오우이이이. 그것은 활짝 웃는 얼굴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찢고 나온 아이가 함께 입을 모은다. 아에이오우이이이. 동그랗고 예쁜 음표들의 왈츠. 휘우듬한 음표의 날개를 잡고 가볍게 딛는 발끝에서 다시 선율이 흘러나온다. 선율은 화려하게 펼쳐진 사슴뿔을 타고 아주 높은 하늘 끝으로 날아가 기억과 기억과 기억으로 몽글몽글 뭉쳐 통통통 튀어오른다. 나는 아주 작은 아기가 되어 노파의 더러운 자궁으로 들어간다. 어둠보다 깊은 사슴뿔의 굴곡, 그 심연의 계곡을 지나 자유롭게 뻗어나간 사슴뿔들의 숲을 지나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늪의 기억 속으로 미로 같은 노파의 자궁 속으로 자꾸자꾸 빨려들어간다. 탈출과 동시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버리는 장엄하고 육중한 악마의 블랙홀 속으로.
어머니는 없다. 아니 어머니는 있다. 아니 어머니는 없었다. 아니 어머니는 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없었었다. 아니 어머니는 있었었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없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있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없었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없었었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있었었다. 아니 어머니는 있을 것이다. 아니 어머니는 원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존재하기 시작했던 시간과 내가 존재하기 시작하기 이전의 시간과 내가 존재하고 있었던 시간과 내가 존재했었던 시간과 내가 존재했었었던 시간과 내가 존재할 시간들 사이를 미친 듯 헤엄치며 도망했다. 끝과 끝이 만나는 지점에 만난 건 노파의 썩은 양수였다. 나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노파가 악을 쓰듯 마구 신음을 내뱉었다. 아버지는 복날 더위먹은 개새끼마냥 할딱거렸다. 적요함만 가득한 농장에 갖은 소리들이 그득히 차오르고 있었다. 늙어 쪼그라진 성기와 푸른빛이 감도는 불룩한 젖가슴의 부조화가 구역질을 치밀게 했다. 오랫동안 보아왔던 장면, 혹은 오랫동안 기억되어왔던 장면인데도 여전히 역겨움은 가시질 않았다. 나는 비칠거리며 창문에서 나가떨어졌다.
부러 나는 호기로운 표정을 띤 채 내가 심은 잔디를 짓밟기 시작했다. 잔디가 죽지 않아 농장에서 내 자리가 없어진다. 나는 경멸스러운 노인 육회를 씹어 삼키듯 잘근잘근 잔디들을 짓이겼다. 아니다. 나는 역할 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다. 나는 이 농장을 떠날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농장을 떠나지 못한다면 아마 저절로 죽어버릴지 모른다. 나는 농장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보다, 내가 저절로 죽어버릴지 모른다는 것의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악을 쓰고 싶었지만 성대는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리없는 비명을 질러대자 목구멍에서 옅은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나는 늦여름의 감기몸살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약 대신 소주 섞인 녹혈을 마시게 했다. 그것을 나는 벌컥벌컥 잘 들이켰지만 이내 구역질이 올라와 마시는 족족 변기에 핏물을 뿜어댔다. 때마침 농장에 들른 수의사가 몸져누운 나를 보고 감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부러 성난 사람처럼 그를 향해 코를 풀어 던졌다. 걸쭉한 콧물이 수의사의 작업조끼에 들러붙었다. 아버지는 나의 몸살이 손님들의 빈자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동네 아이들을 데려와 내 방에 풀어놓았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살금살금 내 눈치를 보며 앉아 있다가 아버지가 나가면 곧장 집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나는 뿔이 잘린 사슴처럼 축사 같은 방 안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풀기 없는 죽도 삼킬 수가 없었다. 나는 종일 소주 섞인 녹혈만 먹어서 언제나 반쯤 취해 있었다. 먹는 즉시 게워내는데도 술기운은 몸을 따뜻하게 감쌌다. 울렁거리는 속도 조금 편안해지는 듯했다. 나는 방안에 누워 컴컴한 눈으로 아버지의 구접스러운 뒷모습을 보았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걱정하는 척하던 아버지는 내게 아침저녁으로 녹혈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번잡스러움에 모든 걱정을 잊은 것 같았다. 병이 다 나아 서른이 되면 나는 어디로 가려 하는 것일까.
나는 늘 과거에 머무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상상하는 서른은 분명 미래였지만, 그것은 과거에 깊이 침윤된 미래의 풍경이었다. 어딜 가든 나는 늘 떠나고 싶을 것이다. 매일 내게서 떠나가는 시간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나는 발길을 돌려 걷고 있었다.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는 시간의 계기판 앞에서 나는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의 그 순간에 나는 더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장님이 되어버린 듯한 얼굴로 나는 아주 천천히 방에서 걸어나왔다.
농장을 떠나야 한다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자연스럽게 축사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몸도 마음도 축사를 향하고 있었다. 영영 볼 수 없다면, 시난고난 앓아누운 갈록이의 시간을 내가 정리해주어야 했다. 그것은 망연자실한 자의 분노였고 공포였으며 어찌할 수 없는 살의였다.
죽은 갈록이의 몸과 마음, 그 모든 시간에 누구도 손댈 수 없도록 나는 주사기에 제초제를 채웠다. 마취총에 매달린 주사기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동물들의 음울한 울음소리가 축사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어둑신하게 젖은 공기의 결 사이로 갈록이의 숨결이 와닿는 듯했다. 머리가 점점 저려왔다. 나는 갈록이의 우리까지 한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모든 것이 새까만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농밀한 검은 빛 속에서 가늘게 눈을 떴다. 갈록이의 휘우듬한 등과 말간 눈동자가 보이는 듯했다. 마취총 손잡이에 끈적한 땀이 배어났다. 나는 점점 우리 가까이 다가갔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형체가 어른거렸다. 번쩍하고 빛나는 안광을 본 듯도 했다.
끄응, 하는 신음와 함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갈록이는 죽었다.”
아버지였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젓자 가로질러놓은 나무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쩐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양팔을 허위허위 내저었다. 아무 소리도,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나는 더 불안해졌다. 이 어둠속 어딘가에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그 옆에 갈록이가 콧김을 내뿜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찾아 비척걸음을 걷다 무언가에 부딪혀 건초 위에 넘어졌다. 잘 마른 풀냄새와 쿰쿰한 분뇨냄새가 날카롭게 콧속을 찔렀다. 내 주변을 감돌며 펄럭거리는 어둠의 막을 걷어내야 했다. 나는 찢어지는 음성으로 아버지를 불러댔다.
“사슴들 놀란다. 난 네 옆에 있잖니.”
그제야 눈을 껌벅이며 귀를 쫑긋거리는 갈록이와 그 곁에 앉아 갈록이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무릎에 누운 갈록이는 아버지 손이 등을 지날 때마다 고통스러운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안돼. 그러지 마요. 죽이지 마!”
“저리 가거라. 이놈은 멀리 가고 있다.”
“잡아요, 가지 못하게. 잡아, 잡으라구요.”
“우울병이 더쳐서 더는 어렵다더구나.”
“내가 죽일 거예요. 내가, 내가 죽일 거라구!내가,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줄 거라구요.”
아버지 뒤쪽에서 녹혈이 담긴 컵이 빛을 냈다. 내가 매일 마셨던 건 갈록이의 피였다. 어차피 죽어 버려질 갈록이의 시든 피. 나는 짐승처럼 엎드려 바닥을 짚고 토악질을 했다. 위산이 떫게 올라왔다. 나는 초조해졌다. 침을 닦아낸 손바닥으로 갈록이의 등짝을 거칠게 후려쳤다. 옅고 힘없는 신음소리가 비어져나왔다. 아버지는 노파가 교성을 내뱉을 때 그러했듯 가만히 내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장님처럼 허공을 보며 아버지를 확 밀쳐냈다. 옆 우리에 있던 사슴들이 쾌감 섞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마취총에 매달려 있던 주사기를 빼들었다. 바늘이 살갗을 스쳤다. 나는 보이지 않는 바늘을 응시하며 차갑게 몸을 떨었다. 날카로운 신음 속에서 주사기가 뭉근한 어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