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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경숙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1

엄마를 부탁해

 

 


│연재를 시작하며│

 

몇해 전에 지금은 타계한 화가의 작업실에 가본 적이 있다. 지금은 주변에 집들이 생겼지만 그분이 작업실로 사용했을 땐 텅 빈 벌판이었다고 한다. 외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환기창만 몇개 뚫려 있을 뿐 창문 하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장이 아주 높아 답답하진 않았다. 튼튼한 무쇠난로가 중앙에 우직하게 버티고 있을 뿐 기본적인 공간 분리도 되어 있지 않았다. 컨베이어만 없지 공장이나 창고 같았다. 딱딱한 의자 두세개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불편해 앉고 싶지 않았다. 초봄이었는데 냉기가 휘돌아서 나도 모르게 옷을 추슬렀다. 자제분이 무쇠난로에 구워주는 떡을 선 채로 받아 먹으며 동행한 분의 얘기를 들으니 생전의 그분은 작업실에 편한 것은 일절 두지 않았다 한다. 자신을 텅 빈 벌판에 홀로 세우고 편한 의자 하나 제공하지 않았던 마음이 짚어져서 경건해졌던 순간이 생각난다.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6년 전이다. 특이한 이야기를 쓰려는 것도 아닌데 시작을 했다가 멈추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멈추고 다시 시작하기를 몇차례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접어두고 다른 장편을 썼다. 글을 쓰다가 멈추고 다른 글 속으로 건너가자니 캄캄한 어둠속에 누군가를 혼자 두고 온 기분이었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6년 전에 시작해두었던 것을 펼쳤다. 이어 쓸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두 계절 동안 진전이 없었다.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했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토록 어머니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웠던 것은 내가 은연중 나의 글쓰기를 통해 이 시대의 어머니상을 그려보려고 했던 것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적이 생기니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내 것이 아니었던 그 힘은 글을 쓰게 하기는커녕 나를 좌초시켰다. 다시 쓰기로 하면서 이전에 써두었던 것을, 그에 관한 자료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로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마음을 내다버렸다. 그러고 나니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나도 모르게 되었다. 다시 첫 문장에 다가가기 위한 싸움을 해야 했다.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지우지 못한 글을 이어가다 다시 지웠다. 그러다가 어느날‘어머니’를‘엄마’로 고쳐보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머니를 엄마로 고치고 나니 바로 첫 문장이 이루어졌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이 첫 문장이 나를 이 길의 끝에 무사히 데려다주기를, 그곳에 우리가 잃어버린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1장 또다른 여인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너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일단 전단지 모델 초안을 짜보기로 했다. 옛날 방식이다. 가족을 잃어버렸는데, 그것도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남은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몇가지 되지 않았다. 실종신고를 내는 것, 주변을 뒤지는 것, 아무나 붙잡고 이런 사람 보았느냐 묻는 것,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던 남동생이 인터넷에 엄마를 잃어버리게 된 동기와 잃어버린 장소와 엄마의 사진을 올리고 비슷한 분을 보게 되면 연락을 해달라고 게시하는 것. 엄마가 갈 만한 곳이라도 찾아다니고 싶었으나 이 도시에서 엄마 혼자 갈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 문안 작성은 네가 해라, 오빠가 너를 지명했다. 글을 쓰는 사람. 너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귀밑이 붉어졌다. 과연 네가 구사하는 어느 문장이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

 

1938년 7월 24일생이라고 엄마의 생년월일을 적는데 아버지가 엄마는 1936년생이라고 했다. 주민등록상에만 38년으로 되어 있을 뿐 실제로는 36년생이라는 것이다. 너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버진 그 시절엔 다 그렇게 했다고 했다. 태어나서 백일을 못 넘기고 죽는 아이들이 많아서 이삼년 키워본 다음 호적에 올렸다는 것이다. 38이라는 숫자를 36이라고 고쳐 적으려는데 오빠가 신상명세서이니 38년생으로 적어야 한다고 했다. 이건 우리가 만드는 전단지이고 여기가 동사무소나 구청도 아닌데 사실보다는 등록된 것을 적어야 하나? 의문이 들었지만 너는 묵묵히 36이라 적었던 숫자를 다시 38로 고쳤다. 그러면 7월 24일이라는 엄마의 생일은 제대로 된 것일까? 생각하면서.

 

너의 엄마는 몇해 전부터 내 생일은 따로 지내지 마라, 했다. 아버지의 생일이 엄마의 생일 한달 전이었다. 예전엔 생일이나 다른 기념할 일이 생기면 너를 비롯한 도시의 식구들이J시의 엄마 집으로 이동하곤 했다. 다 모이면 직계만 스물둘이었다. 엄마는 식구들이 모이는 왁자한 상태를 좋아했다. 식구들이 모이게 되면 며칠 전에 새 김치를 담그고, 시장에 나가 고기를 끊어오고, 치약과 칫솔 들을 준비했다. 돌아갈 때 한병씩 나눠주려고 참기름을 짜고 참깨 들깨를 따로 볶아 찧었다. 가족들을 기다릴 즈음의 너의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나 시장통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면 단연 활기를 띠었고 은근히 자부심이 배어나는 몸짓과 말투를 사용했다. 헛간에는 엄마가 철따라 담가놓은 매실즙이며 산딸기즙이 담긴 크고 작은 유리병들이 즐비했다. 도시의 식구들에게 퍼줄 황세기젓이며 멸치속젓이며 조개젓갈들이 엄마의 항아리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양파가 좋다는 말이 들리면 양파즙을 만들어서, 겨울을 앞두고는 감초를 넣은 늙은호박 즙을 짜서, 도시의 식구들에게 보냈다. 너의 엄마의 집은 도시의 식구들을 위해 사시사철 뭔가 제조되는 공장과도 같았다. 장이 담가지고 청국장이 발효되고 쌀이 찧어지는. 언제부턴가 도시 식구들이J시에 가는 일보다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도시로 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아버지와 엄마의 생일도 도시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움직임이 단출하긴 했다. 급기야 엄마는 내 생일은 아버지와 함께 쇠자, 했다. 한여름이라 날도 더운데다 이틀 사이로 지내야 하는 여름 제사가 두번이나 되는데 그 틈에 언제 두 생일을 다 챙기겠느냐고 했다. 처음에 너의 가족들은 엄마가 그리 주장해도 그게 무슨 소리냐며 엄마가 도시에 오지 않으려고 하면 몇몇이라도 시골집에 내려가 엄마의 생일을 챙기곤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 생일에 엄마의 선물까지 함께 사기 시작했고 엄마 생일 당일은 슬그머니 지나가게 되었다. 식구들의 숫자대로 양말을 사기 좋아했던 엄마의 장롱 속엔 가져가지 않은 양말들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름: 박소녀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생(만 69세)

용모: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자켓을 입고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지하철 서울역

 

엄마의 사진을 어느 걸 쓰느냐를 두고 의견들이 갈라졌다. 최근 사진을 붙여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했지만 누구도 엄마의 최근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는 언제부턴가 엄마가 사진 찍는 걸 매우 싫어했다는 걸 생각해냈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엄마는 어느 틈에 빠져나가,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면 엄마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칠순 때 찍은 가족사진 속의 엄마의 얼굴이 사진으로 남은 가장 최근 모습이었다. 그때의 엄마는 물빛 한복을 입고 미장원에 가 업스타일로 머리를 손질하고 입술에 붉은 빛이 도는 루즈를 바른, 한껏 멋을 낸 모습이었다. 사진 속의 엄마는 실종되기 전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그 사진을 따로 확대해 붙여본들 사람들이 그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것이 네 남동생의 의견이었다. 인터넷에 엄마의 그 사진을 올렸더니 어머님이 예쁘시네요, 길을 잃어버릴 분 같지 않은데요,라는 댓글이 올라온다고 했다. 너희는 각자 엄마의 다른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오빠는 너에게 문구를 더 보충해보라고 했다. 네가 오빠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보다 호소력 있는 문구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호소력 있는 문구. 어머니를 찾아주세요,라고 쓰니 너무 평범하다고 했다. 어머니를 찾습니다,라고 쓰니 그게 그거고 어머니라는 말이 너무 정중하니 엄마,로 바꿔보라고 했다. 우리 엄마를 찾습니다,라고 쓰니 어린애스럽다고 했다. 윗분을 보면 꼭 연락 바랍니다,라고 쓰자 오빠가 넌 대체 작가라는 사람이 그런 말밖에 쓸 수 없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빠가 원하는 호소력 있는 문구가 무엇인지 너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호소력이 따로 있어? 사례를 한다고 쓰는 것이 호소력이야, 둘째오빠가 말했다. 사례를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라고 쓰자 사례를 섭섭지 않게? 이번엔 올케가 그렇게 적으면 안된다고 했다. 분명한 액수를 적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 그럼 얼마를 적을까요?

- 백만원?

- 그건 너무 작아요.

- 삼백만원?

- 그것도 작은 것 같은데?

- 그럼 오백만원.

오백만원 앞에서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너는 오백만원의 사례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적고 마침표를 찍었다. 오빠가 사례금: 오백만원이라고 고치라고 했다. 남동생이 오백만원이라는 글자를 다른 글자보다 키우라고 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 엄마의 사진을 찾아보고 적당한 게 있으면 바로 너의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전단지의 문안을 더 보충해서 인쇄하는 일은 네가, 그것을 각자에게 배송하는 일은 남동생이 맡기로 했다. 전단지 나눠주는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구할 수도 있어, 네가 말하자, 그건 우리가 해야지, 오빠가 말을 받았다. 평일엔 각자 일을 하는 사이 틈틈이, 주말엔 모두 다함께. 그렇게 언제 엄마를 찾아? 네가 투덜거리자, 오빠는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어, 이건 가만있을 수 없으니까 하는 일이다,고 했다. 해볼 수 있는 일 뭐? 신문광고. 신문광고가 해볼 수 있는 일의 다야? 그럼 어떻게 할까? 내일부터 모두 일을 그만두고 이 동네 저 동네 무조건 헤매고 다닐까? 그렇게 해서 엄말 찾을 수 있다고 보장만 되면 그리 해보겠다. 너는 오빠와의 실랑이를 그만두었다. 지금까지의 습성. 오빠니까 오빠가 어떻게 해봐라!고 늘 미루는 마음이었던 습성이 이런 상황에도 작동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의 가족들은 오빠 집에 아버지를 두고 서둘러 헤어졌다. 헤어지지 않으면 또 싸우게 될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줄곧 그래왔다. 엄마의 실종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상의하러 모였다가 너의 가족들은 예기치 않게 지난날 서로가 엄마에게 했던 잘못된 행동들을 들춰내었다. 순간순간 모면하듯 봉합해왔던 일들이 툭툭 불거지고 결국은 소리를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너는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얘길 처음 듣자마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식구들 중에서 서울역에 마중 나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느냐고 성질을 부렸다.

- 그런 너는?

나? 너는 입을 다물었다. 너는 엄마를 잃어버린 것조차 나흘 후에나 알았으니까. 너의 가족들은 서로에게 엄마를 잃어버린 책임을 물으며 스스로들 상처를 입었다.

 

오빠의 집에서 나온 너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가 너의 엄마가 사라진 지하철 서울역에서 내렸다. 엄마를 잃어버린 반대편 자리로 가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네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아버지가 엄마 손을 놓친 자리에 서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네 어깨를 앞에서 뒤에서 치고 지나갔다. 누구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너의 엄마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그때도 사람들은 그렇게 지나갔을 것이다. 네가 도시로 가기 위해 엄마 곁을 떠나기 며칠 전 엄마는 너의 손을 잡고 시장통 옷가게로 갔다. 네가 아무 장식이 없는 민짜 원피스를 고르자 엄마는 어깨와 치마끝단에 프릴이 달린 것을 네 앞에 내밀었다. 이거 어떠냐! 너는 에이…… 하며 밀쳤다. 왜? 입어보렴. 그때만 해도 젊었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프릴 달린 원피스와 엄마가 머리에 쓰고 있는 때 전 수건은 서로 다른 세상처럼 대조적이었다. 유치해요. 내 말에 엄마는 그러냐? 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지 자꾸만 원피스를 앞뒤로 살폈다. 내가 너라믄 이걸 입어보겠구만. 유치하다고 말한 게 미안해서 그건 엄마 취향도 아니잖아, 했을 때 너의 엄마는 아니다, 엄만 이런 옷이 좋아, 입을 수 없었을 뿐이다, 했다.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엄마가 곁에 있을 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일들이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통에 너는 엄마 소식을 들은 후 지금까지 어떤 생각에도 일분 이상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억 끝에 어김없이 찾아드는 후회들. 그때 그 옷을 입어라도 볼걸, 너는 어쩌면 너의 엄마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을지도 모를 자리에 무릎을 접고 앉아보았다. 기어이 네가 원하는 민짜 원피스를 고른 며칠 후에 너는 이 서울역에 도착했다. 너를 서울에 데려다주러 온 엄마는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빌딩도 무찌를 듯한 걸음걸이로, 오가는 인파 속에서도 너의 손을 꼭 잡고 광장을 걸어가 시계탑 밑에서 오빠를 기다렸다. 그 엄마가 길을 잃다니. 지하철이 들어오는 불빛이 보이자 사람들이 몰려들다가 앉아 있는 네가 걸리적거리는지 힐끔거렸다.

 

너의 엄마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았던 그때 너는 중국에 있었다. 북경에서 열린 북페어에 동료 작가들과 함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너의 엄마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그 시간은 네가 북페어전의 한 부스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네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 아버지는 왜 택시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탔어요! 지하철만 안 탔어도!

아버지는 기차역이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 굳이 택시를 타러 나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모든 일은, 특히 나쁜 일은 발생하고 나면 되짚어지는 게 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싶은 것. 가족들은 왜 다른 때와 달리 아버지 엄마가 둘이서 오빠 집에 찾아갈 수 있다는 말을 따랐을까. 가족 중 누군가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로 아버지나 엄마를 마중 나가는 것은 늘 당연한 일이었는데. 도시에서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가족들의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하던 아버지는 왜 그때 지하철을 탈 생각을 했을까. 너의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막 도착한 지하철을 타려고 했다고 했다. 너의 아버지가 지하철을 타고 보니 엄마가 없었다고 했다. 하필 번잡한 토요일 오후였다. 너의 엄마는 인파에 떠밀려 아버지 손을 놓쳤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지하철이 출발해버린 것이다. 엄마의 가방은 아버지가 들고 있었으므로 너의 엄마가 빈손으로 지하철역에 혼자 남았을 때 너는 북페어 전시장을 나와서 천안문광장으로 가고 있었다. 북경엔 세번째 걸음인데도 천안문광장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다. 버스 안에서 승용차 안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 곳이었다. 안내를 맡은 학생은 저녁때까지 시간이 남으니 천안문광장에 가보겠느냐고 했고 너의 일행들은 그에 따랐다. 네가 택시를 타고 자금성 앞에서 내렸을 때, 지하철 서울역에 혼자 남은 너의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자금성으로 걸어들어가다가 너의 일행은 되나왔다. 북경은 온 도시가 공사중이었다. 이듬해에 있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금성도 일부분만 개방되고 공사중인데다 곧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늙은 푸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자금성에 돌아와 궁 안을 구경하는 어린 관광객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옥좌에 숨겨놓은 귀뚜라미 상자를 꺼내 보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뚜껑을 여니 그때까지도 살아 있던, 푸이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귀뚜라미. 네가 천안문광장으로 건너가려고 했던 그때에 너의 엄마는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인파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까. 누군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자금성과 천안문광장을 이어주는 길도 공사중이었다. 광장은 바로 앞에 보였지만, 복잡한 미로를 통과하고 통과한 뒤에야 그곳에 서게 되었다. 너의 엄마가 지하도 안에서 뭔가 체념한 듯 주저앉았을 때, 네가 천안문광장 하늘 위에 떠 있는 연들을 보고 있었을 때, 어쩌면 너의 엄마는 네 이름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천안문의 철문이 열리고 일개 분대는 될 듯한 공안원들이 다리를 높이 들며 행진해서 오색홍기를 내리는 하강식을 구경하고 있을 때, 너의 엄마는 지하철 서울역 구내의 미로를 헤매고 다녔던 듯하다. 그때의 너의 엄마를 보았다는 역 구내 사람들의 증언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너의 엄마로 추정되는 한 늙은 여인이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 걸, 간혹 주저앉아 있는 걸, 에스컬레이터 앞에 하염없이 서 있던 걸 보았다고 했다. 너의 엄마인 듯한 한 늙은 여인이 오래 역에 앉아 있다가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는 걸 봤다는 이도 있었다. 너의 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 밤에 너는 일행들과 밤택시를 타고 북경의 휘황한 먹자거리에 나가 붉은 불빛 아래서 오십육도쯤 되는 중국술을 맛보며 붉은 기름에 볶은 뜨거운 게요리를 먹고 있었던 거다.

 

너의 아버지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엄마와 헤어졌던 지하철 서울역으로 다시 가보았으나 너의 엄마는 없었다고 했다.

- 아무리 지하철을 못 탔기로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어요? 안내판이 다 붙어 있는데. 어머닌 전화 걸 줄도 모르시나? 공중전화로 전화 한통만 걸면 되는데.

올케는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고 아들 집을 찾지도 못하느냐며 엄마에게 다른 일이 생긴 거라고 했다. 다른 일? 그것은 엄마를 어떻게든 예전의 엄마로 여기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엄마는 길을 잃을 수 있어, 네 말에 올케는 눈을 빤히 떴다. 언니도 알잖아, 엄마가 어떤 상탠지? 올케가 나는 모르는데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알았다. 엄마가 어떤 상탠지. 엄마가 이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엄마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너는 언제 알았을까.

 

네가 처음 쓴 편지는 엄마가 도시로 나간 오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받아적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너의 오빠는 우리가 태어난 마을이 속해 있는 소읍에서 정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년 동안 혼자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 뒤에 발령을 받아 도시로 나갔다. 자신이 낳은 자식과 엄마의 첫 작별이었다. 전화가 없던 그때의 유일한 통신수단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도시로 간 오빠는 편찰지에 큼직큼직한 글씨로 엄마에게 편지를 써보내곤 했다. 너의 엄마는 오빠의 편지가 도착하는 날을 귀신같이 알았다. 그 마을엔 오전 11시쯤 우편배달부가 커다란 가방을 자전거 앞에 매달고 오곤 했다. 오빠의 편지가 오는 날엔 엄마는 밭에 있다가도 도랑에서 빨래를 하다가도 집에 들어와 우체부가 전해주는 오빠의 편지를 직접 받곤 했다. 그러고는 네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네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너를 뒷마루로 데리고 가서 오빠의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큰 소리로 읽어보라, 했다. 집을 떠난 너의 오빠의 편지는 “어머님 전상서”로 시작되었다. 편지 쓰기의 방식을 교과서에서 배운 듯이 너의 오빠는 시골집의 안부를 묻고 도시에 있는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빨래는 일주일에 한번 당숙모에게 갖다주면 당숙모가 빨아준다고 씌어 있었다. 엄마가 당숙모에게 간곡히 당부한 일이었다. 밥은 잘 사먹고 있고, 동사무소의 숙직실에서 당번을 서주는 일로 숙소도 얻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오빠는 이 도시에 나오니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고 썼다. 꼭 성공해서 언젠가는 엄마를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스무살이던 오빠는 능청스럽고 늠름하게도 그러니 어머님, 제 걱정은 마시고 아무쪼록 어머님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라고도 썼다. 오빠의 편지를 큰 소리로 읽다가 네가 편찰지 너머로 엄마를 넘겨다 보면 너의 엄마는 뒤란의 토란대나 장항아리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편지를 읽어주는 너의 목소리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너의 엄마의 귀는 토끼 귀처럼 쫑긋 세워져 있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후면 너의 엄마는 너에게 엄마가 부르는 말을 편찰지에 적으라고 했다. 엄마가 불러주는 첫마디는 형철이에게였다. 형철은 너의 첫째오빠의 이름이었다. 너는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형철이에게라고, 오빠 이름을 적었다. 엄마가 마침표를 찍으라고 하지 않았지만 이름 뒤에 점 하나를 찍었다. 엄마가 형철아라고 부르면 너는 형철아!라고 적었다. 할 말을 잊은 듯이 엄마가 형철아 부른 뒤에 침묵을 지키면 너는 쏟아지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긴 뒤 볼펜을 든 채로 귀를 쫑긋 세우고 편찰지를 들여다보며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날씨가 차졌구나,라고 불러주면 너는 날씨가 차가워졌구나,라고 썼다. 형철이에게라고 불러준 뒤 엄마의 다음 말은 날씨에 관한 것이었다. 여긴 봄이 와서 꽃이 피었구나. 여름이 시작되어 논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추수철이라 논두둑에 콩이 가득이다. 엄마가 사투리를 쓰지 않을 때는 오빠에게 전할 말을 불러줄 때뿐이었다. 아무쪼록 여기 걱정은 말고 네 한몸 건사 잘하길 바란다. 어미가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형철이에게로 시작되었던 너의 엄마의 말은 네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해서 어미가 미안하다,로 감정의 급물살을 탔다. 네가 편찰지에 또박또박 엄마의 말을 받아적을 때 너의 엄마의 손등엔 굵은 눈물이 툭, 떨어지곤 했다. 너의 엄마가 불러주는 마지막 말은 늘 똑같았다. 아무쪼록 밥은 굶지 말고 다니거라. 엄마가.

 

너는 그 집의 넷째아이였으므로 네 위의 세 형제들이 집을 떠날 때마다 엄마가 겪는 작별의 슬픔과 고통과 염려를 지켜보았다. 첫째오빠를 보내고선 너의 엄마는 장독대의 장항아리를 새벽마다 닦았다. 우물이 앞마당에 있어서 물을 길어오기만도 힘든 일이었는데 뒤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항아리들을 하나하나 다 닦았다. 뚜껑도 열어 앞뒤로 윤이 나도록 닦았다. 행주질을 하는 너의 엄마의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손은 연신 찬물에 행주를 담갔다가 꺼내고 비틀어 짜고 항아리 사이를 오가느라 바쁜데 너의 엄마 입에서는 어느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가 흘러나왔다. 그때 네가 엄마! 하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너의 엄마의 우직한 소 같은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어느 항아리 앞에서 너의 엄마가 형철아!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힘이 빠진 듯 주저앉았을 때 너는 슬그머니 엄마에게서 행주를 빼내고 엄마의 팔을 높이 들어 너의 어깨를 안게 했다. 엄마가 너의 첫째오빠를 사랑하는 방식은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마치고 돌아온 오빠에게만 라면을 끓여주는 일이었다. 네가 가끔 그 남자에게 그때 이야기를 하면 그 남자는 라면 가지고 뭘 그래?라고 응수했다. 라면 가지고라니? 그땐 라면이 최고 맛있었는데? 숨겨놓고 먹는 것이었다니까! 해도 도시에서 자란 그 남자는 뭐 그렇게까지! 싶은 모양이었다. 새로 등장한 라면맛은 그동안 너의 엄마가 만들어준 모든 음식의 맛을 무력화시켰다. 너의 엄마는 새로 나온 라면을 사다 장독의 빈 항아리 안에 숨겨놓고 늦은 밤에 첫째오빠에게만 끓여주고 싶어했다. 라면 끓이는 냄새 때문에 너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이 일제히 눈을 떴다. 그 밤에 라면냄새 때문에 잠을 깬 너와 너의 형제들에게 엄마가 니들은 그냥 자거라- 엄하게 말하면 너와 너의 형제들은 막 라면을 입에 넣으려는 첫째오빠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미안해진 그가 라면 한 젓가락씩을 먹게 하면 그때야 엄마는, 먹을 것은 어찌 그리 금세 안다니들! 하면서 솥에 물을 가득 붓고 라면 한개를 다시 끓여와 너와 너의 형제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라면가닥보다 국물이 더 많은 그릇을 받아들고 흐뭇해했던 그런 때가 있었다. 너의 엄마는 수많은 항아리들을 닦다가 라면을 숨겨놓았던 항아리 앞에서 결국 오빠를 향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철철 울곤 했다.

차례차례 형제들이 집을 떠날 때마다 슬픔에 빠지는 엄마에게 네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그들이 보내온 편지를 소리내 읽어준 뒤 엄마의 말을 받아적은 편지를 학교 가는 길에 우체통에 넣어주는 일뿐이었다. 그랬으면서도 왜 너는 엄마가 문자의 세계에 단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을까. 엄마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엄마의 말을 대신 써주면서도 엄마가 글을 몰라서 어린 너에게 의지하는 것이라고 왜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 너는 엄마의 부탁들을 텃밭에 나가 아욱을 뜯어오라거나 기름집에 가서 석유를 사오라는 것과 같은 심부름으로 받아들였다. 너마저 엄마의 집을 떠난 후에 엄마가 그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긴 것 같지는 않다. 너는 발신인이 너의 엄마로 된 편지를 단 한통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네가 편지를 쓰지 않아서일까? 전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네가 집을 떠나올 무렵엔 마을의 이장 집에 공동전화가 놓였다. 그 마을에 처음 생긴 전화였다. 아침마다 아아, 하며 마이크를 시험하는 소리 뒤에는 누구네 집 서울서 전화왔으니 전화받으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곤 했다. 편지로 안부를 전하던 형제들도 마을의 공동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마을에 공동전화가 생긴 이후부터는 식구를 타지로 내보낸 이들은 논에 있거나 밭에 있거나 아아, 마이크 소리가 들리면 모두들 누구를 찾나? 귀를 기울이곤 했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너는 너의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엄마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누그러지는지, 엄마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누가 지금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고사리를 말리고 있을걸요, 일요일이니 성당에 가셨겠는데, 십초 내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의 생각은 지난여름에 조각이 났다.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네가 느낀 것은 엄마가 너 앞에서 집을 치울 때였다. 어느날부턴가 엄마는 방에 수건이 떨어지면 수건을 집어 걸었고, 식탁에 음식이 떨어지면 얼른 집어냈다. 간다는 예고 없이 엄마 집에 가게 될 때 엄마는 너저분한 마당을, 깨끗하지 못한 이불을 연신 미안해했다. 냉장고를 살피다가 네가 말려도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엘 나갔다.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너는 네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너는 그보다 더 오래전 엄마가 너를 도시로 데려다준 후부터 엄마에게 손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너의 엄마는 너를 도시로 보낸 후엔 너를 혼내지 않았다. 그전의 너의 엄마는 어땠던가. 네가 조금만 무엇을 잘못해도 세차게 꾸지람했다. 아주 오래전 엄마의 입에 붙어살았던 말들 중 하나는 “계집애가”였다. 대부분 오빠들과 너를 구별할 때 그 말을 쓰곤 했는데 사과나 포도 같은 것을 집어먹을 때는 물론이고 걸음걸이, 옷매무새, 말투에서도 엄마는 “계집애”를 내세우며 너의 본성들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엄마는 간혹 수심에 잠기며 네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았다. 풀을 먹인 이불호청을 판판하게 하기 위해 양끝을 맞잡고 잡아당겨야 하는데 상대가 없어 어린 너를 마주앉힐 때나 밥을 뜸 들이기기 위해 너에게 재래식 부엌의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집어넣게 할 때, 엄마는 너를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곤 했다. 어느 해 추운 겨울날 우물에서 제사상에 오를 홍어 껍질을 벗기다가 너의 엄마는 칼을 든 채로 “너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했다. “그래야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그때의 엄마의 말을 너는 알아들었을까. 너의 엄마가 스스럼없이 너를 혼낼 때는 너는 엄마, 엄마를 더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라는. 너는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금까지도. 엄마라고 부를 때의 너의 마음에는 엄마가 건강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다.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지난여름 네가 엄마 집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이제는 네가 집에 간다고 하면 할 일이 많아질 엄마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엄마의 집은 네가 그날 이른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갔던 P시에서는 먼 거리였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신새벽에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너는J시로 엄마를 보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P시에서J시로 가는 길은 너의 오피스텔이 있는 도시에서 바로 가는 것보다 교통이 더 불편하고 길도 멀었다. 너도 예기치 않은 일이었던 거다.

 

네가 집에 다다랐을 땐 대문이 열려 있었다. 현관문도 열려 있었다. 도시에서 다음날 그 남자와 점심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너는 밤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네가 태어난 곳이지만 엄마의 집이 있는 마을은 이제 네게 낯선 곳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흔적이라야 도랑의 팽나무들 몇그루 남아 있는 게 전부이다. 세그루의 팽나무는 고목이 되어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너는 엄마의 집에 갈 적이면 큰 도로가 있는 길을 두고 팽나무가 있는 도랑 쪽으로 길을 잡곤 했다. 거기로 가면 큰대문이 아니라 후문격인 작은문이 나왔다. 작은문이 서 있는 바로 앞에는 오래전엔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우물은 자연스럽게 메워졌으나 그 우물을 기억하고 있는 너는 작은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문득 우물이 있던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완강한 시멘트를 발로 툭툭거려보기도 했다. 예전에 그곳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일까? 마음이 야릇해졌다. 이 골목의 사람들을 다 먹여살리고도 항상 찰랑찰랑 물이 고여 있던 그 우물은 저 캄캄한 속에서 어쩌고 있을까? 너는 그 우물이 메워지는 걸 보지 못했다. 어느날 모처럼 엄마의 집에 가보니 우물은 사라지고 시멘트길이 나 있었다. 아직도 시멘트 저 아래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으리란 상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우물이 메워지는 걸 너의 눈으로 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메워진 우물 위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작은문 안으로 들어서며 엄마! 하고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막 기울기 시작한 여름볕이 서향집 마당에 가득 차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살폈지만 거실에도 방에도 엄마는 없었다. 집 안은 어수선했다. 식탁 위 물병 뚜껑은 열려 있고 물컵은 개수대 위에 놓여 있었다. 거실바닥에 깔려 있는 돗자리 위엔 걸레바구니가 엎어져 있고 소파 위엔 아버지가 벗어놓은 듯 때묻은 셔츠가 팔을 벌리고 걸쳐져 있었다. 서향집인 탓에 사위어가는 빛인데도 강한 빛이 빈 공간에 스며 있었다. 엄마! 텅 비었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엄마! 하고 한번 더 불러보았다. 그러곤 현관문을 열고 되나오다가 옆마당의 문이 달리지 않은 헛간에 놓인 평상 위의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는 평상 위에 누워 있었다. 엄마!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신발을 다시 신고 엄마를 바라보며 헛간 쪽으로 걸어갔다. 헛간에선 마당을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오래전 그곳에서 엄마는 누룩을 빚곤 했다. 헛간 옆의 돼지막을 터놓아서 헛간은 제법 쓸모있게 변했다. 벽에 선반을 달아 이제 사용하지 않는 부엌살림을 쌓아놓았고 그 아랜 엄마가 담근 것들이 유리병에 담겨 놓여 있었다. 오래된 평상을 헛간에 옮겨놓은 건 엄마였다. 옛집이 허물리고 양옥집이 지어지면서 입식 부엌에서는 편하게 하지 못하는 부엌일들을 그곳에서 하곤 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붉은 고추를 틀에 넣고 간다든지, 들쑥날쑥한 콩대를 베어와 앞뒤로 뒤져가며 찾아낸 콩을 깐다든지, 고추장을 담근다든지, 김장배추들을 간한다든지, 메주콩을 말린다든지.

헛간 옆에 개집이 텅 비어 있었다. 개의 목에 달려 있던 개줄이 풀린 채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제야 엄마의 집에 들어섰을 때 개의 기척이 없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눈으로는 개를 찾으며 엄마 곁에 갔는데 엄마는 기척이 없었다. 엄마는 방금 전까지 볕에 말릴 호박을 썰고 있었는가 보았다. 도마와 칼과 호박이 밀쳐져 있고 낡은 대바구니엔 고만고만하게 썰린 호박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 너는 엄마가 잠이 들었나? 생각했다. 엄마는 낮잠을 자는 분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이마에 손등을 얹고서 무언가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엄마의 입술은 벌어져 있고 어찌나 이마를 강하게 찌푸렸는지 미간에 굵은 철사 같은 주름이 져 있었다.

- 엄마!

네가 불러도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 엄마! 엄마!

네가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엄마를 마구 흔들자 너의 엄마가 실눈을 떴다. 눈이 붉게 충혈되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너의 엄마는 네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았다. 고통에 짓눌린 너의 엄마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음흉한 것이 너의 엄마의 머리를 찍어내리고 있지 않음에야 지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너의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 엄마!

너는 너도 모르게 평상 위에 올라 엄마의 비참한 얼굴을 너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떻게 이렇게 엄마를 혼자 두는가. 누가 엄마를 거기 헛간에 내버리고 간 듯 너의 의식에 분한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인간이란 그렇게 이기적이다. 그 순간 너는 너의 엄마를 헛간에 내버린 사람이 분명하게 있기라도 한 듯 노여움을 느끼며 분개했으니 말이다. 너의 엄마를 헛간에 혼자 둔 건 다름아닌 너이기도 한데. 너무나 놀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나, 엄마를 방으로라도 옮겨야 하나, 아버진 어디 갔나? 생각들이 두서없이 오고 갔으나 너는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엄마를 무릎에 눕히고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토록 고통에 일그러져 있는 엄마의 비참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마를 찍어누르고 있는 듯한 엄마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엄마는 맥이 빠진 채 숨을 몰아쉬었다. 고통이 짓누르고 있을 때 안간힘을 쓰며 거기에서 벗어나보려고 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 듯 엄마의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너는 처음으로 너의 엄마가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눈을 뜬 엄마의 동공이 네게서 멎었다. 왜 네가 눈앞에 있는지 놀랄 만도 한데 너의 엄마의 동공은 동요가 없었다. 무엇에 반응하기에는 힘이 달려 보였다. 얼마 후에야 엄마는 생기를 잃은 무감각한 얼굴로 너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너는 귀를 기울였다.

- 나는 니 이모가 죽었을 때 울 수조차 없었단다.

핏기를 잃은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공허해서 너는 뭐라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

 

이모의 장례식은 봄에 있었다. 너는 이모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장례식은커녕 이모가 일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병문안도 한번 가지 못했다. 그러고서 너는 무엇을 했을까? 어린 시절의 이모는 네게 또다른 엄마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산을 하나 넘어 있었던 이모 집에 가서 살았다. 이모는 너의 형제 중 유독 너를 친근해했다. 네가 엄마를 닮아서였을 것이다. 이모는 넌 네 에미랑 국화빵이다! 했다. 엄마와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을 재현하듯 이모는 너와 함께 토끼밥을 주었고 너의 머리를 세갈래로 땋아주었다. 보리밥 속에 쌀을 얹어 너에게만 쌀밥을 담아주었다. 밤이면 너를 무릎에 눕히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이모는 이세상을 떠났어도 아직도 너에겐 젊은 이모의 체취가 기억날 정도다. 이모는 제과점을 하는 이종사촌 집의 아이를 돌봐주며 노후를 보냈다. 너의 이모가 아이를 업은 채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실려가 알게 된 것은 암이 온몸에 퍼져 손을 쓸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너의 엄마는 너에게 그 소식을 전하며 불쌍한 언니!라고 했다.

- 왜 여태 그걸 몰랐대요?

- 건강진단을 여태 한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는구나.

너의 엄마는 이따금 죽을 끓여 가서 이모의 입 속에 떠넣어주고 돌아오곤 했다. 너의 엄마가 가끔 너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는 이모에게 다녀왔단다, 깨죽을 쑤어갔는데 맛나게 먹드라, 하는 얘기를 너는 조용히 들었다. 너의 이모가 죽었다는 얘기를 너의 엄마는 맨 먼저 너에게 전화로 알렸다.

- 언니가 죽었다.

- ………

- 너는 오지 마라 바쁘니까.

너의 엄마의 그 말 때문이 아니라 원고 마감에 매여 있어 너는 이모의 장례식에 갈 수도 없었다. 이모의 장례식에 다녀온 오빠가 너에게 엄마 얘길 했다. 엄마가 너무 많이 슬퍼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울지도 않고 장지에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오빠는 이상한 일이었지만 엄마의 뜻대로 해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 헛간에서 고통으로 얼룩진 비참한 얼굴에서 겨우 깨어난 엄마가 나는 네 이모의 장례식 때 울 수조차 없었단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 왜 그랬어? 울고 싶으면 울지?

무감각해 보이긴 하지만 점점 네가 알고 있는 엄마의 얼굴로 돌아오고 있는 것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 네가 물었다. 너의 엄만 눈을 무심하게 껌벅였다.

- 나는 이제 울 수조차 없어.

- ………

- 머리가 터질 것같이 아퍼.

너는 여름 석양빛을 받으며 너의 무릎 위에 얹힌 엄마의 얼굴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응시했다. 엄마가 두통을 앓았었나? 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곧 송아지를 낳을 암소처럼 빛나고 둥글었던 엄마의 검은 눈은 주름 속에 거의 감춰져 작아져 있었다. 붉은 기가 사라진 두툼한 입술은 건조한 채 부르터 있었다. 너는 이모의 죽음 앞에서도 울 수 없을 만큼 너의 엄마가 극심한 두통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너는 평상 위에 홀로 떨어져 있는 엄마의 외로운 팔을 들어 배 위에 얹어주었다. 일생을 노동에 찌든 엄마의 손등에 퍼진 검은 검버섯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더이상 엄마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너의 외삼촌이 살아 있었을 때다.

타지에서 떠돌다가J시로 돌아온 너의 외삼촌은 수요일이면 엄마를 찾아왔다. 특별히 볼일이 있어서 오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엄마의 얼굴이나 보고 가는 게 다였다. 어느 때는 방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대문에서 동생!하고 불러서 잘 있었는가? 묻고는 너의 엄마가 마당으로 나가볼 새도 없이 그럼 나, 가네! 하고서 자전거를 돌려 세워 돌아가기도 했다. 네가 아는 한 엄마와 외삼촌 사이가 그리 다정했던 관계는 아니었다. 네가 모르는 시절, 어쩌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삼촌이 아버지에게 꽤 많은 돈을 꿔갔는데 그걸 갚지 않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너의 엄마는 이따금 그 이야기를 꺼내며 외삼촌을 원망하곤 했다. 외삼촌이 진 빚 때문에 고모나 아버지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빚은 외삼촌이 졌지만 빚을 갚지 못한 게 너의 엄마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외삼촌에게서 사오년간 소식이 끊겼을 때 너의 엄마는 니 외삼촌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를 입에 달고 살았다. 너는 엄마가 외삼촌을 걱정하는 건지 원망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엄마의 집이 새로 지어지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지상에 없는 그 집의 마루는 마당과 대문을 향해 놓여 있었다. 네가 엄마의 집에 가 있을 때인데 누군가 대문을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동생 있는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와 방 안에서 귤을 까먹고 있던 너의 엄마가 그 목소리를 듣고 화다닥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찌나 빨랐는지 모른다. 누구이기에 저리 반가운 걸까? 궁금해 너도 뒤따랐다. 잠시 마루에 서서 대문 쪽을 살피던 엄마가 대문간에 서 있는 존재를 향해 오빠! 소리를 치며 내달았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하고. 외삼촌이었다. 바람같이 외삼촌에게 달려간 너의 엄마는 외삼촌의 가슴팍에 주먹을 내지르며 오빠! 오빠!를 불렀다. 너는 마루에 선 채로 너의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의 엄마가 누군가를 향해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외삼촌을 말해야 될 때는 늘 너의 외삼촌이라고 했었다. 잠시 너를 멍하게 했던 정체를 너는 곧 알아차렸다. 외삼촌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닌데 엄마가 외삼촌을 향해 오빠! 반가운 콧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 왜 그렇게 놀랐는지를. 아, 엄마에게도 오빠가 있었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 네가 엄마에 대해 생각하며 혼자 웃을 때가 있는데, 그날의 엄마, 늙은 엄마가 어리광이 섞인 목소리로 오빠! 외치며 마루를 뛰어내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간의 외삼촌에게 달려가는 그 모습이 연상될 때였다. 엄마는 너보다도 더 어린 소녀였다. 엄마의 그 모습은 너의 뇌리에 박혔다. 엄마에게도……라는 상상을 하게 했다. 당연한 일을 왜 그때야 깨닫게 되었는지.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엄마가 너의 외삼촌을 두고 오빠! 부르며 달려가는 그 순간의 엄마를 보기 전까지는. 엄마도 네가 오빠들에게 갖는 감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인간이란 깨달음은 곧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구나,로 전환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간혹 너는 실제로는 1936년에 태어났으나 호적에는 1938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엄마의 유년을, 소녀시절을, 처녀시절을, 신혼이었을 때를, 너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보곤 했다.

 

헛간에 쓰러져 있는 엄마를 두고 도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국악원 사람들과 속초에 갔다고 했다. 이틀 뒤에나 돌아온다고 했다. 극심한 고통에서만 벗어났을 뿐 엄마는 입을 벌리고 웃지도 못할 만큼 두통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울 수만 없는 게 아니라 웃지도 못할 정도인가 보았다. 엄마는 병원에 가보자는 너의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헛간에서 방으로 엄마를 데리고 오는 동안에도 너의 엄마는 머리가 울리는지 가만가만 걸었다. 엄마와 얘기를 할 수 있는 때까지는 한참이 더 걸렸다. 엄마는 늘 머리가 아프지만 지독하게 아픈 경우는 “이따금”이라고 했다. 그 순간이 지나면 견딜 만하다고.

엄마의 두통을 오빠들은 알까? 아버지는?

너는 도시로 돌아가면 오빠들에게 엄마의 두통을 알리고 엄마를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움직일 만해지자 너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다. 너는 언제부턴가 엄마의 집에 가도 서너시간 머물다가 곧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 너는 다음날 그 남자와의 약속을 떠올렸지만 엄마에게 오늘은 자고 갈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때 엄마의 입가에 번졌던 미소.

네가 P시의 어시장에서 사가지고 온 살아 있는 문어를 엄마와 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둔 채 아주 오래전처럼 애써서 음식을 만들지 않은 소박한 밥상 앞에 마주 앉았다. 물김치와 두부조림과 멸치볶음 그리고 구운 김을 반찬 삼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이따금 엄마가 김에 밥을 싸서 너에게 내밀면 너는 어릴 때처럼 가만히 받아먹었다. 밥을 다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엄마와 너는 집을 사이에 두고 빙빙 돌았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집이 아니라 새로 지어졌지만 그때처럼 마당과 옆마당과 뒷마당이 통하게 되어 있었다. 뒤란의 장독대엔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어린 시절에는 간장과 고추장과 소금과 된장들이 꽉 차 있었지만 이제는 빈 항아리들이. 엄마와 네가 앞서거나 뒤따르며 집의 앞뒤를 몇바퀴 도는 어느 사이에야 엄마는 생각난 듯이 너에게 왜 갑자기 집에 왔는지를 물었다.

-P시에 갔다가……

-P시는 여기서 멀잖여.

- 응.

- 서울서 오는 거보다 더 멀 텐디.

- 그랬어.

- 그리 집에 한번 올 틈이 없는 거 같더니 어찌 P시에 갔다가 여길 올 생각을 다 했냐?

너는 대답 대신 어둠속에서 떨어진 끈을 붙잡듯 엄마의 두툼한 손을 찾아 잡았다. 너도 너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너는 엄마에게 이른 아침에 P시의 점자도서관에 강연을 하러 내려왔다고 말했다. 점자도서관? 엄마가 물었다. 앞을 못 보는 이들이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글자, 그게 점자야. 엄마는 고갤 끄덕였다. 뒤란과 앞마당과 옆마당을 다시 몇바퀴 도는 사이 너는 엄마에게 P시에 다녀온 얘기를 해주었다. 몇해 전부터 그곳 점자도서관의 사서는 네가 점자도서관에 와주길 청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다른 일과 겹쳐 있어 응하지 못했다고. 초봄에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고도. 막 너의 신간이 출간된 때였다. 점자도서관의 사서는 너의 신간을 가지고 점자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점자. 너는 점자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엄마에게 설명해준 대로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의 문자라는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점자책을 만들고 싶다,라는 말을 네가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을 생각할 때처럼 막연히 듣고 있을 때 사서가 점자로 책을 만드는 걸 허락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사서가 “허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면 네가 점자도서관에 가는 일은 이번에도 성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서가 발음한 “허락”이라는 말이 너의 마음을 움직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겠다고, 그들끼리 통하는 문자로 책을 다시 만드는 걸 허락해달라고 한다…… 너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너는 무기력해지며 그러지요,라고 대답했다. 사서는 점자책이 완성될 무렵이 11월이고 11월은‘점자의 날’이 끼어 있는 달이라고 했다. 그날 도서관에 내려와서 책 기증식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어가지? 싶었으나 그러지요, 한 말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초봄의 일이라 11월이면 먼 날이라고 여긴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봄 여름이 갔고 가을이 왔으며 11월도 왔다. 그리고 그날이었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네가 점자도서관에 간 일도 거기에서 마주쳤던 일들도 네가 점자도서관이라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면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너는 봄과 여름 가을 동안 늘 분주했다. 점자도서관으로 향하는 그날조차도 네가 만나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기보다는 오전 10시의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겨우 맞추어 P시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점자도서관에 다다라 대기실로 들어가니 점자도서관 관장이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네 앞에 앉았다. 여기까지 와주어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너는 긴장을 숨기려고 안녕하세요, 쾌활하게 말하며 도서관장의 내민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부드러웠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도서관장은 네가 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네가 쓴 작품을 읽었다는 그에게 너는 미소를 띤 채 고개만 끄덕였다. 너의 미소도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도 그는 보지 못할 텐데도. 그날은 점자의 날. 그들의 축일이었다. 강당에 들어서니 사백명은 될 듯싶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막 강당에 들어서는 사람들도 보였다. 중년의 여자와 남자, 노인과 청년 들이 뒤섞여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고 몇사람이 차례로 나와서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몇사람에게 감사장이 전달되었다. 점자로 만들어진 너의 책이 호명되고 너는 그 책을 받으러 앞으로 나갔다. 도서관장의 손을 통해 네게 전달된 책은 판형이 기존의 책보다 두배는 큰데 가벼웠다. 박수소리가 들렸고 너는 너의 손에 들린 책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행사가 계속 이어졌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에게 상패가 수여될 때 너는 점자로 된 네 책을 펼쳐 보았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얀 백지 위에 무수히 많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블랙홀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잘 알고 있는 계단이라 생각해 계단은 보지 않고 딴 생각을 하며 내려가다가 헛디뎌 저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느낌. 하얀 백지 위의 너는 한 문장도 해독할 수 없는 바늘구멍만한 점자들의 난무. 첫 장을 넘겨보고 둘째 장을 넘겨보고 셋째 장을 넘겨보다가 너는 책을 덮었다고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너의 엄마가 너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다음 이야기도 해주었다. 행사의 마지막은 네가 그들 앞에 서서 작품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점자책을 무릎에 얹은 채 앉아 있던 너는 이름이 호명되자 책을 그대로 들고 나갔다. 점자책을 단상에 내려놓고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너의 등은 곧추세워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백명 앞에 서자 어디에다 눈을 둬야 할지 막막해졌다.

- 그래서 어쨌냐?

너의 엄마가 물었다.

너에게 주어진 50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고 대답했다. 너는 누군가의 눈을 보면서 얘기하는 타입이다. 너는 얘기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의 분위기에 따라서 얘기를 다 하기도 하고 반만 하기도 했다. 어떤 눈앞에서는 너도 처음 해보는 이야기들이 끌려나오기도 했다. 네가 그렇다는 것을 너의 엄마는 알고 있을까? 사백명의 앞을 못 보는 사람들 앞에서 너는 어떤 눈을 보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떤 눈은 감겨 있었고 반쯤 뜬 눈도 있었으며 어떤 눈 위엔 색안경이 씌워져 있었고 주름진 어떤 눈은 긴장하고 있는 너를 빤히 보고 있는 것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일제히 너를 향해 있으나 너를 보지는 못할 눈들 앞에서 너는 고독해졌다. 그 눈들 앞에서 작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다른 이야기-이를테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에도 적절치 않았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네가 그들에게 해주기보다 그들이 네게 해주는 게 옳다고 너는 생각했다. 막막해진 네가 마이크에 대고 내뱉은 첫마디는 무슨 얘기를 해드릴까요?였다. 그들이 와아, 웃었다. 어떤 이야기라도 다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초청되어 와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너를 풀어주기 위한 웃음이었을까.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작품 얘기를 하러 왔잖아요,라고 너의 말을 받았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눈은 단상의 너를 향하긴 했으나 감겨 있었다. 너는 그의 감긴 눈을 보며 그들이 만들어준 점자책에 실린 작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그 책을 쓰는 도중에 너의 마음이 겪은 일들과 다 쓰고 난 후에 그 책에 대해 네가 가지게 된 소망들을. 너는 놀랐다. 그들은 그동안 네가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 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이 너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몸짓에서 느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고 누군가는 상체를 앞사람 쪽으로 바싹 당겨놓고 있었다. 너는 그들의 문자를 단 한 문장도 해독할 수 없는데 그들은 네가 쓴 책을 읽고 질문을 하고 소감을 말했다. 그 책에 대해 그들처럼 우호적인 감정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그때껏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너의 얘기를 가만 듣고 있던 엄마는 그 사람들은 그래도 네가 쓴 책을 읽었구나,라고 말했다. 엄마와 너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엄마가 더 말해보라고 했다. 너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들 중 어떤 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해도 되느냐 말했다. 너는 그러라고 했다. 앞을 못 보는 이인데도 그는 여행 다니는 게 취미라고 했어, 엄마. 엄마는 너의 얘기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가 여행을 하는 곳은 어디일까? 너는 순간 멍해졌다. 그는 네가 아주 오래전에 쓴 글 중에 페루가 배경인 작품이 있다고 했다. 그 작품 속에 화자가 마추픽추라는 곳으로 가는데 거기 기차가 뒤로 가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자기는 그 작품을 읽고 페루에 가서 그 기차를 타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네가 직접 그 기차를 타보았는가? 물었다. 네가 십여년도 전에 쓴 작품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무언가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무엇을 꺼내려고 했는지 잊어버려 안에서 흘러나오는 찬 공기에 얼굴을 내맡긴 채 한참을 서 있다가 도로 냉장고 문을 닫기 일쑤인 네가 십여년 전 그 작품을 쓰기 직전에 여행했던 페루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하고 있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 우주의 배꼽이라 불렸던 쿠스코, 신새벽에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던 싼페드로역. 뒤로 후진했다 앞으로 전진했다를 십수번 반복하다가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하던 기차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지명과 나라 이름과 산맥 이름이 생생히 발음되어 나왔어,라고 엄마에게 얘기해주었다. 너는 여태 본 적이 없는 눈, 너의 어떤 결핍이라도 다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줄 것 같은 그런 눈들의 호의를 느끼며 너도 모르게 그 작품에 대해 여태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가 그게 무슨 말이었느냐? 물었다. 너는 다시 쓰면 그렇게 쓰지 않을 것 같다고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게 그리 중한 얘기냐? 엄마가 다시 물었다. 그건 나 스스로 지금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엄마! 너는 외로워져서 엄마의 손을 찾아 쥐었다. 엄마는 어둠속에서 너를 물끄러미 보더니 그런 말을 왜 숨기고 사느냐? 느끼는 대로 내뱉고 살아라,며 너에게 잡힌 손을 빼내 너의 등짝을 쓸어내렸다. 엄마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어린 너의 얼굴을 씻겨주던 그때의 손길이었다. 엄마가 너는 얘기를 참 잘하는구나, 칭찬했다. 내가요? 엄마는 고갤 끄덕였다. 그래 얘기를 참 재미나게 하는구나, 거듭 말했다. 내 얘기가 재밌었어? 그래…… 재밌었다. 내 얘기가 재미있었다구? 너의 마음이 짠해졌다. 너의 얘기가 재미있었던 게 아니라 점자도서관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네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깨달았다. 도시로 나온 후의 너는 어땠던가. 너는 엄마에게 늘 화를 내듯 말했다. 엄마가 뭘 아느냐고 대들듯이 말했다. 엄마가 돼서 왜 그래? 책임지라는 듯이 말했다. 엄마가 알아서 뭐할 건데? 무시하듯 말했다. 엄마가 너를 혼낼 힘이 없어진 걸 알게 된 후의 너는, 엄마가 거긴 왜 갔느냐고 물으면 일이 있어서요, 짤막하게 대답했다. 다른 나라에서 책이 번역되었을 때나 혹은 쎄미나가 있어서 비행기를 타게 됐을 때도 거기 왜 가느냐?고 물으면 그냥 일이 있어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엄마는 비행기 좀 그만 타라고 했다. 사고가 나면 이백명씩 죽는다는데 그걸 왜 타느냐고. 일이 있어서 타는 거예요 하면 너는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 게냐?고 물었다. 너는 그러네, 엄마, 시무룩하게 대꾸하곤 그만이었다.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은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엄마는 점자를 보고 네가 느낀 막막함을, 사백여명이나 되는 앞 못 보는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을 때의 낭패스러움에 대해 얘기하자 남아 있던 두통을 씻어낸 듯이 너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너에게 생긴 일에 대해서 길게 얘기해본 적이 언제던가. 언제부턴가 엄마와 너의 대화는 간소해졌다. 그것도 얼굴을 마주보고 하기보다는 전화기를 사이에 둔 통화로 이루어졌다. 너의 말은 주로 밥은 먹었는가, 아픈 데는 없는가, 아버지는 어떤가, 감기 조심하라, 돈을 부쳤다,라는 것들이었고 엄마의 말은 김치를 담가 부쳤다, 꿈자리가 사납다, 쌀을 부쳤다, 청국장을 부쳤다, 익모초를 달여 부쳤다, 택배기사가 전화를 할 테니 전화기 꺼놓지 마라,는 것이었다.

 

네가 쓴 한권의 책은 그들의 문자인 점자로 만들어놓으니 네권이 되었다. 그 책이 담긴 종이가방을 한 손에 든 채 그들과 작별을 하고 나니 도시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두시간이나 남았다. 단상 앞에 서서 그들의 눈을 피해 창쪽으로 눈길을 주었을 때 뜻밖에 크고 작은 배들이 정착해 있는 항구가 내다보였던 게 떠올랐다. 항구가 가까이 있으니 어시장도 있겠지,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어시장엘 데려다 달라고 했다. 타지에 가서 시간이 생기면 시장 구경을 다니는 게 너의 취미다. 평일인데도 어시장은 벅적벅적했다. 어시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쏘나타만한 개복치를 두 사람이 달라붙어 해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커서 참치인가 물었더니 상인이 개복치라고 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문학작품에서 바닷가 출신인 여주인공이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도시의 어마어마한 수족관을 찾아가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개복치와 대화를 나누던 게 생각났다. 여주인공은 자기가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연하의 남자와 함께 다른 도시로 떠나버린 엄마에 대해 원망을 늘어놓고 험담을 하면서도 나중엔 그래도 난 엄마가 보고 싶어, 이 말을 들어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개복치야! 토로하곤 했다. 저게 그 개복치인가? 싶었다. 생선 이름치곤 독특한 이름이라 네가 개복치요? 확인하니 맘보라고도 부릅니더 닐리리 맘보요! 했다. 닐리리 맘보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야 점자도서관에 들어서서 그들과 헤어질 때까지 너를 짓누르고 있던 긴장이 풀어졌다. 머리가 사람얼굴보다 더 큰 살아 있는 문어들, 싱싱한 전복들, 서울보다 세배는 값이 싼 갈치 고등어 꽃게 사이를 오가다가 왜 너는 엄마를 생각했을까. 개복치 때문이었을까. 어시장에서 엄마를 생각해보긴 처음이었다. 섣달에 있는 제사를 준비하느라 엄마와 함께 우물에서 홍어 껍질을 벗기던 일도 떠올랐다. 살점에 딱 달라붙은 거무튀튀한 홍어 껍질을 벗기는 사이 꽁꽁 얼어붙던 엄마의 손. 웬만한 어린애 몸통만한 문어를 삶아서 매달아놓은 가게를 지나다가 너는 만오천원을 주고 살아 있는 문어를 한마리 샀다. 양식이긴 해도 다시마와 미역을 먹고 자란다는 전복도 샀다. 서울로 가져갈 거라는 말에 상인은 이천원을 더 내면 아이스박스에 담아주겠다고 했다. 살아 있는 문어와 전복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들고 어시장을 나와서도 비행기 시간은 한참 남아 있었다. 너는 한 손엔 그들이 만들어준 점자책을, 또다른 손엔 아이스박스를 든 채 다시 택시를 타고 이번엔 바다로 가자 했다. 어시장에서 모래를 밟을 수 있는 바다까지는 3분밖에 안 걸렸다. 11월의 바다는 데이트 중인 남녀 두쌍 외에는 텅 비어 있었다. 모래밭이 길어 바닷물이 닿는 곳까지 걸어가다가 두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바닷물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잔모래밭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바다를 보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 네가 택시에서 내린 도로 건너편으로 상가와 아파트 들이 즐비하게 바다를 향해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무더운 한여름 밤이면 바다로 뛰어들어 해수욕을 하고 집에 가서 샤워를 해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바다를 보고 있다가 무심코 종이가방에서 점자책을 한권 꺼내 펼쳐봤다. 페이지마다 무수하게 찍힌 흰 점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렸다.

 

너는 바닷가의 햇볕 아래서 해독할 수 없는 점자를 손으로 짚어보다가 너에게 문자를 처음 가르쳐준 이는 누구였나를 생각했다. 둘째오빠다. 옛집의 마루에 엎드려 있는 둘째오빠와 너. 그 곁의 엄마. 둘째오빠는 네 위의 세 오빠들 중 성품이 가장 온화한 이였다. 엄마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이이기도 했다. 너에게 글자를 가르치라는 엄마의 지시를 어기지 못하고 둘째오빠는 따분한 표정을 지으며 너에게 아라비아 숫자와 우리말의 자음 모음을 반복하여 쓰게 했다. 왼손잡이였던 너는 글씨도 왼손으로 쓰려 했다. 그때마다 둘째오빠는 너의 왼손등을 대나무자로 내리쳤다. 그것도 엄마의 지시였다. 너는 왼손과 왼발을 쓰는 게 편한데 엄마는 왼손을 쓰면 인생에 울 일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네가 부엌에서 왼손으로 밥을 푸고 있으면 엄마는 주걱을 빼앗아 오른손에 쥐여주었다. 그래도 왼손을 쓰면 이번엔 주걱을 빼앗아 어째 그렇게 말을 안 듣냐! 너의 왼손을 내리쳤다. 너의 왼손은 부어올랐다. 그런데도 둘째오빠가 안 보는 사이 너는 얼른 연필을 왼손에 옮겨 쥐고 8자를 쓰기 위해 동그라미 두개를 그려 붙여놓았다. 그러곤 얼른 오른손으로 연필을 바꿔 쥐었다. 오빠는 네가 8자를 쓴 게 아니라 동그라미 두개를 붙여놓은 걸 금세 알아보곤 손바닥을 대라고 하고 대나무자로 때리는 벌을 주었다. 네가 둘째오빠에게 문자를 배울 때마다 엄마는 양말을 깁거나 마늘을 까면서 마루에 엎드려 글자를 쓰고 있는 너를 건너다 보았다는 생각. 네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너의 이름을 쓰고 엄마 이름을 쓰고 드디어 더듬더듬 책을 펼쳐놓고 읽게 되었을 때 박하꽃처럼 되던 엄마의 얼굴이 네가 읽을 수 없는 점자 위로 겹쳐졌다. 너는 바닷가의 모래밭에서 일어섰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지도 않고 바다를 등지고 걸음을 재촉했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포기하고 P시에서 L시까지 택시를 타고 와 엄마의 집이 있는J시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거의 두 계절 동안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주 오래전 한 교실이 떠오른다.

 

육십여명의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는 원서를 쓰는 날이었다. 그날 원서를 쓰지 않으면 중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원서를 쓰지 않는 스물몇명의 아이들 중에 너도 속해 있었다. 너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 전날 밤 아파서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엄마가 소리를 질렀던 게 더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이 시골딱지에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여자애를 학교까지 안 보내면 저애가 앞으로 이 세상을 무슨 힘으로 살아가느냐,고 병석의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고, 엄마는 마루의 밥상을 집어 마당에 내던졌다. 자식새끼 학교도 보낼 수 없는 거 살림 살면 뭐하느냐, 다 부숴버릴란다, 했다. 너는 학교를 가지 않아도 좋으니 엄마가 성질을 좀 가라앉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밥상을 집어던지는 것으로도 분이 안 풀려 광문을 열었다가 쾅쾅 닫고 빨랫줄에 걸려 있는 빨래들을 쭈루룩 손으로 훑어 뭉개서 마당에 패대기쳐버렸다. 그러다가 우물가에서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너에게로 오더니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벗어 너의 코에 갖다댔다. 코를 풀어라, 했다. 엄마가 늘 머리에 쓰고 다니던 수건에서는 진한 땀냄새가 맡아졌다. 너는 코를 풀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냄새나는 그 수건에 대고는. 그런데도 엄마는 자꾸 코를 힘차게 팽! 풀라고 했다. 네가 머뭇거리자, 그래야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네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엄마를 보고 있었던가 보았다. 코를 풀라는 것은 울지 말라는 뜻이었다. 너는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엄마가 대준 수건에 코를 팽 하고 풀었다. 엄마의 수건에서 풍겨오던 땀냄새와 너의 코냄새가 뒤섞였다. 네가 코를 푼 수건을 그대로 쓰고 엄마가 교실에 나타났다. 엄마는 담임선생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담임선생은 곧 너에게 중학교 입학원서를 갖다 내밀었다. 입학원서에 이름을 쓰면서 네가 고갤 들어보니 엄마가 복도 유리창에서 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눈과 마주치자 엄마가 머리의 수건을 벗어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의 유일한 패물이었던 왼손 중지에 끼어 있던 노란 반지. 중학교 입학금을 낼 때쯤 엄마의 왼손 중지엔 반지는 사라지고 너무 오래 끼어 깊이 팬 자국만 남아 있었다.

 

엄마의 두통은 수시로 엄마의 육체를 공격했다.

 

네가 그날 밤 한밤중에 갈증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둠속에서 너의 책들이 이윽히 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를 따라 일본에 일년 동안 나가 있었을 때 짐을 정리하려고 보니 책이 가장 문제였다. 어찌할까 궁리하다가 오랜 세월 너와 함께 있어주었던 책들의 대부분을 엄마의 집으로 내려보냈다. 엄마는 너의 책을 받자 방 하나를 비우고 그곳에 책들을 진열했다. 그후로 다시 가져가지 못했다. 너는 이 집에 오면 언제나 그 방에 옷을 벗어두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고 갈 때는 엄마도 그 방에 이부자리를 깔아주곤 했다. 뿌연 어둠속에서 책들을 올려다보다가 부엌으로 나왔다. 물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오다가 엄마는 잘 자는지 궁금해 슬며시 엄마의 방문을 밀어보았다. 이부자리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너는 엄마!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벽을 더듬어 형광등 스위치를 올렸다. 엄마는 없었다. 너는 거실의 불을 켜고 세면장 문을 열어보았으나 거기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 엄마! 연거푸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새벽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당의 불을 켜고 얼른 헛간 평상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거기 누워 있었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낮에 그랬던 것처럼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손을 이마에 얹고 잠들어 있었다. 맨발이었다. 소박한 밥상을 차려 저녁을 먹었던 시간과 엄마와 함께 집을 사이에 두고 마당을 돌며 나누었던 얘기들이 산산조각나는 느낌이었다. 여름이었지만 새벽이었다. 이불을 가져와 엄마에게 덮어주었다. 양말을 꺼내와 맨발에 신겨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정신이 들 때까지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농사일 말고 돈을 벌 방법을 연구하더니 헛간에 누룩틀을 들여왔다. 밭에서 수확한 통밀을 거칠게 찧어서 물과 섞은 후 누룩틀에 넣고 누룩을 찍어냈다. 누룩이 발효될 때가 되면 온 집안에 누룩 뜬내가 났다. 누룩 뜨는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는 이 냄새가 돈냄새라고 했다. 마을에 두부를 만드는 집이 있었는데 엄마가 잘 발효된 누룩을 가져가면 대신 양조장에 넘기고 돈을 받아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는 그 돈을 하얀 사기중발에 담고 그 위에 중발 예닐곱개를 더 포갠 뒤 찬장의 맨 위에 올려놓았다. 사기중발이 엄마에겐 은행이었다. 누룩 빚은 것만이 아니라 엄마는 돈이 생기면 모두 그곳에 담아두었다. 네가 등록금 용지를 가져가면 엄마는 사기중발 속에 모아둔 돈을 꺼내 세어 너의 손에 쥐여주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네가 헛간의 평상 위에서 자고 있었다. 엄마는? 싶어 살펴보니 엄마는 없고 부엌 쪽에서 도마 소리가 났다.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가보았다. 엄마가 도마 위에 무를 올려놓고 썰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가 쥐고 있는 칼은 위험해 보였다. 생채를 만들 때면 칼을 보지 않고도 무채를 탁탁탁 쳐내던 엄마의 칼질이 아니었다. 왠지 칼을 잡은 엄마의 손은 불안정했고 칼은 자꾸만 무에서 비켜나 도마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러다간 무가 아니라 엄마의 엄지를 썰고 말 것 같았다. 엄마! 잠깐! 보다 못한 네가 엄마의 칼을 받아쥐었다. 내가 썰게, 엄마. 네가 도마 앞으로 갔다. 엄만 주춤하는 것 같더니 이내 도마 앞에서 물러났다. 개수대의 쇠바구니 속에는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문어가 죽은 채로 뻗어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스텐 찜솥이 올려져 있었다. 엄마는 찜솥 밑에 무를 깔고 문어를 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문어는 찌는 게 아니라 데치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너는 체념했다. 엄마는 네가 썰어놓은 무를 찜솥 아래 깔았다. 그 위에 받침대를 맞추고 문어를 집어 통째로 올려놓고 뚜껑을 닫았다. 오랜 습성. 엄마는 생선에 익숙하지 않았다. 생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도 않았다. 엄마에겐 고등어나 꽁치나 갈치나 통틀어‘비린것’으로 통했다. 콩을 부를 때 강낭콩, 메주콩, 흰콩, 검정콩, 일일이 가려 말해주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엄마는 생선이 생기면 회를 치지도 굽지도 졸이지도 않고 무조건 소금에 간했다가 쪄먹었다. 고등어나 갈치도 고춧가루와 마늘과 풋고추를 넣은 간장양념을 해서 밥물 위에 얹어 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의 엄마는 회는 입에 대지 않았다. 회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 생선의 살점을 생으로 먹다니 대체 무슨 짓이람, 하는 표정으로 눈까지 찡그려가며 바라보곤 한다. 열일곱살 적부터 지금까지 홍어를 쪄내야 했던 엄마는 문어도 찔 모양이었다. 곧 부엌엔 무와 문어 익는 냄새가 번졌다. 부엌에서 엄마가 문어를 찌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홍어 생각이 났다.

엄마의 집이 있는 고장 사람들의 제사상엔 항상 홍어가 올랐다. 봄제사와 여름제사 두번, 겨울제사 두번을 거쳐야 엄마의 일년이 갔다. 설과 추석 명절 두번까지 합하면 엄마가 우물에 주저앉아 껍질을 벗겨야 하는 홍어는 일곱마리였다. 보통 엄마가 사오는 홍어는 가마솥 뚜껑만했다. 너의 엄마가 어느날 시장통에서 붉은 홍어를 사와서 우물에 철버덕 내려놓으면 제사가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겨울제사 때 홍어 껍질을 벗기는 일은 고역이었다. 물만 닿아도 금세 바닥이 쩍 소리를 내며 살얼음판이 되는 날씨에 홍어 껍질을 벗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너의 손은 얇고 엄마의 손은 두툼했다. 엄마가 얼어서 빨개진 손으로 홍어 껍질 가에 칼집을 내주면 너의 어린 손가락이 그걸 잡아당겼다. 껍질이 쭉 벗겨지면 좋으련만 삼쎈티도 못되어 끊겨버리곤 했다. 끊어진 자리에서부터 다시 칼집을 내는 일의 반복이었다. 살얼음판이 된 우물가에 엉덩이를 들고 앉아서 홍어 껍질을 벗기고 있는 엄마와 너의 모습은 그 집의 겨울 풍경이기도 하다. 마치 필름을 재생하는 것처럼 해마다 똑같이 반복되었던 홍어 껍질 벗기기. 어느 해 겨울 엄마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너의 곱은 손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깟 것 안 벗기면 어떠냐!며 홍어 껍질 벗기기를 멈추고는 씩씩하게 칼로 홍어를 탁탁 토막쳤다. 제사상에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홍어가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홍어가 왜 이러냐? 물었다. 엄마는 껍질을 벗기지 않았을 뿐 똑같은 홍어요! 대꾸했다. 제사음식은 정성인데…… 고모가 뒤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 성님이 벗겨보시요, 엄마도 지지 않았다. 그해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채 제상에 오른 홍어는 다음해의 궂은 일 앞에서 늘 말거리가 되었다. 감이 안 열린 일도, 자치기를 하던 오빠가 날아오는 막대기에 눈이 찔린 일도,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일도, 사촌들끼리 싸운 일도 모두 엄마가 홍어 껍질을 벗기는 정성도 없이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라고 고모는 구시렁거렸다.

엄마는 도마 위에 찐 문어를 올려놓고 칼로 썰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칼이 엇나갔다. 무를 자를 때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게, 엄마. 네가 또다시 칼을 받아 쥐었다. 무냄새가 밴 뜨거운 문어를 썰어 그중 한점을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 엄마에게 내밀었다. 항상 엄마가 너에게 해주던 일이다. 그럴 때면 너는 젓가락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다. 엄만 그리 먹으면 맛이 덜하다, 그냥 아, 해봐라, 했다. 엄마는 젓가락을 집어 받으려고 했다. 그러면 맛이 덜해 엄마, 그냥 아, 해봐! 벌어진 엄마의 입 속으로 찐 문어 한점을 밀어넣었다. 너도 한점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찐 문어는 따뜻하고 물컹하고 부드러웠다. 아침부터 웬 문어를? 싶었으나 엄마와 너는 부엌에 선 채로 도마 위의 문어를 손으로 집어먹었다. 문어를 씹으면서 너는 문어를 집으려다가 자꾸만 놓치는 엄마의 손을 보았다. 네가 다시 집어주었다. 나중에 엄마는 스스로 문어를 집어먹는 걸 체념하고 네가 엄마의 입 속에 문어를 넣어주기를 기다렸다. 엄마의 손은 집중력이 없어 보였다. 문어를 씹으며 너는 어머니, 하고 불렀다.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처음이었다. 어머니, 나랑 오늘 서울 가자, 했다. 너의 엄마는 산이나 가자, 했다.

- 산요?

- 그래 산.

- 여기 어디에 산에 다닐 데가 있어요?

- 내가 낸 산길이 있어야.

- 서울 가서 병원 가자.

- 나중에.

- 나중에 언제?

- 큰놈 입시시험 끝나면.

엄마가 말한 “큰놈”이란 오빠의 아들이다.

- 오빠네랑 말고 나랑 가면 되지 병원에.

- 괜찮다…… 이러다가 괜찮어. 한의원도 다니고 있고…… 물리치료도 받고.

엄마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한사코 나중에 가겠다고 했다. 찐 문어로 아침을 먹고 대문을 나섰다. 뒷산의 밭두둑 몇개를 타고 넘어 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아닌데도 오롯이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에 떡갈나무며 상수리나무 잎이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어 신발 밑이 푹신푹신했다. 이따금 그 길을 타고 넘어오는 나무줄기들이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앞에 걸어가던 엄마가 나무줄기들을 뒤로 제쳐주기도 했다. 네가 지나가면 엄마는 나무줄기를 내려놓았다. 새가 후두둑 저편으로 날아갔다.

- 여길 자주 와?

- 그려.

- 누구랑요?

- 누구랑은. 같이 올 사람이 어디 있기나 허냐.

엄마가 혼자서 이 길을? 너는 다시 한번 엄마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혼자 다니기엔 으슥한 길이었다. 이따금 대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조차 가렸으니까.

- 왜 이 길을 혼자서 다녀?

- 이모가 죽고 난 뒤에 그냥 한번 와본 길인디 한번 와보니 자꾸만 오게 되더라.

얼마나 걸었을까. 산길의 어느 구릉에서 엄마가 걸음을 멈추었다. 엄마 옆으로 가서 엄마가 바라보는 쪽을 함께 보다가 너는 아, 이 길!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가 그 길이었던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길이었다. 어렸을 때 외가에 다니던 지름길이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큰길이 난 후에도 사람들이 곧잘 이용하던 산길이었다. 외가에 제사가 있던 날, 마당의 닭을 한마리 새끼줄에 묶어가지고 이 길을 가다가 놓쳐서 헤매며 찾아다니던 그 길이었다. 한번 놓친 닭은 끝내 다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닭은 어디로 갔을까? 그 길이 이렇게 변했는가.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구릉이 없었으면 너는 끝내 그 길이라는 걸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구릉에 서서 엄마는 외가 쪽을 바라봤다. 이제 그곳엔 누구도 살지 않았다. 한때 50호는 되었을 외가 마을 사람들은 모두 타지로 이주했다. 헐지 않은 빈 집이 몇채 남아 있으나 인기척이 끊긴 마을이었다. 엄마 혼자 여기 와서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태어난 마을을 내려다보곤 했었는가. 너는 엄마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선 다시 한번 함께 서울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너의 말에 대답을 않고 진돗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잖아도 개장에 개가 없어서 궁금했던 일이었으나 물을 새가 없었다. 일년 전 여름에 집에 갔을 때 진돗개 한마리가 헛간 옆에 매여 있었다. 날은 쨍쨍 더운데 개줄을 어찌나 바투 매어놨는지 숨을 할딱거리는 개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같이 느껴졌다. 너는 엄마에게 개줄을 풀어주라고 했다. 엄마는 줄을 풀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 앞을 지날 수 없다고 했다. 시골에 사는 개한테 저렇게 쇠줄을 채워 묶어놓다니…… 너는 그때 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도 전에 개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다. 개를 왜 묶어놓느냐, 풀어줘라,는 것이 너의 주장이었고 엄마는 이제 시골이라도 개를 풀어 기르는 집은 없다, 어느 집이나 다 묶어 기른다, 개줄을 풀어주면 집을 나간다, 했다. 그렇다면 줄이라도 길게 매줘야지 저렇게 바투 매놓으면 날도 더운데 개가 어떻게 사느냐,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저렇게 다루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너는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엄마는 집 안에 개줄이 그것밖에 없다고 했다. 아마도 그전에 기르던 개를 묶어놓던 줄인가 보았다. 사오면 되잖어요! 너는 오랜만에 엄마 집에 와서 방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 길로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개를 묶어놓아도 옆마당을 휘돌고 남을 만큼 긴 개줄을 사왔다. 개줄을 사가지고 와서 다시 보니 개집도 너무 작았다. 너는 다시 개집을 사러 가겠다고 나섰다. 엄마가 말렸다. 옆동네에 목수가 있으니 그에게 개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해보겠다고 했다. 너의 엄마로서는 짐승이 사는 집을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널린 게 널빤지인데 고깟 것, 망치질 몇번이면 해결되는 일인데 그걸 돈을 주고 사다니, 돈이 썩었나 보다는 것이 너의 엄마 생각이었다. 너는 도시로 돌아올 때 십만원권 수표 한장을 엄마 앞에 내밀며 틀림없이 커다란 개집을 지어줄 것을 다짐받았다. 엄마는 그러마고 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엄마에게 개집을 지었는가 몇차례 확인전화를 했다. 거짓말을 해도 되련마는 엄마는 매번 이제 해야지, 이제 할 것이다,고 했다. 네번째 전화를 걸었다가 엄마에게서 똑같은 말을 들은 너는 와락 화를 터뜨렸다.

- 내가 돈도 다 주고 왔잖아요, 시골 사람들이 정말 더한다니까. 개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그 좁은 데서 어떻게 살아, 더구나 이 더위에. 안에다 똥을 싸서 다 뭉개져 있던데 그거 치워주지도 않고…… 몸집은 그리 큰데 그 좁은 데서 어떻게 살어? 아님 마당에 풀어주든가! 개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순간 수화기 저편이 잠잠했다. 시골 사람들이 정말 더한다니까!라고 쏘아붙여놓고 왜 이런 말까지! 너도 금세 후회가 밀려오던 차였다. 엄마의 노여운 목소리가 건너왔다.

- 너는 이 에미는 안 보이고 개만 보이냐! 이 에미가 개나 학대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여! 상관 마라이! 내 방식대로 키울 테니께!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늘 네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엄마, 내가 전화 다시 할게요, 그러고는 다시 하지 않은 적이 여러번이었다. 너는 너의 엄마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랬는데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이다. 집을 떠난 후에 엄마가 너에게 그렇게 화를 낸 것도 처음이었다. 네가 엄마 곁을 떠난 후 엄마는 늘 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모자라서 너를 돌보지 못하고 오빠에게 보냈다고 했다. 엄마는 네가 전화를 하면 어떻든 그 통화를 오래 지속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쪽이었다. 엄마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는데도 너는 그 점에 대해서보다 개를 그렇게 기르는 엄마가 서운했다. 엄마가 왜 저리 되었나, 생각했다. 집 안의 그 많은 가축들을 일일이 돌보았던 엄마였는데. 좀 오래 머물 생각으로 서울에 왔다가도 사흘을 못 넘기고 집에 가겠다고 우겼던 엄마의 이유는 집에 가서 개밥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어찌 저리 무심할 수가 있나? 너는 무신경해진 엄마에게 짜증이 나려고까지 했다. 사나흘 후에 엄마 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 예전엔 안 그랬는데 너는 냉정한 사람이 되었구나. 어미가 그리 전화를 끊었으면 뭐라고 다시 전화를 해야 옳지 그리 뻗댈 수가 있냐?

뻗댄 건 아니었다. 그 일을 그리 오래 생각하고 있을 만큼 너는 한가하지 않았다. 문득 노여워하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 엄마가 떠올라 전화를 해봐야지, 생각했다가도 또다른 일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뒤로 밀리곤 했다.

- 배운 사람은 다 그러냐!

엄마는 너에게 쏴붙이고 전화를 또 끊어버렸다. 추석 무렵에 엄마 집에 다시 내려갔을 때 헛간 옆에 큰 개집이 놓여 있었다. 개집 바닥에 짚이 푹신하게 깔려 있기도 했다.

- 시월에 말이다. 아침밥을 지으려고 부엌의 씽크대에서 쌀을 씻고 있으면 누가 내 등을 툭툭 치곤 했다. 돌아다 보면 아무도 없었어야. 꼬박 사흘을 내리 그러더라. 날 부르듯이 툭툭 치는 손길이 분명 느껴지는디 돌아보믄 암도 없었어야. 나흘째 되던 날이었나 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소변을 보러 변소간으로 가는디 개가 변소 옆에 드러누워 있더라. 너는 내가 개를 학대한다고 성질을 부렸다만 그 개는 철로변에 비루먹은 채 돌아다니던 것이다. 불쌍해서 집에 데려와 묶어놓고 밥을 주었다. 안 묶어놓으먼 또 어디로 갈지 모리고 누가 잡아먹어버릴지도 모리고…… 첨엔 잠을 자는 줄 알았고나. 다가가서 건드려본께 움직이질 않어. 죽었더라. 전날까지도 밥도 잘 처먹고 꼬리도 잘 흔들었는디 자는 듯이 죽어 있었더. 쇠줄을 어찌 풀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첨에 집에 올땐 가슴팍이 뼈뿐이었어. 살도 오르고 털도 윤기가 흐르고 했는디. 총명하기는 또 얼마나 총명했게. 두더지도 잡아놓곤 했는디.

엄마는 잠시 숨을 골랐다.

-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배반을 허고 개는 거두면 보답을 헌다고 안허디. 아무리도 그 개가 내 대신 갔는가 봐아.

이번엔 너가 숨을 골랐다.

- 지난봄에 지나가는 스님헌티 시주를 했드니 식구가 한사람 줄어들 해라고 안허냐. 그말 듣고 마음이 뒤숭숭했다. 일년 내내 그 말이 걸렸어야. 저승사자가 날 데리러 왔다가는 그때마다 밥을 먹겠다고 내가 쌀을 씻고 있응게 나 대신 개를 데려간 모양이다아.

- 엄마는 그게 무슨 소리야.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그런 말을 믿어?

너는 헛간 옆의 비어 있던 개집을 떠올렸다. 풀려 있던 개줄도. 그러고는 야릇한 기분에 젖어 엄마의 허릴 붙잡았다.

- 개는 마당을 깊이 파고 묻어주었다.

 

너의 엄마는 이야기꾼. 제사가 있는 밤이면 인근에 사는 고모랑 작은 어머니들이 바가지에 쌀을 담아가지고 왔다. 양식이 귀하던 때라 그렇게 부조를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너의 엄마는 제사를 지낸 후엔 친척들이 쌀을 담아가지고 온 그 바가지에 제사음식들을 담아 보냈다. 쌀이 담긴 바가지들을 한쪽에 쭉 나열해놓고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엄마가 고모와 작은엄마와 당숙모들이 가져온 바가지 속의 쌀 위에 새가 날아와 앉았다 갔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을 믿지 않으면 엄마는 내가 보았다니까! 그랬다. 새가 여섯마리나 되었어. 그 새들은 제삿밥을 먹으러 온 조상들이라니까! 다른 사람들은 웃고 말았지만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나서 쌀바구니를 들여다보면 너의 눈엔 흰쌀 위에 새발자국 같은 것이 찍혀 있는 게 보이는 듯도 했다. 한번은 엄마가 이른 아침에 새참까지 싸가지고 산밭에 갔는데 누가 먼저 그 산밭에 와 엎드려 밭을 매고 있더란다. 누구냐고 물으니 지나가는 사람인데 밭에 풀이 너무 많아서 좀 뽑아주고 가려고 한다고 했단다. 엄마는 모르는 사람과 열심히 밭을 맸단다. 고마워서 싸간 새참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온종일 그 모르는 사람과 밭을 매고 날이 어두워서야 헤어졌다고 했다. 밭에서 내려와 고모에게 이러저러한 사람하고 온종일 밭을 같이 맸다고 하니 고모의 얼굴이 굳어지며 얼굴의 생김을 묻더니 그이는 오래전 그 밭주인으로 그 밭에서 김을 매다가 일사병으로 죽은 이라 하더라,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네가, 죽은 사람하고 종일 같이 밭에 있었어? 엄만 안 무서웠어? 물으면 너의 엄마는 무섭긴, 내 혼자 그 밭을 다 매려면 이삼일은 걸렸을 텐디 함께 매줘서 고맙기만 했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두통은 너의 엄마를 갉아먹는 듯했다. 너의 엄마는 급속히 활달함과 생기를 잃고 누워 있는 일이 많아졌다. 즐거움이었던 백원짜리 화투치기에도 너의 엄마는 집중할 수가 없는 듯했다. 더불어 너의 엄마는 모든 일에 무감각해졌다. 한번은 행주를 삶기 위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도 너의 엄마는 일어나지 못했다. 빨래를 삶는 솥이 바짝 눋고 급기야는 행주가 타서 부엌이 연기에 잠기는데도 너의 엄마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연기가 치솟는 걸 보고 옆집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집이 불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를 셋 낳은 너의 여동생은 두통 때문에 고통받는 엄마를 두고 너에게 엄마가 진짜 부엌을 좋아했을까 언니? 진지하게 물었다.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니?라고 하자 너의 여동생은 어쩐지 엄마가 부엌일을 좋아했을 것 같지 않아,라고 말했다. 약사였던 여동생은 첫아이를 임신한 채로 약국을 개업했다. 아이를 돌봐주었던 올케는 약국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태어난 아이는 얼마간 올케 집에서 자랐다. 아이를 좋아하는 너의 여동생은 일주일에 한번씩밖에 아이를 볼 수 없는 상태를 감내하면서까지 약국 운영을 계속했다. 여동생과 아이가 만났다가 헤어지는 장면은 애절했다. 생이별도 그런 이별이 없었다. 아이보다는 엄마인 너의 여동생이 더 문제 같았다. 아이는 그럭저럭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는데 엄마는 주말에 아이를 데려왔다가 다시 올케 집에 데려다주고 올 때면 운전대를 잡은 손등이 축축이 젖도록 울어서 월요일엔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약국에 서 있곤 했다. 그러면서까지 약국을 해야 하니? 네가 말릴 정도였다. 너의 여동생이 약국을 접은 건 너의 제부가 연수를 받기 위해 2년 기한으로 미국으로 건너갈 즈음이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면서 서울에서의 모든 살림을 접고 미국에 간다기에 너는 속으로 그래 미국에 가서 좀 쉬었다가 와라, 했다. 결혼하고 한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여동생이었다. 너의 여동생은 미국에서 아이 하나를 더 낳아서 귀국했다. 다섯 식구의 의식주가 여동생의 손에 달려 있었다. 여동생은 한달 동안에 조기 이백마리를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백마리를 한달 동안? 매일 조기만 먹었니?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미국에서 부친 살림이 도착하기 전이기도 하고, 새로 이사한 집이 낯설기도 한데다, 아직도 젖을 먹는 아이가 곁에서 떨어지질 않으니 시장에 갈 틈도 없었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간해서 살짝 말린 조기새끼를 궤짝으로 보내왔는데 열흘도 안되어 다 먹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콩나물국 끓여서 조기 구워 내놓고 호박국 끓여서 조기 구워 내놓고 했어, 여동생이 웃었다. 조기를 더 구하고 싶어서 시어머니에게 조기를 파는 데를 알아내고 보니 인터넷으로도 주문이 가능한 곳이었다고 했다. 한 궤짝을 그리 빨리 먹어버려서 두 궤짝을 주문했다고 했다. 배달되어온 조기를 씻으며 세어보니 이백마리였어, 씻어서 한번씩 구워 먹기 편하게 네댓마리씩 비닐에 싸서 냉동고에 넣어놓을 요량으로 개수대 앞에서 조기를 씻고 있다가 조기를 집어 던져버리고 싶었어, 여동생이 담담히 말했다. 문득 엄마 생각을 했어, 엄만 그 재래식 부엌에서 평생 대식구들의 밥을 짓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했어. 우리가 또 오죽이나 식탐이 많아? 생각나? 밥상을 늘 두개씩 차려야 했잖아. 밥 짓는 솥도 얼마나 컸어? 그 시골 반찬으로 우리들 도시락까지 여섯개를 싸야 했으니…… 엄만 그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해냈을까? 게다가 큰집이라서 늘 군식구들이 두엇은 붙어 있었잖아.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가 않아. 너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연해졌다.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너의 엄마는 누에를 치고 누룩을 빚고 두부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쓰지 않는 것이다. 엄마는 무엇이든 절약을 했다. 어느날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너의 엄마는 집 안의 오래된 호롱, 오래된 다듬잇돌, 오래된 항아리를 팔기도 했다. 그들은 엄마가 쓰고 있는 오래된 것들을 탐냈고 엄마는 늘 그것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면서도 그들과 값을 놓고 밀고 당겨가며 상인이라도 된 듯 흥정을 했다. 처음엔 너의 엄마가 지는 듯했어도 좀 있다 보면 너의 엄마의 뜻대로 되었다. 가만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그럼 얼마만 주구려, 하고 가격을 제시하면 그들은 어이구 이 쓸모없는 걸 그 돈을 주고 살 사람이 어딨냐고 냉소를 했다. 엄마가 그럼 이 물 짠걸 뭐하러 사러 다니냐,며 호롱을 챙겨 들고 갈라치면 상인들은 아주머니가 장사를 하면 참 잘하겠소! 투덜거리며 엄마가 제시한 돈을 내놓곤 했다.

 

너의 엄마가 무엇을 사야 할 때는 제값을 주고 산 적이 없었다. 웬만한 건 엄마의 손으로 해결했다. 그러느라 너의 엄마의 손은 쉴 새가 없었다. 엄마는 재봉질을 했고, 뜨개질을 했으며 쉴새없이 밭을 가꾸었다. 비어 있는 적이 없었던 엄마의 밭. 봄이면 밭고랑엔 감자씨를 모종하고 상추와 쑥갓과 아욱과 부추 씨를 뿌리고, 고추를 심고, 옥수수씨를 묻어두었다. 담장 밑엔 호박구덩이를 파고 논두렁엔 콩을 심었다.엄마 곁엔 언제나 깨가 자라고 뽕잎이 자라고 오이가 자랐다. 엄마는 부엌에 있거나 논에 있거나 밭에 있었다. 감자를 캐고 고구마를 캐고 호박을 따고 배추와 무를 뽑았다. 무엇이든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던 엄마의 노동. 엄마는 씨앗이 아닌 것들만 돈을 주고 샀다. 봄날에 마당에 놓아 먹일 오리나 병아리, 돼지막에서 자랄 새끼돼지 같은 것. 어느 해 마루 밑의 개가 새끼를 아홉마리 낳았다. 한달쯤 지나 엄마는 두마리만 남기고 강아지들을 광주리에 담았다. 담을 자리가 없는 한마리는 너의 품에 안기고, 따라오라, 했다. 엄마와 함께 탄 버스 안은 읍내로 무엇인가를 팔러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말린 고추와 참깨와 검은콩이 든 자루들. 겨우 배추 서너포기 무 몇개가 담긴 광주리들. 읍내의 버스정류장 앞에 쭉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값을 흥정했다. 엄마를 따라간 너는 품에 안고 있던 따뜻한 강아지를 다른 강아지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광주리 속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가 팔리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한달 동안 정성들여 기른 강아지들은 통통하고 건강했다. 경계심도 적의도 없이 순했다. 강아지들은 광주리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고 혀를 내밀어 손등을 핥았다. 엄마의 강아지들은 무보다도 배추보다도 콩보다도 먼저 팔렸다. 마지막 한마리가 팔리자 엄마는 허리를 폈다. 엄마 손을 찾아 쥐는 너에게 무얼 갖고 싶으냐? 물었다. 엄마가 그리 묻는 법은 거의 없어 너는 엄마를 바라봤다.

- 뭘 갖고 싶으냐니까?

- 책!

- 책?

- 응, 책!

책이라는 너의 주문에 엄마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잠시 너를 보더니 책을 파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너는 앞장서서 오거리 시장통 입구의 서점으로 엄마를 데리고 갔다. 엄마는 서점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권만 고르고 얼마인지 알아오너라, 했다. 고무신 하나를 살 때도 이것저것 신겨보고 벗겨본 뒤 고무신 상점의 주인이 부르는 값에서 조금 덜 주곤 하던 엄마였는데 책은 네가 고르고 돈도 깎을 생각이 없는지 값을 알아오라, 했다. 너는 서점이 갑자기 광야처럼 느껴졌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책을 갖고 싶다고 했던 것은 오빠가 빌려온 책들을 먼저 읽다가 오빠한테 도로 뺏기기 일쑤인 것이 분해서였다. 학교 도서관엔 오빠가 가져오는 책들과 다른 책들만 있었다. 『사씨남정기』나 『신윤복전』 같은. 서점 문밖에 엄마를 세워두고 네가 고른 책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었다. 교과서값 이외의 책값을 치르게 된 엄마는 네가 골라가지고 나온 책을 물끄러미 보았다.

- 필요한 책이냐?

너는 엄마의 마음의 달라질까 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무슨 책인지 너도 알지 못했다. 지은이가 니체라고 적혀 있었지만 니체가 누군지 너도 모를 일이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말이 좋아 선택한 것이었다. 엄마는 한푼도 깎지 않고 책값을 너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너는 집에서 품고 나온 강아지 대신 책을 가슴에 대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가 한되쯤 되는 찹쌀을 팔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을 애타게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외가가 보이는 산길에서 너의 엄마는 금 캐러도 다니고 석탄 캐러도 다녔던 외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건 세살 때라고 했다. 새로 짓는 역사로 일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동네사람들이 외할머니에게 그 사고를 알리러 왔다가 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엄마를 보고 아비가 죽은 줄도 모르고 웃는구나, 철떼기 없는 것아,라고 했다고 했다.

- 세살 적 일이 기억나?

- 난다.

너의 엄마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너의 외할머니 말이었다.

- 혼자된 몸으로 안해본 일이 있었겠냐만 그리도 학교는 보내줬어야지. 오빠는 일본 학교 댕겼는디 언니도 댕겼는디 왜 나만 안 보냈으까? 불 꺼진 것만치로 캄캄하게, 평생을 캄캄하게……

너의 엄마는 오빠에게 알리지 않으면 너를 따라 서울에 가겠다고 겨우 대답했다. 너를 따라 집을 나서면서도 몇번이나 오빠네에 알리지 말 것을 다짐받았다. 엄마의 두통의 원인을 찾으러 다니다가 의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오래전에 너의 엄마가 뇌졸중을 앓았다는 것이다. 뇌졸중이라니?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엄마의 뇌를 촬영한 사진 속의 한 점을 가리키며 뇌졸중이 지나간 흔적이라고 했다. 뇌졸중이 어떻게 본인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 의사는 본인이 모를 수는 없다고 했다. 피가 고여 있는 걸로 보아 본인도 그 충격을 감지했을 거라고 했다. 의사는 엄마의 몸은 항상 아파왔다고 했다. 엄마의 몸은 늘 진통이 함께하는 상태라고 했다.

- 늘 아프다니요? 엄만 건강한 편이었는데요?

-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감춰둔 주머니 속의 송곳이 튀어나와 너의 손등을 찍어내리는 것 같았다. 엄마의 뇌 속에 고여 있는 피를 빼냈지만 엄마의 두통은 좀체로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두통이 밀려들면 마치 금방 깨지는 유리항아리를 받쳐들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대문을 열고 들어와 헛간의 평상 위에 몸을 뉘었다.

 

- 엄마는 부엌이 좋아?

언젠가 네가 엄마에게 묻자 너의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 부엌에 있는 게 좋았냐고? 음식 만들고 밥하고 하는 거 어땠었냐고?

엄마가 너를 물끄러미 보았다.

- 부엌을 좋아하고 말고가 어딨냐? 해야 되는 일이니까 했던 거지. 내가 부엌에 있어야 니들이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그랬으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믄서 사냐? 좋고 싫고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지.

너의 엄마는 왜 그런 말을 묻냐? 하는 표정으로 너를 보다가 좋은 일만 하기로 하믄 싫은 일은 누가 헌다니? 중얼거렸다.

- 그러니까 뭐?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엄마가 무슨 비밀을 말하듯이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항아리 뚜껑을 깬 적이 여러번이었단다, 속삭였다.

- 항아리 뚜껑을 깨다니?

- 끝이 보여야 말이지. 그래두 농사일은 봄에 씨앗을 뿌리믄 가을에 거두잖여. 시금치씨를 뿌린 곳에선 시금치가 나고 옥수수씨를 뿌린 디선 옥수수가 나고…… 그란디 그놈의 부엌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야. 아침밥 먹음 곧 점심때고 또 금세 저녁때고 날 밝으면 또 아침이고…… 반찬이라도 뭐 다른 것을 만들 여유가 있음 덜했겄는데 밭에 심은 것이 똑같으니 맨 그 나물에 그 반찬. 그걸 끝도 없이 해대고 있으니 화딱증이 날 때가 있었지. 부엌이 감옥 같을 때는 장독대에 나가 못생긴 독 뚜껑을 하나 골라서 담벼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단다. 내가 그랬다는 것을 니 고모는 모른다. 알면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겠냐, 멀쩡한 독 뚜껑을 집어던지곤 했으니.

너의 엄마는 이삼일 안에 새 뚜껑을 사다가 독을 덮어놓았다고 했다.

- 헛돈 좀 썼단다. 새 뚜껑을 사러 갈 적에는 돈이 아까워 쩔쩔맸는데도 멈출 수는 없더구나. 독 뚜껑 깨지는 소리가 내겐 약이었어. 속이 후련허구 답답증도 가시고.

너의 엄만 누가 들을세라 입꼬리에 오른손 엄지를 갖다대며 쉿! 했다.

- 첨 하는 얘기다, 암한테도 말 말어!

너의 엄마의 얼굴에 장난기가 서린 웃음이 머물렀다.

- 너도 밥하기 싫음 접시라두 하나 던져서 깨보련? 아구, 저 아까운 거 싶은디도 속이 뻥 뚫리기도 헐 것이다. 하긴 결혼도 안했으면서 밥하기 싫고 말고가 있겠냐마는.

너의 엄마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 그래도 니들이 자랄 때가 좋았어야. 머리에 수건을 고쳐쓸 틈조차 없었어도 니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치며 밥 먹고 있는 거 보믄 세상에 부러울 게 뭬 있냐 싶었재. 다들 소탈했어야. 호박된장 하나 끓여줘도 맛나게들 먹고, 어찌다 비린것 좀 쪄주면 얼굴들이 환해져서는…… 다들 먹성이 좋아서 니들이 한꺼번에 막 자랄 때는 두렵기도 하더라. 학교 갔다 오믄 먹으라고 감자를 한솥 삶아놓고 나갔다 오믄 어느새 솥이 텅 비어 있곤 했으니까. 그야말로 광의 쌀독에서 쌀이 줄어드는 게 하루가 다르게 보일 때도 있었고 그 독이 빌 때도 있었어. 저녁밥 지을라고 양석 꺼내려고 광에 갔는디 쌀독 바닥에 바가지가 닿을 때면 아이구 내 새끼들 낼 아침밥은 어쩐디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시절이니 부엌일이 싫고 자시고도 없었고나. 큰 솥 가득 밥을 짓고 그 옆의 작은 솥 가득 국 끓일 수 있음 그거 하느라 힘들단 생각보다는 이거 내 새끼들 입 속으로 다 들어가겠구나 싶어 든든했지야. 니들은 지금 상상도 안될 것이다마는 그르케 양석이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던 시절이 우리 시절잉게. 다들 그러고 살았다. 먹고사는 일이 젤 중했어.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했던 그때가 인생에서 행복한 때였다고 말하며 웃던 너의 엄마. 두통은 너의 엄마의 그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아갔다. 두통은 송곳니를 가진 들쥐처럼 너의 엄마의 영혼을 콕콕 찌르고 슬금슬금 갉아먹었다.

 

전단지 인쇄를 부탁하기 위해 만난 사람은 오래된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참으로 정성스럽게 바느질한 옷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오래된 무명옷만 입고 다닌다는 것을 처음 안 것도 아닌데 유독 옷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너의 엄마의 상황을 이미 전해들었던 참이라 네가 만들어온 전단지를 표본으로 새로 디자인해 거래처의 인쇄소를 통해 바로 인쇄해주겠다고 했다. 엄마의 최근 사진이 없어 결국 남동생이 인터넷에 올린 아버지 칠순 때 찍은 가족사진을 쓰기로 했다. 사진 속의 엄마 얼굴을 보고 있던 그가 어머니가 고우시네요, 했다. 터무니없이 너는 옷이 참 근사하다고 말했다. 너의 말에 그는 미소지었다.

-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옷입니다.

- 돌아가셨잖아요?

- 살아 계실 적에.

그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가 있어 무명옷이 아니면 입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른 옷감이 피부에 닿으면 몸이 간지럽고 부스럼이 났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지어준 무명옷만을 입고 성장했다고 했다. 그의 기억에 그의 어머니는 늘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속옷부터 양말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어 입히려면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무 옷장을 열어보니 거기엔 그가 평생토록 입을 수 있는 무명옷들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그 옷 중 하나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용모를 지녔을까?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너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회상하는 그 앞에서 급기야 너는 어머니께서 기쁘셨을까요?라고 초를 치는 말을 하고 말았다.

- 우리 어머니는 요즘 여자들과는 다른 분이에요.

그의 말은 정중했지만 네가 그의 어머니를 모독했다고 그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