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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신자유주의 대안 구현의 정치제도적 조건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정부개혁의 5가지 방향』(공저) 『한국형 개방전략』(편저) 등이 있음. eacommunity@hallym.ac.kr
『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이하 지난호) 특집은‘신자유주의, 바로 알고 대안 찾기’였다. 그 “특집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신자유주의는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아니며 그것의 문제는 대안모델을 통해 극복해갈 수 있다는 메씨지에 공감”했을 것이다.1 또한 분단체제라는 불안정 상황을 감안하면 대안모델에는 반드시 수직적 및 수평적 분업관계 구축 등을 통한 남북경제의 연계발전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의문이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대안모델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이 생겼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의문은 아마도 다음 두가지 중 어느 하나와 관련돼 있을 것이다.
첫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한국 혹은 한반도 수준만의 독자적 대안모델 채택과 그 실현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이 일국경제나 민족경제 방식만으로 특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압력을 버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복지와 사회적 연대 등을 강조하는 대안모델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제도, 규범, 정책 등으로 구성되는 체계적인 사회경제적 구조가 먼저 (혹은 적어도 병행하여) 한국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에 구축돼야 한다. 그런데 취약하기 마련인 일국적 대응으로는 예컨대 한미FTA등을 통한 경제 및 사회 영역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침투를 막아내기 어렵고, 따라서 대안모델을 위한 기반 구축 자체부터가 지난한 과제이기 십상이다. 지역주의적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유럽 국가들이 그러해왔던 것처럼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이 현재 추진하고 있듯이, 남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공동체적 연대를 통하여 자신들의 대응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대안모델은 의당 지역공동체 형성을 시야에 넣은 것이어야 한다.
두번째 의문은 첫번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아무리 대안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거기에 국내는 물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해법까지 포함돼 있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그 실천을 누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추진해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번째 의문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는 것은 결코 그 중요성이 덜해서가 아니다. 다만 지면의 제약을 고려할 때 좀더 근본적인 의문을 우선 다루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 정당정치 활성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미리 밝힐 점이 있다.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의 대안모델들이 시장경제를 부정하거나 세계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들은 아니란 점이다. 즉 시장경제체제의 발전과 세계화의 흐름은 긍정적 측면이 존재하는 엄연한 대세로 인정하되, 다만 그것들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경계하는, 따라서 그 방지책을 제시하는 모델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럽식 사민주의 모델도 포함된다. 이에 대해선 약간의 추가설명이 필요하다.
초기의 사민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체제로서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전복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개혁을 통한 점진적 사회주의 건설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맑스-레닌주의와 구별될 뿐이었다. 그러나 전후 서유럽 사민주의는 이러한 수정주의적 태도마저 점차 버리게 된다. 이른바‘신사민주의’의 등장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시장 경쟁을 인정하고, 다만 조세 및 복지정책 등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연대를 지켜가고자 하는‘(자본주의)체제내’모델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민주의는 이제 사회주의 이념에서 사실상 벗어난 것이며 자본주의를 타도가 아닌 “교정(correction)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체제내의‘충성된 반대자’(loyal opposition)”로 진화한 것이다.2 그렇다면 신정완(辛貞玩)의 지적대로 “현재의 사민주의는 사회주의 우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주의 좌파에 가까운 이념”으로 봐야 한다.3
유럽식 사민주의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대안모델들의 공통된 주장은 한국형 혹은 한반도형 조정시장경제체제를 갖추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영미식 자유시장경제체제로 갈 경우 그‘자유시장’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양극화 심화나 비정규직 급증 등의 문제는 우리에게 특히 매우 심각한 사회통합의 위기로 다가올 것이며, 따라서 방임시장이 아닌 우리 나름의‘조정시장’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4 대안모델들이 강조하는 분배와 사회복지 수준의 제고, 중소기업 중심의 부품 및 소재산업 육성, 사회써비스부문 강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나 평생교육제도 등을 통한 노동의 유연안정성 확보 및 혁신주도형 혹은 지식기반형 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국가연합의 틀을 전제로 한 남북한경제의 선순환관계 창출 등은 모두 국가의 적절한 개입과 조정을 전제로 하는 처방들이다. 즉 대안모델들은 공히 시장조정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우리의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국가가 시장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헌법 제9장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경제조항들과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천명한 헌법 제23조 2항 등도 공공의 복지와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가 시장과 자본의 자유를 일정부분 조정하고 제한할 수 있다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정신을 담고 있다. 결국 우리 헌법은 조정시장경제체제를 한국이 선택할 자본주의 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시장 조정의 주체로서 대안모델이나 헌법이 지시하고 있는‘국가’라는 것의 실체는 집권정당이란 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역할은 정권을 잡은 정당이 수행한다. 현재의 집권당이 정권을 놓치면‘국가’는 다른 정당에 넘어간다. 지난호에서 정승일(鄭勝日)은 “복지를‘정책’의 차원(즉 사회복지정책)에서‘국가체제’의 차원(즉 복지국가)으로 격상”5시키는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혁명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그 복지국가혁명의 주체도 실상은 국가가 아닌 정당임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시장 조정은 사실상 집권당에 기대해야 할 기능이란 것이다. 아무리 좋은 처방을 내놓을지라도 집권정당에 그것을 실현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모든 대안모델은 그저 종이 위의 구상으로만 남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적 정당정치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과연 한국형 조정시장체제를 구축해갈 의지와 능력을 지닌 정당을 갖고 있는가?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정도 발전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한심한 수준에 있다. 헌법이 당부하고 있는 “경제의 민주화”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직 적당한 시장조정기제를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할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이 없거나 있더라도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군소정당에 불과한 민주노동당 외에는 모두 기본적으로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인물 혹은 지역 중심의 선거전문 정당들이다. 지역 기반이 튼튼하거나 대중적 인기가 상당한 인물을 확보하고 있으면 선거정치에서 충분히 유리하다고 믿는 이들 정당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시장조정기제 마련에 큰 노력을 기울일 인쎈티브가 애초부터 약하다. 결국 지금 같은 정당구조로는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앞으로도 어려우리라는 것이다.
혹자는 대통령의 의지와 능력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한국의 현 권력구조가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며, 따라서‘좋은’대통령을 선출하면 그가 한국형 조정시장을 훌륭하게 가꾸어낼 수 있으리란 기대이다.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 양 정부가 보여준 수행능력은 이러한 기대가 타당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김대중정부가 초기에 내세운‘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나 노무현정부의‘동반성장론’모두 국가의 시장 조정을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거나 분배의 적정선을 담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외압이든 내압이든 어떤 이유로 인해 대통령의 초심이 흔들리면 그 개인에 의존했던 정책구상 자체가 덩달아 흔들렸고, 그 와중에 조정시장체제 구축작업은 중단되거나 왜곡되곤 하였다. 지난호 김기원(金基元)의 규정대로 이같은 상황에 처한 노무현정부는 좌파도 신자유주의도 아닌 “엉거주춤” 혹은 “갈팡질팡” 정부에 불과했다.6
대통령에 대한 기대마저도 어려운 현실 역시 상당부분 정당정치 미발전 문제와 연결돼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 자체가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집권당이 확실한 정책기조와 이념으로 승부하는 소위 제도적 지속성을 갖춘‘족보 있는’정당이라면, 그 정당은 대통령이 자당의 이념 및 정책기조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방지하고 견제한다. 대통령은 단임으로 끝날지라도 정당은 무한히 계속되는 선거정치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정책적 일관성 및 수행능력 등을 그가 속한 정당이 국민에 대하여 책임지는 구조가 된다. 이 경우 대통령의 정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정당의 정책’에 해당한다. 이러한 연계구조, 즉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해 책임지고 그 정당은 다시 국민에 대해 책임지는 구조가 되어 있으면 대통령의‘엉거주춤’이나‘갈팡질팡’은 정당권력에 의해 제어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대부분 허망하게 끝날 공산이 크다.
결국 한국형 조정시장경제 건설을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필수이다. 정책 수립 및 수행의 핵심주체는 (국가나 대통령이 아닌) 정당이어야 하는바, 그 역할을 담당할 정당들은 인물이나 지역이 아닌 이념 및 정책에 기반을 둔, 그리하여 상당한 정체성과 영속성을 갖춘 정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표해줄 유력정당이 필요하다. 한국의 정당체제가 이러한 정당들로 구성돼 있어야 비로소 국민들은 어느 정당의 조정시장 구상이 가장 적합한 것인지 선거를 통해 가려낼 수 있다. 선택된 정당은 집권을 통해 자당의 구상을 구현해가면 된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 민주주의의 핵심과제는 정당정치의 활성화이다. 이를 위해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2. 선거제도 개혁
한국의 정당정치가 이념 및 정책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결합되어 작동하는 소선거구 1위대표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지역주의의 만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념이나 정책을 앞세우는 신생 개혁정당들의 부상을 어렵게 한다. 정책선호보다는 지역선호에 의해 대부분의 선거결과가 결정되는 까닭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지역명망가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정당들에 의해 정치사회가 분할 지배될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 예컨대 복지나 분배를 강조하는 신생 정책정당이 기존 지역정당들의 벽을 뚫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지역할거주의는 신생 개혁정당들의 정치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인 셈이다.
그런데 소선거구 1위대표제는 지역주의에 기초한 이 진입장벽을 더 공고하게 한다. 지역에 기반을 둔 기존의 거대정당들에 제도적으로 더욱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선거제도는 한 지역구에서 한 사람만을, 즉 오직 1위에 오른 득표자만을 국회에 보낸다. 따라서 2위 이하의 득표자들에게 던져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된다. 여기서 자신의 표가 사표로 버려질 것을 꺼려하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는 (설령 그를 선호한다 할지라도) 투표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지역선호가 결정변수임을 잘 알고 있는 유권자들이 정책이나 이념만으로 승부하려 드는, 지역이 아닌 전국정당의‘낯선 후보’가 1위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대부분은 결국 자기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만다. 바로 이러한‘전략적 투표’경향이 지역 지지기반이 취약하기 마련인 신생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의 국회 진출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이것은 기존의 지역정당들에는 그만큼 유리한 제도가 된다.
1996년의 제15대 총선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선거는 영남 기반의 신한국당, 호남의 국민회의, 그리고 충청권의 자민련이 벌이는 3파전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몇달 앞두고 정책 중심의 개혁적 전국정당으로 발전해갈 것을 선언하며 통합민주당이 창당되었다. 통합민주당은 참신한 개혁정당의 등장을 바라던 상당수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신생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예의 그 전략적 투표 경향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무려 11.2%의 득표율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 득표율은 고작 3.6%(9석)의 지역구 의석점유율로 전환될 뿐이었다. 지역정당 후보들을 제치고 1위에 당선될 수 있었던 통합민주당 후보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1위가 아닌 한 2위 이하의 자당 후보들이 획득한 표는 모두 사표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결국 모처럼 나타난 개혁정당은 군소정당으로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만다. 반면 당시 지역정당들이 누린 제도 혜택은 지나칠 정도로 컸다. 예컨대 신한국당은 부산지역에서 55.8%의 득표로 지역의석 전부를 얻었다. 즉 지역 의석점유율 100%를 기록한 것이다. 국민회의는 전남에서 71%의 득표로 100%의 의석을, 그리고 자민련은 대전에서 고작 49.8%의 득표로 역시 100%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 사례는 현 선거제도가 존속하는 한, 지역주의 정서가 여전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정책 및 이념 정당들이 의미있는 개혁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일단 선거제도의 개혁에 모아져야 한다. 핵심은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일이다. 예컨대 전면적인 비례대표제 도입의 경우를 가정해보자.7 비례대표제에서는 유권자들이 전국 혹은 중대선거구 이상의 광역지역에서 인물이 아닌 정당에 대하여 투표한다. 따라서 협소한 지역선호나 인물선호보다는 정당선호가 가장 중요한 투표변수로 부상한다. 이 상황에서 각 정당이 자신을 여타 정당들과 차별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지역이나 인물이 아닌 이념이나 정책을 앞세우는 일이다. 선거정치는 비로소 정책경쟁의 양상을 띠게 된다. 이것은 당연히 특정 지역이나 인물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이념이나 정책에 기반을 두어 성장하고자 하는 신생 개혁정당들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됨을 의미한다. 또한 이 제도에서는 의석 배분이 각 당의 득표율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므로 신생정당들은 적은 득표율로도 (반드시 1위를 할 필요 없이) 그에 비례한 의석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여기서는 사표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유권자들의 투표는 자신들의 정당선호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비례성 보장이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의 득표와 의석 확보에 커다란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한국의 지역할거주의 현상을 감소시킬 것이며 소규모나 신생 정당들의 의석 점유율 확보를 용이하게 할 것임은 기존의 여러 씨뮬레이션 연구에서도 이미 밝혀진 바 있다.8 앞에서 예로 든 15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의 경우도 만약 전면 비례대표제나 독일식 연동제를 택하였더라면 9석이 아니라 31석이나 32석 정도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9 사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도 이미 비례대표제의 정치효과는 일정부분 증명된 바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이념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무려(?) 10석이나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1인2표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덕분이었다. 비록 총 299석 중 불과 56석만이 비례대표 의석으로 주어졌지만, 따라서 비례성 증대 효과는 미미하지만, 그래도 비례대표제의 부분적 도입이 주는 의미는 적지 않다. 향후 한국 정당구도의 개혁 가능성에 희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례성을 유의미할 정도로 높이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정책정당 중심의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참고로 1994년 선거제도 개혁으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총 500석 중 비례대표 의석이 200석을 차지하지만 그것이 거대정당의 과도대표 현상을 크게 약화시키지는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10 비례성 확보를 위해서는 최소한 50%가 넘는 의석을 비례대표에 할당하거나, 더 바람직하기로는 아예 전면 비례대표제나 독일식 연동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일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의 경우도 가장 바람직한 선거제도는 독일식 연동제라는 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비례성이 충분히 확보되는 동시에 지역대표성 역시 보장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3. 권력구조 전환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대안 구현의 정치제도적 조건으로 정당정치의 활성화와 그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논했다. 그런데 이 논의는 권력구조의 문제로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매듭지어진다. 권력구조에 관한 논의는 두가지가 핵심이다. 하나는 정치제도간의 부조화 문제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가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적정 기제와 함께) 도입될 경우 한국의 정당구도는 이념과 정책 중심의 (온건)다당제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11 소선거구 1위대표제가 거대 지역정당들에 부여해온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다양한 정책정당들이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의 고착화이다. 사실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결합할 때 발생하는 여소야대 현상은 오히려 정상상태이기도 하다.12 문제는 이 상태에서는 대통령의‘정당권력’(partisan power)이 보장되지 않아 행정부와 입법부 간에 잦은 교착이 일어나고 따라서 정부의 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13 그렇다면 설령 대통령의 의지가 강할지라도 대안모델의 도입이나 사회경제체제의 개혁은 계속 난관에 봉착해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이나 인물 중심의 다당제가 대통령제와 부딪치곤 했던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노태우정부 때는 3당합당, 김영삼정부에서는 타당 의원의 영입, 김대중정부에서는‘DJP공조’라는 일종의 정당연합, 그리고 노무현정부에서는‘대연정’등과 같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주지하듯 그것들은 모두 미봉책에 불과했고 오히려 정당간 반목과 대립의 심화, 국민들의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 확산, 의회정치의 위상 추락 같은 심각한 후유증만 남기곤 하였다. 사실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대통령권력의 속성상 대통령제하에서의 합당, 연합, 연정 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낮은 것이었다. 그런데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정책 중심의 온건다당제가 구축될 경우 그나마 활용되어온 그 미봉책들마저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념이나 정책기조 차이가 분명한 정당들을 대상으로 합당, 연합, 연정, 의원영입 등의 시도를 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수행능력 제고 노력은 더 큰 한계에 갇히고 만다.14 이같은 제도간의 부조화 문제는 궁극적으로 권력구조의 전환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정책이나 이념에 의해 구조화된 온건다당제는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이나 이론으로 공히 증명된 바이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다당제와 결합된 대통령제에서 문제가 되는 정부와 의회 간의 교착상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유력정당이 여럿인 까닭에 온건다당제에서는 통상 연립정부가 들어서기 마련인데, 이 연립정부는 의회에서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는 정당연합에 의해 구성된다. 따라서 (돌발변수가 개입하지 않는 한) 정부가 정당권력 부족 문제로 고생하는 일은 애초부터 생기지 않는다. 정부 자체가 의회에서 구성되므로 양자간에 교착이 일어날 구조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내각제에서 정부권력은 정당간에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므로 대통령제하에서의 불안정한 정당연합 등과는 달리 내각제의 정당연합(연립정부)은 상당한 지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한다. 이것이 온건다당제에서 연립정부가 자신의 수행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요인이 됨은 물론이다.
권력구조에 관한 두번째 논의는 국가정책의 연속성 혹은 안정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정책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국가 차원의 장기구상 실현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형 혹은 한반도형 조정시장경제체제의 구축도 마찬가지다. 이는 장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성사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실질 주체는 앞서 지적한 대로 국가가 아니라 정당이다. 결국 우리식의 조정시장 건설은 그에 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춘 특정 정당이 상당기간 집권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란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호에서 정승일이 제시한 “선(先)복지혜택 후(後)조세부담”이라는 사민주의 복지국가 구상의 실천방안을 살펴보자. 그는 재정적자를 감수해서라도 먼저 훌륭한 복지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단 중산층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이 복지혜택을 충분히 맛볼 경우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거대한‘복지세력’을 형성할 것이며, 정부는 바로 이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사후적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개혁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해갈 수 있으리란 것이다. 권력변수를 상수(常數)로 둔다면 이는 매우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권력이 상수인 경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방안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으려면 사민주의 혹은 친복지 정당이 집권해야 함은 물론, 그 집권기간이 장기여야 한다.15 정승일은 유력한 복지세력 형성에 필요한 기간을 3~4년 정도로 잡고 있다. 이 기간에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충분한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긴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정도의 기간이라면 거의 대통령의 임기와 일치한다. 복지제공까지는 충분히 긴 기간일 수 있으나 조세개혁은 결국 후임정권으로 넘겨야 할 정도의 짧은 기간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이념이나 정책기조가 다른 타당 출신의 후임 대통령이 이 복지국가 구상을 지속해가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후임자가 맡을 작업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을 복지제공이 아니라 (특히 복지세력의 형성이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라면) 사회적 저항을 초래하기 마련인 증세와 누진율 확대 등의 조세개혁이 아닌가.
이는 복지국가모델의 경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대안모델들의 거의 모든 처방들은 진보정당의 장기집권을 요하는 것들이다.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개혁을 위한 것들은 물론 분단경제체제의 극복을 위한 한반도경제권 창출 방안들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대통령제하에서, 그것도 온건다당제와 결합된 상황에서 특정 정당이 집권당의 지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권은 비교적 쉽게 바뀌고, 따라서 국가정책의 안정성과 지속성은 오래 가지 못한다. 실제로 대통령제에서는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국가의 이념이나 정책 들이 일시에 전환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기본적으로 승자독식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의 전환을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온건다당제에 기초한 의원내각제에서는 승자독식이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연립정부가 일반적인 정부형태이므로 국가정책은 기본적으로 특정 정당의 독주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 정당간의 협조와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연립은 애초부터 상호간의 정책 및 이념 차이가 심한 정당들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대개는 중도를 중심으로 그 최근거리의 좌파 혹은 우파 경향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게다가 일단 연립정부가 성립되면 참가 정당들은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일정한 정책 수렴에 이르곤 한다. 설령 선거를 통하여 참가 정당 중 일부가 교체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간의 수렴 노력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내각제 연립정부의 경우에 국가의 이념과 정책기조가 커다란 변화 없이 상당기간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는 핵심 이유이다.16 예컨대 전후 독일을 보면 사민당(SPD)이든 기민당(CDU)이든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좌우파 경향의 정당들은 여러차례 교체되었지만, 그 대부분의 기간 국가정책의 중도적 연속성은 지속돼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간의 모든 연립정부에 중도정당인 자민당(FDP)이 참여하여 정당간 협상을 통한 정책 수렴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17
정책 및 이념 정당들에 의해 온건다당제가 구조화돼 있을 경우, 예컨대 사민주의정당 등의 친복지정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유효정당의 수가 셋 내지 다섯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경우 사민주의정당의 정책기조는 당연히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된다.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어느 시점에 특정 연립정부에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간접 영향력은 유지될 수 있다. 의회내 권력이 남아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특정 정부에 참여한 정당들이 다음 차례에 들어올 가능성이 여전한, 즉 다른 어느 시점에 자신들의 연정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민주의정당의 정책선호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유력한 사민주의정당의 존재만으로도 국가정책의 복지지향성은 상당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안 구현에 필요한 국가정책의 안정성은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에서 더 확실하게 보장되리라는 주장이다.
4. 맺음말
사민주의나 조합주의적 복지체제를 완비한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거의 예외없이 비례대표제, 정책 및 이념에 의해 구조화된 온건다당제, 그리고 의원내각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8 그같은 정치제도하에서 강력하고 안정적인 복지국가가 탄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정치제도가 유럽의 복지국가들과 같아질 경우 우리의 복지국가 형성과정은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다음과 같은 상상이 향후 좀더 구체적인 제도개혁 논의에 얼마간의 도움이 되길 기대하며 그 내용을 간략히 적어본다.
우선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우리의 정당구도도 이념 및 정책 중심의 온건다당제로 구조화되어갈 가능성이 상당하다. 여기서 국민들의 이념 분포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경향을 가진 네 정당이 부상한다고 가정해보자. 분배 중시·편향의 진보(좌파), 성장과 분배를 모두 중시하나 분배가 좀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중도(중도좌파), 성장과 분배를 모두 중시하나 성장이 좀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중도(중도우파), 그리고 성장 중시·편향의 보수(우파) 정당 등이 그것이다. 이때 국민들의 정당 지지가 거의 균등하게 나뉠 경우 네 정당은 각각 25% 내외의 국회 의석을 점유할 수 있게 된다.19 이 상황에서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로 전환되면 어느 한 정당도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수 없으므로 한국형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는 언제나 연립정부가 된다.
이러한 정치구조하에서라면 분배를 중시하는 국가정책 기조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좌파정당과 중도좌파정당이 연립할 경우 분배와 복지정책은 가장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좌파정당과 두 중도정당들이 연립할 경우에도 커다란 변화는 없다. 두 중도정당들이 우파정당과 연립할 경우에는 변화 가능성이 있지만 중도정당들의 존재로 인해 그 변화의 폭은 크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폭의 변화는 역시 중도우파정당과 우파정당이 연합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대통령제에서의 정권교체와 같은 정도의 정책 전환은 일어나기 힘들다. 중도우파정당의 정부내 영향력과, 야당이지만 언제 다시 연정의 대상이 될지 모를 좌파정당들의 간접 영향력 때문이다.
이 경우 복지국가는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개혁에 의해 형성되어갈 것이다. 개혁작업은 물론 복지와 분배의 강화를 중시하는 좌파나 중도 정당들에 의해 시작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 중 누구라도 연립정부에 참여한 정당은 복지 확충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대로 연립정부의 구성이 조금씩 바뀔지라도 친복지정당들의 정책영향력은 다소간 항상 유지될 것이므로, 복지제공의 총량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간다. 점차 복지체계가 갖추어져간다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복지정책의 비가역성과 맞물려 사회내 복지세력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복지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조세개혁의 추진 수준과 그 성공 가능성도 높아간다. 제공되는 복지의 누적량만큼 조세부담률과 누진율 등의 점진적 확대가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훌륭한 복지체계가 균형재정 상태에서 가동된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복지 확충 등의 분명한 조정시장체제 구상을 갖고 있는 이념 및 정책 정당들에 의해 개혁적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글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비례성이 확실한 선거제도 도입, 구조화된 온건다당제 구축, 권력구조 전환 등의 순으로 추진돼야 할 한국의 정치제도 개혁임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일련의 제도개혁 작업 중 제일 첫 순서에 해당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어떤 조건에서 가능할 것인지 대략 짚어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유럽의 정치제도 발전사를 보더라도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은 다수대표제하에서는 스스로의 단독 집권이나 단일 다수당 지위의 확보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희박다고 여기는 정파나 정당(들)이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승자독식 혹은 그와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인, 따라서 소수당의 생존이나 정책영향력은 거의 보장되지 않는 다수대표제보다는 자기 나름의 권력지분을 적게나마 안정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 등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거제도 개혁 가능성은 향후 얼마나 많은 정당들이 이런 판단에 이르게 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올해 대선과 내년 총선을 거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나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낮은 지지율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지금의 소위 범여권 정당(들)이 스스로 다수당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적어도 향후 상당기간은) 매우 낮다. 선거제도 개혁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일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한국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만이 유일하게 소선거구 1위대표제의 유지를 선호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분석이 정확한 것이라면, 범여권 정당들과 민주노동당 간의‘제도연합론’은 타당한 주장이다. 집권 혹은 국회구성 이후 공동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한다는 조건으로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대선과 총선에서 상호 협력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 선거제도 개혁 이슈가 한나라당과의 대척점 중 하나로 부각되면서 진보·개혁정당들의 차별화가 명확히 이루어질 수 있다. 진보·개혁정당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특정 정당의 과도대표 문제를 해소하며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를 활성화함으로써 다원화된 한국사회에 부응할 수 있는 선진화된 정치구조의 형성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강조할 수 있다. 반면 이에 맞서는 한나라당은‘개혁 대 반개혁’이라는 선거구도에 직면하여 수세에 몰릴 수 있다. 여론만 제대로 동원된다면 제도연합세력은 선거제도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앞세워 당면한 선거정치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실제의 선거제도 개혁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범여권과 민주노동당의 제도연합 형성과 그후의 여론동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년의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경우 선거제도 개혁은 당분간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나 일이 거기서 그치는 건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제도연합세력이 선거기간 동안 노력한 만큼 확산됐을 터이다. 이것은 제도개혁진영에겐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다음 19대 총선까지의 기간은 그 자산을 밑천삼아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이면 일본의 예에서처럼 범국민적‘정치개혁추진협의회’등을 구성하여 정계는 물론 학계, 노동계, 재계, 시민단체 등의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제도개혁을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갈 수도 있다. 개혁여론이 상당수준에 오른 상태에서 19대 총선을 맞이할 경우 제도연합세력은 그만큼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게다가 이번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소속의원들이나 지지층의 분열 등으로 인해 스스로가 단일 다수당 구성의 한계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치제도의 개혁이란,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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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호 특집, 졸고 「기획의 말」에서 인용.↩
- 고세훈 「세계화와 블레어 노동당의 사민주의」,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엮음 『세계화와 사회민주주의』, 사회와 연대 2002, 134면.↩
- 신정완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한국사회에서의 착근 가능성」, 참여사회연구소 발제문, 2005년 10월.↩
-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의 유형에 대해서는, 졸고 「한미FTA와 한국형 개방발전모델 모색」, 『창작과비평』 2007년 봄호 참조.↩
- 정승일 「신자유주의와 대안체제」, 192면.↩
- 김기원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시장만능주의인가」, 182면.↩
-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다수대표제를 계속 유지할지라도 소선거구제 대신 대선거구제나 1당 1후보 원칙하의 중선거구제로 간다면, 상당정도의 비례성은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비례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역시 전면 비례대표제이다. 물론 비례대표제도 선거구의 크기, 최소조건, 투표 및 입후보 방법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또한 전면 비례대표제 외에도 예컨대 독일식이라 불리는 연동제 혹은 혼합형 비례대표제와 일본식의 단순병립제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강조하는 것은 비례성이 끼치는 정치효과, 즉 정당구조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므로 이러한 개별 유형에 대해 자세히 논의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논의, 즉 비례성 증대의 정치효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 조기숙 「합리적 유권자 모델과 한국의 선거분석」, 이남영 엮음 『한국의 선거 I』, 나남 1993; 신명순·김재호·정상화 「시뮬레이션을 통한 한국의 선거제도 개선방안」, 『한국정치학회보』 33집 4호; 강원택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인간사랑 2005 등 참조.↩
- 신명순·김재호·정상화, 앞의 글 176면.↩
- 200석이던 비례대표 의석은 2000년 총선부터 180석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대부분 군소정당들의 난립으로 인한 정국불안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예컨대 5% 이상의 전국 득표율을 기록한 정당들에 한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소위‘문턱’(threshold)조항을 채택하고 있다. 이 경우 유효정당의 수는 통상 셋 내지 다섯 정도로 줄어드는데 이 정도 규모의 다당제를 온건다당제라 한다.↩
- 그래서 이 두가지 제도의 만남은 한마디로 “곤란한 결합”(difficult combination)이라 한다. Scott Mainwaring, “Presidentialism, Multipartism, and Democracy: The Difficult Combination,”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Vol.26, No.2 (1993).↩
- 정당권력이란 대통령이 국정을 원활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예컨대 대통령의 정책을 국회에서 입법화하는 데 필요한 정당(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거기서는 이념적이고 당 규율이 강한 정당들에 의해 구조화된 다당제가 발달했으나,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의회와 대통령 간의 고질적인 교착상태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경제적 비효율성이 커다란 문제가 되어왔다.↩
- 사민당 혹은 친복지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앞서 논의한 정책정당의 활성화 문제와 관련된 것이므로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는다.↩
- 대통령제에 비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의 정책 안정성이 더 높은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Arend Lijphart, Democracies: Patterns of Majoritarian and Consensus Government in Twenty-One Countrie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4); Ronald Rogowski, “Trade and the Variety of Democratic Institutions,”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41, No.2 (1987) 참조.↩
- 안순철 『선거체제비교: 제도적 효과와 정치적 영향』, 법문사 1998, 280면.↩
- Duane Swank, Global Capital, Political Institutions, and Policy Change in Developed Welfare Stat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들의 이념 성향이 진보, 중도, 보수로 거의 정확하게 3등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념 분포를 그대로 따르자면 좌파, 중도좌파, 중도우파, 우파 정당들은 각각 정도의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의석 점유율을 이렇게 놓더라도 다음에 이어지는 (상상 속의) 논리 전개에 무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