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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
동아시아론과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
백영서 白永瑞
연세대 사학과 교수, 중국사. 저서로 『동아시아의 귀환』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편서로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19~20세기』 등이 있음. baik2385@hanmail.net
1. 한국발 동아시아론 돌아보기
한국과 일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동아시아적 시각이 결여되었다고 비판받아온 중국대륙에서조차 요즘 동아시아담론이 활기를 띠고 있다. 쑨 꺼(孫歌)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전에 없던 동아시아담론의 풍작시대”1를 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지금 ‘동아시아담론’이 흥기하여 “한국사회의 주류담론인 민족담론과 통일담론에 비견할 새로운 지적 공론(公論)으로서 담론권력을 얻고 있다”고 평가될 정도이다.2
필자는 1990년대 초부터 동아시아적 시각의 중요성을 주창하면서 동아시아담론의 확산에 일역을 담당했는데 그 이론적·실천적 작업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식인사회에서 얼마간 관심을 끌었다.3 그리고 그간의 작업에 대해 ‘맑스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변혁이론으로서의 동아시아’라든가, ‘민족주의와 민족담론, 통일운동의 후속물로 출현한 성찰적 동아시아론’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 ‘비판적 지역주의’ 또는 ‘온건한 색깔의 동아시아’라는 식으로 평가받기도 했다.4
그런데 쑨 꺼는 유행 풍조에 휩쓸려 상투화되기 쉬운 관념적 동아시아론을 내재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포스트 동아시아’란 용어를 제기하면서 “역사의 유동성 속에서 살아 있는 동아시아의 윤곽”을 파악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5 그녀의 문제제기 그리고 필자의 작업에 대한 여러 논평들에 섞여 있는 비판을 보면서 필자의 동아시아론을 돌아볼 필요를 느끼던 차였다. 그래서 이 글을 기회 삼아 동아시아담론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필자의 문제의식을 가다듬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한 접근방식이다. 되돌아보면, 1990년대초 한국에서 처음 동아시아적 시각을 중시한 사람들은 주로 인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은 1989년 이후 변화한 나라 안팎의 상황, 즉 국내의 민주화 진전과 세계적인 탈냉전의 상황에 맞춰 새로운 이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를 사실상 발견하고, 그것에서 새로운 이념과 문명적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물론 90년대 초부터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신흥발전국가들(NICs)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론을 원용하고 유교자본주의론을 들고 나와 동아시아담론의 한 갈래를 형성했다. 그후 아시아가 경제위기를 겪고 1997년 ‘ASEAN+3’체제가 출현하자 더 많은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이 주제에 달려들어 정치·경제영역에서 국가간 협력체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해, 동아시아담론은 한층 더 구체화되고 풍성해졌다.
그런데 양측의 논의는 대체로 평행선을 달리다가 가끔 교차할 뿐이었다. 인문학자들은 주로 문화나 가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동아시아공동체에 관해 말한다 해도 그것을 동아시아 시민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인격적 유대·결합의 유토피아로서 상상하고 그 실천의 길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인격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결합체인 공동체(community)는 전근대 시기에 소규모 형태로 존재했는데, 그것이 해체된 근대사회에서도 공동체적 인간관계의 재구축을 추구하는 움직임 속에서 종종 재해석된다. 공동체 이념을 국가를 넘어선 지역 차원에서 구현하려는 것이 넓은 의미의 또는 인문학적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라 하겠다. 이에 비해 사회과학자들은 좁은 의미의 또는 정책학적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에 주목한다. 그들은 국가나 자본이 주도하고 정치·경제영역에서 날로 긴밀하게 상호의존하는 지역적 현실(곧 지역화)과 그것에 기반한 지역협력체제의 제도화(지역주의)를 분석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동아시아담론은 이런 분기(分岐)현상을 지양한 통합적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역화와 지역주의의 구체적 현실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면서, 그것이 인간다움을 좀더 충실히 구현하는 지역적 공생사회, 곧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로 향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6
이와 더불어 이 글을 관통하는 또다른 문제의식은‘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이하 이중과제론)과 동아시아론을 연결하는 것이다. 90년대초 최원식(崔元植)이 ‘맹목적 근대추구와 낭만적 근대부정’을 함께 넘어서기 위해 동아시아적 시각을 제기한 바 있듯이,7 근대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는 처음부터 동아시아론의 핵심을 이룬다. 그것은 7,80년대 민족민중문화론이 자기반성과 새로운 모색을 꾀하던 중, 민중의 입장에서 당면한 과제가 바로 전세계의 과제임을 깨닫는 제3세계적 시각8과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중과제론은 지금 우리 논단에서 조금씩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9 그러나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 두가지 성격의 단일과제임을 분명히한 이중과제론10은 근대와 탈근대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양자를 동시적인 과제로 삼자는 문제의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근대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실천적 지향이 결합된 좀더 복합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중과제론이 안고 있는 듯 보이는 이율배반성이라든가 추상성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다층적 인식이 요구됨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구적 규모의 장기적인 시간대에 걸친 논의와 중·소규모의 지역, 중·단기의 과제를 동시에 사고하면서 일관된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여기서 동아시아론이 이중과제론과 만나고, 이를 통해 지역주의적이면서도 세계사적 차원의 보편적 지향을 견지할 수 있게 된다.
2. 타께우찌의 ‘근대초극’론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
이중과제에 대해 궁구할 때 먼저 참조할 만한 동아시아의 사상적 자원목록에 일본의 ‘근대초극’론이 있다. 90년대초 최원식은 동아시아적 시각을 제기하면서 근대초극론에 주목하여 전쟁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면과 동시에 “서구적 근대를 넘어설 새로운 세계형성의 원리를 모색하고자 한 문제의식”의 양면성을 읽어낸 적이 있다.11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 1910~77)는 근대초극론에는 “풀릴 듯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모호한 무언가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그 모호함으로부터 발휘된 마술적 효력”12에서 과연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근대의 초극(近代の超克)’은 본래 1942년 잡지 『붕가꾸까이(文學界)』 9-10월호에 실린 심포지엄의 문제의식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비슷한 시기 이른바 쿄오또(京都)학파에 의해 『추우오오코오론(中央公論)』에서 진행된 세차례의 좌담(1941~42)인 ‘세계사의 철학’까지 포함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사상으로서의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거대한 문제의식을 표출시킨 데 그친 추상적 담론이었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일본이 이미 근대화를 달성했다고 전제하고 그 모델인 서구적 근대와 그 변종인 소련 공산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사의 원리를 찾는 이론적·실천적 작업이었다. 토론의 참여자들은 논의과정에서 동양적인 것, 특히 일본적인 것 속에서 이상형을 발견했고, 일본적인 것을 단순히 이상적인 과거가 아니라 현실의 천황제 국체(國體)와 동일시한 특징이 있다.13 태평양전쟁 초반 구미에 대해 거둔 승리에 취하고 전쟁승리 후의 세계경영을 생각하던 지식층에게 근대초극은 “세계제패라는 논의의 차원보다 훨씬 높고 고상한 이념과 관련된” 지향성의 상징으로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지식인은 물론 ‘대중을 사상적으로 사로잡았다’고 한다.14
패전 직후 한동안 이 논의는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이데올로기로서 기피대상이었다. 그 유산을 복권하려 한 사람이 타께우찌 요시미다. 그는 근대성에 대한 논쟁인 근대초극론을 “일본 근대의 아포리아”가 태평양전쟁에서 일거에 문제로 폭발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메이지유신 이래의 복고와 유신, 존왕(尊王)과 양이(洋夷), 쇄국과 개국, 국체보존과 문명개화 등 해결을 요하는 수많은 이항대립의 ‘응결’이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 침략전쟁이자 구미에 대립하는 제국주의간의 전쟁이라는 이중성을 갖는 미국과의 전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포지엄에서의 문제제기는 시기상 정당했고 그런만큼 지식인들의 관심도 끌 수 있었지만, 아포리아 자체를 정면에서 논의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아포리아는 마치 “안개처럼 사라지고” 근대초극론은 전쟁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고 진단했다.15 그가 시도한 것은 그 심포지엄이 결과적으로 조성한 이데올로기에서 사상을 추출해내는 작업이었다. 전쟁으로 오염되어 이데올로기로 간주된 논쟁으로부터 일본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분리해내겠다는 것은 전후 사상계 조류에 비춰볼 때 위태로운 행위, 그야말로 “밤을 건져내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이런 사상사 다시 쓰기 작업을 감행한 이유는, 한국전쟁에서 드러나듯이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1950년대와 60년대 초의 냉전질서 속에서 미국의 영향 아래 근대화를 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전후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1960년 미일안보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투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에 대한 불감증과 전쟁책임에 무관심해지는 당시 일본을 추궁하기 위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초극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그 아포리아를 핵심적 과제로 삼은 그가 해결책으로 찾아낸 길은 무엇이었을까. 그 길은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적인 원리를 지향하는 ‘전통’(즉 아시아주의)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원리라든가 전통이 실체로서 현존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란 발상이 출현한다. 아시아를 실체화하지 않은 덕분에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16 이 용어와 관련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서구의 우수한 문화 가치를 보다 대규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서양을 한번 더 동양에 의해 다시 싸안아서 역으로 서양 자신을 이쪽에서 변혁한다는 이 문화적인 되감기 또는 가치상의 되감기에 의해 보편성을 이루어냅니다. 동양의 힘이 서양이 만들어낸 보편적인 가치를 보다 높이기 위해 서양을 변혁합니다. 이것이 동과 서의 오늘날의 문제점이 되었습니다. (…) 그 되감기를 할 때 자신 속에 독자적인 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그러한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방법으로서는, 다시 말해 주체형성의 과정으로서는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지만, 그것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은 저로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17
그에게 근대극복의 길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란 일본이 근대화하는 동안 억압되었던 민중의 실천과 사상을 재통합하는 길, 곧 저항하는 주체의 형성이다. 그 모델이 이미 중국혁명에서 실례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비해 서양 부르주아사회가 만들어놓은 문화규범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일본의 근대는 ‘노예의 진보’일 뿐이고, 이것이 유럽과 더불어 일본을 식민지주의와 침략전쟁으로 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전후에도 계속해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누렸던 것이다. 이렇듯 그는 근대의 ‘진보’가 안고 있는 지배성과 폭력성이 피하기 어려운 것임을 명확하게 꿰뚫어 읽고, 그렇기 때문에 ‘길 없는 길을 가는’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근대에 대한 저항만이 일본이 가해책임을 받아들이는 길이라고 인식했다.
어찌 보면, 그의 작업은 “막 사라져가고 있던 일본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행동”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도는, 1940년대 심포지엄의 근대초극 비전이 전쟁으로 좌절됐듯이, 1960년대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에 의해 패배하고 말았다.18 그런데 요즈음 전세계적으로 타께우찌 요시미에 대한 적극적 평가가 조용히 번져가고 있다. 그가 제기한 근대주의 비판이 근대 일본의 존재양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자세로서 일본 내에서 주목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구미에서도 일원적 진보주의의 근대관을 벗어나게 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다.19
우리 논단에서는 주로 인문학자들이 그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타께우찌를 재해석한 쑨 꺼의 시각을 통해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이정훈(李政勳)이 비판적 지식담론을 재구성하기 위해 지식인의 ‘자기비판’ 또는‘주체의 내재적 자기부정이라는 원리’를 타께우찌로부터 건져내려 한 것이 그 한 예이다.20 이같은 쑨 꺼의 타께우찌 다시 읽기에 대해, 백지운(白池雲)은 타께우찌가 주체형성을 위해 일본 내셔널리즘과 아시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했던 데 비해 쑨 꺼는 타께우찌의 작업에 드러난 이 위태로움의 계기들을 뛰어넘은 게 아닌가 추궁한다. 쑨 꺼가‘자기부정〔蒟噩〕’이라는” 루 쉰의 모티프를 주로 활용해 타께우찌의 사상을 “탈근대적 ‘동아시아사상’이라는 안전지대로 운반”하는 편향을 보인다고 백지운이 꼬집은 것은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요컨대 타께우찌의 사상을 그렇게 “추상적인 역사철학으로 보편화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다.21 타께우찌의 글이 대체로 현실에 직접 대응하여 나온 상황성이 강한 글임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여기서 자기부정이 곧 타께우찌가 말하는 ‘저항’인데 그에 매개된 것이 “상대를 변혁하고 자신도 변화하는 것”인 ‘운동’22임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타께우찌를 읽노라면 필자의 동아시아론의 한 요소인 ‘이중적 주변의 시각’23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타께우찌가 근대극복을 위해 ‘저항하는 아시아’를 탈중심적 주체로 설정한 문제의식은 탈냉전기의 상황에서 제기된 ‘이중적 주변의 시각’과 상호보완적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서구중심의 세계사 전개에서 비주체화의 길을 강요당한 동아시아라는 주변의 눈과, 동아시아 내부의 위계질서에서 억눌린 주변의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필자가 말하는 중앙과 주변은 단순히 지리적인 위치를 가리키지 않고, 자신이 주변이면서도 한층 더 주변적인 부분에 대해서 중앙이 되어 그 주변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식으로 양자가 끝없이 연쇄고리를 만들어가면서 억압을 이양(移讓)하는 가치론적 차원의 관계를 뜻한다. 이 시각에서 보면, “중앙과 주변의 관계에서 차별과 억압이 무한연쇄를 이루고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중앙과 주변의 시각을 확립하는 것은 그 연쇄가 무한인 이상 무한의 노력을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곧 지배관계에 대한 영원한 도전이요 투쟁이다.”24 이 점에서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 타께우찌의 ‘자기부정’과도 통한다 하겠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탈중심적(필자의 ‘주변적’) 주체의 내재적 비판성을 발굴하여 근대를 극복할 동력을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단지 주변을 특권화하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탈역사화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특히 세계체제의 위계질서) 속에 위치시켜 근대세계를 총체적으로 다시 본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해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감당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3. 동아시아공동체: 중단기적 효과와 장기적 전망
바로 앞에서 ‘이중적 주변의 시각’을 제안하면서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 특히 세계체제의 위계질서 속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 설명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시공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먼저 국민국가 중심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 시공간 개념의 유용성에 주목한 박명규(朴明圭)의 논점을 검토해보겠다. 그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국민국가적 시공간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도 곧바로 ‘장기적-지구적’ 시공간으로 옮겨가지 않는 중간적 시공간, 곧 ‘국면적-지역적’시공간으로서의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국민국가를 넘어선 지역질서의 공간과 수십년의 중기적 시간대가 만나는 범주”로서 “복수의 국민국가들이 독자적인 지정학적·문명론적 조건을 공유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속해온 시공간”이다.25
이같은 ‘국면적-지역적’시공간 범주를 통해 필자의 동아시아론이 잘 설명될 수 있을 듯싶다. 국민국가 중심적 시간관의 한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주변적 존재로 무시되어온 주체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간관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공간의 대·중·소와 시간의 장·중·단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란 지역적 범주 자체만 해도 그 대상 범위를 둘러싸고 자주 논란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이 세계와 한반도 사이의 중간규모에 해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단위로 하는 작업이 한반도와 세계체제 차원의 과제 사이에서 ‘중기적 과제’로만 위치지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말 우리에게 요긴한 것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시공간에 대한 분별이 그 각각에 따른 과제를 따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동시에 수행해야 할 다양한 차원의 과제들이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각기 달리 성취될 성격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식별해서, 그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상충하지 않고 이론적인 통일성과 현실적 대응력이 높아지게 하려는” 태도이다.26 요컨대 지구적 규모의 장기적인 시간대에 걸친 전망과 중·소규모의 지역, 중·단기의 과제를 동시에 사고하면서 일관된 실천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중·일 3국에서 현재 진행중인 동아시아공동체 논의를 비교하면서,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대대로 평화의 공동체로서 실현되려면, 이 지역을 구성하는 국민국가의 밖에서 이뤄지는 국가간 통합과정과 국가 안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의 내부개혁 과정이 쌍방향적으로 추동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각각을 따져본 적이 있다.27 말하자면 중·소규모의 지역, 중·단기의 과제를 동시에 사유하면서 일관된 실천으로 연결시키겠다는 뜻에서 시도한 일인데, 사실상 이 의도가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적 규모의 장기적인 시간대와의 관련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 글에서 동아시아공동체를 둘러싼 이론적·실천적 작업의 몇가지 논점을 다시 보고자 한다.
지금 동아시아 정부들이 주도하는 (필자가 앞서 말한) 좁은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논의와 실천 들에서 드러난 첫번째 공통점은 경제통합이 추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또다른 공통점은, 대체로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면서도 그런 구조적 제약 안에서 동아시아의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열린 지역주의와 중층적 지역질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은 동아시아가 냉전시기의 분열된 지역에서 벗어나 통합된 지역을 스스로 만들어나감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겠다는 노력의 소산이다. 1990년대 들어 진영간 대립이 종식됨에 따라 각 진영의 내부결속이 이완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변화된 상황이 그러한 방향성을 허용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은 공통점의 이면에는 지역공동체를 추진함에 있어서 각 국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를 두고 차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은 정부 차원의 지역통합이 주도권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각 정부로서는 지역이익과 국가이익이 충돌할 경우 국가이익의 관점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동아시아에서는 국가들간의 국력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갈등의 여지가 그만큼 더 크고 평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 적어질 수 있다.
이런 동아시아공동체의 진행상황을 두고 강내희(姜來熙)식으로 “동아시아라는 시야가 국가와 엘리뜨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동아시아에 연대(곧 지역공동체-인용자)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해방보다는 지배의 효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28고 중장기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견해는, ‘ASEAN+3’국의 동아시아협력체 추진이 비록 전형적인 세력균형의 사고방식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세계질서에서의 강대국 지배를 견제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임을 홀시하고 있다. 필자는 좁은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가 형성되기만 해도 중·단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수직적 지역질서가 수평적 지역질서로 바뀌고 미국 패권주의에 균열을 가져오는 데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점은 ‘신냉전질서’가 도래하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하는 일본의 보수파가 동아시아공동체 같은 ‘아시아의 공생’이나 ‘지역의 평화’를 주창하는 노력을 ‘일미(日美)동맹’에서 ‘일미분단’으로 유도하려는 ‘공작’으로 경계하면서 ‘21세기형의 새로운 보수세력의 연휴(連携)’29를 부르짖는 데서 반증되지 않는가.
물론 강내희의 강조점은 국가와 엘리뜨에 의한 동아시아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동아시아, 곧 ‘민중적 국제연대’에 의한 동아시아이다. 박노자(朴露子)도 ‘급진적·계급적 해결 전망’에 역점을 두어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제안한다. 필자 역시 지역형성의 행위자로 국가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다양한 민간세력도 중시하면서, 특히 정부 차원의 국제적 협력과 시민사회 차원의 국경횡단적 연대라는 두개의 층을 ‘민주적인 책임’(accountability)을 매개로 해서 연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왔다.30 국가의 역할을 배제한 채 여러 영역에서 교류가 누적되면 공동체가 형성될 것으로 믿는 기능주의적 발상이나, 국가는 바람직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서 민중연대만에 의존하는 근본주의적 관점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이다.
이 글에서는 ‘민주적 책임’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치(共治, governance)란 발상을 도입해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를 이룩할 길을 탐색하자고 제의하고 싶다. 국가, 시장, 시민단체 같은 행위주체들이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과정과 그 제도화를 일컫는 공치란 개념은, 동아시아 지역형성의 행위주체들에 대한 좀더 유연한 사고를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다른 논점은,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이 지구적 규모의 장기적 시간대의 현단계인 신자유주의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이 물음과 관련하여 동아시아공동체 같은 지역단위의 구상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도 만만치 않다. 국경 없는 세계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진영은 제쳐두더라도, 반신자유주의 진영이나 탈민족주의 진영도 이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전자가 민중주체를 근거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면 후자는 민족·국민이라는 코드 속에 내장된 권력의 메커니즘을 고발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 유재건(柳在建)은 그들이 세계체제 변혁의 동력과 주체를 단순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근거는 세계의 지정학적 분열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유럽·동아시아라는 독자적인 동력을 지니는 세가지의 지정학적 분열을 통해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세계에서 동아시아가 아직 유동적인 상태에 있으나 “모종의 대안적 공동체를 제대로 형성할 때 갖게 될 세계체제 변화의 잠재력은 상상외로 크다”고 그는 전망한다.31 동아시아가 이같은 창조적 역할을 성실히 감당한다면 이 지역에서 수직적 지역질서가 수평적 지역질서로 바뀔 뿐만 아니라, 종래의 전형적인 따라잡기형 개발독재체제의 개발주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대안적 패러다임이 가시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설득력을 지니려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국민국가들간의 통합과 연동되어 개별 국가의 내부개혁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통합과정에 적응하기 위해 개별 국민국가의 기능이 제각기 혁신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국민국가 내부의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혁과정이 잘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통합이 그만큼 더 촉진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국민국가 안팎에서의 쌍방향적인 작용과정에서 지역통합이 개별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일상생활에서 실감으로 깨닫게 된다. 재작년(2006년)부터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된 한미FTA문제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지역통합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따져보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필자는 미국과의 포괄적인 FTA체결이 한국사회를 미국식 기준(즉 금융자본주의와 시장만능주의를 요체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추도록 강요하여 불균형 압축성장을 초래하는 급격한 통합이라고 보고 그에 반대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경제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의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에 조응하며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실현에 기여하는 ‘한국형 개방발전모델’을 대안으로 숙고하는 입장을 지지한다. 단, 이 글의 논지와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점은, FTA를 포함한 경제통합의 여러 유형과 단계 가운데 어느 것이 적합할지를 한반도 전체의 시각에서 따져보되 그 중·단기적 효과와 장기적 전망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개방 수준과 사회정책 수준이 합치되는 방향으로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개방과 제도개혁에 따른 갈등 조정능력을 발휘하게 할 공치모델의 확립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안에 따라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합의를 이루는 사례를 축적해가는 과정에서 그 모델을 만들어가는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경험이 동아시아 규모로 확대된다면 역내 공통 현안인 지역내 격차와 국가간 갈등을 해소하고 세계화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지역 차원의 공치모델도 가능해질 것이다.32
이렇게 볼 때, 각국에서 진행되는 개혁과정의 실상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상호비교하는 일이 긴요하나, 여기서는 한반도에서의 통일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과정에서 부각된 새로운 복합국가 건설의 문제를 검토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단순히 필자의 생활터전이 한국이어서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기보다, 분단된 한반도는 세계 차원의 패권적 지배체제의 중요한 현장인만큼 이곳에서의 복합국가의 출현은 세계적 차원의 억압체제에 대한 공격이자 자본주의 세계체제 변혁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4.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복합국가론
복합국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앞서 국민국가의 역할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좀더 분명히해두고 싶다. 요즈음 우리 논단에서 탈근대론이 유행하면서 국민국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득세하는 듯하다. 이에 비춰볼 때 여성운동진영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발언한 점은 돋보인다.
시장이 압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안에서, 그리고 돌봄의 전면적 파탄 상황에서, 일부의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의 가치를 새롭게 보고, 국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국가를 일방적 권력행사를 하는 기구가 아니라 여러 행위주체들의 네트워크로 보면서 돌봄을 바탕으로 한 국가형성에 참여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33
국민국가의 역할을 결코 단순히 긍정할 리 없는 탈근대적 성향이 강한 여성운동 쪽에서도 이같이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공치 개념을 도입한 이론적 근거와 “우리 사회의 질서를 바꾸는 데는 보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의 효용을 체득한 실천적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추론된다.34
필자 역시 단순히 국가무용론을 주창하는 것에서 벗어나,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통적 국민국가의 강점을 살리면서 한층 민주화된 국가구조의 창안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근대의 극복을 진지하게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근대에 적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한 사례로서, 필자는 ‘국민국가에의 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적 성격의 단일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풀어 설명해본 적이 있다.35
필자의 그 구상은 네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첫째, 대국주의와 소국주의의 긴장이란 발상을 견지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패권주의, 즉 대국주의를 해체하는 것, 둘째, 그 구상을 추진하는 주체로 한민족공동체의 설정, 셋째, 지향(志向)으로서의 복합국가론, 넷째, 이것들이 국가의 존재양식과 우리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꾸어가는 과정이기에 문명담론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네가지 특징들을 맺어주는 매듭에 해당하는 복합국가론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겠다.
복합국가(compound state)는 “단일국가가 아닌 온갖 종류의 국가결합 형태, 즉 각종 국가연합(confederation)과 연방국가(federation)를 포용하는 가장 외연이 넓은 개념”으로 제기되었는데,36 그 개념은 국민국가를 감당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이중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우리의 실천과정에서 구체화될 터이나, 이를 좀더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은 그 실현을 앞당길 것이다.
사실 국가간의 결합체인 복합국가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세계사 속에 연방제와 국가연합 등의 형태로 여러번 등장한 사례가 있지만 근대적인 국민국가간 체제에 충격을 줄 정도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최근 하영선(河英善)은 북한까지 포용한 ‘한국형 네트워크 지식국가’를 건설하자고 제안하면서 그것을 (탈근대적인) ‘지식기반 복합국가’로 이름 붙인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의 적응, 특히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현단계의 단기적 적응에 불과할 뿐, 중장기적인 근대극복의 지향이 엿보이지 않는다.37
이와는 달리 필자와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제기된 것이 박명규의 ‘복합적 정치공동체’논의이다.38 그는 국민국가 안과 밖의 변화에 힘입어 ‘복합적 정치공동체’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내부적 변화는 국민국가의 결속원리인 경계의 고정성, 권한의 집중성 및 국민통합이 흔들리면서, 그와는 다른 대안적 원리들 즉 경계의 유연성, 권한의 분산성 및 연대의 다층성에 의해 새로운 결합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변화는 일차적으로 기존의 국민국가가 민주적이고 관용적인 공동체로 변화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정치적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세력의 활성화가 그 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지역협력을 통해 평화의 질서가 자리잡는 외부적 변화도 이뤄져야 한다.
사실 이 주장만으로는 아무래도 원론적 논의라는 인상을 주기 쉬우나, 이것을‘흔들리는 분단체제’로 인해 남북 국가간의 경계가 유연해진 한반도의 현실에 적용하면 실감이 더해질 것이다. 다층적인 교류의 망이 누적되는 가운데 (한때의 핵위기나 남쪽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복합국가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북돋워준다. 이같은 남북교류가 다방면으로 확산되며 연대의 다층성을 달성하다가 2000년 6·15선언에 규정된‘낮은 단계의 연방제’또는 국가연합이 실현되기만 하면, 권한의 분산성까지 현실화되어 한반도에서의 복합국가의 모습은 상당부분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점진적인 통합과정, 바꿔 말하면 과정으로서의 통일일 터인데, 6자회담의 영향이 단적인 예이듯 지역협력이 활발해지고 그 제도화가 가속되는 등 외부 변화가 수반되면 복합국가로의 진전은 한층 촉진된다.
물론 복합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은 남북의 통합이 단일한 국민국가로의 통일이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에 해당하는 통일, 즉 남북 민중의 생활주도력이 극대화하는 통일을 추구하는 중기적 과제를 수행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에 이르는 동안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의 일환인 남쪽의 개혁을 실천하는 일이 단기적 핵심과제가 된다.
단기적 과제로서의 내부개혁이 단지 정부의 정책 차원에서 시행될 뿐 일상생활에서 자리잡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 일상생활의 타성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일상생활로 돌아가 그 현장에 뿌리내리는 긴장을 유지하는 운동만이 지속적인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교육·환경·여성·인권·평화·교육 등 여러 영역의 민간운동은 이미 우리 사회 저변에서 착실히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39
이와같이 일상적 실천이면서 전지구적 보편성을 아울러 지닌 일상생활의 개혁이 공공의 쟁점과 결합함으로써 국가개혁으로까지 이어져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복합국가 형성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공생사회로서의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을 촉진하여 미국 패권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미국적 표준을 넘어설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이탈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장기적으로 변혁시키는 촉매가 될 터이다. 그럴 때 민중적이면서도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가능성이 열린다.
끝으로, 이같은 다층적 시공간의 과제를 동시에 사유하면서 일관된 실천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에 추동력을 부여하는 한반도의 복합국가,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사의 상호연관에 대해 잠깐 정리해보고자 한다. 국가간의 결합체인 복합국가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시도되고 있는 복합국가가 그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것임은 앞에서의 논의로 어느정도 밝혀졌지 싶다. 여기서는 두가지 단상만 덧붙이겠다.
하나는, 그것을 향한 과정이 동아시아공동체의 건설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이다. 한국이 남북화해를 자주적으로 주도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동북아의 국제정치 생태(生態)를 개혁하고 있다”는 이웃나라 언론매체의 평가도 있듯이,40 동아시아 평화의 연동구조가 작동하는 데 미치는 한반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은 긴 말이 필요 없겠다. 단지 복합국가란 틀이 갖는 중요성은 특별히 주목될 가치가 있다. 그 틀 안에 북한을 불러들여 체제안전을 보장해주면서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과 연계된 총체적 개혁’에 북쪽을 참여시켜 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 덕에 동아시아공동체를 추진할 때 늘상 ‘목에 가시’로 걸리는 북한(및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요령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만과 중국대륙의 이른바 양안(兩岸)문제나 오끼나와 문제를 포함해 일본(의 국민국가론)이 안고 있는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참조물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열린 지역주의’를 지향한다고들 하는데 그 의미를 ‘이중적 주변의 시각’에서 다시 보자는 것이다. ‘열린 지역주의’는 동아시아의 안과 밖에서 작동하는 중심-주변관계의 끝없는 억압의 이양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극복과 탈식민41의 문제의식은 결합한다.
흔히 ‘열린 지역주의’는 동아시아의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문제는 주변으로서의 동아시아에 있어 중심인 미국을 어떻게 위치짓는가이다. 미국의 반발로 지역공동체의 진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미국의 이익을 적절히 충족시키면서 어떻게 그 영향력을 제한할 것인지 토론이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열린 지역주의’가 동아시아 내부의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중심-주변관계의 혁파를 의미해야 한다. 동아시아공동체가 지역내 일부 부자나라들의 클럽이 되지 않도록 북한이나 ‘국가와 비국가의 중간’에 위치한 타이완 같은 주변적 존재들을 포용할 장치가 요구된다. 이같은 이중적 의미의 열린 지역주의를 수행할 때라야, 동아시아공동체가 거대한 공룡이 될 위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동아시아 바깥의 다른 주변적 지역들과 연대하여 세계사의 변혁을 주도할 수 있다.
한반도의 남북이 복합국가의 건설을 통해 이같은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듯이, 동아시아인들이 각자 나름대로 국가개혁과 연동된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의 길에 더욱 활발히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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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歌 「なぜ‘ポスト’東アジアなのか」, 孫歌·白永瑞·陳光興 編 『ポスト‘東アジア’』, 作品社 2006, 119~20면. 국역본은 쑨 꺼 「포스트 동아시아 서술의 가능성」,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엮음 『동아시아 경제문화 네트워크』, 태학사 2007, 71면.↩
- 장인성 「한국의 동아시아론과 동아시아 정체성」, 『세계정치』 제26집 2호, 2005, 4면.↩
- 필자의 동아시아론은 개인의 작업인 동시에 (계간 『창작과비평』의 담론의 하나로 간주되듯이) 집단작업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를 집중분석한 최근의 글로는, 박명규 「한국 동아시아담론의 지식사회학적 이해」, 김시업·마인섭 엮음 『동아시아학의 모색과 지향』,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장인성, 앞의 글; 고성빈 「한국과 중국의 ‘동아시아담론’: 상호연관성과 쟁점의 비교 및 평가」, 『국제지역연구』 제16권 제3호, 2007; 임우경 「비판적 지역주의로서의 한국 동아시아론의 전개」, 『중국현대문학』 제40호, 2007.↩
- 인용 순서대로, 하세봉 『동아시아 역사학의 생산과 유통』, 아세아문화사 2001, 18면; 장인성, 앞의 글 9면; 馬場公彦 「ポスト冷戰期東アジア論の地坪」, 『アソシエ』 No. 11, 2003, 51~52면; 임우경, 앞의 글; 박노자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겨레출판 2007, 13면.↩
- 쑨 꺼, 앞의 글, 국역본은 77면, 일본어본은 123면. 또한 요네따니 마사후미(米谷匡史)는 동아시아의 연대와 해방이란 이름 아래 행해진 폭력에 대한 철저한 자기성찰 없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시도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 통합을 비판하며 새로운 연대의 관계성을 열기 위해 ‘포스트 동아시아’를 내세운다. 米谷匡史 「ポスト東アジア: 新たな連帶の條件」, 『現代思想』 2006년 8월호.↩
- 필자의 이런 입장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의 상반된 비판에 대한 대응이다. 중문학자 이정훈은 필자의 동아시아론이 “80년대식의 비판담론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심이동을 하여 “현실에 깊이 개입하려는 실천적 노력과 내셔널리즘 및 국가로의 ‘귀환’ 혹은 ‘경도’ 사이의 미묘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평가한다. 「비판적 지식담론의 자기비판과 동아시아론」, 『중국현대문학』 제41호, 2007, 9면. 반면 정치학자 고성빈(高成彬)은 “단순히 지적인 상상에서의 규범적이고 사변적인 연구를 넘어서 현재하는 구체적인 정치경제, 사회적 문제들과 연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고성빈, 앞의 글 62면. 필자는 인문학적 접근과 사회과학적 접근이 상호대조와 상호침투를 거쳐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 최원식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창작과비평』 1993년 봄호.↩
- 백낙청(白樂晴)의 다음 언급이 제3세계적 의식의 핵심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예컨대 한국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스스로가 제3세계의 일원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당면한 문제들이 바로 전세계·전인류의 문제라는 말로서 중요성을 띠는 것이다. 곧, 세계를 셋으로 갈라놓는 말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로 묶어서 보는 데 그 참뜻이 있는 것이다.” 백낙청 「제3세계와 민중문학」, 『창작과비평』 1979년 가을호 50면. 같은 문제의식은 최원식 「민족문학론의 반성과 전망」, 『민족문학의 논리』, 창비 1988에서도 볼 수 있다. 최원식은 특히 “제3세계론의 동아시아적 양식을 창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민족문학론도 풍부한 현실성과 진정한 선진성을 획득할 수 있을 터”라고 역설했다.(368면)↩
- 『문화과학』 2000년 여름호 특집이 ‘근대·탈근대의 쟁점들’로 꾸려졌다. 또 김성보(金聖甫)는 근대의 ‘적응과 극복’과 구별해 ‘확장과 지양’이라는 표현을 쓴다. 김성보 「탈중심의 세계사 인식과 한국 근현대사 성찰」, 『역사비평』 2007년 가을호, 245면.↩
- 이중과제론의 진화과정은 백낙청 「한반도에서의 식민성 문제와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 『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참조. 이중과제론이 대두한 의의에 대해서, 송승철(宋承哲)은 “학계의 견해가 한편으로는 근대론과 탈근대론으로 경직되게 양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달성 도정에서 중시되었던 경험과 가치들이 갑작스럽게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탈근대적 새로움은 새로움대로 인정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시대의 가치들을 전지구화의 상황 속에서 발전시키려 한 점”이라고 지적한다. 송승철 「시민문학론에서 근대극복론까지」, 설준규·김명환 엮음 『지구화시대의 영문학』, 창비 2004, 248면.↩
- 최원식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414~15면.↩
- 타께우찌 요시미 지음, 서광덕 외 옮김 『일본과 아시아』, 소명출판 2004, 87면.↩
- 심포지엄의 참여자인 스즈끼 시게따까(鈴木成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근대초극의 내용을 잘 간추리고 있다.“근대의 초극이란 정치에서는 민주주의의 초극, 경제에서는 자본주의의 초극, 사상에서는 자유주의의 초극을 의미한다. (…) 일본의 경우 근대의 초극이라는 과제는, 세계를 지배하는 유럽의 초극이라는 특수한 과제와 중복되기에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하다.” 히로마쯔 와따루 지음, 김항 옮김 『근대초극론』, 민음사 2003, 16면.↩
- 같은 책 222면.↩
- 타께우찌, 앞의 책 136면.↩
- 비슷한 발상으로 필자의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 이외에, 천 꽝싱(陳光興)의 ‘아시아를 방법으로 삼다’, 쑨 꺼의 ‘기능으로서의 동아시아’, 코야스 노부꾸니(子安宣邦)의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등이 있다.↩
- 같은 책 168~69면, 강조는 인용자.↩
- H.D. 하루투니언 「보이는 담론/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 H.D. 하루투니언·마사오 미요시 엮음, 곽동훈 외 옮김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 시각과 언어 1996, 106, 115면.↩
- 鶴見俊輔·加々美光行 編 『無根のナショナリズムを超えて: 竹內好を再考する』, 日本評論社 2007. 2004년 독일에서 타께우찌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고, 타께우찌 선집의 독일어 번역본도 나왔다(138면). 중국의 수용 상황에 대해서는 85면 참조. 그밖에 캘리치먼(Richard F. Calichman)이 편역한 영역본 What is Modernity?: Writings of Takeuchi Yoshimi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도 간행되었다. 타이완에서는 『臺灣社會硏究』 66기(2007년 6월)에 소특집이 실려 있다.↩
- 이정훈, 앞의 글.↩
- 백지운 「타께우찌 요시미라는 아포리아」, 『창작과비평』 2007년 여름호.↩
- 타께우찌, 앞의 책 33면.↩
- 졸고 「주변에서 동아시아를 본다는 것」,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문학과지성사 2004.↩
- 같은 책 18면.↩
- 박명규 「21세기 한국학의 새로운 시공간성과 동아시아」,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 및 규장각 창립 230주년 기념 한국학 국제학술회의, 2006, 422면; 박명규 「복합적 정치공동체와 변혁의 논리」, 『창작과비평』 2000년 봄호.↩
-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244면.↩
- 이하의 내용은 졸고 「평화에 대한 상상력의 조건과 한계: 동아시아공동체론의 성찰」, 『시민과 세계』 제10호, 2007 참조.↩
- 강내희 「동아시아의 지역적 시야와 평화의 조건」, 『문화과학』 2007년 겨울호 95면.↩
- 中西輝政 「生命線は日米韓‘保守派’の連携にあリ」, 『正論』 2007년 5월호.↩
- 졸고 「평화에 대한 상상력의 조건과 한계」.↩
- 유재건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15시대」,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285면.↩
- FTA의 여러 유형과 단계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한국형 개방발전모델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는 최태욱 엮음 『한국형 개방전략: 한미FTA와 대안적 발전모델』, 창비 2007 참조.↩
- 조한혜정 외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또하나의문화 2006, 33면.↩
- 같은 책 46면.↩
- 졸저 『동아시아의 귀환』, 창작과비평사 2000, 32~36면.↩
- 같은 책 63면. 처음에 이 개념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려 할 때 부닥치는 주권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제안으로 주목받았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비 1998, 172~208면 참조.↩
- 하영선 「네트워크 지식국가: 늑대거미의 다보탑 쌓기」, 하영선·김상배 엮음 『네트워크 지식국가』, 을유문화사 2008.↩
- 박명규, 앞의 글.↩
-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는 여러 영역의 시민운동의 활동 가운데 지역연대 차원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양적·질적 평가는 서남포럼 엮음 『한국의 동아시아연대운동 백서』, 아카넷 2006 참조.↩
- 「兩韓能, 兩岸爲何不能?」, 『亞洲週刊』 2007년 10월 14일자. 비슷한 논조로는, 난 팡숴(南方朔) 「중국-타이완과 한국, 평화의 연동구조」, 『창작과비평』 2005년 가을호 참조.↩
- 천 꽝싱은 파농(F. Fanon)의 ‘식민’ 개념을 모든 구조적 지배권력관계로까지 확대하고 그것의 변혁을 모두 탈식민(去殖民)의 목표로 보는데, 이럴 때 “탈식민은 영원한 과정”이 된다고 한다. 『제국의 눈』, 창비 2003, 1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