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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

 

민주주의, 성장논리, 農的 순환사회

 

 

김종철 金鍾哲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전 영남대 영문과 교수. 저서로 『시와 역사적 상상력』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간디의 물레』, 역서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등이 있음.

jckim@greenreview.co.kr

 

 

많은 사람들에게 지난 12월 대선은 심히 곤혹스러운 선거였다. 실제로 선거결과는 많은 유권자가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거나, 투표를 했다 하더라도 마지못해 누군가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선거를 통해 누군가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한 민의(民意)의 반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심각한 언어왜곡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기는 비록 30%의 득표율이기는 하나, 상대후보들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표를 얻었으니까 자신이 국민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은 듯한 착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그런 탓인지, 아직 새 정부가 구성되지도 않았건만, 소위 인수위원회가 새로운 정책안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면 전부 문자 그대로 무소불위의 전제(專制)권력이 아니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정작 선거 직전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듯했던 이른바 대운하 프로젝트는 온갖 논리적인 모순이 폭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될 기세이고,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한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이 공공연히 제시되는가 하면, 드디어는 한국인들이 자기 땅에서 자기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한국어를 버리고 외국어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기상천외의 ‘영어공교육’ 정책이 운위되기에까지 이르렀다. 궁금한 것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국가정책이라고 내놓는 사람들의 정신구조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실제 집행 여부를 떠나서, 실로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도 벗어난 이러한 프로젝트를 아무리 반대여론이 있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권력의 방자한 모습이다. 이것은 명백히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도 없는 전제적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른바 ‘민주화 이후’ 시대라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민주화’는 성취했으니까 다음 과제는 ‘선진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지난 20년이 올바른 의미에서 민주주의 사회였는지는 잠시 불문에 붙여두고, 지금 권력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정치적 대항세력이 사실상 몰락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태로운 사태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안이한 인식에-부분적으로나마-기인한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직선제만 쟁취하면, 쿠데타만 없으면, 그리고 정기적으로 투표장에 가서 칸막이 속에서 아무 간섭을 받지 않고 도장을 찍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따지고 보면 히틀러도 나뽈레옹 3세도 선거에 의해서 등장했던 전제권력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할 필요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기는 통치권의 행사라는 이름으로 여론-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의견-을 쉽게 무시하는 것은 ‘민주화’ 이후의 정부에서도 고질적인 습관이 되어왔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하면서까지 한미FTA를 밀어붙인 노무현정권의 경우일 것이다. 한미FTA는 사회적 약자와 자연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합법적인 수단마저도 박탈해버릴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명박의 대운하 못지않은 폭력적 기획이라는 것이 많은 설득력있는 양심적 증언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예에 비추어 충분히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협정에 대한 풀뿌리 차원의 반대 목소리는 조금이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권력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드물게 간곡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비웃고, 노무현은 기어이 자기 고집대로 협정체결을 완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여정부’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가 폭로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오늘날 우리의 민주적 역량은 독선적 권력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견실한 것이 아니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새삼 민주주의의 위기 운운하는 것도 실은 우스운 노릇인지 모른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 이후’ 시대 전체에 걸쳐서 민주주의가 한번도 제대로 실현된 바가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왔다고 보는 것이 정당한 판단일 것이다. ‘참여정부’에 의한 한미FTA체결은 아마도 그러한 추세 속에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후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비록 정권교체가 되고 집권당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권력 엘리뜨들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난 10년 동안 정부나 집권당에 들어가 활동했다고 해서 그들이 속한 정당 혹은 정파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진보진영’의 패배를 운위한다면 그것은 실로 가소로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알다시피, 그들은 기득권세력과 온갖 소소한 국면에서 쓸데없는 정치투쟁을 벌이면서도 민중생활의 보다 근본적인 차원, 즉 사회경제적인 정책방향에서는 완전히 의기투합해서, 엘리뜨 중심의 글로벌 시장경제 씨스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신념에 충실하거나 굴종해왔고, 그 연장선에서 한미FTA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저항해온 유일한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도 이번 선거에서 참패를 면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민주노동당의 패배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정치적 식견이 없다. 하지만 그 패배의 주된 요인이 민주노동당 자신의 내부에 있었다고 보는 시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연일 보도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이 자기쇄신의 필요와 그 방법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분에 휘말려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안다. 이 분쟁의 결과 심지어 민주노동당 자체가 해체되어버릴 가능성도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내부적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의 참패 원인을 민주노동당 자신의 한계로만 돌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좀더 견실한 내부구조를 갖추고, 유권자들에게 좀더 신망있는 당으로 비쳐졌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그러한 성공은 극히 제한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의 다수 대중은 ‘국익’ 혹은 ‘국가경쟁력’이라는 덫에 걸려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데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진보적’ 가치가 압도적인 다수에 의해서 지지를 받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실제 상황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반대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진보적 가치에 대해서 얘기하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면 조소(嘲笑)를 당할 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시대에 실망한 대중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냉소주의가 이미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저널리즘의 보고가 나온 지도 한참 되었다. 흔히 이런 보고를 인용하는 식자(識者)들은 소위 민주세력의 집권기간에 대중적 빈곤현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빈부격차가 심화됨으로써, 대중이 민주주의나 ‘진보적’ 이상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해석해왔다. 이와같은 해석이 물론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들이 정말로 민주주의를 원치 않는다는 것은 진실일까.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냉소적 태도는 혹시 좀더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원망(願望)의 왜곡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오늘의 대중적 소비수준이 결코 낮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빈곤이 문제라고 하지만, 지금 절대적인 궁핍 때문에 사람들이 돈이 된다면 도덕도 윤리도 민주주의도 다 헌신짝처럼 버리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인 빈곤이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주인(主因)이라고 보는 것은 흔히 있는 상투적인 관점이지만, 따져보면 이것보다 더 위험한 관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근대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중산층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의 유명한 말에 덮어놓고 동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경우 ‘민주주의’란 서구근대의 소산인 자유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를 가리킨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협소한 의미로 국한시킬 때, 그 필연적인 결과는 근대 이전의 서구세계를 포함해서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풀뿌리 민중사회에서 지속되어왔던 여러 형태의 좀더 실질적이고 활력있는 민주주의를 완전히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위험한 편견에 빠지기 쉽다. 위험하다는 것은, 그러한 편견으로써는 참다운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간단히 말하여, 민중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민주주의의 성립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민중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립과 자치의 조건이다. 요컨대 노예의 삶을 강제당하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사람들이 흔히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심화·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갈수록 민중의 자치·자립의 역량을 근원적으로 훼손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끝없이 확대재생산한다. 이것은 극히 단순명료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특히 근대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늘 일정한 경제성장이 민주주의나 인간다운 생활에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금 당장 민중이 누려야 하고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언젠가 여건이 성숙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문제로 치부한다. 그 결과, 의도든 아니든 그들은 민중의 자치와 자립이라는 이상의 실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 연기하는 ‘노예소유주’의 정치철학에 동조하는 것이다.

물론 빈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빈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좀더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지금도 절대적인 빈곤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빈곤은 시급히 해소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 갈수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져가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생계가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서, 오늘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가난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나 써비스의 절대적인 결핍 그 자체로 인한 궁핍감이라기보다는 ‘생활의 질(質)’의 열악함에서 오는 고통을 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설혹 물자나 써비스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결핍이 재앙이 되는 것을 막아주는 호혜적 인간관계의 그물이 있다면, 그러한 결핍은 도리어 축복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서구적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침략과 지배를 받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사회에서의 비근대적 삶은 이러한 호혜적 공동성(共同性)에 기초해 있었다. 상호부조의 그물망이 확립되어 있는 그러한 공동체적 토대 위에서 사람들은 어울려 함께 일하고, 거기서 같이 즐거움을 누리면서 자립·자치의 삶을 영위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간디가 되풀이해서 옹호했던 ‘마을자치’(village swaraj)의 전통이며, 한국의 농촌공동체에서 오랜 세월 동안 국가의 억압 밑에서도 면면히 지속되어왔던 ‘두레’의 전통이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자치의 공동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실질적인 토양이 되어왔다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전통 마을에서의 민주주의적 생활방식에 대한 천규석(千圭奭)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경청할 만하다.

 

농촌공동체 시절의 마을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사는 꼴은 다 비슷했어요. 물론 한 마을에 논 서른마지기 가진 사람도 있고 두마지기 가진 사람도 있고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고, 가진 것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처럼 사는 꼴이 크게 차이가 안 나고 다들 비슷하게 살았는데요. 어느정도의 경제적 평등이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라면, 가난했다고 하는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도 그래요. 가령 마을에서 대소사를 의논하는 동회(洞會)를 하면요, 하루면 끝날 수도 있지만 현안이 해결 안되면 일주일도 끌고 가고 한달도 끌고 간다고요. 전원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 그렇게 모이는 거예요. 그런 민주주의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민주주의라는 것이 밑바닥, 풀뿌리에서 올라오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나는 갈수록 이 사회가 민주주의와는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좌담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녹색평론』 2004년 9-10월호)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마을 민주주의는 어떤 가상의 유토피아도 아니고, 또 그다지 오래된 옛날의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천규석 자신이 청년시절 농사꾼으로서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우리나라 농민공동체의 실제 현실이었다. 천규석은 그때 동등한 자격으로 마을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던 그 시골 사람들이 누리던 것과 같은 민주주의적 삶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묻고 있지만, 실제로 그와같은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산업화전략, 위로부터의 강압적인 개발, 특히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붕괴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일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개발주의와 산업화가 성공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호혜적 관계망을 토대로 살아온 풀뿌리 민중의 삶의 방식과 심성을 근저(根底)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근대화·합리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이거나 경쟁적인 것으로 전환시키고, 배타적인 성공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개인들을 대량으로 출현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러한 전환의 과정은 폭력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계의 신화』에서 근대적 산업화의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공장이 석탄광산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지만, 이것은 근대 산업사회에서의 노동과 삶의 본질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암시를 던져준다. 자연의 순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땅 밑 깊숙이 햇빛도 바람도 풍경도 차단된 밀폐된 인공적 공간에 갇힌 채 고통스러운 노역을 자발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한 노동은 그렇게라도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방도가 없는 ‘막장인생’이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인 노동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광산이 근대적 산업노동의 원형이라면, 근대화된 노동이란 본질적으로 강제노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떠한 정신적 고양(高揚)도 심미적 쾌락도 따르지 않는 괴롭고 지겨운 노역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에 의해 작업과정이 고도로 기계화·자동화되고, 단순화됨에 따라서 근대적 노동과정은 갈수록 노동자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개성을 박탈하고, 소외감을 깊게 한다.

오늘날 고도로 산업화된 작업장에서, 그것이 생산현장이든 사무실이든, 모든 노동자들은 갈수록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 관료적 통제씨스템 밑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부정당하고, 기계의 부품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비단 서열이 낮은 노동자나 쌜러리맨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산업사회가 강요하는 관료적 통제체제는 정부나 기업경영자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씨스템 자체의 확대재생산 논리에 의해서 강제되고, 심화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라 할지라도 그가 인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좋은 예는, ‘유니언 카바이드’ 사건과 ‘엑손 발데즈’ 사건에서 두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보여준 행동이다. ‘유니언 카바이드’사건은 1984년 인도 보팔에서 화학폭발로 2천명이 죽고 20만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며,‘엑손 발데즈’사건은 1989년 유조선 기름 유출로 알래스카 야생지역이 광범위하게 오염된 사건이다. 각 회사의 최고간부는 사건이 터지자 모두 놀라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심지어 ‘유니언 카바이드’의 회장은 자신의 여생을 이 잘못을 보상하는 데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 한 말을 곧 철회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법률에 따르면 만약 어떤 기업이 이윤추구를 주목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들의 권리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은 자신들이 처음에 ‘과잉반응’을 했다고 말했다. (제리 맨더 「나쁜 요술-테크놀로지의 실패」, The Sun 1991년 11월호)

제리 맨더(Jerry Mander)의 말처럼, 처음에는 “인간으로서 행동한” 경영자들이 나중에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준 것은 자신들이 “기계의 한 부분이며, 기계의 목적은 인간의 목적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개인이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기계’는 말할 것도 없이 주주자본주의 씨스템이다. 흔히 자본주의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주식회사’라는 것을 기업의 ‘사회화’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지만,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는 한, 그 메커니즘은 실은 가공할 폭력의 메커니즘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나 모든 공공조직도 기업처럼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 작업장이나 직장 안에서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로서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회복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삶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상생활과 노동의 장(場)에서의 민주주의는 거의 실종되거나 심각하게 위축되었다는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소위 ‘압축적 근대화’로 인해서 온갖 모순들이 집중화된 결과이지, 결코 ‘전근대적인’ 한국사회 특유의 여러 ‘후진적’ 요인이 빚어내는 결과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것은 ‘가난’도 ‘후진성’도 아니고, 오히려 고도경제성장 체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련해서 우리는 일찍이 1906년 미국여행 중에 막스 베버(Max Weber)가 썼던 한 편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지금 미국에 존재하고, 또 러시아로 도입되고 있는-고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혹은 자유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는 우리의 경제발전의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문제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의 지배 밑에서 어떻게 하면 장기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은 오직 자기들은 절대로 양들처럼 지배를 받고 살지 않겠다는 한 민족의 단호한 의지가 항구적으로 살아 있는 곳뿐입니다. (H. Gerth & C. Wright Mills, eds, From Max Weber, 73면에서 재인용)

 

잘 알려져 있듯이,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근대가 어떻게 해서 서유럽에서만 발흥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해명하는 데 크게 기여한 탁월한 ‘부르주아’사회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생애의 말년에 다가갈수록 근대적 합리주의에 의거한 자본주의체제가 필연적으로 관료적 지배구조의 강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런 상황에서 ‘영혼 없는 기계’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근대적 인간의 운명에 대해 심히 비관적으로 되어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고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립 불가능성을 명료하게 지적하면서도 사람들의 ‘단호한 의지’가 ‘항구적으로 살아 있는’ 예외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베버의 말에서 오히려 더 짙게 그의 비관주의를 실감할 수 있다. 관료주의에 의한 빈틈없는 관리, 통제가 행해지는 씨스템 속에서 몇몇 개인 차원이 아니라, 한 민족 혹은 국민이 집단적으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베버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맑스처럼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모순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전환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그밖에 자본주의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전망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생애의 끝까지 비관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의 비관주의는 섣부른 대안을 내놓는 것보다도 지적으로 훨씬 더 견실하고 정직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경제성장을 추구하면 할수록 권력의 집중현상과 관료주의적 지배구조가 강화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제성장은 현재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토대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며, 성장의 결과는 기왕의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완화시키기는커녕 그 불평등구조를 온존·심화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금 그러한 불평등구조는 계속적인 성장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원리에 비추어볼 때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나 어김없이 확인되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성장을 통한 ‘진보’와 ‘공존공영’의 추구는 처음부터 가망없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보편적으로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망념(妄念)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소비형태는 본질적으로 낭비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낭비적인 소비수준을 누릴 수 있는 인구는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의 어떤 지점에서도 세계인구의 소부분에만 국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의 균점은 자본주의의 성장 메커니즘이 결코 허용할 수 없는 것이며, 만약 실제로 균점이 실현된다면 이미 그것은 자본주의 씨스템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문제는 권력의 집중과 사회경제적 격차 이외에 그것이 자연을 끝없이 수탈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가공할 생태위기를 초래한다는 데 있다. 사실, 딴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지금 지구온난화 문제를 비롯하여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환경문제를 생각한다면, 인류 문명사회가 여전히 성장논리에 붙들려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막힌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파국보다는 당장의 현실이 급한 법인만큼, 지금까지 익숙해왔던 관성에 따라 우리는 더 많은 돈, 더 많은 생산과 소비가 더 좋은 삶을 보증해준다는 씨스템의 처방에 순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한 관성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삶은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뿌리가 뽑혀버렸고, 농민공동체는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붕괴되었다. 도시의 슬럼과 공장과 사무실과 가게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호혜적 교환관계는 완전히 낯선 것이거나 심각하게 왜곡된 형태로 주어질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가 홀로 도생(圖生)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확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무엇보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는 사고방식에 길들여지게 되고, 부분적으로 국가나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사회적 써비스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를 들어,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동조는 분명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뒤틀린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통해 의식주 기본생활의 충족은 물론, 이를 얼마간 초과하는 풍요로움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253면)은 정당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빈곤’은 본질적으로 물질적 결핍의 문제라기보다 인간다운 삶에서 좀더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 문제, 즉 민주적이며 호혜적인 인간관계의 상실에 따른 ‘삶의 질’의 열악함에 기인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금 당장에 호혜적 관계망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손에 넣어야 하고, 경제발전을 긍정하는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방식이 긍정될 수는 없다. 물질적 부에 의한 ‘풍요로움’이란 원리적으로 공생공락(共生共樂)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오늘의 생태적 위기라는 현실이 더이상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덮어놓고 가난을 찬미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가난이냐 하는 것이다.

백낙청(白樂晴)은 앞에서 인용한 구절에 이어서 “깨끗하고 품위있는 가난이 인간의 어떤 깊은 욕구에 상응하듯이 장엄(莊嚴)과 영화(榮華)에 대한 욕망 또한 중요한 본능인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오늘날 ‘녹색담론’의 일부에서 잘살아보겠다는 ‘대중의 정당한 욕구’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녹색담론’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령 『창작과비평』 100호 기념 심포지엄에서‘대국주의와 소국주의의 긴장’이라는 문제에 관한 백낙청의 논평 도중에 “우리가 장기적으로 지향할 면이 많은 소국주의로는 지금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에서 『녹색평론』 같은 잡지가 강조하는-새로운 안빈론(安貧論)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446면), 그것이 『녹색평론』의 입장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녹색평론』이 그동안‘가난’의 미덕을 강조하는 여러 이야기를 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행할 때 그것은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는’ 행위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우리 자신을 ‘들어올리는’ 행위”라는 아씨씨의 성인 프란체스꼬의 말을 인용하여 ‘가난’이 우리의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미덕일 수 있다는 언급도 했고, 그럼으로써 ‘깨끗하고 품위있는 가난’을 강조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녹색평론』이 가난 그 자체를 찬미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환기하고 싶다. 『녹색평론』이 말하고자 한 것은 늘 어울려 함께 일하고 즐기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였고, 그런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삶을 위해서는 ‘가난’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되풀이해 말했듯이, 경제발전 혹은 경제성장 논리의 근간에 있는 철저한 배타성의 원리로 보거나, 생태학적 한계를 보거나, 참다운 공생의 논리는 반드시 공빈(共貧)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녹색평론』이 적극적인 가치로서 강조해온 가난이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물질적 결핍상태를 기꺼이 감내하는 생활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생공락의 가난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옛 유교사회의 지배층 지식인들의 극히 엘리뜨주의적인 안빈론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가난의 정도가 아니라 가난의 종류이다. 공빈(共貧)과 안빈(安貧)은 전혀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가난인 것이다.

물자와 써비스의 절대적인 결핍, 그리고 거기에 기인하는 비참은 당연히 극복해야 할 문제이며, 그러한 극복의 노력을 경제발전이라고 한다면 그와같은 경제발전의 의의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가 출현한 이후 제국주의, 식민주의, 개발, 세계화 등 갖가지 이름으로 추진되어온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과연 세계의 풀뿌리 민중의 삶의 실질적인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가 그 역사 전체를 통해서 하나라도 있는가. 물론 경제규모와 물량의 총체적인 증가에 따라서 민중의 소비수준도 부수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이른바 적하효과(滴下效果)라는 것을 들먹이지 않아도 수긍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높아진 소비수준이라는 것이 민중의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성질이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경제발전은 민중의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근대화’를 초래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은 원리상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아니다. 부르주아경제학의 입장에서는 빈부격차는 상존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경제발전도 성장도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씨스템은 원래 ‘빈곤’을 제거할 수 있는 씨스템이 아니다. 빈곤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전개되는 경제발전은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빈곤을 만들어내고, 경쟁력이 약한 고리에 위치한 사람들을 비참한 곤경으로 내몰 뿐이다. 경제발전 혹은 성장의 논리는 생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를테면 ‘적당한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인가 하는 것이다. 백낙청은 “한번 낙오하면 항구적인 약자로 전락하기 일쑤고 약자는 강자로부터 사람대접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존 세계체제의 현실에서” 우리에게는 “부자나라 따라잡기를 지상목표로 삼고 최대한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방어적 성장을 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와 비슷한 뜻의 발언은 이른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에 관해 계속해서 말해온 백낙청의 근년의 작업에서 자주 되풀이되어왔다. 그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틀 안에서 성장을 하고 경쟁력을 추구하는 한, 일정한 환경파괴와 인간성의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시점에서 한국경제가 일정한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268~69면)

계속하면 환경도 파괴하고 인간성도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경제성장이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다-이러한 딜레마를 뚫고 나가자면 그야말로 엄청난 ‘지혜’가 필요할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결과, 아마도 고심 끝에 백낙청이 내놓은 처방이 ‘방어적인 경쟁력 노선’ 혹은 좀더 간단하게 ‘적당한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인 듯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적당한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하나의 추상적인 언술로서는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것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전략인지 분명치 않다. 이것은 마치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말이 추상적인 언술로는 그럴 듯하게 들리는 개념이면서도 정작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그 실천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지극히 모호한 것으로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와같은 사태의 모호성에 대해서는 백낙청 자신이 이미 어느정도의 불안감을 표시한 바가 있다.

 

근대 세계체제가 끝없는 자본축적과 그에 따르는 경쟁의 논리를 외면하는 일정 규모의 집단(뿐 아니라 실제로 대부분의 개인)들에게 불행을 안겨주고 심지어 멸망을 초래하는 한, 어쨌든 최소한의 적응과 경쟁력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겠다. 물론 일단 그 과정에 뛰어들고 나서 과연‘최소한’에서 멈출 수 있을지는 골치아픈 질문으로 남지만 말이다.(「한반도에서의 식민성 문제와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 『창작과비평』 1999년 가을호 18~19면)

 

경제성장이라는 경주(競走) 속으로 뛰어든 이상, 그 속에서 ‘최소한’으로 멈출 수 있을지 그것은 ‘골치아픈 질문’이 될 것이라고 하는 유보적 발언으로써 이미 백낙청은 ‘적당한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실현되기 어려운 난제임을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인용문에서도 드러나듯이, 백낙청의 강조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난제를 슬기롭게 뛰어넘어야 한다는 데 놓여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책임있는 자세’라고 그는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틀에 일단 ‘적응’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한, 어떠한 경우에도 ‘적당한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논리에 근거한 경제성장이란 언제나 가동(稼動) 가능한 모든 인적·물적 에너지를 전면적으로 투입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성장은 절제라는 개념과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며, 따라서 ‘자기방어적인 성장’이란 공연한 말놀음 이상의 어떠한 실질적인 의미를 갖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고도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어떤 경제성장이든 그 실현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자본과 국가의 결합에 의한 일종의 총동원 체제이다. 그러므로 성장지향 국가란 본질적으로 군사국가 혹은 권위주의 전제국가와 동일한 폭력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백낙청의 발언들 속에 이러한 근본문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인식이 얼마나 철저한가 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발전전략을 위해」(『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라는 글에서 그가 새로운 이념으로 제시하는 ‘생명지속적 발전’이라는 것도 그렇다. “생명의 발전에는 일정한 물질적 여건이 필수적이며, 어떤 영역에서는 물질생활의 지속적 향상이 요구될 수도 있고 이런 필요에 부응할 적극적인 개발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254면)는 그의 생각은 옳은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에 근거한 ‘생명지속적 발전’이라는 이념이 주류 환경론자들이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논리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말하는 ‘생명지속’을 위한 발전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생명의 지속에 필요한 물질적 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를 거부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러한 ‘물질적 여건’을 개선하는 작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의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여전히 물자와 써비스의 낭비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근대적 생활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양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정도의 적정한 소비수준을 누리느냐 마느냐, 혹은 얼마나 부드러운 성장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적당한 성장’이든 아니든 성장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방식에 대한 ‘적응’을 말할 게 아니라, 성장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다.

근대적 삶이란 근본적으로 재앙이며, 끔찍하고 잔인한 덫이다. 일찍이 도스또옙스끼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자의 불행을 당연시해야 하는” 근대적 인간의 숙명에 관해서 말했고, 이미 20세기 초의 일본에서 나쯔메 소오세끼(夏目漱石)는 민감한 영혼들에게 근대적 삶이란 그 속에서 “미치거나 종교에 귀의하거나 아니면 자살할 수밖에 없는” 잔혹한 족쇄라는 것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근원적인 의미의 폭력성 혹은 야만성은 근대가 본질적으로 자연-인간본성도 포함한-을 거스르는 것을 원리적으로 강제하는 문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에콜로지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근본문제는 그것이 순환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직선적인 ‘진보’를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메커니즘에 종속된 씨스템이라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모순이 해소되지 않는 한, 조만간 자본주의의 종언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대로 가면 자본주의의 종언보다 먼저 세상의 종말이 닥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불길한 징조는 오늘날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위기에 의해 점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시급한 것은 계속적인 생산력 증대를 통한 ‘진보’의 추구를 포기하고, 인간의 삶을 자연적 과정에 순응하는 순환적인 생활패턴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전환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돈과 기술과 에너지를 더 많이, 혹은 더 효율적으로 투입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찍이 이와같은 순환적인 패턴의 중요성에 대해서 뛰어난 인식을 보여주었던 맑스의 선구적인 통찰이다. 일반적으로 맑스주의자들은 생산력이나 과학기술에 의한 ‘진보’에 대해서 대체로 맹목적인 긍정의 태도를 취해왔고, 그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오늘날 생태주의자들은 심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맑스의 에콜로지』의 저자 벨라미 포스터(J. Bellamy Foster)가 강조하고 있듯이, 적어도 맑스 자신은 ‘물질대사 균열’(metabolic rift)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가져올 치명적인 생태학적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산업적 생산력의 증대를 일방적으로 긍정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맑스가 ‘물질대사’라는 개념에 주목한 것은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농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von Liebig)의 과학적 분석에 근거해서였다. 리비히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로 전개되고 있던 산업화된 농업이 토양열화(劣化) 현상을 불가피하게 하는 ‘약탈적 씨스템’이라는 것을 명확히 지적했다. 근대사회에서 식량과 섬유가 농촌에서 수백 수천마일이나 떨어진 도시로 운반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질소, 인산, 칼륨 같은 토양을 구성하는 필수 영양물질이 운반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운반된 영양물질은-인간이나 동물의 분뇨(糞尿)라는 형태로-다시 농촌으로, 땅으로 되돌아오는 대신 도시와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도시와 농촌, 인간과 자연 사이의 순환적인 ‘물질대사’가 교란·분열됨으로써 토양의 재생에 불가결한 자연적 조건이 파괴되고, 그 결과 생명과 부의 원천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토양열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서구 국가들은 식민지나 해외에서 비료를 들여오거나 화학합성 비료를 개발해왔다. 그러나 화학물질의 남용은 결국 토양의 황폐화를 초래한다. 그 결과, 이러한 근대농법의 확산으로 지금 세계 도처에서 농경지의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물질대사 균열’이라는 개념에 의거하여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어떻게 재생산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농업에 있어서 진보라는 것은 모두 노동자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토양까지도 약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정기간 동안 토양의 비옥도를 증가시키는 과정은 그 비옥도를 장기적으로 유지시키는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과정이 된다. 미합중국과 같이, 발전의 배경에 대규모 산업을 가진 국가에서는 이 파괴의 과정은 좀더 급속히 진전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기술과 생산의 사회적 과정을 발전시키는 것은 동시에 토양과 노동자라는 모든 부(富)의 본래적 원천을 손상시키는 것으로써만 가능하다. (『자본론』 제1권)

 

맑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만이 아니라 토양, 즉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까지 착취한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이 착취과정은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화가 대규모로 확대될수록 급속히 진행되는 것임을 지적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순환적인 대사(代謝)는 점점 더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맑스는 소농(小農) 혹은 소규모 생산자 연합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배우는 교훈은 (…) 자본주의체제는 합리적 농업에 반하거나, 혹은 합리적인 농업은 자본주의체제와는 (설령 이 체제가 농업의 기술발전을 촉진한다 하더라도) 양립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농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소농이나 혹은 연합된 생산자들에 의한 관리이다. (『자본론』 제3권)

 

‘합리적 농업’이라는 것은 물론 토양을 고갈시키지 않는, 항구적 지속이 가능한 농사이다. 맑스의 논리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의 산업화된 대규모 농업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의 산업화된 집단농장도 역시 합리적인 농업, 즉 지속가능한 농업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소규모 농민 혹은 그들의 연합체이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한 데에 맑스의 생태학적 형안(炯眼)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체제를 분석할 때, 늘 농업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점에서도 농업이 필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합리적인’ 농업이란 문명사회가 이 지구상에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순환적인 생활패턴을 지속적으로 강구할 수 있게 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그 ‘합리적인 농업’에 필요한 소규모 생산자 연합체, 즉 농민공동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민주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보장해주는 근본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소농 혹은 소생산자 연합체를 떠나서 ‘합리적인 농업’이 불가능하다는 맑스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지침이 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공할 생태적 위기는 본질적으로 세계농업의 위기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농업은 맑스가 정확히 예견한 대로 고도로 산업화되어, 엄청난 석유와 화학물질과 기계에 의한 영농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와같은 현대식‘과학영농’은 단기적인 생산력 증대에 기여했는지는 모르지만, 항구적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확연해지고 있다. 재작년 이후 국제곡물시장에서 밀과 옥수수의 가격이 그 전년에 비해 2~4배나 폭등한 것은 여러 징후로 보아 앞으로 이런 추세가 확대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세계의 곡물작황의 이런 추세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지만, 실은 오랫동안의 산업적 영농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세계 전역에서 농경지가 광범위하게 사막화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최근의 생물연료용 식물재배지의 확대로 인한 농지의 급속한 축소도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불길한 것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 밑에서 세계 전역에서 소농과 그들의 공동체가 급속도로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농민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敵)은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자본은 ‘자유무역’이란 허울좋은 이름으로 농산물 시장개방을 강요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개방의 목적이 농업대국, 특히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처리하기 위한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방대한 토지에서 막대한 국가보조금까지 받아 생산된 농업대국의 잉여농산물이 세계시장에 헐값으로 쏟아질 때, “한줌밖에 안되는 땅뙈기와 당나귀 한마리”뿐인 멕시코나 한국의 소농들이 거기에 대항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가령 한국의 권력 엘리뜨들과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의 확대를 옹호하면서, 농업이 살려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수십년이나 계속해온 공허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더 나아가 거의 노골적으로 농업 자체를 그만두자고 하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이제 그들은 “비싼 땅값은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기에 공급확대가 필요하고, 따라서 ‘농지보존’이라는 토지정책은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심지어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식량비축이 필요하지 농지를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농지보다는 곡물딜러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한 안보수단이다”라는 과감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망국병 비싼 땅값-전문가 좌담」, 『매일경제신문』 2007.4.25) 아마도 이러한 사고(思考) 혹은 사고력의 결핍은 지금 이 나라의 기득권층은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농사경시 풍조를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현상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인수위원회도 갖가지 ‘개혁안’을 쏟아내는 와중에 ‘절대농지’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더라도 계속해서 이렇게 농업을 천대하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한국은 지금 석유에너지 수입으로는 세계 7위, 농산물 수입은 세계 4위 국가이다. 게다가 고작 20%대의 식량자급률도 갈수록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게 오늘의 현실이다. 조만간 세계의 석유생산이 정점에 오를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도 여러해가 되지만, 만약 이런 예측이 현실이 되어 석유값이 폭등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한번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석유라는 원료를 싸게 수입해서 그것을 가공하여 수출함으로써 성장을 해왔고, 단기간에 압축적 산업화도 이룩했던 한국경제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더 계속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까지 거의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해왔던 근대적 농업 자체도-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뿌리부터 거덜날 것이 분명한데, 그렇게 되면 설령 돈이 있다 한들 어디서 식량을 사들여올 것인가.

게다가 지금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자본주의 씨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고려하면, 농업·농촌·농민의 존재의의는 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거품경제를 토대로 한 그 허구성 때문에 조만간 붕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미 그 붕괴의 징후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위기로부터 우리의 삶을 보호해줄 수 있는 궁극적인 토대가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도 자립적 농민경제와 그것을 둘러싼 지원체계의 복구는 시급한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산업문명이 농업문명에 대한 진보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근대주의적 발전사관의 덫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의 지도적인 농업사상가로서 소농 중심의 향촌건설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원 톄쥔(溫鐵軍)에 의하면, “인류사회가 산업문명으로 들어간 것”을 진보라고 보는 것이나 동아시아 소농사회를 ‘낙오된 사회’라고 간주하는 것은 큰 착각이며, 오늘날 뒤늦은 근대를 추구해온 동아시아 사회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여 완전히 근대적인 설비를 갖춘 현대식 농업을 꿈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다. 그는 공업화의 원리를 적용하여 대규모 기계화 농업을 추구한다면, 그 결말은 동아시아 농업의 파멸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그는 그러한 ‘현대식’ 농업이란 “유럽인들이 일찍이 세계 도처에서 행한 대규모 살육의 산물”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세계화와 중국농촌」, 『녹색평론』 2006년 3-4월호)

우리가 소농과 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많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는 ‘대량살육’에 기초한 문명을 우리가 더는 옹호해서는 안된다는 데로 집약될 수 있다. 모든 징조로 보아 상황은 낙관적인 전망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참은 더 자본주의 근대의 폭력적인 독주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독주에 맞서서 ‘비근대적인’ 삶의 양식을 보존·확보하려는 세계 전역에 걸친 풀뿌리 저항운동이 바로 이 시각에도 다양한 형태로 끈질기게 조직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그러한 저항운동에 합류하는 데서 희망의 길을 발견해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