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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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 金重植

1967년 인천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황금빛 모서리』가 있음. uuyouu@naver.com

 

 

 

홍은극동아파트의 오후 4시

 

 

암자다.

새벽 4시 같은

불안한 영원이다.

 

누구도 모르는 유령의 시간이다.

없이 사는,

없는 것처럼 사는,

지는 해에 광합성하는,

풍(風) 맞은 이들의 재활원이다.

우째 사는 일이

마른 낙엽 밟히는 소리를 내나,

두 손을 떠는 게

자기 음악에 취한 지휘자 모습이지만

줄인형처럼 성긴 관절과 근육

바스락거리는 것은 몸이 김샜다는 물증

 

실외에서 실내화를

질질 끄는 소리뿐.

씽씽카라도 한대 오가면 곧 사라질,

구르는 바퀴에 걸리적거린 적 없는

시간의 암자

스스로를 비켜주는 이슬.

 

 

 

난리도 아닌 고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새는 새고,

산은 산이다.

새소리도 산의 고요에 한몫하는

평일 저물녘 하산길.

 

실제상황이다.

산 전체가

비명(悲鳴)으로 연대(連帶)하고 있다.

난리 때 봉화가 그랬을까,

매 한마리 떴을 때

무인도 갈매기가 통째로 이륙하듯

난리다.

난리도 아니다.

 

어미새들은 헬기 자세로 솟구치다

뒷덜미를 낚아채인 고양이처럼

횡(橫)으로 미끄러진다.

두 발 두 날개 온 깃털들이

강풍에 뒤집히는 순간의 우산 모양이다.

역방향의 긴장이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새들은 목이 쉬고

산은 꿈쩍도 않는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는 왜 이미 다리가 풀렸고

세상은 실제상황 속인지,

내려다보이는 서울 서북지역은 아무렇지도 않게

함부로 고요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