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학초점

 

서정의 원리와 여성의 타자성

류외향 시집 『푸른 손들의 꽃밭』

 

 

김신정 金信貞

문학평론가. 저서로 『정지용 문학의 현대성』, 주요 평론으로 「다른 얼굴들, 타자의 기미(幾微)를 향한」 「감각과 소통, 자본의 네트워크」 등이 있음. lavue@hanmail.net

 

 

푸른손들의꽃밭류외향(柳外香)의 시는 한국 시에서 서정성과 여성성이 관계맺어온 방식을 새로운 차원에서 탐구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근대시의 형성 과정과 근대적 자아 구성의 기획 속에서 여성성은‘근대성’과‘미학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작동했다. 자아와 세계가 정서적 동일화를 거쳐 서로 융합하는 서정성의 원리가 여성성을 통해 시에 구현되는 과정은 한국 현대시 100년의 풍경 가운데 흔히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다. 20세기초, 여성 화자, 여성적 정서와 언어가 근대적 자아의 동일성을 확보하고 내면 체험을 드러내는 미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했다면, 최근 시에서도 여성의‘몸’은 자주 서정적 합일의 효과적인 매개체이자 담지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주목할 사항은 이 과정에서 서정성과 여성성이 서로의 씨스템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지점에 있다. 서로 다른 자아와 세계가 동일화되는 과정이‘여성’을 매개로 구현될 때,‘여성’은 서정적 자아의 공고함을 확인시키는 타자적 존재로 기능하거나 서정적 합일을 선험적으로 성취한 대리물(代理物)로 작용함으로써 서정시의 공식적 문법을 관습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서정시의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여성’의 기호 역시 종종 생물학적 본성에 기초한 여성성으로 환원되거나 역사성을 탈각한 존재로서 재현되었다.

류외향의 두번째 시집 『푸른 손들의 꽃밭』(실천문학사 2007) 또한 기본적으로 자아와 세계가 상호 침투하며 융합하는 서정적 체험의 보편 구조에 충실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가 보여주는 독특함은 자아와 타자가 서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변화하며 새롭게 생성되(하)는 지극히 미세한 과정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류외향 시에서 자아와 타자는 서로의 경계를 조금씩 지워가면서 서로에게 스며든다. “내가 바다에 이를” 때 “바다의 숨통 속으로/어둠이 막 들어차고”, “내가 바다에 가슴을 내밀” 때 “해안선이” “다가와” “내륙에 박힌 단단한 슬픔의 뿌리를 휘감고 출렁거”리며, “내가 바다에 입술을 내밀” 때 “오랜 병중에 있던 빈집들이” “함께 병중에 든 바람을 안고 무너져 내리”듯이(「바다조곡」), 자아가 세계를 향해 “오체투지”하며(「나 언제 저 배와 같이」) 다가갈 때, 세계 내의 존재들은 “서로의 몸을 부비고 쓰다듬”으며(「바람의 지문」) 분주히 서로의 경계를 넘나든다. 주목할 것은 이 활발한 서정적 운동이 (자아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것이거나 (자아와 세계가 서로를 교환하는) 상호 침투의 과정이 아니라, 무수한 사물의 다발들이 여러 방향으로 제각기 움직이는, 예측할 수 없이 다각적인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류외향의 시에서‘내’가 한 사물에 다가갈 때 사물은 반드시‘나’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는다. 한 사물을 향한‘나’의 시선은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그리고 또다른 사물로 번져나간다. 그리하여 “풀들의 몸을 관통”한 바람 때문에 “오십육억 칠천만의 풀들”이 “한 몸이 되”듯이(「바람의 지문」), “모든 것은” 서로 “연루”되기에 이른다(「그녀와 물푸레나무」). 이 서정적 합일의 운동에 서로 “연루”되는 존재들, “내 품 안에서 일어나는 균열”(「난생을 만나다」)을 겪은 그들은 자유롭다. 그 자유의 순간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우우, 그의 육중한 울음 속으로/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걸어 들어가면/파르르 떨리며 저항하던 내 껍데기들/귀가 벗겨지고 눈이 벗겨지고 입이 벗겨지고 몸이 벗겨지고/일순 죽음과 같은 고요가 들어찬다”.(「저 들판 속에 짐승이 산다」)

이 서정적 운동의 과정에서 류외향 시의‘여성’이 현현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류외향 시에서 여성은 스스로 서정적 자아의 권위적 공간을 구성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남성적 자아에게 호출되거나 전유되는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시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을 바라보는 서정적 화자의 관찰적 시선이다. 앞의 인용시 「저 들판 속에 짐승이 산다」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자아의 탈각과 동일화의 순간을 지나, 홀로 서야 할 고독한 개인의 자리로 돌아온다. “다시/베란다 통유리 너머로 한 마리 거대한 짐승을” 건너다 보는 것이다. 이 “기묘한 고독”(「깨금발 아이」)의 자리에 선 화자의 비껴선 시선은 관습적 장치나 호출된 기호로서의 여성이 아닌 타자성의 기표로서의 여성, 역사적 현실 속의 여성을 주목하게 하는 힘이 된다. 가령, “어둠 속에서 알몸의 여자가 튀어나왔다 (…) 행인들은 모두 그녀를 목격했으나 아무도 그녀와 연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그녀와 물푸레나무」), “개를 업은 그 여자/얼마나 긴 미궁을 걸어왔을까/무수한 이정표들이 땟물로 젖어든 강보를 두른 여자”(「그 여자」) 등의 형상 속에서, 시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중심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채, 끝없이 주변을 헤매는 타자적 존재로서 특유의 빛을 발하고 있다.

류외향 시의 여성성에서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같은 타자로서의 여성의 형상이 어느 하나로 고정되거나 정체되지 않고 시집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버려진 그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녀, 그러나 “젖몸살의 생채기가 흥건”한 채 “허위허위 걸어가”는 그녀(「그 여자」)는 “흐르고 흘러” “무덤” 속으로, “무한 어둠 속”으로(「그녀와 물푸레나무」) 들어가고, 이름없는 무수한 존재들을 깨우고 쓰다듬으며 그들과 더불어 충만한 융기와 합일의 순간을 이루어낸다. 류외향 시에서 헤아릴 길 없이 아득하게 뻗어나가는 무한한 시간성 또한 이처럼 수많은 존재들의 소멸과 변화, 생성과 운동의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과정에서 타자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정체성과 그 광활한 운동 과정에 대한 시인의 관찰은 무수한 타자들에 대한 시선으로 확장된다. 이번 시집에 그려진, 미군 헬기가 밤낮으로 떠다니는 대추리의 “낮은 숨소리”(「2006년 봄, 대추리」), 팔레스타인에서 온 젊은 시인(「머지 않은 훗날, 그때에는」), 한쪽 다리가 접혀진 깨금발 아이(「깨금발 아이」), 피난 가는 중동의 소녀(「피난길」) 등의 시적 형상은, 여성의 타자성에 대한 성찰이 광대한 역사와 현실, 문명과 자연, 공동체적 체험과 고독한 개인, 그리고 현실과 환상을 아우르는 웅대한 상상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상상력의 크기야말로, “날마다 누군가 아프다고 타전해 오고 나는/그 아픈 손가락을 찾으러 간다”(「당신을 찾으러 간다」)는 시적 진술에서 드러나듯이, 모든 이름없는 존재들을 향한 뿌리깊은 공감과 반향에 깊은 연원을 두고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시집의 화자가 타자의 공감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화자 스스로 동일성을 구현한다거나 서정적 합일의 운동을 주도해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나’는 다만 “그 여자 뒤를 밟다/그 여자 미궁 속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거나(「그 여자」) 때로는 “어떤 몸짓으로도 소통할 수 없는 이방인의 눈”(「바람의 지문」)으로 “아픈” 존재들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 서정적 통합의 주체로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시적 화자의‘비껴선’시선은 그 통합의 그물망에 얌전히 포획되지 않는 무수한 타자들의 운명, 그리고 그 서정적 통합의 자동화된 운동 과정에 편승할 때 서정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서정시의 운명을 정확히 포착해내고 있다. 역사적 타자로서의 여성성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타자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으로 확장된 류외향의 시학은 우리 시의 서정성과 여성성의 관계맺음에 창조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류외향이 이번 시집에서 창조한 “개를 업은 그 여자”, “개가 먹다 남긴 우유 몇 방울 입 안에 털어놓고/붉은 네온사인 점멸하는 골목 어느 모퉁이를 돌아가는” 그녀의 고단하고 질긴 뒷모습은 여성(타자)의 역사성과 생산적 계기를 돌아보게 하는 인상적인 형상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