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현란한 환경 이미지에 덮인 사회현실

 

 

김기윤 金基潤

서울대 강사, 과학사 kiyoonkim@hanmail.net

 

 

인간없는세상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은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 이한중 옮김)에서 인간이 지구 경관과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그 여파가 미래에 어떤 양상으로 계속될지를 집요한 자료 섭렵을 통해 믿음직해 보이는 연구결과를 동원하여 생생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극적이고 흥미로운 전개를 위하여 지금 당장 인간이 사라진다면, 우리 주변의 자연경관 및 인공물들이 어떻게 변화해갈지 상상해보는 서술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때로는 전하고자 하는 메씨지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주제들을 더해 넣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지난해 말 이 책은 많은 언론매체에서‘올해 최고의 논픽션’으로 평가되거나‘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더없이 긍정적인 소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찬사의 합창이 반갑지만은 않다. 사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안들은 피상적으로 진술되고 있으며, 흥미를 위해 삽입된 현란한 내용들이 매우 혼란스러운 메씨지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인간을 한쪽에, 나머지 모두를 다른 쪽에 이분법적으로 배치하여 그 관계를 다룸으로써, 이 책의 환경론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호도하는 문제점이 따른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환경론의 언어와 이미지 들이 던지는 복잡한 메씨지의 작동방식을 조심스럽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어떤 내용들이 독자들의 경탄을 자아냈는지는 분명하다. 인간이 사라진 후 이삼일이면 지하철 통로의 침수가, 이삼년 후면 고속도로의 붕괴가 시작된다. 이삼십년이면 가옥의 붕괴가 일어나고, 이삼백년이면 식생의 천이가 문명의 흔적을 가리기 시작한다. 미국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열핵폭탄은 태양이 지구를 집어삼키게 될 오십억년 뒤까지도 맹독을 완전히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하여 동원된 이야기 중에는 상당히 먼 과거나 미래를 다루고 있어 지금 현재의 문제들과 동떨어진 것처럼 들리는 것들도 있다. 게다가 그것들은, 예컨대 아메리카의 매머드가 인간에 의해 절멸되었는가에 대한 논란처럼 대개 불확실한 가설에 기초하고 있다. 초기 아메리카인들의 창살이 아니었다면, 화석이 되어 북미의 박물관에나 전시되어 있는 황소만한 아르마딜로를 오늘날 동물원에서 볼 수 있을까? 또한 20세기를 거치면서 아메리카인들의 주식이 되어버린 소 대신 매머드가 북미의 초원을 뒤덮고 있을까? 그런데 매머드나 자이언트 아르마딜로가 활보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심미적 만족감을 느끼게 될까? 그 수가 많지 않았던 석기시대 사람들이 정말 그 많은 종류의 대형동물들을 사냥으로 절멸시킬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검치호나 글립토돈이 고양이나 도마뱀보다 더 바람직한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에서 제시되는 에피소드들은 환경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라는 초점을 흐리고 있을 뿐 아니라, 환경문제에 대한 지나치게 단선적인 시각도 드러낸다. 예컨대 불과 오십년 전부터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제품들은 이미 대양 대여섯군데에서 거의 작은 대륙만한 크기의 쓰레기바다를 이루며 떠다니고 있다. 당장 인간이 사라진다면, 이 쓰레기바다가 더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들을 먹고 동물들이 죽어가는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플라스틱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분해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환경의 성격뿐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의 성격, 나아가 문명의 성격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간 개체군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조직이나 작동방식에 대한 언급 없이, “자발적 인류멸종운동”(VHEMT)을 논의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진술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인류 전체를‘우리’라고 부르며 여러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럴 때 인류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드러날 여지는 없어진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과 대형 승용차로 출근하는 사람 그리고 저자의 주 관찰대상이자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시간 이상 걸어서 출근하는 시급노동자들 사이의 차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환경파괴에 대한 독자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화학무기 잔여물이나 열핵폭탄 잔류 방사능물질은 이론의 여지없이 바람직하지 않은 인공물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것들이 미래에 얼마나, 어떻게 바람직하지 않은 존재로 우리를 괴롭히게 될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들에 대한 저자 자신의 판단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열핵폭탄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열정의 산물인가를 암시하면서도, 인간이 건드리지 않는 한 폭탄이 저절로 폭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적시한다.

한국의 독자들도 이제 난지도가 살아났다거나 비무장지대의 동물상을 보존하자는 등의 논의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런 종류의 논의들은 1980년대 후반, 당시 버려진 지 불과 십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생화학무기 처리시설이었던 미국 콜로라도주의 로키플랫과 로키산 병기고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시작되었다. 로키플랫은 플루토늄 뇌관 생산시설이 있었던 곳이며 로키산 병기고는 소이탄, 네이팜탄은 물론 각종 생화학무기를 만들던 시설이었다. 그런데 그 핵물질, 생화학무기 또는 쓰레기나 지뢰가 묻혀 있는 장소들이 야생 동식물들의 낙원으로, 그것도 십여년 사이에 돌변하는 모습이 되풀이해 이야기될 때 현실의 핵전쟁, 생화학전 또는 전쟁 일반에 대한 독자들의 감각은 무뎌지지 않을까.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동자, 기술자, 과학자 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삶과 이력 그리고 건강한 희망을 담은 삽화를 끼워 넣음으로써 자신의 진보적이고 건설적인 세계관을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영국에서 동물학을 공부한 마사이족 출신의 쎄렝게티 국립공원 수렵감시원 또는 비무장지대의 동물에 애착을 지닌 한국의 조류연구가나 사진작가의 간단한 이력을 소개함으로써 케냐인들이나 한국인들의 삶과 생활 그리고 환경을 보여줄 수는 없다. 국립공원으로 변한 생화학무기 처리시설 이야기, 별 일 없는 듯 살고 있는 체르노빌의 동물과 노인 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시민 골프장으로 변한 난지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우리는 생화학무기가 만들어지는 혐오스러운 정치상황이나 곧 죽어갈 동물들과 노인들 또는 난지도에서 살며 일하던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혹시 『인간 없는 세상』 같은 요란하게 눈을 끄는 책을 소리내어 읽는 동안, 인간세계를 특징짓는 환경 불평등, 무분별한 개발, 어이없는 소비행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감성이 짐짓 덮여버리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