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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경원 朴敬元
1954년 전북 익산 출생. 1975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k1park1@hanmail.net
나만의 인생, 어느 소년한테서 발견한
한 소년이 지금 막 복도를 달려간다
순간에 지나지 않을 시간 속을
달려간다, 동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교실들 옆의 조금 어둡고 텅 빈 긴 복도를
달려간다, 방금 머리에 떠오른
기발한 어떤 장난질거리에 사로잡혀
거기, 어쩌지 못하여 금세라도 넘쳐날 것만 같은
기쁨이 번득인다
지금 소년의 마음이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누르려는 마음이 넘쳐나려는 마음을
아니면 누르려는 쪽이 넘쳐나려는 쪽을 겨우
다독이고 있음을
들여다본다
내 인생은 이와 같다
장난질을 생각하며 기뻐하지만
실은 심각하고
심각하지만 실은 거의 장난이나 그 비슷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순간의 범위 안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아마도 정작 진짜 장난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작 진짜 장난이 시작되기도 전에
조금 어둡고 텅 빈
길게 느껴지던 복도의
끝은 나타난다
두근거림이란 결국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진짜 장난은
죽음 뒤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에서 머리로 전해 내려오는 이미지처럼
장난은 금단의 열매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살아생전에 그것을
맛보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그것이 금단의 열매이며
그 때문에 머리에서 머리로 전해지고야 말 뿐인 것이겠지만
내 인생이 키스처럼 혀에서
혀로 전해지는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으리
그래서 그 무슨 실체를 맛볼 수 있는 것이었으면
충고
이보게, 사마천이 자네
불알 두 쪽 다 떨군 마당에 새삼
그따위 역사책 나부랭이는 써서
무얼 하시려는가
분하고 분하거들랑
혀를 칵 물고 죽어버리시든지
그러기 곤란하시거든 차라리
남은 돈 은행에 넣어두고
그 이자로 여생이나마 마음 가벼이 지내다가
떠나실 일이지
새삼 책은 써서 무슨 영화 보잤단 말이신가
그저 문사철 떠외는 이들의 밥벌이 감으로야
더할 나위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래 그토록 부실한 치아를 악물고서라도
쓰셔야 하겠는가
밑씻개를 하기에도 마땅찮을 종이를
기어코 생산하시겠다는 말인가
이빨이 부스러져
입 안이 모래 씹은 것처럼 된다 하여
서역의 사막이 자네 아가리에서 시작되더라고
수선을 피울 셈이신가
그런 일 세상에 없다는 것
자네 빼놓고는 다 안다는 거
왜 모르시는가
자네가 하는 짓이 종내에는
자네 몸에 칼 들이댄 새끼와
그 새끼의 새끼들의 칼날 갈아주는 일임을
왜 모르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