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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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림

박채림 朴彩林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2학년. 1984년생.

sadpsyche@naver.com

 

 

 

베로니카1

 

 

우리는 애초에 하나의 몸이었다. 아니, 몸짓이었나?

 

나는 당신 손등에 잘못 그어진 흉터. 지난밤 꿈에 길게 칼자국 남긴 얼굴 가린 귀신. 당신의 잘 웃지 못하는 왼쪽 입꼬리. 저장도 안하는 참 못나온 쎌카. 당신이 태어날 때 처음 보고 놀란 그 환한 빛처럼, 나도 버튼이 잘못 눌린 복사기에 얼굴이 끼었을 때 태어났어요. 그 환한 빛 말이죠. 내가 어머! 하고 부끄럽게 비명을 질러보았는데요. 그 순간에도 나는 스무개, 서른개로 늘어나고 있더란 말이죠.

 

우리는 죽은 쥐들과 귀신 들린 인형과 벌레들이 우글대는 베개 등등. 캄캄한 지구에서 신나게 달리기를 하는 중이죠. 시든 꽃을 들고 제일 먼저 당신에게 도착하면 신나서 팔짝팔짝 뛰어올라요. 잘못 도착한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네요. 누군가 우리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전에 최대한 수줍게 웃으면서 악수 청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어요.

 

깜찍한 상상들 지겨워요. 우린 그냥 하나의 소문일 뿐인데요 뭘. 내가 나랑 또 나랑 나들이랑 손에 손잡고 귓속말로 내가 누구인지 수소문하는 동안 살비듬이 떨어져나가듯 내가 또 한움큼 세상에 나동그라졌어요. 꽉 잡아. 이런 말 할 새도 없었죠. 스무개 서른개씩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나를 왕창 흘리고 다녔어요.

 

저기 사납게 쏟아지는 빗방울 보이나요. 저 신나게 튀어오르는 물의 분열증. 창밖을 서성이며 호시탐탐 안을 노려보는 형형색색의 눈동자들. 깨어지고 다시 손잡기놀이 하며 소리 지르고 웃고 울고 발악하는 한바탕 술래잡기. 수없이 얼굴 바꾸며 쏟아지고 지워지는 지구의 상상. 나였는데 다시 보니 당신이었고 또 그였으며 이젠 그녀였는데 알고 보니 다 나더라 아니 다 당신이더라 하는 물기 어린 말장난.

 

저기 찌라시 같은 내가 보이네요. 그래요. 우리는 애초부터 과대광고였어요.

 

 

 

맛있는 입술

 

 

나를 만져봐도 괜찮아요. 경멸하는 얼굴이라면 나쁘지 않겠지만 당신의 부끄러운 표정은 견딜 수가 없으니 그냥 무심하게 만져보세요. 간지럽지 않아요. 할퀴거나 하지 않을게요. 우리 주인님 손톱 끝에 매달린 무수한 눈알들은 매번 붉게 충혈되어서는 도로록 도로록 빨주노초 검은자위를 굴리고는 했는데요. 내 털을 헤치고 맨살로 만져지는 시선들 때문에 나는 밤새 간지러워서 몸서리를 치곤 했어요. 그러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뭣하면 보답하는 뜻에서 오늘밤 부엌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도 좋겠네요.

 

나는 그냥 고양이고요, 두개의 코트를 입고 있어요. 얼룩말과 겨울 하늘이 교차할 때마다 밤과 낮이, 어제와 오늘이, 주인님과 당신들이 자꾸만 몸을 바꿨어요. 무수히 내 몸을 애무하는 당신들과 주인님과 얼룩말과 겨울 하늘이 가난한 표정을 내 몸에 돋을새김할 때마다 나는 몇번이고 기꺼이 죽었어요. 그러고는 꿈 한자락에 내 웃음소리를 묻혀갔잖아요. 주인님과 당신들은 자꾸만 악몽이라고 나를 원망했지만요.

 

주인님이 풍선 불듯 내 항문에 공기를 불어넣어요. 말랑말랑한 내 몸이 애드벌룬처럼 마구 부풀어오르네요. 생선 비린내 진동하는 내 얄미운 입술에 입 맞춘 주인님 때문에 나는 또 간지러워서, 둥실둥실 떠올라요. 발밑의 지구는 슬프고 황홀한 오렌지빛이에요. 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과 비슷한 모양새라서 더 슬픈걸요. 저기 긴 실타래 풀고 있는 주인님의 얼굴이 보여요. 따듯한 달에 입 맞추려고 나는 더 높이 높이 떠올라요. 주인님의 저 순진한 눈알들이 보이나요. 저 슬픈 상상들을 포식하는 달의 작은 입술에선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나요. 부럽다고 데룩데룩 소리치는 눈알들은 사실 내 뱃속에 모두 있어요.

 

나를 만져봐도 괜찮아요. 내게 입 맞춰도 괜찮아요. 창문은 아무래도 좋아요. 내 분홍색 배를 뒤집어 귀를 대봐요. 괜찮아요. 세상엔 맛없는 욕망들도 있는 법이죠. 달도 눈알도 악몽도 모두 내 뱃속에 집어넣고 휘휘 저었어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저기요. 뭣하면 그 입술 잠깐 베어 물어도 괜찮나요. 아주 잠깐인데요 뭐. 짧은 키스라고 생각하면 되는걸요. 네. 아주 잠깐만요.

 

 

 

지구 로맨스

 

 

저기 지구의 푸른 얼굴이 보여. 달보다 먼저 태어난 저 먼지투성이의 별이 우주를 구르는 푸른 구슬이 되는 것을 나는 여기서 지켜보았지. 달의 인력이 생겨나기 전, 단조의 멜로디로 공명하는 우주가 하나의 외톨이였던 시절에 말이야. 속이 텅 비어서 배고프다고 징징 울어대는 저 달이, 바다라는 한점 물방울을 장난감 삼아 흔들어대기 전부터.

우리의 뾰족한 빛이 저 먼지 같은 사람들의 부푼 상상력을 찔러대고 저 대책 없는 손가락들이 우리를 서로 이으며 달콤한 말들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가끔씩 몰래 자리를 바꾸면서 너무 오래돼서 닳고 닳은 로맨스를 묵묵히 들어주었지. 누군가 달에 불시착했다는 농담이 한참이나 우주를 떠돌았을 때,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수줍게 웃었어. 깜찍하게 반짝, 윙크를 날려주었지. 달은 지구의 몽상, 달은 지구의 첫사랑이야. 밤이면 오만가지 색으로 캄캄한 허공을 맴도는 모든 생명체들의 꿈이 무중력으로 날아다니고, 잃어버린 말들이 기포처럼 톡톡 터지지. 밤이면 우주의 오선지를 맴도는 별들이 만들어내는 요란한 음악소리. 사람들은 어째서 저토록 쉽게 쓸쓸함을 믿는 걸까. 끝끝내 구애가 받아들여지지 못한 소년처럼 지구는 몸에 무수한 상처를 새긴 서글픈 여인으로 달을 위장했어.

자신이 그토록 미개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온 우주를 구하는 공상에 빠지는 몽상가 소년. 저 눈깔 두개밖에 없는 지성들이 우리를 계산할 때, 우리가 한발짝씩 뒤로 물러나 자리바꿈하는 것도 모르지.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의 외톨이가 되기 위해 악몽을 지구 밖으로 송신하는 동안, 낯선 별들이 외계 지구를 향해 수줍은 러브레터를 답장으로 보내기도 했잖아. 저 초록 소년을 봐. 반짝이지도 않으면서 저토록 순진하게 웃는 얼굴을. 하루에도 몇개의 행성이 폭죽처럼 터지고, 아직 터지지 않은 말들이 우주를 끝없이 여행하는 동안에도 달은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을걸. 아직 배가 차지 않아요. 저기 등 돌린 달이 저 작은 손을 휘휘 저어 보이네. 바람처럼.

 

 

 

플루토 Pluto

 

 

1930년 소행성 134340

 

여긴 내 꿈속이에요. 저기 태양과 얼굴 맞대고 있는 작은 별에서 당신이 건너오네요. 당신의 화면에 흰 입김이 차올라요. 느린 몸짓으로 내 뺨을 쓰다듬는 당신. 나는 수줍어서 조금 더 얼어붙어요. ㅍ, 뭐라구요? 발음할 때마다 어쩐지 발랄하고 외로운. 그게 내 이름인가요?

 

2001년 플루토 익스프레스

 

이건 당신의 꿈이에요. 나는 여기 삐딱하게 고개를 비틀고 마음 내키는 대로 우주를 뛰어다녀요. 저기 멈추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트라이앵글쯤 될까요. 나는 저기 아직도 살아 있는 자들의 그리운 이름이라고 누군가 말해줬어요. 나는 그냥 여자애면 안될까요? 아니 그냥 소년이어도 좋아요. 저기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어쩌다 내게 닿으면 내 못생긴 어깨가 더욱더 움츠러들고는 했는데. 어쩐지 발은 가볍게 춤을 추고 있네요.

 

2006년 뉴 허라이즌스

 

나는 -230도의 피부를 가졌어요. 나는 말을 모르는 가난한 목소리. 당신의 화면에 비추는 몸 없는 몸짓. 의미불명의 서투른 손짓으로 말해요. 저기 목성을 지나 느린 속도로 어지러운 궤도를 따라오는 당신이 보여요. 나는 여전히 못생긴 얼굴이고, 혹은 지워진 이름이래요. 몇몇 사람들이 죽은 꿈들을 내 명부에 기록하고 떠나갔어요. 나는 많은 것을 얼려둘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이 뜨거운 말을 묻고 갈 때마다 몇번이고 어지러워서 나동그라지고는 했지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오래도록 우주의 차가운 온도를 온몸으로 가두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지금은 당신의 천천한 유영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가 서툰 몸짓으로 만나면요. 괜찮나요? 내가 살짝, 웃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심사평

 

시쓰기에서의 넉넉함이나 새로움을 운문적이냐 산문적이냐 하는 관점에서 살펴볼 일만은 아니다. 시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세계와 우리 자신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셈이고, 그‘무엇인가’는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진실로 밝혀준다. 시는 단순한 운율이 아니라 구체적 알맹이인 리듬, 즉 이미지로서 존재한다. 때문에 시적 이미지의 본질적인 새로움은 말하는 이가 존재의 창조성을 얼마만큼 실현했느냐에 달려 있다. 운문적 형식이든 산문적 형식이든 자신의 절실함을 빼어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시적인 것에 도달한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서로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모두는 오늘날 시의 성취가 될 수 있다.

제6회 대산대학문학상 시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의 산문화라는 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대학생들은 온갖 욕망들이 들끓는 도시의 삶 사이에서 발생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산문적 형식으로 고문하고 비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쓰기일수록 자신만의 내면화된 기법이 요구되며, 개체적 존재의 세속성과 욕망의 미세한 균열을 자신의 시 속에 드러낼 수 있는 변별력 있는 목소리가 요구된다.

심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여 진행했고, 1차 심사를 거쳐 압축된 13명의 시들이 최종심에서 논의되었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박채림의 「베로니카」 외 3편은 언어의 세공이나 시적 개성의 새로움에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시인은 재기발랄하고 그로테스크한 발상을 잘 아우른다. 자아란 상충되고 보완되는 다발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피해의식에 물들지 않은 21세기적 감수성으로 전해준다. 우리는 허위적인 세계 속에서 상충되는 여러 자아들에 눌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특히 「베로니카」는 자기 세대의 분열증이 전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 그 변별점을 인상적으로 그려나간다. 버튼이 잘못 눌린 복사기에서 토해져나오는‘찌라시’로 비유되는 이 세대의 분열증은 “잘못 도착한 세계에서”‘소문’이고‘이방인’일 수밖에 없으나, 그것은 내면의 어둠을 확 벗어던진 발랄한 감각에 의해 구성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저 슬픈 상상들을 포식하는 달의 작은 입술에선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나요. 부럽다고 데룩데룩 소리치는 눈알들은 사실 내 뱃속에 모두 있어요.”(「맛있는 입술」) 그러나 이 시인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감각들은 안으로 응축되지 못한 채 가볍게 떠오르는 경향이 있다. 시는 감각적인 쾌감도 중요하지만 그 단계를 넘어설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자기만의 감성을 살리면서 시적 조화를 심화해나갈 새로운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인 테드 휴즈의 말대로 “참된 자아가 언어를 찾아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눈부신 사건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편 수상작과 끝까지 자웅을 겨룬 각기 다른 응모자의 「바람실」과 「수화를 듣는다」는 서정시의 정수를 보여주는 감정을 뜨개질하는 솜씨가 뛰어나고 안정된 시적 품격을 보여주었으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게 밀려났다. 또한 「악몽」은 언어유희에 바탕을 둔 발랄한 상상력이 장점이었으나 테크닉에 머문 한계가 지적되었다. 수상자에게는 정진을, 응모자 여러분께는 건필을 기대한다.

김승희 김정환 박형준

 

 

 

당선소감

 

어릴 적에는 항상 어깨를 바짝 움츠리고 다녔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면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눈물을 참으려고 길 한복판에서 커다란 학원가방을 들고‘제자리 빙빙 돌기’를 몇십분 동안이나 하던 어린 내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시선도 모두 내 어지러운 원 안에서는 부옇게 흐려지고는 했다. 지금도 이따금씩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에 긴장하곤 한다. 물론 인도에서‘제자리 빙빙 돌기’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걷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한글97 프로그램으로 수상소감을 적고 있는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모든 풍경이 휘휘 돌아간다. 내가 딛고 있는 바닥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상소감을 적어야 하는데 계속‘그럴듯하지도 못한’변명거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문학,이라고 말하면 나는 어쩐지 내가 뭔가 거창한 것에 골몰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고는 했다. 다만 종이를 가득 채우는 그‘말’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것들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말해보고 싶었다. 나를 어찌할 줄 몰라 막막한 날들 동안, 내 몸 한구석을 차지한 말들이 더 캄캄하고 안온한 어둠 속으로 나를 끌어내려줬다. 나는 이 초라한 어둠을 결코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온전히 나 때문에 부끄럽고 막막한 마음이 앞선다.

‘고맙습니다’라거나‘진심’이라는 말 자리에 다른 말을 들여놓으면 내 가난한 말들이 두터워지는지 궁금하다. 고마운 이름들은 언제나 감히 부르기조차 망설여질 정도로 무섭다. 언제든지 무작정 용서를 빌고 싶은, 두렵고도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집 세고 못된 딸을 감싸주고 길러준 사랑하는 엄마 이선희씨. 고맙습니다. 나를 돌봐주는 꼭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이모와 정연 언니. 건강하세요.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해준 진경 언니를 비롯해 시의 시옷도 모르는 해파리에게 2년 동안 시를 들려주고 밤을 나누어주었던 예장 사람들. 조술당과 요구르트와 오드리와 포천 동동주에게 감사한다. 나를 물고기로 만들어준 오소영. 당진에 있는 은경이와 지수. 내가 훔쳐볼 수 있도록 그냥 계시기만 해도 고마운 모든 분들. 모두 앞으로도 오래오래 고마울 수 있도록 어딘가에 계셔주시기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과, 관계되는 모든 분들. 무엇보다 제가 2년 동안 무언가 열심히 쓸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저 뵐 수만 있어도 행복했던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한강 선생님과 김혜순 선생님을 비롯한 문창과 교수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여기는 해저 우주, 세계는 언제나 내 상상 속에 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열심히 쓰라고 말해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박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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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끄시슈또프 끼에슬롭스끼 감독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