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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재영

김재영 金在瑩

1966년 경기 여주 출생.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소설집 『코끼리』가 있음. kjy0773@hanmail.net

 

 

앵초

 

 

1

 

거실과 부엌 사이에 놓인 장식장 위에서 남편은 언제나처럼 웃고 있다. 무화과 그늘 아래 머리칼을 휘날리며 저렇게 웃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뒤로 다가와 눈을 가리며 장난칠 것만 같다. 쾌활했던 그의 성품이 사진 속 짓궂은 눈매에, 웃는 입매에 가느다란 실주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람은 늙거나 병들어 허약해지면서 무화과나 감이 가지에서 놓여나듯, 그렇게 사지(四肢)에서 해방되는 거라 믿었다. 하지만 칠년 전 구월 어느날, 남편 민욱은 생가지가 꺾이듯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주검을 찾아 헤맸던가. 아아, 빌딩의 잔해와 비명과 통곡이 아우성치던 그곳. 하지만 나는 피와 먼지로 심하게 얼룩진 구두 한짝 달랑 주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주검도 없고 무덤도 없는 그의 생은 내 몸속에 시꺼멓고 커다란 구멍으로 남았다.

인간의 뇌는 자기 자신보다는 수많은 타인들을 기억하는 걸로 채워져 있는 게 아닐까. 눈을 감으면 정작 내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리운 사람들은 선명히 떠오르는 것처럼. 나는 민욱이란 사내의 삶을 기억하는 무덤이 되었다. 내 웃음과 내 목소리와 내 입술의 감촉을, 내 젊은 날의 이상과 고민과 상처를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던 민욱의 소멸과 함께 내 존재의 일부도 이승에서 사라졌다. 공허하고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단순히 슬픈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 삶의 조건도 뿌리째 흔들렸다. 비자가 소멸되어 불법체류자가 되었고, 생활비가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나는 아들 보람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날마다 사고현장을 찾아갔다. 시신도 무덤도 없었기에 찾아갈 데라곤 거기밖에 없었다. 추도식이 열리는 데마다 찾아가 아무나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다. 어느 날 어느 거리였던가. 내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주변에는 기세등등한 성조기가 하늘을 뒤덮을 듯 나부꼈고, 미국 국가가 고막을 찢을 만치 크게 울려퍼졌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라더니. 누군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동했고, 어떤 이들은 먼 나라를 침략했다. 아무도 죽음 자체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다. 억울한 죽음들은 번쩍이는 미국 정부홍보지에 실려 총알이 되고 폭탄이 되고 미사일이 되어 다른 죽음을 불러들일 뿐이었다. 그런 아수라장에선 더이상 남편의 밝은 미소도, 쾌활한 목소리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차라리 우리 집 정원에서, 그가 그토록 아끼던 꽃과 나무들 틈에서 조용히 향을 피워 망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니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때, 갸웃거리며 내 눈으로 파고들던 갓 피어난 여린 앵초꽃…… 보랏빛 꽃잎들이 하늘대는 평화로운 정원에서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랜만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뒤 나는 더이상 외부의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해마다 구월이면 몇몇 지인들을 불러 조촐한 추도식을 마련했다.

어제 우창이 전화해 이곳에 잠깐 들른다고 했을 때, 음식을 준비해 간단한 추도식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다음날이 민욱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니까. 그리고 그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찾아왔으니까. 아침부터 탕을 끓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쳤다. 이제 녹두부침개만 부치면 얼추 일이 끝난다. 곧 공항으로 우창을 마중가야 한다. 서둘러야겠다.

팬에 두른 들기름이 고소한 향을 내며 부침개를 익히는 동안 부엌창 너머로 바깥을 내다본다. 무화과나무 잎 사이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땅이 부는 퉁소소리라던가. 바람이 일면 모든 형태있는 것들은 생긴 구멍대로 소리내어 운다고 했던가. 바람 그치면, 깨진 항아리가 웅웅대는, 전깃줄이 허공을 할퀴어대는, 강물이 버려진 어망을 훑으며 지나가는, 거꾸로 처박힌 의자가 덜컹대는, 풀잎에 맺혔던 이슬이 부서지는 그 모든 소리들 다시 고요해지듯이 내 마음의 어두운 구멍도 울음을 그치고 고요해질까.

고단한 세월이었다. 무작정 일거리를 찾아 낯선 거리거리를 헤매야 했다. 이전에 내 자존감을 지켜주던 높은 학력과 대기업 사무경력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짓조각에 불과했다. 나는 이 나라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바보였으며, 어떤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은 싸구려 불법체류 노동자에 불과했다. 몸집이 큰 아기가 어머니 자궁을 찢고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몸서리치게 겪어야 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끝에 마지못해 찾아간 곳은 한때 남편의 직위 덕분에 사모님이라 불리던 시절 자주 이용하던 미용실이었다. 주인이 한국인이어서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그나마 나를 받아준 그곳에서 하루 열세시간이 넘도록 청소와 빨래 따위의 허드렛일을 돕고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수없이 많은 머리들이 눈앞이 노랗게 변하도록 내 손끝을 거쳐갔다. 라벤더 인공향기를 뿜어대는 샴푸통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게다가 손님들 중엔 유난히 까다로운 손님이 있어 신경을 바짝 쓸 수밖에 없었다. 피부가 예민한 백인들은 어쩌다 손톱끝이 두피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도 벌겋게 부풀어올랐다며 다음날 항의전화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일이나마 그만두면 당장 집세를 물 수도, 생활비를 벌 수도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너덜너덜해진 몸뚱이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노모와 아이는 잠들어 있기 일쑤였다. 죽은 듯이 쓰러져 잠자다 새벽이면 경찰에 쫓기는 꿈에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나는 졸음을 쫓으며 영어를 배웠다. 차차 서툴게나마 말이 익숙해지자 미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책을 붙들었고, 틈틈이 미용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수년 고생한 끝에 겨우 기술자가 되었고 영주권도 손에 쥐었다. 최근에는 은행대출을 얻어 작은 가게도 마련했다. 그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그다지 너그럽지 못해, 하나의 고민이 사라지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죽순 돋듯 자라났다. 일 구덩이에 빠져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는 동안 보람은 내 품에서 멀어져 낯선 아이가 되어갔다. 아들의 겉모습은 날이 갈수록 제 아버지를 닮아갔지만 마음만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이 나라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대신 아이는 내가 잘 모르는 이 나라의 어느 거리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아름답다거나 선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고국이란 말마저 보람에겐 의미없는 한갓 추상적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때때로 그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현실 앞에서 나는 어둠을 저주하며 악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를 거칠게 대했고, 아이는 내게서 더욱 멀어져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번엔 어머니가 문제였다. 어머니 의식의 밑바닥, 그 거대한 동굴 속에 남아 있던 외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사소한 냄새 그리고 낯선 존재의 시선에 의해 현실세계로 튀어나와 일상을 뒤흔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데친 숙주와 잘게 썬 김치, 돼지고기를 넣은 녹두부침개를 부치다 말고 부르르 몸을 떤다.

처음 어머니가 이상한 낌새를 보인 건 3월말경이었다. 그날은 앵초가 마른 잎을 뚫고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솜털 빽빽한 배춧잎 모양의 새순이 꽃대를 밀어올리고 보랏빛 꽃망울을 터트리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침부터 어머니는 기대에 들떠 정원을 서성였다. “헤이, 미스터 싸이먼!” 이웃집 노인을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는 활기에 넘쳤다. 잠시 뒤에 밖에서 싸이먼씨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커피와 무스케이크를 준비해 정원으로 가져갔다. 비슷한 연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라서 그런지 어머니는 싸이먼씨와 남달리 친하게 지냈다. 몇해 전 싸이먼씨가 구하기 힘든 자줏빛‘코위찬’앵초를 어머니에게 선물한 뒤로 부쩍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해마다 화려한‘퍼씨픽 자이언트’와 색깔 짙은‘반헤이번’, 꽃송이가 잎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줄리아나’교배종이 줄줄이 필 동안 두 노인은 다정한 부부인 양 정원을 돌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올봄은 예년처럼 순탄치 않았다.

그날 오후에 내가 미용실에서 일하다가 짬을 내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부터 정원을 돌본 탓인 거 같았다. 관절염을 앓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에 가기로 예약되어 있었지만 차마 단잠을 깨울 수 없었다. 나는 방에서 나와 거실 정리를 하다가 무심히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랬다. 처음엔 그저 검은 셔츠를 입은 우편배달부로 보였다. 한쪽 팔을 우체통 위에 얹은 커다란 몸체. 자세히 보니 그건 검은 털로 뒤덮인 곰이었다. 아질한 현기증이 일었다. 곰은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더니 테이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민첩한 동작으로 미처 치우지 못한 케이크를 집어 입속으로 넣었다.

어머니는 그날 곰을 보았던 걸까. “너무 많이 잤나 봐!” 잠에서 깬 어머니는 마른세수를 하며 민망해했다. 나약하고 욕심없는 초식동물 같은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졌다. “돌아가신 아버지 꿈을 꾸었어. 오랜만에 오셔서는 날 바라만 보다가 그냥 가버리더구나.” 어머니는 아쉬운 기색으로 말하더니 다시 정원으로 나갔다.

그날 밤부터 어머니의 이상증세가 시작됐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야식증이 생긴 줄 알았다. 아침이면 부엌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식탁과 부엌바닥은 물론 소파 여기저기에 음식물을 묻혀놓기도 했다. 새로 산 딸기잼과 베이글이 거의 매일 통째로 사라졌다. 할 수 없이 자지 않고 어머니를 살펴야 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낯선 발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검은 몸체는 식탁으로 다가가더니 어머니가 꺼내놓은 딸기잼과 베이글을 먹었다. 이번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속에 갇혀 있던 푸른빛이 어둠속으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곰이었다. 나는 폭발할 것처럼 거칠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곰은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와 생닭을 끄집어내더니 순식간에 먹어치운 다음에야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현관문을 닫았다. 나는 어머니한테 달려가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뭐야, 왜 이래?” 그러자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쉿, 산에서 아버지가 내려왔어요, 어머니.” 나를 어머니로 착각하는 어머니 눈빛이 어둠속에서 파랗게 빛났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몇가지 약을 처방했다. 그는 어머니의 무의식이란 동굴에 자리잡은 억압된 감정과 공포, 분노 따위가 곰에 의해 촉발된 거라며 어머니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심리치료를 받도록 권했다. 낮 동안의 어머니는 별 이상 없이 잘 지냈다. 아침이면 기분좋게 일어났고, 끼니마다 음식을 달게 먹었으며, 매일 정원에서 앵초를 돌보면서 싸이먼씨와 우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밤이면 달라졌다. 곰이 올 때쯤이면 현관으로 달려갔다. 보람이 현관문 위쪽, 어머니 손이 닿지 않을 높이에다 잠금장치를 새로 달았지만 어머니는 의자를 딛고서라도 올라가 문고리를 땄다. 의사는 더 많은 양의 약을 처방했고 상담시간도 늘렸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와 약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내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밤새 집 안에 불을 켜두기로 했다. 빛이 환한 동안에는 빨치산 아버지를 기다리는 열아홉 처녀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야간 불빛이 수면을 방해했는지 어머니는 점차 기운을 잃어갔다. 식사량도 줄었고, 혈색도 나빠졌으며, 무엇보다 웃음을 잃었다. 옆집 싸이먼씨가‘앵초협회’에서 구한 앵초를 가져왔을 때조차 의례적인 답례를 할 뿐이었다. 싸이먼씨는 매일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봄이 무르익어 앵초마다 꽃망울을 터뜨렸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다.

추도식에 쓸 음식 준비를 끝내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방에 들어가 어머니 안색부터 살핀다. 핏기없는 얼굴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오는데 뒤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산에서 아버지가 내려오셨어요, 어머니. 어쩌나, 먹을 게 떨어졌는데.”

밀려드는 절망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내가 대답한다.

“걱정 마라. 벌써 밥 한그릇 드시고 가셨으니.”

“하지만 아직 저기 계시잖아요. 집 안으로 들어오게 문을 열어야 해요, 어머니.”

어머니는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킨다. 창밖에 곰이 와 있다. 이런 시간에 곰이라니. 지금 집을 나서지 않으면 공항에 늦을 텐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 안을 서성인다. 이러다간 늦을 게 뻔하다. 휴대전화를 꺼내 우창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한동안 실내를 서성이다가 장롱 깊숙이 넣어둔 산탄엽총을 집어든다.

나는 눈의 초점을 가늠쇠에 두고 곰을 노려보고 있다. 방아쇠에 검지를 건다. 방아쇠의 차가운 금속성이 손끝을 타고 내 머릿속으로 전해진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성에로 뒤덮인 것처럼 차갑게 얼어간다. 놈은 표적이 된 줄도 모르고 태연히 햇빛을 즐기고 있다. 입술을 앙다물고 어머니를 병들게 한 전쟁의 망령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키운다. 아니 내 안에 감춰진, 내게서 사랑하는 이를 앗아간 자들에 대한 분노를 되새긴다. 손가락 끝에 힘을 줘본다. 손이 떨리고, 어깨가 흔들린다.

 

 

2

 

까다로운 입국수속 끝에JFK공항을 빠져나오자 피로감이 몰려온다. 일주일간 무더운 브라질 날씨에 적응된 몸이 반란을 일으키는 걸까.‘시간을 거슬러 산다는 건 죄악이야.’브라질에서 함께 지낸 송선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말대로 시차의 고통은 신이 내리는 벌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라면 지금쯤 깊이 잠들어 있을 거다. 브라질에서라면, 아마 회의실에 앉아‘세계시민단체 네트워크 활성화’라는 주제에 매달려 의견을 개진하고 있거나, 슈라스께(브라질 전통 숯불구이 요리) 전문식당을 기웃거리거나, 아니면 길거리를 내키는 대로 걸으며 묘하게 느슨하고 낙천적인 느낌을 주는 그곳 사람들의 표정을 힐끔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몸 깊숙이 파고들어 영혼을 마냥 들뜨게 하던 쌈바가 귓속에서 되살아난다. 뉴욕의 햇살이나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락이다.

송선생은 공항 면세점에서 기념품 따위를 구경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환승 대기시간을 틈타 공항 밖으로 나간 나를 기다리며 내내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송선생은 지금 밥값 외엔 한푼도 가진 게 없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칼리드 때문이다. 아니 폭격으로 한 팔을 잃은 사내와 한방을 쓴 탓이겠지. 행사를 주관한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각국 대표들에게 비행기와 숙소를 마련해주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때문에 회의가 끝난 뒤에 이어지는 식사와 술값은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냈다. 하지만 칼리드는 그러지 못했다. 폭격으로 한쪽 팔 외에도 가진 재산을 거의 잃어버린 사람이니까. 그는 식사시간만 다가오면 진땀을 흘리다가 배탈이 났다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싸구려 튀김을 사다 혼자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한방을 쓰는 송선생이 그를 위해 음식값을 대신 내주었다. 그러다 보니 인천공항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남기고 다 쓰게 된 것이다.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깊이 들이마신다. 열두시간…… 십년 동안 헤어졌던 친구와의 만남으로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윤은 왜 나오지 않은 걸까.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사람들과 삥가(브라질 술)를 퍼마시는 도중에 통화했지만 그녀가 마중 나오겠다고 했던 게 분명히 기억난다. 통화기록을 뒤져 하윤에게 전화를 건다.

“미안해. 곰 때문에…… 곰이 길을 막고 있어서 아직 출발도 못하고 있어.”

곰이라. 무슨 뜬금없는 소린지. 변명치고는 너무 어이없다. 담뱃불을 끄고 택시를 잡는다. 맨해튼 WTC역으로 가는 택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는다. 무너져내린 희뿌연 콘크리트 분진 속에서 마지막 숨을 쉬는 민욱의 당황스런 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다. 물론 내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도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다. 잿더미에서 찾아낸 거라곤 그의 구두 한짝이 다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민욱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뉴욕에서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이던 한국 물류업체의 직원이었다. 업무상 세계무역쎈터 건물에 자주 들러야 했기에 그날도 그곳에 들렀을 것이다,라고 그의 아내 하윤은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하윤의 울부짖음은 인공위성을 타고 머나먼 서울에까지 전달되어 내 귓속에서 부서졌다. 울부짖던 하윤……

택시가 이스턴강을 건너자 맨해튼의 빌딩숲이 보인다. 번쩍이는 빌딩들, 오래된 아파트들, 교회, 수많은 자동차 그리고 개성적인 옷차림의 시민들, 교각이나 건물 외벽에 그려진 재미있는 낙서들. 변한 게 거의 없다. 십년쯤 전에 민욱의 초청으로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본, 하늘 높이 솟아 위용을 자랑하던 세계무역쎈터 빌딩이 사라진 것 말고는. 차라리 복고풍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이제 빠른 변화야말로 후진국의 상징인가.

이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변한 건 나인 것 같다. 낡은 열정만이 남은,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어버리고 뒤늦게 죽음의 현장을 찾아가는 무심한 심장을 가진 중년사내. 아니다. 무심한 심장은 아니다. 심장은 고동치고 있다. 내 아픔을 고백하고픈, 고백의 상대를 찾아가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들린다. 택시는 복잡한 시내를 곡예하듯 빠져나간다.

“조금 더 가주세요.” 기사에게 성바오로성당 앞을 지나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한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참혹한 현장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가야지, 가야지, 생각하면서도 쉽게 올 수 없었던 곳이다. 어렵게 마련된 기회지만 아직 민욱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다. 하윤이 여기로 나온다고 했으니 기다리자. 아직 한낮이고 비행기는 밤늦게 출발할 테니. 전화기가 울린다.

“벌써 도착했어? 곰이…… 어쩌지? 곰이 여태 버티고 있어서 한발짝도 떼지 못했어.”

정말 곰이 있기나 한 걸까? 혹시 만남을 회피하려는 건 아닐까? 하긴 휴일 낮에 복잡한 시내까지 나오라 하면 누구든 달갑지 않을 거다. 게다가 상처가 아물어가는 시점에 찾아온 사별한 남편의 친구라니. 갑자기 훼방꾼이 된 기분이 든다.

“우창씨, 정말 미안한데 조금만 더 기다려. 엽총을 들고 있지만 차마 쏘지 못하겠어.”

진짜인 모양이다. 하긴 워낙 숲이 많은 나라니까. 하윤이 사는 뉴저지 서북쪽은 특히. 주변을 둘러보니 스타벅스와 맥도널드가 보인다. 스타벅스가 자리잡은 검은 대리석 건물의 로비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창밖으로 관광객을 가득 실은 버스들이 지나간다. 버스 옆면에는 뮤지컬과 영화 그리고 뉴욕이 팔고 있는 이런저런 문화상품을 알리는 광고가 붙어 있다.‘I ♥ NY’를 크게 프린트한 셔츠를 입은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까페라떼가 브라질에서 묻혀온 낯선 향료의 기억을 삽시간에 지워버린다. 피로감이 서서히 걷힌다. 서울의 어느 거리에 온 느낌이다. 신촌이나 광화문, 용산이나 강남의 복잡한 거리. 똑같은 인테리어, 똑같은 메뉴, 똑같은 향기, 똑같은 영양분을 섭취하는 세계인. 똑같은 영화, 은행, 보험회사, 생일잔치…… 이젠 어쩔 수 없이 시민단체들마저 똑같은 구호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세계화 반대를 위해 씨애틀에서 도하, 다시 깐꾼, 홍콩으로 옮겨다니며 경찰들과 대치해온 고단한 시간들……

하윤이 벌써 도착할 리 없지만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다. 쉽게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청춘의 끝인 서른과 노년을 의식하는 마흔 사이에는 십년 이상의 세월이 놓여 있다. 미국으로 간 지 삼년 만에 사고를 당한 민욱은 더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지만, 하윤은 다르다. 어쩌면 그녀 얼굴에는 고통스런 시간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여전히 젊은 여자들에게 눈길이 간다. 기억 속에서 하윤은 아직 서른인 것이다. 아니, 사실은 스물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 대학 잔디광장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신입생들 틈에서 눈에 띄던 얼굴. 서글서글한 눈매와 햇빛에 반짝이던 검고 긴 생머리. 그녀를 같은 동아리 회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나와 민욱은 열심히 따라다녔다. 매일 번갈아가며 밥을 사주고, 차를 사주고 새로 나온 책을 사주었다. 민욱은 책 대신 영화나 연극을 보여주었던가. 이제 와 생각하면 모두 다 핑계였지만. 동아리 이름이‘제3세계 연구’였는데 나는 제3세계 현실을 알리는 문학 대신 예이츠나 T. S. 엘리엇의 사랑 시집에 고백조의 편지를 끼워 전해주었고, 민욱은 제3세계 예술영화 대신 멜로영화를 보여줬다. 경쟁은 몇년간 계속되다가 내가 군대에 간 사이 민욱이 하윤을 차지하는 걸로 끝나버렸다. 그들의 결혼소식을 듣고 탈영할까, 하는 충동을 느낀 건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감행하지는 못했다. 그뒤 나는 여러 아가씨와 연애를 했고, 그중 몇명과는 꽤 진지했으나 실제로는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언젠가 종로 뒷골목 빈대떡집에서 취한 민욱이 혹시 하윤 때문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따귀를 세게 때렸던 기억이 난다. 그뒤로 민욱은 다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시력이 나빠 입대가 면제된 민욱은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 빠르게 승진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친구들한테 도움도 많이 줬고, 남보다 일찍 세계를 누볐으며, 결국 가장 먼저 생을 마감했다. 음모의 냄새가 가득한 제국의 땅에서 흔적도 없이.

성바오로성당 옆으로 난 길은 공사장 특유의 어수선함과 붐비는 관광객이 한데 어울려 쓸쓸하면서도 번잡하다. 굳은 표정의 추모객들.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세워진 철책 너머에는 깊이 파인 땅이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잊고 무심한 햇빛 아래 누워 있다. 그 옆의 공사현장에선 철모를 쓴 인부들이 새 건물의 기초를 닦고 있다. 햇빛이 너무 강해 눈가에 물기가 고인다. 약시 탓이다. 약시가 진행되면서 햇빛 아래서는 이유없이 눈물이 난다. 색안경을 꺼내 쓴다. 눈물이 멈춘다. 연두색 바탕 위에‘2001년 9월 11일의 영웅들’이라고 쓴 흰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낸씨, 대니얼, 마틴…… 민욱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해럴드, 엘리자베스, 루이스…… 민욱은 이 나라에서 아직 죽음조차 인정받지 못한 걸까. 하긴 그의 국적은 한국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인 희생자들의 명단은 어디 있지? 중국이나 베트남, 이집트 같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의 이름은? 사방을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철책 맞은편, 사진을 걸어놓은 곳으로 다가간다. 사진 속에서 건물은 연기와 분진에 휩싸여 붕괴되고 있다. 단 7초 동안에 백여층이 무너져내리다니. 누군가 미리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 뒤 테러를 유도했다는, 그럴듯하면서도 황당하게 들리는 9·11 미스터리설을 인터넷으로 본 기억이 난다. 모자를 쓴 사진 속 흑인 여성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운다. 어린 소년은 성조기와 꽃다발 사이에 추모의 편지를 끼우고 있다. 제복 차림의 경관은 손바닥을 펴 눈썹 근처에 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구슬픈 음악이 들린다. 음악은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된다. 공사장에서 먼지바람이 불어온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맨해튼섬의 빌딩숲을 휘젓는다. 공물 실은 배를 크레타섬으로 데려온 바람처럼 거칠고 집요하다. 이곳은 크레타섬의 거대한 미궁인가. 정복당한 나라에서 공물로 실려 온 선남선녀들을 먹고 사는 미노타우로스처럼 무역쎈터 빌딩은 세계인들을 한꺼번에 집어삼킨 건가. 민욱은 아리아드네의 실도 없이 미궁 속으로 들어간 숱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나.

성당 안은 좀더 경건한 추모 분위기다. 촛불들, 꽃들, 희생자 사진들, 편지, 메씨지를 담은 물건들, 가슴 아픈 사연 그리고 수많은 성조기와 성조기 무늬의 소품들…… 누군가 운다. 돌아보니 젊은 여자다.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사람들이 그녀를 위로한다. 나는 왜 이리 냉담한가. 왜 이리 무심한 표정으로 낯선 사람들 틈에 서 있나. 흐느껴 울어도 시원찮을 텐데. 바닥에 주저앉아 내 친구를 살려내라고 생떼를 써도 모자랄 만큼 억울한데. 넘치는 성조기 때문인가. 온통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미국인의 추모 분위기 탓인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일하다 희생된 민욱 같은 사람들, 그런 외국인들을 위한 어떤 마음 씀도 찾을 수 없다. 다시 한번 성당을 꼼꼼히 둘러본다. 눈에 띄지 않는다. 성당을 빠져나와 건물 뒤쪽에 마련된 공원묘지로 간다. 추모공원 한쪽에는‘희망의 종’이 매달려 있다. 미디어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부시를 비롯한 미국 정치가들이 해마다 9월이면 타종하던, 비장한 표정으로 악의 축을 선정하고 전쟁을 선포하던, 영광에 마음 들뜬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오래된 거짓말, 조국을 위해 죽는 건 감미롭고 지당하도다1,라고 외치던 그 장소, 그 종이다.

왜 민욱의 이름은 안 보이냐고 묻자 수화기 너머의 하윤이 맥없이 “외국인이잖아. 시신도 못 찾았고”라고 답한다. 외국인 추모제는 백악관에서 따로 마련한다던데 가본 적이 없고, 한인들이 마련하는 추모식도 비공식적인 거라 잘 모르겠다면서. 죽음마저 국경이 갈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귀천이 나뉘는 현실에 마음이 울적하다. 하윤은 통화상태가 나쁘다며 내 이름을 연거푸 불러댄다. 겨우 응, 하고 답하자 다시 말을 잇는다.

“아직 곰을 해결하지 못했어. 공포탄이라도 쏠까 했는데 혹시 녀석이 놀라서 허둥대다가 정원을 망가뜨릴 것 같아서. 지금 앵초꽃이 한창이거든. 곰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갑자기 목이 멘다. 더이상 여기 머물고 싶지 않다. 하윤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고 싶다.

“화났구나? 미안해. 대신 보람이가 곧 그리로 갈 거야. 주말에는 맨해튼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학교에 다니는데 마침 끝날 시간이거든. 보람이 따라서 우리 집으로 와. 여기서 추모식을 여는 건 어때? 마침 내일이 남편 생일이니까.”

하윤은 곰이 방금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좋아하며 전화를 끊는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3

 

꽉 막힌 링컨터널 안은 가솔린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속이 울렁대고 멀미 기운이 돈다. 포트 오서리티에서 뉴저지로 가는 버스를 타는 건 정말 지옥이다. 적어도 터널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렇다. 김우창 아저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코를 막거나 인상을 쓰지 않는다. 꼼짝 않고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다. 참는 데 익숙한 한국인 특유의 표정이다. 성당 앞에 서 있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단번에 아저씨를 찾아낸 것도 그 때문이다. 사방을 살피고 경계하는, 어딘가 초조하고 답답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완강한 폐쇄성. 아저씨는 반대편 창문에 시선을 두고 골똘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보이는 건 허드슨강 밑으로 난 지저분한 지하터널 벽면뿐일 텐데도. 이상하게도 가슴이 뛴다.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어머니한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친구 사이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간의 어울림인가?

어머니가 한시간쯤 전에 갑자기 전화해 그라운드 제로에 가서 아저씨를 데리고 오라고 했을 때, 나는 제니와 함께 있었다. 물론 나는 어머니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한글학교가 아니라, 한국식 스파인 찜질방 한쪽에 누워 제니가 새로 그린 만화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호텔에 들어가 누울 나이가 아니다. 우리가 몸을 맞대고 있을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교외로 나가 자동차 뒷좌석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제니도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다. 미국인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 없다는 건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한국인 부모들은 스무살 이전에는 자동차를 몰지 않길 바란다. 위험하기 때문이란다. 실제로는 자식들이 한국에서처럼 부모 품에서 어리광 피우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자식을 망쳐놓는다. 그러니 찜질방에라도 가서 최대한 몸을 밀착하고 누워 있을 밖에. 우리는 물론 서로에게 편한 영어로 말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쓰고 있다. 그러니 한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한국어 공부는 저절로 된다.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에 맨해튼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 가야 한다. 두시간 수업이지만 정말 가기 싫을 때가 있다. 제니가 전화로 울고불고 할 때는 더욱. 그런 날에는 제니를 데리고 찜질방으로 간다. 제니는 전날 밤에 아일랜드계 아빠가 어머니한테 얼마나 심한 욕을 했는지, 의자와 거울이 어떻게 참혹하게 부서졌는지, 친할아버지가 어떤 눈길로 자기를 훑어봤는지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런 날에도 나는 새로 배운 한국말을 어머니에게 들려줘야 한다. “알겠어, 이 호로자식아.” 언젠가 한번은 그렇게 말했더니 어머니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찜질방에서 어떤 아저씨가 전화에 대고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한 것뿐인데. 호로자식은 나 같은 애들, 그러니까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에게 하는 못된 욕이란 걸 그날 밤 나는 사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국어 속에서 나의 존재는 그토록 형편없다.

하지만 미국인 친구들 앞에서, 영어 속에서 나는 영웅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첫날이면 나는 교실 전체에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한다. “내 아버지는 저 끔찍한 9·11테러 때 비행기와 함께 폭발해버렸어. 난 앞으로 군인이 되어 아메리카를 테러로부터 지켜낼 거야.” 그러면 여자애들은 테러를 상상하면서 부르르 몸을 떨어대고, 남자애들은 내게 악수를 청한다. 그 순간 난 미래의 장교이자 영웅이 된다. 그런 수법을 쓰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우다. 아버지가 잘못되기 전, 그러니까 내가 그저 평범한 한국계 꼬마일 적에 나는 학교에 가길 싫어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 머물거나 아버지를 따라 낚시나 하러 다니며 살고 싶었다. 학교에 가면 나는 영어도 잘 못하는 바보에다,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그리고 누군가 주먹을 들어 보이기만 해도 몰매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움츠리는 겁쟁이였다. 난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미국인들의 분노를 보고 알게 되었다. 애국심을 거짓으로라도 드러내는 게 내가 이 땅에서 살아남는 길이란 걸.

하지만 어쩌면 난 군인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난 제니와 함께 언젠가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내용은……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아직 잘 모르겠다. 언젠가 내 이야길 듣고 어머니가 말했다.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가 녹아 있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왜죠?”라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당연하단 듯이 말했다. “넌 원래 한국인이잖아. 물론 아메리카에서 살지만. 하지만 네 몸속엔 조상 대대로 내려온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러니 전통을 소중히 여겨야지.” 어머니 말이 내겐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닌 눈을 빛내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내 눈엔 어머니가 종교에 빠진 광신도와 닮았다. 나는 솔직하게 내 생각대로 대꾸했다. “그건 어머니 아버지의 나라였을 뿐이에요. 그리고 한국적 전통이란 게 도대체 뭐죠? 한국은 유대인처럼 하나의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문화나 사상도 없잖아요. 한글이란 것도 당장엔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세계인이 다 영어를 쓰게 될지 누가 알아요. 한국이 내게 준 거라곤 어머니와 아버지뿐인데,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해요?” 어머니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제발 그만 해.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난 허방을 딛고 서 있는 기분이 돼. 난 네가 남의 나라에서 뿌리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사람에겐 어딘가 소속될 곳이 필요해. 식물이 뿌리를 내릴 곳을 필요로 하듯이.” 그 땅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메리카죠,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그렇게까지 말하기엔 어머니 얼굴이 너무 창백했다. 게다가 나 역시 이 나라가 그렇게까지 맘에 드는 건 아니다. 유색인으로 살면서 차별당하는 게 언제까지나 대대로 이어진다는 건 좀…… 하지만 뭐,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제니처럼 거의 백인의 외모를 빼닮은 여자랑 결혼한다면 여건이 더 좋아질 수 있겠지.

조금 전부터 제니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잔다. 차가 출렁일 때마다 제니의 머리가 미끄러진다. 팔로 그애를 안고 머리를 손으로 잡아준다. 빨간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튀어나온 흰 이마에 입술을 댄다. 제니의 불안한 영혼이 느껴진다. 제니는 자기 어머니를 사랑한다. 하지만 자기 어머니의 과거를 의심한다. 동두천에서 아버지를 만났다는 어머니의 처녀시절 사진에는 싸구려 화장품과 헤픈 웃음 그리고 환락가의 불빛이 어른거린다나. 제니 어머니는 한국엔 절대 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물론 그녀의 딸도. 하지만 제니는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그냥 좀 궁금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런 점에선 내 어머니랑 닮았다. 그냥 한국에 소속감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머니처럼 무조건이다. 제니 어머니는 왜 제니를 보면서, 그러니까 자기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생긴데다 미국 시민권자인 제니를 보면서 허방에 발을 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어떤 사람에겐 그토록 중요한 전통이 다른 사람에겐 치떨리는 기억 외엔 아무것도 아닌 건 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허드슨강을 건너 뉴저지 도로를 달리고 있다. 도로변의 고급 쇼핑몰과 호화 콘도, 개인용 유람선 선착장을 지나자 드넓은 숲이 나타난다. 자연만이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반긴다. 일곱살 이후로 나를 키운 땅과 햇빛 그리고 바람이다. 아버지의 뼈와 살은 산산이 조각나 먼지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다. 먼지는 비를 타고 내려와 땅속으로 스며들었을 거다. 아버지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아버지야말로 철저히 아메리카합중국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나와 어머니가 아직 영주권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어머니는 왜 시민권자 되기를 마다했을까? 한국과 미국이 싸우게 되면 미국 편에서 싸우겠습니까,라는 마지막 조항에 어머니는 일부러 오답을 택했다. 정답이 예,라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를 떠올린 걸까? 미국이 개입된 전쟁의 희생자가 된 부모님과 이웃들을 떠올리다 얼결에 아니요,라고 답한 걸까? 나라면…… 모르겠다. 얼결에 실수했을지 모른다. 여든이 가깝도록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할머니, 곰을 아버지라 부르는 쇠약한 노인과 매일 지내다 보면 저절로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하지만 내 인생은? 내 앞날은? 어머니는 시민권자로서 살아갈 내 권리를 빼앗은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직도 창밖을 보고 있다. 창밖은 온통 초록이다. 줄지어 선 키 큰 활엽수마다 새로 돋은 잎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초록 밑바탕 위에 아저씨의 노란 옆얼굴이 삐까쏘 그림처럼 윤곽을 드러낸다. 한참 바라보다 아저씨의 눈과 마주친다. 그의 시선은 창문에 비치는 나와 제니에게 닿아 있다. 마침 잠에서 깬 제니가 내 입술에 키스를 퍼붓는다. 제니 입에서 민트껌 냄새가 난다. 제니 입술에서 떨어져 다시 고개를 드니 아저씨가 여전히 창문에 비친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 이럴 때 한국사람들은 혀를 차며 말한다.‘시건방지게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설마 어머니한테까지 일러바칠 정도로 한심한 사람은 아니겠지?

“지루하시죠? 다 왔어요. 이제 곧 도착할 거예요.”

“지루하긴…… 보람아, 예전에 우리가 단짝이었다는 거 기억하니?”

“조금요. 아저씨 등이 아주 크고 따듯했던 건 생각나요. 그리고 내게 장난삼아 포도주를 먹인 것도.”

“그랬지, 네가 나한테 크면 친구가 되어줄 거라고 했지.”

아저씨는 껄껄 웃는다.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유쾌하게. 멀리 내가 사는 마을이 보인다. “넥스트 스탑, 플리즈!”

 

 

4

 

정말이지 난 운이 좋은 사나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01년 초가을의 어느날을 제외하고. 그날만 아니었으면 정말 완벽할 수 있었는데. 지금쯤 집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거다. 거기다 엑스버리 진달래와 라일락, 앵초, 장미가 자라는 정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쯤 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찢겨나간 육신을 수습하지 못해 난 아직 천국에 가보지 못했지만, 오늘처럼 지낼 수만 있다면 부럽지 않다. 일년에 한번, 해마다 구월이 되어야 나를 불러주던 하윤이 이번엔 일찌감치 나를 불렀다. 구월이 되려면 얼마나 남았나, 기다리며 오늘도 구천을 헤매고 있는데 난데없이 빛이 쏟아지더니 이승 가는 길이 열렸다. 게다가 이번엔 나와 같은 날 빌딩에 깔려 죽은 자들이 한꺼번에 몰려가는 먼지 자욱한 길도 아니다. 내 등을 미는 스페인계 여자도, 발을 밟는 대머리 백인 남자도, 옆구리를 치면서 앞질러 가려는 흑인 청년도 없는 호젓한 길이다.

곰 한마리가 가까이 다가온다. 몸길이가 꽤 되는 수놈이다. 발바닥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남의 집 쓰레기통깨나 뒤지고 다녔나 보다. 곰이 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다. 낯익은 냄새가 희미하게 맡아진다. 놈이 언제부터 우리 집엘 들락거렸지?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음식 냄새가 왈칵 콧속으로 뛰어든다. 녹두빈대떡은 물론 동태전, 산적, 고사리와 도라지나물…… 가슴이 뛴다.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랑하는 아내 하윤, 키가 한뼘이나 더 자란 보람. 그 옆의 빨간 머리 처녀는 보람의 애인? 너무 이른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안녕하세요, 싸이먼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장모님은 안색이 좀 안 좋네요. 앵초를 돌보느라 무리하셨나 봐요. 여보, 나야. 잘 지냈어?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보람아 너, 정말 많이 컸구나. 야, 맛있겠다.

이봐!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장난스레 툭 친다. 돌아보니 싼체스다. 그는 나와 한날한시에 구천의 귀객이 된 니까라과 친구다. 아무튼 젯밥 냄새 맡는 데는 귀신같다니까. 귀신더러 귀신같다고 하면 욕이란 거 몰라? 능청스레 웃는 싼체스 뒤로 싼딴데르 은행 부지점장 마떼올레, 청소부 아줌마 올가, 마피아 출신 토니, 컴퓨터귀신 하인즈가 따라 들어온다. 나랑 같이 몰살당했지만 9·11 희생자 명단에 등록이 안돼 제삿밥도 못 먹는 배고픈 귀신들이다. 싼체스는 빌딩 유리창닦이였다. 오랜 세월 건물에 매달려 일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희생자 명단에 끼지 못했다. 부지점장 마떼올레는 자기 이름이 누락된 건 실수라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사고가 나기 한달 전쯤 싼딴데르 은행의 대대적인 직원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그는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줄 알았다면 그리 모질게 직원들을 내몰지는 않았을 거라 후회한다. 청소부 아줌마 올가는 할렘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일용직이다 보니 그날 그녀가 그 건물에서 일했다는 걸 증명할 길이 없었다. 마피아 토니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음지에 있는 자들끼리 정식으로 통성명하면서 거래하지는 않을 테니, 미국에서 가장 흔한 토니라는 이름도 가짜일지 모른다. 한때는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를 하루에 수백박스씩 팔았다면서 제법 뽐내기도 하는 그는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개입된 비밀작전, 말하자면 보험금을 노리고 빌딩 안에 미리 설치한 폭탄의 희생자가 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마 그는 귀계에서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컴퓨터귀신 하인즈는 태국에서 온 게이다. 성별이 불확실하고, 태국에서 왔다는데 이름까지도 미국 이름으로 개명해 정체를 확인할 수 없다. 그가 태국 출신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게이 거세 비용이 태국에서는 불과 150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살다 보니 온세상의 음식을 다 접해본 자들이라 한국식 젯밥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먹어대고 있다. 민욱, 이 요리는 뭐라고 부르나. 이제야 배가 부른지 싼체스가 코를 비틀며 말을 걸어온다. 그건 퍼먼티드 스케이트(삭힌 홍어)라네. 아바이순대와 비슷한 니까라과 순대 롱가니자를 가장 좋아한다는 싼체스는 김치라면 환장하지만, 홍어만큼은 어쩔 수 없는지 인상을 쓰며 손사래를 친다. 마떼올레가 다음번에는 자기 고장의 그란 싼그레 데 또로(Gran Sangre de Toro,‘황소의 피’라는 뜻의 스페인 전통 와인)를 가져오겠다고 호언한다. 헤이 마떼올레, 지 밥그릇도 못 챙기는 주제에 어떻게 술을 가져오겠다는 거야. 마피아 토니가 빈정거린다. 이봐, 이딸리아 깡통 토니. 당신, 황금의 제국 스페인의 자손을 어떻게 보는 거야. 마떼올레가 기분 나쁘다는 듯 주먹을 꽉 쥔다. 당신네들 피 속에는 인디언을 수십만 죽인 학살자의 피가 흐른다며? 하긴 잔혹한 투우를 즐기는 자들이니까. 토니의 말에 마떼올레도 참지 않고 빈정댄다. 토니, 무기 암거래는 너희 이딸리아계가 전문 아냐? 피냄새 나는 돈을 꽤 만져봤을 텐데. 토니가 정색을 하며 반발한다. 우리가 왜? 마피아가 총 쏘던 시절은 옛날이야. 우린 이제 합법적으로 자리잡았어.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긁은 저런 유대인하고는 질이 달라. 토니는 싸이먼씨를 가리킨다. 죽은 자의 세계에서는 산 자를 가리키면 규율위반이다. 특히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이 산 자를 괴롭히면, 그나마 이 세계에서 쫓겨난다. 자손의 뒤를 봐주는 산 자의 조상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당황한 토니가 주섬주섬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 말은 무서운 유대인들이라는 거야. 맨해튼에 가봐. 은행점포가 전부 저 친구들 거지.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들은 죽을 때 기부를 많이 한다는 거야. 그러면 유대인 욕하는 자들이 많이 줄어. “죽어서는 후손에게 투자한다? 무서운 소리네.” 듣고만 있던 내가 한마디 한다. “그런데 이봐, 당신 상층부의 비밀을 아주 잘 아는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좀 털어놔. 도대체 우리를 이렇게 만든 사건의 진실이 뭐야?” 이 말만 나오면 토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문다. 죽어서까지 혈통 타령이나 하며 시끄럽게 옥신각신 싸우던 한심한 친구들은 배를 다 채웠는지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한다. 의료보험이 없어 한번도 치과에 가보지 못했다는 올가 아줌마가 몇개 남은 어금니로 음식을 겨우 먹고 맨 나중에 일어선다. 그녀는 나더러 좀더 느긋하게 즐기다가 오라는 눈짓을 보낸 뒤 부리나케 무리를 쫓아 뛰어간다.

내 앞으로 감색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사내가 지나간다. 누구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데. 믿을 수 없다. 우창이다. 나는 우창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힘차게 껴안는다. 우창은 꼼짝도 않는다. 야, 대답 좀 해. 이런 쇠귀에 경 읽기네. 나 많이 보고 싶었어? 왜 이제야 온 거야. 좋아, 술 따르면 용서하마. 근데 뭘 그리 뚫어져라 바라봐? 너 하윤이 바라보는 눈빛이 어째 수상해. 설마, 아직도 하윤이 좋아하는 거야? 정신 차려, 인마. 저 여자 이제 눈가에 주름도 생기고 머리숱도 많이 줄었어. 하지만 좋아, 이번엔 내 양보하마. 그러면 너 미국 와서 살 거야? 맨해튼에서 눈꼴 시린 거 많이 볼 텐데. 보람이 데리고 한국 가서 살 자신은 있어? 그앤 이제 미국사람이야. 아마 안 간다고 할걸. 이런저런 문제로 늘 제 엄마하고 싸우지. 저것 좀 봐. 둘이 또 붙었어.

여자친구 입에 녹두전을 넣어주는 아들에게 아내가 일침을 놓는다. “어른들 앞에서 보기 안 좋아.” 아들이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다. “그럼 보지 않으면 되잖아요.” “낮에 학교에 전화했더니 넌 아예 교실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던데? 저애랑 함께 있었니? 갈수록 정말 너무하는구나.” 아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내를 화단 쪽으로 이끈다. “너무하는 건 엄마예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요. 그깟 한국사 공부보다 제니가 더 중요해요. 우린 서로 좋아하고, 언젠가는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요.” 아들의 선언에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 네 나이에 할 얘기냐, 그게? 그리고 난 한국여자가 좋다고 분명히 말했어. 그건 돌아가신 네 아버지도 마찬가질 거야.” 아내는 나까지 들먹인다. 여보, 사실 난 상관없어. 보람이만 괜찮다면. “나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엄마한테 분명히 당부했어요. 그런데도 엄만 면접관 앞에서 아니,라고 대답했죠. 내 인생 따윈 생각지도 않고. 터지지도 않을 전쟁을 염려해서. 그건 그저 가정일 뿐이라고요.” 아들은 운동화로 세게 화단을 찬다. 늦게까지 피어 있던 앵초 꽃대가 맥없이 꺾인다. 아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한다. “네 친척들이 사는 곳이 악의 축이라고 불려. 심심하면 미사일이 날고. 전쟁이 터져야 정신 차리겠니.” 아내 목소리가 점점 커져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흘긋흘긋 이쪽을 본다. “하지만 미국은 강하고, 여기 사는 한 우린 걱정 없어요.” 보람이는 지지 않는다. 사실 지기 싫어할 나이지. “뭐가 걱정 없다는 거야. 네 아버지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아내는 속상하다는 듯 자리를 뜨려 한다. 보람이가 아내의 팔을 잡고 기필코 마지막 한방을 날린다. “엄마 맘대로 하세요, 난 내 맘대로 살 테니까.” 아들이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말려야 하는 걸까. 나는 달려가 아들을 덥석 안는다. 이 아이는 이제 나보다 키가 더 크다. 왈칵 눈물이 난다. 이렇게 크도록 내가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 코밑으로 수염도 거뭇거뭇하다. 강해 보이는 눈빛이다. 하지만 좀 슬퍼 보인다. 난 사실 잘 모르겠구나, 보람아. 네가 왜 어머니와 힘들게 지내는지를. 솔직히 네가 미국여자랑 결혼해서 미국인을 낳아 기를 수도 있다고 봐. 네가 제사까지 안 지내게 될까 봐 좀 걱정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도, 또 네 할머니 할아버지 들도 외롭겠지만.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누구든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정을 나누면서 사는 게 순리니까. 다만 한가지만은 잊지 말아다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살든 넌 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란 걸.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 몸과 영혼을 사랑해야 한다는 걸. 난 정말 니가 남에게 총을 겨누는 군인이 되는 건 보고 싶지 않구나. 알았지, 아들? 보람에게 내 말이 전달된 걸까. 보람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눈가를 슬쩍 훔친 다음 뒤돌아 간다. 제 외할머니 옆에 앉더니 조깃살을 뜯어 할머니 입에 넣어준다. 장모님이 미소지으며 보람의 뺨을 어루만진다.

싸이먼씨는 아까부터 장모님 옆에 붙어앉아 시중을 들고 있다. 아내가 우창에게 말한다. “백인들은 정말 친절해. 특히 여자한테는.” 우창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싸이먼씨가 우창에게 술잔을 부딪는다. “촛불을 준비해야겠어요. 차도 좀 내오고.” 해가 지려 한다. 하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우창이 그 뒤를 따르고 난 우창의 뒤를 따른다. 부엌은 낡았지만 예전 그대로이다. 창틀에 놓인 화분엔 장미가 활짝 피어 있다. 하윤이 오븐에서 잘 구워진 쿠키를 꺼내 접시에 담는다. 우창은 나무딸기 씻는 걸 돕는다. 하윤은 몰래 눈물을 닦는다. 아들과 언쟁하면서 마음을 다친 모양이다. 우창이 하윤의 눈물을 닦아준다. 우창 녀석, 하윤의 볼에 느닷없이 입맞춤을 한다. 우창의 얼굴이 붉게 변한다. 귀까지 달아오른다. 사실 내 눈시울도 뜨거워지고 있다. 하윤이 너무 오랜만에 위로를 받아서다. 그녀는 아직 젊고 예쁘다. 그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부엌 가득 쿠키향이 퍼진다. 하윤이 딸기를 씻는 우창의 입에 쿠키를 넣어주며 맛보라고 한다. 우창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일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하윤과 단둘이 있다는 데 감격한 거겠지만.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싸이먼씨는 보람에게 자신이 열살 무렵에 유럽에서 겪은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노인치고는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그는 독일군이 수십명의 우크라이나인과 유대인 시체를 장작과 함께 쌓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장작 사이사이로 검은 머리, 노란 머리, 대머리, 어린아이 머리가 삐죽삐죽 삐져나와 있었다고 말한다. 오층짜리 햄버거 옆구리로 삐져나온 고기를 떠올리면 쉽게 상상이 갈 거라면서. 차를 들고 나온 우창이 그 이야길 듣고 미간에 깊은 주름을 짓는다. 낯빛이 발그레해진 하윤이 쿠키와 딸기를 들고 뒤따라와 옆에 앉는다. 우창은 자기 친구 칼리드란 사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한쪽 팔과 가족, 집을 잃어버린 사내 이야기를. 씁쓸한 표정을 짓던 싸이먼씨가 술잔을 엎으며 버럭 역정을 낸다. “젊은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천년간 당해왔어. 우린 더 많이 억울해.” 그때 장모님이 느닷없이 소리친다. “아버지가 왔어요, 어머니.” 아, 장모님이 왜 저러시나. 아무래도 상태가 심상치 않다. 아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백내장 때문에 이젠 잘 보지도 못하셔요”라며 웃음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장모님이 역정을 낸다. “냄새가 나요, 어머니. 산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장모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락가락한다. 제니가 갑자기 아악, 비명을 지른다. 제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곰이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저런, 아까 숲에서 마주친 그놈이다. “음식 냄새를 맡고 왔나 봐요.” 보람이 말한다. 장모님과 제니가 각각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흥분한 곰이 울타리를 넘어 다가온다. 집 안으로 뛰어들어간 아내가 엽총을 들고 나온다. 아내가 총을 들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내는 곰을 향해 총을 겨눈다. 그 순간 장모님이 아내에게 달려든다. “안돼! 쏘지 마.” 탕, 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오발이다. 장모님이 하윤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곰은 이제 미친 듯이 날뛴다. 보람과 제니는 의자를 들어 던진다. 우창이 테이블을 쓰러뜨려 방벽을 만드는 동안 싸이먼씨는 자기 집으로 뛰어간다. 나는, 나는 장모님을 아내에게서 떼어내려 애쓰지만 힘을 쓸 수가 없다. “안돼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장모님이 절규한다. 우창이 아내에게서 총을 받아 순식간에 방아쇠를 당긴다. 곰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춘다. 곰이 비틀댄다. 몇발짝 더 앞으로 다가오다 끝내 화단 위로 쓰러지고 만다. 참혹하게 짓이겨진 앵초들이 강한 풀내를 내뿜는다. 갑자기 사방이 고요하다. 장모님이 바닥에 쓰러져 흐느껴 운다. “경찰에 연락해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건 보람이다.

해가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내 영정 앞에서 가늘고 흰 연기를 피우는 향도 아주 짧아졌다. 저 향이 다 타고 나면 다시 이별이다. 나는…… 아무 도움도 못 주고 떠나야 한다. 언젠가 그들이 나를 위해 향을 피우면 다시 돌아오겠지만. 그땐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겠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5

 

하윤의 집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마을도 어둠에 묻혀 삽시간에 사라진다. 한동안 어두운 숲길이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별이 보인다. 별을 반짝이게 하는 건 공기의 산란 때문이라던가.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건 하윤의 한숨 때문이다. 맨해튼에 도착할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운전하는 하윤의 옆얼굴을 훔쳐본다. 넋 나간 표정이다. 하윤이 혼자 감당하기엔 노모의 상태가 너무 심각하고, 아들은 반항기의 정점에 있다. 그것도 모자라 곰이라니. 그녀는 오늘의 추도식이 그라운드 제로를 떠도는 남편의 영혼을 달래고, 병든 노모를 위로하며, 풍성한 음식과 고운 앵초 사이에서 집안의 안녕을 비는 가든파티가 되기를 바랐다. 남편 없이 새 둥지를 마련하기까지 힘들었던 세월을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봄날의 곰은 노모의 옛 기억을 깨우고, 여린 앵초를 짓밟고, 하윤의 둥지에 총성과 경찰을 불러들였다.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도착한 경찰은 빠르고 거칠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고 하윤은 짧은 영어로 노모와 곰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경찰은 고개를 저으며 수렵금지 기간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출두명령서가 배부됐다. 하윤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출두명령서를 받아든 하윤은 거칠게 소리치며 민욱의 영정에 명령서를 집어던졌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운전대 잡은 손을 쥐락펴락하던 하윤이 신음하듯 내뱉는다. “더이상 견딜 수 없어, 이게 한계야.” 이번에는 펜던트에 담아 룸미러에 걸어둔 민욱의 사진을 향해, 꺼져버려 이 바보자식아,라고 욕을 퍼붓는다. 물론 진심은 아니겠지만. 설움이 복받치면 누구든 원망해야 하니까. 산 자들은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하윤은 민욱한테 무책임한 배신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왜 날 이 낯선 땅에 데려다 놓고 혼자 가버린 거야, 당신이 바란 게 이거야? 이게 세계인으로 사는 거야?” 그녀 말대로 민욱은 늘 좁은 땅에서 편 가르며 사는 게 싫어 국경을 넘는다고 했다. 세계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넘은 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였다. 그의 죽음은 세계적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죽음마저 국경이 나뉘고 이익에 따라 철저히 이용되는 세상이다. 나는 언제나 낡고 지친 심장을 안고 세계화에 맞서 이국의 거리를 행진하면서도, 내 젊은 날의 친구 민욱과 하윤만은 성공한 세계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민욱과 하윤의 불운한 사정이 못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하윤이 제 생활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민욱이 죽은 뒤 비자가 소멸되어 불법체류자가 된 이야기부터 작은 가게를 운영하기까지 고생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난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어. 앵초처럼 자잘한 꽃이나 피우면서. 세상은 왜 날 가만두지 않는 거야?” 그녀는 위로받아야 한다. 어떤 말이든 해줘야 할 텐데 통 떠오르질 않는다. “뺨에 묻은 피를 닦아줘도 될까?” 내가 묻자 하윤이 비로소 조용해진다. 나는 왼손을 뻗어 땀과 작은 핏방울로 얼룩진 하윤의 뺨을 문지른다. 얼룩을 닦아내자 부드러운 살갗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나는 손을 떼지 않고 한동안 하윤의 뺨을 어루만진다. 하윤의 손이 내 손등을 덮는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한동안 달린다. 쿠키향이 가득한 그녀의 부엌에서 딸기를 씻다 말고 하윤의 뺨에 돌발적으로 입술을 댔을 때, 나는 얼마나 오래 그녀를 그리워했는지 알게 되었다. 하윤이 갑자기 도로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다. 인적도 차도 없는 곳에 멈추자 별빛이 창문으로 넘어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하윤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러고는 흐느껴 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세게 안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울음을 그친 하윤이 어둠속에서 긴 숨을 토해낸다. 그녀의 입술에 짧은 입맞춤을 한다.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는 동안 맨해튼의 야경을 하윤이 유심히 바라본다. 우리 곁에서 민욱을 앗아간 도시의 휘황한 야경, 제국의 영광인 양 번쩍이는 오만한 네온의 거리가 창밖으로 흐른다.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눈에 담는다. 내게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면 화폭 안으로 사라져버리는 유화 속의 꽃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녀의 흔들리는 삶까지 더해져 지금은 한결 불안해 보인다. 하윤이 이번엔 나를 본다. 그러더니 희미하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그뿐이다. 그녀를 위해 해줄 말이 아무것도 없다.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지 않은가. 물론 나는 아직 혼자이고, 그녀의 가족을 내 삶 속으로 끌어들여 단단히 묶어버리는 걸 생각해본다. 사실은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국을 낯설어하는 사춘기 아들이 있고, 생활의 터전인 가게,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숙명이라 여기며 갖은 친절과 비굴로 겨우 끌어모은 단골고객이 있다. 그녀는 낯선 땅에서 이제 막 새 둥지를 장만하는 중이다. 내가 과연 그녀에게만 헌신하는 새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내게도 하다 만 일이 너무 많다. 당장 해결하기엔 모든 게 너무 복잡하다. 산다는 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마흔이란 어쩌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걸 배우는 나이인지 모르겠다. 앞을 주시하며 달리던 하윤이 입을 연다.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높고 가늘다.

“표정이 왜 그래? 벌통을 건드려 혼난 아이 같아. 내 걱정은 마. 잘 지낼 테니.”

“누가 걱정한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중이라고. 네가 보고 싶어지면 나는 어쩌나, 하고 말이야.”

하윤이 깔깔 웃는다. 지나치리만치 큰 소리로. 나 역시 크게 웃는다. 하윤이 다시 멀어져간다. 이제 잠시 후면 우리는 헤어질 거고 하윤은 내 안에 분명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멀어질수록 또렷이 형체를 드러내는 유화 속의 꽃처럼. 자동차는 점점 더 빠르게 달린다. 비행기 이륙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수속을 밟고, 지루함을 참으며 종일 기다려준 송선생에게 달려가야 한다. 멀리 보이는 공항 불빛들이 뿌옇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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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윌프리드 오언(Wilfred Owen)의 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