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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승우 李承雨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81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미궁에 대한 추측』, 장편소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등이 있음. lsw555@chosun.ac.kr
오래된 일기
1
규의 몸이 병원에서 손쓰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 준영이 엄마예요,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나는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준영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도 곧바로 규를 떠올리지 못한 것은, 그 책임이 전적으로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얼마간 무안한 일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풀죽은 목소리로, 병원에 한번 와달라고 말했다.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는 상황이니 일 생기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에요?” 영문을 몰라 반문하는 나에게 그녀는 의외로 차분하게 규의 상태를 설명했다. 소화가 잘 안되고 배가 더부룩한 증상이 한동안 계속되어서 병원을 찾아갔는데, 의사가 자기는 할 일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간에 생긴 암이 커져서 혈액까지 퍼진 상태라고 했다. 너무 늦게 왔다는 것.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병원에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아무리 말기가 될 때까지 증세가 잘 나타나지 않는 병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 무신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이 정도면 몸이 그동안 여러차례 신호를 보냈을 거라는 게 의사의 생각이었다. 진통제 처방 말고는 병원에서 해줄 게 없다고 하니 공기 좋은 산골마을에 들어가서 요양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퇴원을 하루 앞둔 날, 갑자기 장기가 파열되어서 피가 쏟아져나온 바람에 급히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했다. 며칠 만에 의식이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한달이나 더 살지, 그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네요.”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벌써 체념을 해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못해 침착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기억은 평평하지가 않다. 기억 속에는 우뚝 솟은 산맥도 있고, 깊게 파인 협곡도 있다. 소용돌이는 움푹 파인 지점을 중심으로 휘돈다. 나에게 그 지점은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자리이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후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마음을 졸인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다. 그 두려움의 도가 좀 지나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종교적 영향이든 뭐든 규범이나 도덕에 대한 훈육이 남달리 엄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는 어린아이를 상정해볼 수 있다. 사실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유년기의 나는 잘못이나 실수 그리고 그에 따라 가해질 징벌에 대해 극도로 예민했다는 기억이 있다. 벌에 대한 공포가 유난했던 것인데, 그때는 그 두려움으로 미리 벌을 받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징벌에 대한 그와같은 과도한 공포와 염려는 벌을 내릴 대상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쉽게 모습을 바꾸곤 했다. 나에게 벌을 줄 권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사라져준다면 나는 벌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가 없어진다면, 내가 그와같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자백이나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로 인한 어떤 비난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숙제를 하지 않은 날 아침, 나는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나오지 못하거나 갑작스럽게 전근을 가는 상상을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구슬 몇개를 훔친 적이 있는데, 같은 반 친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 상상을 했다. 그가‘우리 반 반장은 도둑놈이래요’하고 떠들고 다니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영사되는 바람에 미칠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그는 그런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불안하고 무서웠다. 나는 그 친구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기 시작했다. 아프든 죽든(세상에!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특별히 내 머릿속에만 악마가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꼭 악마에게 떠넘길 일도 아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순진하다는 믿음은 어른들이 내놓고 속아주는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순진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순진함은 때로,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왜냐하면 순진하니까, 악마를 연기하곤 한다. 악마가 순진함의 외양을 가지고 있든, 순진함이 악마의 내용을 가지고 있든 무슨 차이란 말인가) 어떻게든 사라져버리라고 주문을 외기도 했다. 물론 내 바람과 주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얼음과자를 사먹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천원짜리 한장을 훔쳤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돈이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천원짜리가 한장만 있었다면 몰라도 다섯장이나 있었다. 다섯장 가운데 한장 없어진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버지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돈을 빼내고, 얼음과자를 사기 위해 달려가고, 마침내 그 달콤하고 차가운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 때까지 나의 범죄가 들통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 단단한 확신의 원천은 욕망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고 싶은 너무 큰 욕망이 염려와 불안을 잠재웠다. 그러나 얼음과자의 부피가 줄어들고 숨겨져 있던 막대가 드러나면서 염려와 불안은 서서히 깨어났다. 그렇게 단단하던 확신은 어느 순간 얼음과자 녹듯 녹아 흘렀다. 아버지가 천원짜리 한장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급격히 기울었다. 안도의 구실이 되어주었던 다섯장이라는 지폐의 숫자도 다르게 해석되었다. 천원짜리가 고작 다섯장밖에 없었지 않은가. 다섯장 가운데 한장 없어진 걸 어떻게 모른단 말인가. 아버지가 그렇게 주의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얼음이 녹아 손등으로 흐르고 얼음 속에 숨어 있던 동그란 막대가 거의 다 드러날 즈음 얼음과자는 내 입 안에서 다만 얼얼할 뿐 더이상 아무 맛도 내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서서히 몰려왔다. 막대를 빨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친척 누나가 돈이 어디서 나서 그걸 사먹느냐고 물었을 때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누나는 고자질을 할 것이다. 아버지가 지갑의 돈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손에 들고 있는 얼음과자의 막대가 몽둥이처럼 여겨져서 나는 얼른 길바닥에 버렸다. 그러자 이내 학교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에게 품었던 것과 같은 바람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 바람은 거의 무의식적인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얼 원하고 있는지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그저 종아리와 엉덩이에 떨어질 몽둥이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마음속의 바람이 하필이면 그때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긴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야단칠 수 없는 몸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타고 있던 이웃 어른의 트럭이 언덕 아래로 굴렀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이 취한 상태였고, 운전을 한 이웃 역시 취한 상태였다. 아버지가 취한 것은 괜찮지만, 운전자가 취한 것은 괜찮지 않았다. 병원에 옮겨진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채 일주일을 살았다. 그리고 천원의 행방을 따지지 않고, 따질 수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친척들을 비롯하여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당황하게 했지만, 내가 받은 충격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지상에서의 삶을 급히 마감해버린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죽은 것은 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무슨 신념처럼 견고해졌다. 내가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 신념은 대들었다. 한번도 탄 적 없는 그 트럭을 하필이면 그날 아버지가 왜 타고 왔겠는가. 너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신념이 나를 취조하고 심문했다. 나를 변호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불합리한 재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죄책감이 엷어지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해보았지만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마음의 법정에서는 시간도 내 편이 아니었다. 시간은 오히려 나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죄의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더 생생해지고 빤질빤질해졌다. 언젠가 주일학교 선생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준다고 하면서, 꼭 소리를 내서 기도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예컨대 우리가 속으로 무엇인가를 바라기만 해도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그 마음의 소원을 다 기억하고 적당한 때가 되면 이루어주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신실하고 열정적이었지만, 기도에 대한 그의 신실하고 열정적인 가르침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한 불쌍한 영혼을 죄의식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걸 아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의 탓은 아니다.
2
규와 나는 태어난 날이 같다. 그는 9월 7일 새벽에 태어났고, 나는 9월 7일 저녁에 태어났다. 태어난 날짜는 같아도 몇시간이라도 일찍 세상 빛을 본 사람이 형이라며 친척 어른들은 규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거기에 규가 큰댁 장손이라는 이유가 덧붙었다. 물론 나는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였고, 따라서 그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규도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친구처럼 지냈다. 우리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생김새가 그 정도로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특별히 좋거나 나쁜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사실상 나의 보호자는 큰아버지가 되었다. 어머니는 몸이 약했고, 생활력도 없었다. 큰아버지는 자기 집 사랑채를 우리 모자를 위해 내주었다. 한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규와 나는 더욱 쌍둥이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체격이나 얼굴은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기해하지도 않았지만 언짢아할 일도 아니었다. 다만 큰아버지가 가끔 공부도 좀 닮으면 얼마나 좋아, 하고 말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불편했고 그는 언짢아했다.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9년 내내 우등생이었다. 그는 9년 중에 한두해를 빼놓고는 우등생이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나는 내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는 성적 때문에 부모님에게 혼나면서도 너털웃음을 웃었고, 오히려 옆에서 조마조마해하는 나를 좀팽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는 나를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문예반에 들어간 그는 교과서 대신 시집을 싸들고 다녔다.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기타를 치고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장을 외우고 다녔다. 노트에다가 역시 알아먹을 수 없는 문장을 끼적거리기도 했다. 자주 두발단속에 걸려 머리를 밀었다. 그럴 때면 빵모자를 내려써서 눈썹까지 가리고 다녔다. 주변에 여학생들이 늘 있었다는 기억도 있다. 심지어 그는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겉멋만 들어서 건들거리고 다닌다며 자주 야단치고 걱정하고 한숨을 쉬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그가 멋있어 보였다. 그가 없는 사이에 그의 시작 노트를 꺼내 읽고 흉내를 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쭙잖은 그 짓을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그런 욕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도 머리를 기르거나 구두를 신고 밤거리를 쏘다니는 짓은 아예 실행도 하지 못했다. 그의 무엇을 부러워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 대신 시를 외우고 쓰는 모습이었는지, 고등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나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파격을 연출해내는 분방한 정신이었는지.
나는 대학을 가고 규는 가지 못했다. 큰아버지는 아들 대신 조카의 입학금을 내주었다. 굳이 따지자면, 규가 나 때문에 대학을 못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비고사에 떨어져서 본고사를 치를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큰아버지가 아들이 아니라 조카의 등록금을 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들의 등록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지 아들을 포기하고 조카를 선택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규의 등록금을 가로챈 것 같은 자격지심에 오래 시달렸다. 내가 대학에 갔기 때문에 그가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굴절된 관념이 머릿속을 들쑤시며 괴롭혔다. 규는 예비고사에 떨어졌다, 그는 아무 대학에도 원서를 쓸 수 없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던 거다, 하고 이유를 끌어다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을 몰랐다면 설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설득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의해 새삼스럽게 설득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놓여날지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가 서울로 향하는 내 짐보따리에는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착각이었다. 물리적 거리가 의식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유치한가. 그러나 그런 줄 알면서도 짐짓 유치함에 의지하게 하는 간절함이란 게 있는 법이다. 나의 짐보따리에는 아버지는 물론 규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는 거리와 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유치한 믿음을 견지하는 쪽을 택했다. 마음이 기울면 믿음이 된다. 마음이 크게 기울면 큰 믿음이 되고 마음이 조금 기울면 작은 믿음이 된다. 유치한 것이 크게 기울 수도 있고, 고상한 것이 조금 기울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나는 의식적으로 고향에 가지 않았다. 꼭 가야 할 경우가 아니면 가지 않았고, 꼭 가야 할 경우에도 더러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방학 때는 마지못해 하루이틀 머물고는 공부를 핑계대고 서울로 내뺐다. 어떤 명절에는 담당 교수의 답사여행에 동행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기숙사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생각해보니 그때가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였다. 어머님은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밭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협심증이라고도 하고 심근경색이라고도 했다. 관상동맥이 좁아지면 심장 근육으로 흘러드는 혈액이 줄어들어 돌연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해준 사람은 입원실을 갖춘 5층 건물의 읍내병원 원장이었다. 자주 식은땀을 흘리고 가슴에 통증이 있었을 거라고 의사는 덧붙였다. 나는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큰아버지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의 말에 동의했다. 나는 고아가 되었지만 새삼스럽게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는 고아였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가장 튼튼하게 나와 연결되었다. 모든 것은 부재를 통해 그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낸다. 고아의 상태는 부모를 가장 잘 상기시킨다.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사라진 날부터 했던 아버지 역할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게으른 고향길에 대해 그다지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아버지 노릇을 그만둔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성인-고아임을 인정한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규를 가끔 잠깐씩 보았다. 내가 고향에 내려가도 보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는 집을 나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이 일 저 일 손을 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과가 변변치 않은지 고향에 갈 때마다 큰어머니는 한숨을 쉬었고, 큰아버지는 으레 핀잔을 놓았다. 어떤 명절날 나는 그의 짐 속에 들어 있는 책과 노트를 보고 아직 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내 목소리는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는데, 혹시라도 비웃는 것처럼 들릴까 저어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시는 어렵더라. 어렵기도 하지만, 내 생계를 해결해줄 것 같지 않더라. 우리 아버지가 내 뒷바라지를 계속 해줄 위인도 아니고, 또 우리 집이 그럴 형편도 아니고, 뭐, 나도 언제까지 빌붙어 살 수는 없는 거고, 그렇다고 너처럼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잖느냐.” 나는 나의 자책감과 그의 피해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내부의 요청에 응하느라 다급해졌다. 그럼 이제 시를 쓰지 않느냐고 재차 물은 것은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고 있어.” 그는 노트를 휘리릭 넘겨 보이며 유쾌하게 말했다. 소설 쓰는 건 어렵지 않은지 궁금했지만, 그보다 더 궁금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소설은 그의 생계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였다. 그러나 나는 내 궁금증과 의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 궁금해하는 건 몰라도 의심한다는 눈치를 보이는 건 좋지 않은 일 같았다. 그를 의기소침하게 할 이유도 없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이 앞섰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3
뜻밖의 일이 불쑥 끼어들어 삶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해버리곤 한다. 끼어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니, 애초에 삶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찍 끼어드느냐 늦게 끼어드느냐 하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끼어드는 것이 없으면 삶도 없다.
대학 4년을 마친 내가 방위병으로 근무하기 위해 주소지인 고향 집에 내려갔을 때, 규는 막 전역을 한 상태였다. 나의 근무지는 읍사무소의 예비군 중대였다. 주로 예비군 훈련 날짜를 정하고 통지서를 배부하는 일을 했다. 나는 3킬로미터 정도 되는 읍사무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오전 여덟시까지 출근했다가 오후 여섯시에 퇴근했다. 간혹 야근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제 시간에 귀가했다. 귀가한 후에는 농사일을 돕거나 책을 읽었다. 규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썼다. 소설을 쓰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으므로 나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그의 책장에 꽂혀 있는 소설들을 읽었다. 그는 간혹 자기가 쓴 원고를 보여주었다. 큰 소리로 읽어주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고등학교 때 내가 접한 시와는 달리 난해하지는 않았다. 소감을 물으면 나는 제법 성실하게 독후감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재밌는데 좀 피상적인 것 같다든가 주제가 너무 노골적이라든가 문장이 어색하다는 따위의 말을 했다. 규는 내 의견을 귀 기울여 들었다. 너무 진지한 그의 반응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냥 흘려들어, 하고 말꼬리를 흐리곤 했다. 그는 흘려듣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소설을 보는 눈이 꽤 정확하다며 행정학과에서 소설 창작도 가르치느냐고 물었다. 한번은 정색을 하고 소설을 써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냥 해본 소리라고 생각했으므로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뜻밖의 일이 종종 우리의 삶 속으로 끼어든다는 건 그 이상한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어느날, 나에게 정말로 소설을 써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규의 권유 때문은 아니었다. 모르겠다.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리고 실제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그의 권유가 어떤 식으로든 내 마음 한쪽에 들러붙어 있었는지.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는 규의 권유가 아니었다. 그 무렵 내가 읽은 어떤 소설이었다. 어떤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소설을 읽을 때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어떤 감정의 변화였다. 소설을 왜 쓰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의 그 소설에서 소설 속의 인물인 소설가는 자신의 글쓰기의 기원인 복수심과 지배욕에 대해 집요하게 이야기했다. 현실에서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한 소설가의 복수는 현실 밖에서 이루어졌다. 지배의 방식도 현실의 기제인 권력과는 도무지 상관이 없었다. 그는 심지어 자유의 질서로 지배한다고 말했다. 그 소설가가 강변하는, 자유의 질서로 지배함으로써 독자를 해방한다는 소설의 공적 역할에 사실 나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내 신경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것은 소설 속의 소설가, 나아가 그 소설을 쓴 소설가가 그 지루하고 장황한 자기변명을 끈질기게 되풀이함으로써 얻어내려 하고 있는, 마침내 얻어냈을 효과였다. 확실하고 또렷하게 그 효과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나는 소설을 왜 쓰는지 온전히 이해했다고 느꼈다. 어떤 의식의 반영이었는지 분명치 않은 채로 나는 문득 그 소설을 한권의 일기장처럼 인식했다. 아마도 소설가는 따로 일기를 쓰지 않겠구나, 적어도 이 소설가는 따로 일기를 쓸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여름 한낮 폭우가 쏟아지듯 느닷없이, 그야말로 불쑥 덮쳤다. 폭우는 조금 더 쏟아졌다. 나는 낡은 일기장을 버리고 새 일기장을 가지고 싶어졌다. 그것은 매우 당황스러운 충동이었다. 생각해보지 못한 의외의 열망에 사로잡혀서 나는 무언가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소설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설이 아니라 일기, 새로운 방식의 일기를 쓴다는 의식에 붙들려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우선 숙제를 하지 않은 날 아침, 담임선생님이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거나 갑작스럽게 전근을 가는 상상을 하는 장면부터 써나갔다. 학교 앞 가게에서 구슬 몇개를 훔치는 이야기도 썼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같은 반 친구의 눈빛에서 시작된 걷잡을 길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썼다.
…… 그가‘우리 반 반장은 도둑놈이래요’하고 떠들고 다니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영사되는 바람에 미칠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그는 그런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도둑놈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불안하고 무서웠다. 나는 그 친구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라기 시작했다. 아프든 죽든(세상에!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특별히 내 머릿속에만 악마가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꼭 악마에게 떠넘길 일도 아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순진하다는 믿음은 어른들이 내놓고 속아주는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순진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순진함은 때로, 그것이 악인 줄 모르고, 왜냐하면 순진하니까, 악마를 연기하곤 한다. 악마가 순진함의 외양을 가지고 있든, 순진함이 악마의 내용을 가지고 있든 무슨 차이란 말인가) 어떻게든 사라져버리라고 주문을 외기도 했다. 물론 내 바람과 주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나는 밤에 쓰고 아침에 출근했다. 지난밤에 쓴 글을 다음날 밤에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떤 부분은 열번도 더 고쳐 썼다. 중간에서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문장은 낮은 포복으로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문장을 쓰는 동안 내 안에서 드러내려는 욕구와 은폐하려는 욕구가 치열하게 싸운다는 걸 나는 알았다. 문장들은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고 갈등했다. 그 때문에 모순에 가득 찬 피투성이의 문장들이 만들어졌다. 앞에 쓴 문장을 덮기 위해 새로운 문장을 고르는 식의 글쓰기는 진을 빼내는 작업이었다. 나는 피곤과 수면부족과 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가학적 열망에 붙들려 끈기있게 문장들과 싸웠다. 무엇에 씐 것 같은 시절이었다.
내가 밤에 써놓고 간 글을 낮에 규가 읽는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매일 아침, 내가 출근하고 나면 밤새 내가 토해놓은 피투성이의 문장들을 읽는 모양이었다. 술에 취한 그가 내 방에 들어온 날 밤, 마무리라고 할 것은 없지만, 어쨌든 이틀 전에 한편의 긴 일기 쓰기를 끝낸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누워 내가 쓴 문장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술에 취한 그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일어나 앉으며 노트를 덮었다. 그는 그런 나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숨을 내뱉자 술냄새가 확 끼쳐왔다. “너는 대학 갔지. 나는 못 갔다. 그게 대수냐? 대수지. 안 그래? 어이, 내 사랑하는 사촌. 자네는 인생에서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너는 대학…… 나는 안된다…… 나에게 안 미안한가?” 횡설수설 늘어놓는 그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가 그런 말을 내 앞에서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혹스럽고 불안했다. 그러나 그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심각해지는 상황은 나에게 불리하다는 걸 긴 눈칫밥의 세월이 깨우쳐주었을 것이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신 걸 보니 소설이 잘 안 써지는 모양이라는 말을, 그를 위로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했다.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절주절 늘어놓던 그의 신세 한탄이 뚝 그쳤다. 그는 눈을 감고 입술을 악물고 있었다. 돌연 찾아온 침묵이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목이 졸리는 것 같아 답답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소설, 읽었다. 네가 군복을 입고 집을 나가면 나는 네가 밤새 써놓은 글을 읽기 위해 이 방에 들어왔다. 마치 연재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가 된 기분이었다. 설렜고 가슴이 뛰었고 호흡이 가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소설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니,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얼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필요하겠지, 그렇지만 그게 근본이 아니고, 심지어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고, 그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의 의식의 꿈틀거림? 그런 걸 정신의 핍절함이라고 하나? 암튼 그런 거 말이야, 그런 게 중요하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게 없더라고. 손끝의 재주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말씀이지. 더불어 내 손끝의 재주가 대단치 않다는 것도……” 규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었다. 웃음의 파장을 따라 쓸쓸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큰 그의 웃음소리에는 과장기가 묻어 있었고,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과장되고 있는 것은 쓸쓸함인 것도 같았다. 부러 흘려넘기려 했던 그의 말,‘나에게 안 미안한가?’가 망치처럼 뒤통수를 때렸다. 의당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예비군 중대에서 돌아와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큰어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도청이 소재하는 도시에 육촌쯤 되는 친척이 집을 지어 파는 소규모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생계를 위해’그곳으로 갔다고 했다. 그의 방은 치워져 있었다. 나의 노트가 없어진 사실을 그날 밤에 알았다.
4
병원 침대에 누운 규의 마르고 까만 얼굴과 복수가 차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배를 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링거 주사줄과 소변을 받아내기 위해 매단 고무호스가 마치 그를 결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표정이 무덤덤해서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보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여보, 창기씨 왔어요, 하는 아내의 말에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것이 전부였다. 그러고는 이내 눈빛으로 무슨 지시인가를 하자 그녀가 발끝에 떨어져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복수가 차 딴딴해진 배를 덮었다. 나는 광대뼈의 윤곽이 선명한 그의 윤기 없는 얼굴을 피하기 위해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마른 나뭇가지를 만진 것처럼 딱딱한 그의 손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친구, 이거 몸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나는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어떤 말을 해도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마는 상황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아니, 어떤 말을 해도 하나마나한 말이 되고 마는 상황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마나한 말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다행히 규의 아내가 내 말에 반응을 보였다. “하루도 안 거르고 술 마시죠, 담배를 달고 살았잖아요. 그렇게 노래를 불러도 건강검진 한번 안 받고. 자기 몸이 무슨 쇠로 만들어진 줄 아는지…… 말해 뭐해요. 곁에서 내조 잘못한 내가 죄인이지요. 시댁 식구들은 나만 원망한다니까요. 그렇지만……” 그녀는 말을 중단했다. 나는 그녀가 하다 만 말을 이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도 힘들었다고요. 저 사람, 생활비 한번 준 적이 없어요. 나도 안해본 일이 없다고요. 돈도 못 벌면서 걸핏하면 집 나가 떠돌아다니죠. 저 사람만 아니라 나도 건강검진 받을 틈이 없었다고요…… 그녀가 건강식품 판매사원부터 어린이집 교사, 간병인, 심지어 마을버스 운전기사까지 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규가 거의 생활비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동산을 용도에 맞게 가공하거나 적당한 실수요자와 시공사를 연결해주는 기획 부동산은, 그 일의 성격상 굴곡이 심했다. 제법 큰돈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1년 동안 만원짜리 구경을 못할 때도 있었다. 씀씀이는 크고 허세는 늘고 실익은 없는 것이 그 분야의 일이었다. 거기다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몇달씩 연락을 끊고 지내기도 했다. 여기저기 공사가 끝나면 몇십억이 들어온다는 말만 자주 되풀이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가도 공사는 끝나지 않고, 기왕 시작한 공사를 중간에서 멈출 수 없으니까 돈을 계속 집어넣게 되고, 그러다 보면 빚을 내게 되고, 가장 나쁜 경우 어렵게 끌어온 공사를 어쩔 수 없이 도중에 접어야 할 때도 있었다. 몇십억은 몇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문제는 가장 나쁜 그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도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한건의 공사가 성사되었을 때 돌아오는 몫의 크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한방에 대한 기대가 여러방의 헛방을 감내하게 하는 것이다. 규는 한달 후면 2억이 들어온다든지, 두달만 기다리면 5억이 입금될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 한달, 두달이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5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기다렸지만 이제는 무슨 소리를 하든 그냥 뒤로 흘려버린다고, 그런 지 오래되었다고 규의 아내가 말한 것이 3년 전쯤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후로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먹고 입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위해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말을 중단한 그녀의 눈시울이 젖어드는 걸 보았다. 규는 민망한지 눈을 감았다. 그녀가 물을 떠오겠다며 밖으로 나가자 병실 안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2인 병실의 한쪽 침대는 비어 있었다. 나는 문득 어색해서 그의 손을 놓았다. “텔레비전을 좀 켤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리모컨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은 코미디 프로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조금 줄였다. 그러고도 또 어색하고 민망한 시간이 꽤 흘렀다. 병실 안의 공기는 탁하고 무거웠다. 약품 냄새와 배설물 냄새가 섞인 역한 비린내가 공기중에 둥둥 떠다녔다. 하나마나한 말도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규의 아내가 빨리 들어오기를 바라며 텔레비전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코미디언들은 요란한 몸짓을 하며 큰 소리로 떠들어댔지만 내 눈과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규는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끼는 불편이 불편했다. 사실은 병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규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나에게 안 미안한가?’나는 그 목소리를 향해 소리쳤다. 네가 사라지기를 바란 적 없다. 그러니까 일어나라.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더 컸다. 나에게 안 미안하냐. 내 말은 그의 목소리에 눌려 들리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인가 한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앙상하고 새까만 그의 얼굴은 생기 없는 사물처럼 보였다. 대화를 하다가도 잠깐씩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깨곤 한다는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기력이 없어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잠꼬대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면 정말로 그가 미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나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것일까.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불편해하는 것처럼 그도 내가 불편한지 모른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버린 건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의 소리를 조금 더 줄였다. 호흡이 가쁜지 규가 갑자기 입을 벌리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턱이 흔들리고 몸이 들썩였다. 당황한 나는 그의 팔을 잡고 이름을 불렀다. “괜찮니? 어떻게 해줄까?” 규는 손을 들어 물 마시는 시늉을 해보였다. 나는 침대맡에 있는 물 컵을 집어들었다. 물컵에는 빨대가 꽂혀 있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들어올리고 입에 빨대를 물렸다. 그는 물을 아주 조금밖에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효과가 있었는지 호흡이 진정되는 듯했다. 다시 눕히려고 하는데 그가 침대를 조금 올려달라고 했다. 나는 침대다리에 붙어 있는 금속막대를 회전시켜 그의 상체 부분을 비스듬하게 세웠다. 그는 상체를 꼿꼿이 세우려고 몸을 비비적거렸다. 나는 양손으로 허리를 붙잡고 그를 도와주었다. 그의 숨결이 귓가에 느껴졌다. 순간 그의 이빨이 내 귀를 물어뜯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야말로 불쑥 들면서 뜨거운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부지불식간에 내 부주의한 손이 어느 부분인가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고통스러운지 그가 짧게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을 떼어냈다. 그는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한동안 찡그린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호흡도 거칠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에는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그의 둥근 배가 터져서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끈적거리는 더러운 물이 쏟아지는 그림이 그려졌다. 점액질의 검붉은 액체는 내 얼굴을 더럽히고 병실 벽에 마치 흉측한 모습을 한 다족류의 벌레들처럼 달라붙는다. 달라붙은 자리에서는 곧 잿빛 곰팡이가 피어나고, 이내 썩기 시작한다. 내 얼굴에도 곰팡이가 생기고 부패가 이루어진다. 나는 그림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좋더라, 이번 거. 「카싼드라」 말이야. 사람들이 믿지 않는 불길한 예언만 하도록 예언된 불운한 예언자 이야기 말이야.” 나는 뙤약볕에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어질어질했다. “그걸 봤다는 거야?” 나는 말려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그렇게 물었다.‘카싼드라’는 내가 이번호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소설의 제목이었다. 잡지가 나온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데다가, 대부분의 문예지들이 같은 형편이지만, 그 소설이 실린 잡지는 문인들이나 찾아볼까,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걸 봤다고 말하는 건가, 삶과 죽음에 반쪽씩 점령당해 있는, 하루에도 몇번씩 혼수 속으로 들어가 저세상을 답사하곤 한다는 이 형편없는 육체가. 그런 뜻인가. “그 소설뿐인 줄 아세요? 창기씨 작품은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읽어요. 이번에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그 잡지를 사오라고 해서 읽었잖아요. 저 몸을 해가지고, 무슨 정성인지.” 언제 들어왔는지 규의 아내가 내 뒤에서 대신 대답했다.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와서 보세요.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물론이고 단편소설 실린 잡지까지 그대로 모조리 모셔져 있으니까요. 첫 소설 실린 게 20년 전이잖아요. 그걸 다 가지고 있으니까 할 말 다했지 뭐.” 그녀는 규의 벌어진 환자복을 여며주며 덧붙였다. 규는 희미하게 웃었다.
문학잡지로부터 당선 통지를 받은 것은 방위병 복무기간이 열흘쯤 남은 스물다섯살 봄이었다. 응모하지도 않은 소설이 그 잡지의 신인상에 당선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나는 곧 사태를 파악했다. 규가 집을 나간 날 내 노트도 사라졌다. 그가 내 문장들을 원고지에 옮겨 적은 다음 잡지사에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소설을 쓰면서 살 결심을 한 적은 없었다. 그것은 당선 통지를 받고 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한권의 일기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이제 됐다.’그러나 여전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곧 알아차렸다. 일기장에 씌어지기를 원하는 것들이 더 있었다. 어떤 것들은 되풀이해서 씌어지기를 원했다. 되풀이해서, 그러나 다르게. 역설이지만, 일기장을 가졌으므로 일기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일기장이 제공하는 자유는 일기를 계속 쓰는 것을 담보로 주어진 것이었다. 묶임을 조건으로 한 해방, 해방의 지속을 위한 묶임이었다. 해방되었으므로 묶여야 했고, 해방을 반복적으로 얻어내야 했으므로 반복적으로 묶여야 했다. 어느 순간 그것은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내 영혼의 자유를 위해 의도적으로 그를 선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이를테면 나는 그를 소설 같은 것은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싶어했다. 그랬다는 것은, 내 속에서 그런 식의 내쫓기가 필요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 소설이 그를 늘, 필요 이상으로 의식했다는 뜻도 될 것이다. 가령 나는 글을 쓰면서, 규가 이 문장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늘 생각했다. 그가 지음직한 표정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는 늘 내 문장의 첫번째 독자였다. 그 독자는 대개 표정으로 말했다. 표정의 변화가 또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온 신경을 다 기울여야 했다. 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마침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어떤 문장은 지우고 어떤 문장은 비틀었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한 것은, 사실은 그였다. 내 문장은 자주 그가 원하는 대로 씌어졌다. 독자는 사실상의 작가였다.
5
세번째 찾아갔을 때, 규는 이틀간 빠져 있던 간성혼수 상태에서 벗어난 지 다섯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전보다 더 마르고 얼굴색이 더 나빠지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발음이 어눌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꾸만 뭐라고? 하고 반문해야 했다. 자꾸 못 알아듣고 되묻는 것이 결례인 것 같아 나중에는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규의 아내는 지난번 내장출혈 때 피가 뇌까지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다. 의사도 그런 소견을 비쳤노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손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의사에게 규는 이미 포기한 환자였다. 의사에게만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규의 침대 옆에는 규의 아내와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친정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점퍼 차림의 남자는 운동선수처럼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가 전에 한번 뵈었죠, 하고 내미는 손을 잡는데, 아귀에서 힘이 느껴졌다. 나는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네 네, 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규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파리한 얼굴은 어쩐지 나른해 보였다. 열정도 미련도 사라진 자의 얼굴이었다. 침대 위의 그를 향해 무슨 이야기인가를 열성적으로 토해내는 침대 곁의 두 사람의 조급한 모습에 비해 그는 너무 태평하고 아늑했다. 벌써 다른 세계로 옮겨가버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여보…… 내 말을 잘 들어봐. 당신이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하고 말고. 일어날 거야.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준영이를 위해서도 그렇고, 일어나야 하지……” 그녀는 그때까지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그런데, 만일에 말이야. 만일에 당신이 움직이기 어려워 좀더 오래 누워 있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봐. 어저께처럼 의식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그때는 누군가가 당신을 대신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이야기를 해줘. 몇년간 매달린 일이야. 마무리가 되었다며?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당신 몫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그녀의 동생도 그녀와 대동소이한 말을 되풀이했다. 그가 저를 믿으라니까요, 매형, 할 때는,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규의 입술이 약간 열리는가 싶더니 무슨 소리인가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소리가 워낙 약한데다가 발음도 부정확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규의 아내가 뭐라고요? 하며 얼굴을 그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규가 우물거렸다. 그녀가 얼굴을 떼어내며 또 그 소리, 하고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10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 무조건 자기가 알아서 한다지.” 그녀가 물러나자 갑갑하다는 듯 그녀의 동생이 매형, 하고 부른 다음,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그가 규에게 설득조의 말을 길게 늘어놓고 있는 동안 그녀는 나에게 한탄조로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규는 몇년간 두개의 공사를 동시에 벌여왔는데, 그중에 하나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고, 다른 하나도 서너달 안에 끝날 거라고 했다. 금방 큰돈이 들어올 거라는 말을 워낙 자주 하며 산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 경우는 틀림없는 것 같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 확신의 근거로 그녀는 얼마 전에 계약하기로 한 송파구의 37평짜리 아파트를 들었다. 그들 가족은 한달 후면 10년 동안 살아온, 3천만원 보증금에 30만원 월세인 의정부의 연립주택에서 지은 지 3년 된 서울 한복판의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있었다. 부부가 함께 집을 보고 왔노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몸을 버려가며 몇년간 매달려 일한 댓가를 한달 안에 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쯤은 통장에 돈이 들어와 있어야 했다. 하필 이런 때 병에 걸릴 게 뭐람,이라는 말을 했다가 내 눈치를 보고는, 평생 저 몸이 되도록 그 일만 했는데 그냥 가면 억울하잖아요,라고 변명처럼 덧붙이고, 여전히 열심히 설득중인 동생과 여전히 무표정한 남편을 바라보며, 나랑 준영이는 어떻게 살아요…… 하고 뚱한 목소리를 냈다. “글쎄, 저를 믿으라니까요, 매형.” 남자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중얼거린 사람이 규의 아내였는지, 그녀의 동생이었는지 모르겠다. 규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규가 이쪽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큰돈이 들어온다는 것은 어쩌면 사실일 테지만,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중요한 건 아닌 것처럼 나에게는 여겨졌다. 그 순간,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 세계에서 평생을 살아온 규의 외로움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감전된 듯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규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고,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 세계에서 살았다. 자기를 이해해줄 수 없는 세계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존재방식이 부유(浮遊)였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깨달아졌다. 존재의 최소한의 방식,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부유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른하게만 보이던 그의 표정이 애써 모욕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밑바닥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만 해요. 그만들 해요. 억눌린 내 목소리는 찌그러져서 나왔다. 나는 한번도 울지 않은 메마른 그의 눈을 대신해서 울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내 안에서 부글거리며 다시금 형체를 만들어가는 불편한 기운을 흩뜨리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나 역시 살아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내 눈물은 순수하지 않다. 조금 전에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중얼거린 사람이 혹시 나였을까. 변명하듯 고개를 저으면서 나는 가슴에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병실 안은 침묵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두 사람은 눈물을 글썽이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녀의 동생이 먼저 병실을 나가고 뒤이어 그녀가 나갔다.
규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기 때문에 나는 컵에 물을 받아 빨대를 물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무슨 말인가를 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 그가 다시 입을 달싹였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었지만 역시 잘 들리지 않았다. 그가 잠깐 숨을 고르고 나서 침대 밑을 가리켰다. 나는 그곳에 손을 넣어보았다. 종이컵과 화장지와 일회용 젓가락과 과도와 양말과 티백과 수건이 들어 있는 종이상자가 보였다. 그가 손짓을 했다. 상자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라는 신호처럼 보였다. 나는 거기 들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확인시켰다. 몇가지의 물건이 더 나왔다. 볼펜이 한자루 나오고 며칠 전 신문도 나왔다. 규는 그것들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맨 아래에서 빛이 바랜 서류봉투가 하나 나왔다. 내가 그것을 들어 보이자 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봉투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오래된 노트 한권이 나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처음에 그 노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규가 펼쳐보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첫장을 넘겼다. 잊고 있었던, 익숙한 내 필체가 마치 화석에 찍힌 아득한 시절의 발자국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첫 문장들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오래전에 땅속에 깊이 파묻어두었던 죄를 다시 꺼낸 것처럼 마음이 뒤숭숭했다. 이것을 여태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이것을, 어쩌자고 여태 가지고 있단 말인가. 내가 잊으려고 파묻은 곳이 규의 가슴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신음처럼 내뱉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떳떳한 일일까. 그는 또 무슨 말인가를 했다. 이번에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차렸다. 읽으라고? 나는 확인하듯 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재촉이라도 하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는 늘 나의 유일한 독자였다. 나의 모든 문장들이 그에게 읽히기 위해 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트를 펴들고 나의 첫 문장들을 읽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목소리도 덜덜 떨려서 나왔다.
어느 여름날 나는 얼음과자를 사먹기 위해 아버지의 지갑에서 천원짜리 한장을 훔쳤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돈이 없어진 걸 눈치채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천원짜리가 한장만 있었다면 몰라도 다섯장이나 있었다. 다섯장 가운데 한장 없어진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버지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돈을 빼내고, 얼음과자를 사기 위해 달려가고, 마침내 그 달콤하고 차가운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 때까지 나의 범죄가 들통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 단단한 확신의 원천은 욕망이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얼음과자를 입에 넣고 빨고 싶은 너무 큰 욕망이 염려와 불안을 잠재웠다. 그러나 얼음과자의 부피가 줄어들고 숨어 있던 막대가 드러나면서 염려와 불안은 서서히 깨어났다. 그렇게 단단하던 확신은 어느 순간 얼음과자 녹듯 녹아 흘렀다……
나의 어눌한 낭독에 맞춰 그의 입이 살짝살짝 들렸다가 닫혔다. 그것은 그가 그 문장들을 거의 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무서웠다. 나는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문득 내가 읽는 문장들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어느 순간, 그의 목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달싹거리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감겨 있었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잠들어 있는 그를 위해 내 문장들을 읽었다.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떨어져 노트에 얼룩을 만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끝까지 읽었다. 나의 읽기는 필사적이었다…… 나는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