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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경숙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리진』 『바이올렛』 『외딴방』, 소설집 『종소리』 『감자 먹는 사람들』 『풍금이 있던 자리』 등이 있음.

 

 

장편연재 3

엄마를 부탁해

 

 

제3장 나, 왔네

 

굳게 잠겨 있는 파란 대문 앞에 젊은 여자가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 누구요?

당신이 뒤에서 기침소리를 내자 젊은 여자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묶고 매끈한 이마를 지닌 여자의 눈에 반가움이 실렸다.

- 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라보자 젊은 여자가 미소지었다.

- 여기가 박소녀 아주머니 댁이지요?

오래 비워둔 집 문패엔 당신 이름만 달려 있다. 박소녀. 아내를 두고 할머니라 하지 않고 아주머니라 칭하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다.

- 무슨 일로?

- 아주머니 안 계세요?

- ……

- 정말 실종되신 거예요?

당신은 젊은 여자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누구요?

- 아, 저는 남산동의 소망원에 있는 홍태희라고 합니다.

홍태희? 소망원?

- 고아원이에요. 아주머니가 너무 오래 나오시지 않으셔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걸 봤어요.

젊은 여자가 당신에게 내미는 건 아들이 낸 신문광고였다.

- 어찌된 일인가 궁금해서 몇번 왔었는데 늘 문이 잠겨 있었어요. 오늘도 그냥 돌아가야 하나 했는데… 어찌 된 건지 얘기나 좀 들어보고 싶어서. 책을 읽어드려야 하는데……

당신은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돌을 들어내고 열쇠를 꺼내 대문을 땄다. 오래 비워둔 집 대문을 손으로 밀면서 혹여 싶어 안에 기척을 살폈다. 조용하다.

당신은 홍태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젊은 여자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책을 읽어드리기로 약속했다니? 아내에게 말인가? 당신은 아내로부터 소망원 이야기도 홍태희라는 이 여자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홍태희는 마당으로 들어서자 안을 향해 아주머니? 하고 불렀다.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 대답이 없자 홍태희의 얼굴이 조심스러워졌다.

- 집을 나가셨어요?

- 아니오, 잃어버렸어요.

- 네에?

- 서울서 잃어버렸단 말이오……

- 아주머니를요?

홍태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가 십여년 전부터 소망원에 와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를 하고 소망원 마당에 농사를 지어주기도 한다고 했다. 아내가? 홍태희는 아내가 한달에 사십오만원씩 소망원에 후원금을 내고 있는 존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몇년째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사십오만원씩? 서울의 자식들이 얼마씩 걷어서 매달 아내 앞으로 보내는 돈이 육십만원이었다. 자식들은 시골 살림이니 그 돈이면 두 사람이 쓰고 살 정도는 되려니 여기는 듯했다.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 돈을 아내는 처음엔 당신과 나눠 쓰더니 어느날부턴가 이 돈은 자신이 다 쓰겠다고 했다. 왜 갑자기 돈 욕심이 생겼는지 의아했지만 아내는 어디다 쓰는지 용도는 묻지 말라고 했다. 자식들을 다 키워냈으니 그 돈을 쓸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래 생각해둔 말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돈을 쓸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어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아내의 말투가 아니었다. 일일연속극에서 들었던 말 같기도 했다. 아내가 며칠을 혼자서 그 말을 허공에다 대고 연습해보았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언젠가 아내가 논 세마지기를 자기 명의로 해달라고 한 때가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인생이 허망해서 그런다고 했다. 자식들이 다 제 갈 길을 가고 나니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오월 어버이날인가 자식들 누구로부터도 연락이 없던 다음 일이었다. 아내는 읍내의 문구점에 나가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씌어진 리본이 달린 카네이션 두송이를 사왔다.

- 누가 볼 깜습소!

신작로에 서 있는 당신을 집으로 가자 하더니, 집에 와서도 방 안으로 들어가게 하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 당신의 점퍼 앞자락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 내가 자식이 몇인디 오늘 같은 날 꽃 한송이 안 달고 댕기믄 사람들이 뭐라겄소이. 그래서 사왔소이.

아내는 자기 옷 앞자락에도 자기가 사온 꽃을 달았다. 꽃이 자꾸 아래로 처지자 두번이나 반듯하게 다시 달았다. 당신은 대문을 나서자마자 꽃을 떼어버렸으나 아내는 종일 그 꽃을 달고 다녔다. 그러곤 그 다음날은 끙끙 앓아누웠다. 한 며칠 잠을 설쳐가며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나 논 세마지기를 자기 박소녀 앞으로 해달라고 했다. 당신이 우리 논은 다 당신 논인데 새삼 세마지기를 명의로 해달라니 그건 당신이 손해 보는 일이라 했더니 그런 거 같소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보내오는 돈을 모두 자신이 써야겠다고 말할 때의 아내는 단호했다. 아내의 기세에 뭐라 반론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랬다간 큰 싸움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조건을 달았다.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을 아내가 다 차지하는 대신 당신에게서 돈을 타가는 일은 없기로. 아내는 선선히 그러마고 했다. 옷을 사 입는 것 같지도 않고 따로 무엇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슬쩍 통장을 보면 같은 날에 꼬박꼬박 사십오만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어쩌다 돈이 늦게 들어오면 형제들이 보내는 돈을 모아서 다시 아내에게 부치는 딸애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보내달라고까지 했다. 그것도 아내다운 일은 아니었다. 어디다 그 돈을 쓰는지 묻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묻진 않았지만, 매달 똑같은 날에 사십오만원씩 정확히 돈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아 허망하다더니 돈을 모으려고 적금을 드는가 보다 생각했다. 못 찾았지만 그리 믿고 적금통장을 적극적으로 찾아본 적도 있었다. 홍태희의 말대로라면 아내는 그동안 육십만원 중 사십오만원을 남산동의 소망원에 후원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당신은 아내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홍태희는 자기보다 아이들이 아주머니를 더 기다린다고 했다. 아이들 중에 균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엄마 역할을 아주머니가 다 하고 있어서 특히 균이가 갑자기 아주머니가 고아원에 나오질 않으니 상심에 빠져 있다고 했다. 태어난 지 육개월도 안되어 이름도 없이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인데 아주머니가 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균이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고 했다. 중학생이 되면 아주머니가 책가방과 교복을 사주기로 했다고도 했다. 균이. 당신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당신은 홍태희의 얘기를 가만 듣고만 있었다. 아내가 남산동의 고아원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가 벌써 십년째라는데 당신은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당신이 잃어버린 아내가 홍태희가 말하는 박소녀 아주머니이기는 한지 의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언제 소망원엘 다녔단 말인가? 왜 그런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당신은 아들이 낸 신문광고에 난 아내의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랍 깊숙이 들어 있는 앨범을 꺼내 넘기다가 아내의 얼굴이 크게 박힌 사진을 한장 떼어냈다. 아내가 바닷가 방파제 위에서 딸과 함께 바람에 자꾸만 벗겨져 내려가는 옷자락을 부여잡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당신은 홍태희의 눈 앞에 사진을 들이밀었다.

- 이 얼굴이 맞소?

- 어마! 아주머니!

아내의 선명한 사진을 보더니 홍태희는 아내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갑게 아내를 불렀다. 햇볕 때문인지 이마를 찌푸린 채인 아내가 당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그래,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니? 그건 무슨 얘기요?

- 소망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셨어요. 아이들 씻겨주는 일을 제일 좋아하셨어요.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아주머니가 왔다간 날은 소망원이 반짝반짝했어요. 무엇으로 감사드려야 하나 싶어 뭐 도와드릴 게 없냐고 물어도 그런 거 없다고만 하시더니 어느날 이 책을 가져오셔서 한시간씩만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좋아하는 책인데 눈이 나빠져서 이젠 책을 못 읽으신다며.

- ……

- 이 책이에요.

당신은 홍태희가 가방에서 꺼내놓는 책을 응시했다. 딸애가 쓴 책이었다.

- 이 작가가 이 지방 출신이에요. 중학교까지 여기서 다녔대요. 그래서 아주머닌 이 작가를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 지난번에 읽어드린 것도 이 작가 책이었거든요.

당신은 딸애가 쓴 책을 집어들었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아내가 딸애의 소설을 읽고 싶었구나. 당신에겐 한번도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에게 딸애가 쓴 글을 읽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식구들은 아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 당신이 아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는 모욕을 당한 얼굴이었다. 아내는 당신이 젊은 날 집 바깥을 떠돈 일, 당신이 이따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일, 당신이 아내에게 당신은 알 것 없어!라고 언성을 높이는 일들을 죄다 자신이 글을 몰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아니었으나 부정할수록 아내는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당신은 이제서야 아내의 말처럼 사실은 자신이 은연중에 그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이 아내에게 딸의 소설을 읽어주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젊은 여자 앞에서 글을 모른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내는 얼마나 애를 썼을까. 얼마나 딸의 소설을 읽고 싶었으면 이 젊은 여자에게 이 소설을 쓴 작가가 내 딸이라는 말을 못하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책을 읽어달라고 했을까. 당신의 눈이 시어졌다. 이 젊은 여자에게 딸을 자랑하고 싶은 걸 아내는 어떻게 참았을까.

- 참, 나쁜 사람이오.

- 예?

홍태희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당신을 바라봤다. 그렇게 읽고 싶었으면 나에게 읽어달라고 할 일이지. 당신은 메마르고 거친 당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아내가 딸이 쓴 책을 읽어달라고 했으면 그때의 당신이 읽어주기는 했을까? 아내를 잃어버리기 전에 당신은 아내를 거의 잊고 지냈다. 잊고 지내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무엇을 청하거나 탓하거나 방치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공손한 말씨를 쓰다가도 아내에게만 오면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가끔은 이 지방 사람들만이 쓰는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당신은 공손한 말투는 아내에게 써서는 안된다고 어디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랬다.

 

- 나, 왔네.

홍태희가 돌아간 후 빈집이 되고 당신이 웅얼거렸다.

 

당신은 젊어서도, 결혼해서도, 자식이 생긴 후에도 이 집을 떠날 생각을 했다. 이 나라 땅 남쪽에 별 특징 없이 붙어 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 집에서 살다가 늙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고독해졌다. 그럴 때면 말도 없이 이 집을 나가 팔도를 떠돌아다녔다. 제사 때가 되면 유전자가 시키는 것처럼 이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나가 몸이 아파 운신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기신기신 다시 돌아왔다. 몸이 회복되면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웠다. 그 오토바이에 아내하고는 생판 다르게 생긴 여자를 태우고 이 집을 다시 떠나기도 했다.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 집 따위는 다 잊고 내질러 가서 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세 계절을 못 넘겼다.

 

집을 떠나 낯선 것에 익숙해지면 어김없이 아내가 쉴 새 없이 기르는 것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강아지들이 닭들이 캐도 캐도 또 나오는 감자들이… 그리고 자식들이.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냈던 아내가 당신의 마음 안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후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당신은 이제서야 근 이삼년 동안의 아내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해냈다. 아내는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놓이곤 했다. 아내는 마을의 아주 낯익은 길에서도 집을 찾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곤 했다. 오십년 동안 사용해온, 집 안의 아주 낯익은 솥이나 항아리를 도대체 이게 무엇이지? 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빠진 머리카락이 집 안 아무데서나 나뒹굴었다. 매일 보는 일일연속극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으로 시작되는 몇십년 동안 입에 달고 부르던 노래를 잊었다. 아내가 당신을 잊은 것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내는 한없이 잦아들던 물속에서 무언가를 되찾은 듯 어떤 것을 세밀하게 기억해내기도 했다. 당신이 언젠가 집을 떠날 때 광 문틈에 끼워두고 갔던 돈을 싼 신문지까지. 사는 동안 말을 못했지만 떠나면서도 그 문설주에 돈을 남겨두고 가서 고마웠다고 했다. 신문지에 돌돌 말려 있던 그 돈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 시절을 어찌 살아냈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아내는 가족사진을 다시 찍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번에 찍은 가족사진에 작은딸이 막 낳은 아이가 빠졌다며.

 

당신은 이제야 아내의 혼란 상태를 방치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아내가 두통으로 머리를 싸매고 혼절해 있을 때도 당신은 아내가 잠을 자는 중이라고 여겼다. 아무데나 누워서 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내는 아내가 방문마저 열지 못해 쩔쩔맬 때조차 당신은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퉁박을 주었다. 아내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당신은 아내의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시간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빈 돼지막 밥그릇에 젊은 시절 한때 길렀던 돼지 이름을 부르며 밥을 말아 갖다 붓고 그 앞에 앉아 이번엔 새끼를 한마리 말고 세마리는 낳아라… 그러면 참 이쁘겠다… 웅얼거릴 때도 당신은 아내가 싱겁게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돼지는 새끼를 세마리 낳았다. 그 새끼 세마리를 팔아 아내는 형철이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다.

 

- 안에 있는가? 나, 왔네!

당신은 빈집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귀를 기울였다.

- 인제 오요!

당신을 반기는 아내 목소리를 기대했으나 빈집은 적막했다. 바깥일을 보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나, 왔네! 하면 어김없이 이 집 어디선가 얼굴을 내밀던 아내.

- 어찌 그리 술은 못 끊소? 나 없인 살어도 술 없인 못 살 것이구마는. 자식덜이 전화질 헐 때마다 그리 걱정을 해쌌느마는 그깟 것을 못 끊고 그러요!

헛개나무 달인 물을 당신 앞에 내밀면서도 아내는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 어데 한번만 더 술 마시고 오믄 내가 집을 나가버리든지 할 것이구마는… 저참에 병원서 의사가 안 그럽디여. 당신한티는 술이 젤 안 좋다 안합디여. 세상이 얼매나 좋아졌는디 이 좋은 세상 더 안 보고 撓으면 계속 마시등가.

어쩌다 사람들과 점심밥 먹으러 나갔다가 낮술을 한잔 하고 오면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한 듯 낙망하던 아내였다.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려버리던 아내의 잔소리가 이리 그리워질 줄은. 그 잔소리를 들으려고 기차에서 내려 역앞 순댓국집에 들어가 괜한 낮술을 한잔 마시고 오기까지 한 당신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옆마당쪽 샛문 옆의 개집을 바라보았다. 개라도 기척을 낼 텐데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개줄조차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개밥을 챙기는 것이 귀찮아진 당신 누님이 아예 개를 집으로 데리고 간 모양이었다. 당신은 대문을 닫는 게 아니라 활짝 열어놓고 마당으로 걸어들어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내가 혼자서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당신은 마루에 이러고 걸터앉아 있곤 했다. 아내가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와 밥은 먹었소? 물으면 당신은 언제 올랑가? 물었다. 왜요? 내가 보고 撓소? 물으면 당신은 보고 撓기는… 내 생각 말고 이참에 실컷 있다 오소, 하였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언제 올랑가?라고 묻는 당신의 말을 듣고 나면, 아내는 무슨 볼일을 보러 서울에 갔든 그 길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당신이 돌아온 아내를 보며 뭣 하러? 실컷 있다 오라니께는! 퉁박을 주듯 말하면 아내는 당신 땜새 온 줄 아요? 개밥 줄라고 왔구마는… 눈을 흘겼다.

 

아내가 기르는 것들은 낯선 곳에서 얻은 것을 버리고 당신을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이 대문을 밀고 들어오면 아내는 이 집에서 때에 전 수건을 쓴 채로 형철이를 책상에 앉히고 고구마를 캐고 누룩을 빚고 있었다. 당신의 누님은 입버릇처럼 전쟁 때 병역기피로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었던 적의 버릇이 당신의 떠돌이병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징집을 당신이 피했던 건 아니다. 피해 다니는 게 지긋지긋해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간 적도 있으니까. 당시 형사였던, 나이가 겨우 다섯살밖에 차이나지 않은 당신의 작은아버지가 당신을 다시 돌려보냈다. 무너진 집안이라도 당신은 엄연히 이 집안의 종손이니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살아남아 선산을 지키고 제를 챙겨야 한다고. 그렇다고 당신의 검지를 작두에 넣고 마디를 잘라버릴 것까진 없었다. 정작 선산을 지키고 계절마다 돌아오는 제를 지낸 건 당신 아내였으니까. 그랬을까? 집을 두고도 이슬을 맞으며 바깥잠을 자야 했던 것이 당신을 방랑자로 만들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노숙의 습관이 당신을 집 바깥으로 떠돌게 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자는 날이면 대문을 밀치고 누군가 당신을 잡으러 오는 것만 같아 불안해 한밤중에 도망치듯 이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어느 겨울밤에 집에 돌아와보니 자식들이 불쑥 자라 있었다. 날이 추워 모두들 한방에 모여 자고 있었다. 아내는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밥그릇을 꺼내고 상보로 덮어두었던 밥상을 끌어와 당신 앞으로 밀었다. 눈보라 치는 밤이었다. 아내가 화롯불에 김을 구웠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에 자식들이 하나둘 눈을 뜨고 당신 앞으로 모여들었다. 당신은 아내가 구워주는 김에 밥을 싸서 자식들의 입에 한개씩 넣어주었다. 큰놈 입에 넣어주고 작은놈 입에 넣어주고 큰딸애 입에 넣어주었다. 아직 입에 넣어주지 못한 아랫놈들이 있는데도 큰놈은 이미 다 먹고 또 싸주기를 기다렸다. 자식들이 밥을 받아먹는 것보다 당신이 김에 밥을 싸는 속도가 더 느렸다. 당신은 자식들의 입이 무서워졌다. 이놈들을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그제서야 당신은 이제 바깥은 잊어야겠다고, 이 집을 떠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 나, 왔네!

당신은 얼른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집을 나서던 때 아내가 개어두었던 수건 몇개가 접힌 채 나란히 놓여 있다. 그날 아침에 약을 먹느라 마시고 방바닥에 내려놓은 물컵에 물이 말라붙어 있다. 벽시계는 오후 세시를 가리키고 있고 뒤꼍으로 난 방문으로 대나무 그림자가 비쳐들고 있다.

- 나, 왔단 말일세.

텅 빈 방 안을 향해 혼자 웅얼거리던 당신의 어깨가 눈에 띄게 처졌다. 어째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뭐 하러 가느냐며 여기 내려오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아들을 뿌리치고 오늘 아침 기어이 기차를 타고 이 집으로 올 때 당신의 마음 한켠에 도사리고 있던 희망은 이 집에 들어서며 안에 있는가? 나 왔네! 하면 방을 닦다가, 혹은 헛간에서 채소를 다듬다가, 그도 아니라면 부엌에서 쌀을 씻다가 인제 오요! 예의 그 목소리로 아내가 반겨줄 것만 같았다. 어째 그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집은 텅 비어 있다. 오래 비워둔 집은 괴괴하기까지 하다.

당신은 일어서서 빈집의 방문들을 죄다 열어보았다. 안에 있는가? 안방과 작은방과 부엌과 보일러실 문까지 열어보며 당신은 꼬박꼬박 안에 있는가? 물었다. 이 집에서 사는 동안 당신이 아내를 이리 간절히 찾아보긴 처음이었다. 당신이 이 집을 떠났을 때도 아내는 이리 나를 찾았을까? 당신은 메마른 눈을 껌벅이며 부엌 창문을 열고 헛간 쪽으로 시선을 주며 거기 있는가? 웅얼거렸다. 평상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이 자리에 서서 헛간에서 뭔가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부르지도 않았는데 문득 아내가 당신이 서 있는 쪽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곤 왜요? 뭐가 필요허요?라고 물었다. 읍에 좀 다녀오려는디 양말이 어디 있나? 하면 아내는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가도 벗어놓고 안으로 들어와 입고 나갈 옷가지들을 챙겨주었다. 당신은 텅 빈 헛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이봐… 나, 배고픈디. 뭐 좀 먹었으믄 좋겄는디.

당신은 헛간에 놓여 있는 빈 평상을 향해 웅얼거렸다. 고추꼭지를 따거나 깻잎을 개거나 배추를 간하다가도 당신이 뭐 좀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주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당신 곁으로 와서는 산에 두릅이 났길래 좀 캐왔는디 두릅전 부쳐볼 테니 자셔볼라요? 하던 아내. 그때는 왜 그것이 평화롭고 복된 일이란 걸 몰랐을까. 아내한테 미역국 한번 끓여줘본 적 없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모든 것은 어찌 그리 당연한 것으로 받기만 했을까. 언젠가 읍내에 나갔다 온 아내가 거, 시장통의 당신 잘 가는 정육점 있잖오. 오늘 고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 아낙이 자꾸 나를 불러서 들어갔더마는 미역국을 먹고 가라길래 웬 미역국이냐 했더니 오늘이 생일인디 남편이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줬다 합디다, 했다. 당신이 그저 듣고 있으니 맛이 있었던 건 아니요! 그란디 첨으로 정육점 아낙이 부럽던디요, 그랬다. 당신의 메마른 눈이 껌벅거렸다. 어디에 있소… 아내가 이 집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미역국이 아니라 전도 부쳐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벌주는 거요…… 당신의 메마른 눈에 물기가 어렸다.

 

당신은 이 집을 내키는 대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도 아내가 이 집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를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당신은 아내를 처음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얼굴 한번 보지 않고 혼약이 이루어진 다음이었다.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 사령관 간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져 전쟁이 끝났다는데 전쟁중일 때보다 더 뒤숭숭하던 때였다. 밤이면 산에서 배고픈 인민군이 내려와 마을을 뒤지고 다니던 때였다. 혼기가 찬 처녀를 둔 이들은 밤이면 딸들을 숨기느라 바빴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처녀를 끌고 간다는 소문이 이 마을 저 마을에 퍼져 있었다. 철길에 굴을 파놓고 딸을 숨기는 이도 있었다. 몇몇은 밤마다 한집에 모여 밤을 지새웠다. 바삐 딸을 결혼시키는 이도 있었다. 아내가 태어나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던 마을은 진뫼였다. 당신의 누님이 진뫼의 처녀와 혼인을 하기로 했다고 했을 때 당신은 스무살이었다. 당신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처녀라고 했다. 진뫼. 그곳은 당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십여리 들어가는 산골이었다. 다들 그렇게 얼굴 한번 보지 않고 혼인들을 하던 때였다. 혼인은 논에서 나락을 걷어들이고 난 다음 시월에 진뫼 처녀의 집 마당에서 올린다고 했다. 혼인날이 정해지자 당신이 어쩌다 웃기만 해도 다들 장가가니 좋은가 보다고 놀렸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었다. 당신의 누님이 집 살림을 맡아했으므로 다들 당신이 어서 장가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으나 얼굴도 한번 보지 않은 여자와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을 마칠 생각도 없었다. 일손이 모자라 애들까지 논에 불려나가 일을 하던 때 당신은 친구 몇과 읍에 나가 싸돌아다녔다. 마음 맞는 친구 둘과 다른 도시로 내빼 거기에 양조장을 차릴 계획을 세웠다. 혼인보다는 날마다 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마음이 팔려 있던 당신이 무슨 마음으로 불현듯 진뫼로 건너갔을까. 시월이면 당신과 혼인하기로 한 처녀의 집은 뒤꼍에 무성한 대나무가 우거진 오두막이었다. 지붕과 마당에는 밝은 빛이 들었으나 처녀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처녀는 무명저고리를 입고 오두막 마루에 앉아 수틀에 수를 놓고 있었다. 이따금 고개를 마당으로 쑥 빼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러기들이 줄을 지어 날아가는 것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했다. 처녀가 일어서서 오두막 바깥으로 나왔다. 뒤따라가니 목화밭이었다. 훗날 장모가 된 분이 거기서 쭈그리고 앉아 목화를 따고 있었다. 처녀가 저 멀리서부터 엄마- 하고 불렀다. 목화를 따고 있던 장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왜애? 대답했다. 흰 목화가 두 모녀 사이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처녀가 또 엄마! 하고 불렀다. 장모가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왜애? 대답했다.

- 나 시집 안 가먼 안돼?

당신은 숨죽였다.

- 뭐야?

- 엄마랑 같이 살먼 안돼?

목화송이가 또다시 흔들렸다.

- 안돼!

- 왜 안돼?

처녀가 거의 울먹였다.

- 그럼 산사람들한테 끌려갈 테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무명옷을 입은 처녀가 목화밭에 주저앉아 발을 쭉 뻗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오두막 마루에 앉아 수틀에 수를 놓고 있던 정갈한 모습이 아니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뒤에서 지켜보던 당신조차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제서야 장모가 목화밭에서 걸어나와 처녀 곁으로 갔다.

- 이 봐라! 니가 아적 어려서 안 그러냐. 나도 이 전쟁통만 아님사 이삼년은 더 널 데리꼬 있을 거인디 세상이 이리 흉흉하니 어쩌겄냐. 시집가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이 아녀. 이 산골짝에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여. 내가 널 학교도 못 보냈는디 시집을 안 가믄 니가 뭔 인간노릇을 하겄니. 내가 궁합을 봤더니 둘 사이에 복이 아주 많이 들었더라. 자식을 여럿 낳아도 하나도 잃지 않고 잘 크고 그 자식들이 잘돼서 번창헌단다. 더 뭐를 바라겄니. 인간으로 시상에 왔으므는 짝 만나서 의좋게 지내고 지 새끼 낳아서 젖 먹여 기르고 허는 거여. 이 목화솜을 잘 틀어서 이불 만들어줄 것인게 울음 그치라이.

그래도 악악대고 우는 처녀의 등짝을 장모가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 어서 뚝 그치라이……

그래도 그치지 않자 이제는 장모조차 울음을 터뜨렸다.

 

두 모녀가 목화밭에서 껴안고 우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그때 당신은 시월이 오기 전에 집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두막 마루에 앉아 수틀을 껴안고 봉황을 수놓고 있던 처녀가, 목화밭에서 엄마! 엄마를 부르다가 대(大)자로 발을 뻗고 울어대던 그 처녀가 어느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산사람한테 끌려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당신의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아내를 잃어버리고 빈집으로 돌아와 이틀 밤 사흘 낮 동안 잠을 잤다. 아들네에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밤이 되어도 눈만 감고 있었다. 귀가 예민해져 건넌방의 누가 화장실을 가려고 문만 열고 나와도 눈이 떠졌다. 밥생각이 없는데도 끼니때면 다른 식구들 생각해서 식탁에 앉았던 당신은 빈집에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오두막 마루에 앉아 수틀에 봉황을 수놓다가 목화밭에서 목놓아 울어대는 아내의 얼굴을 한번 보고 혼인을 했으므로 든 정도 없어 내키는 대로 하며 살았는데, 집을 떠나 얼마가 지나면 왜 어김없이 아내가 떠올랐을까. 아내의 손은 무엇이든 다 살려내는 기술을 가진 손이었다. 이 집은 짐승이 잘 되지 않는 집이었다. 아내가 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개를 얻어다 기르면 새끼 한번 못 받고 죽어나갔다. 쥐약을 먹고 똥통에 빠져 죽기도 하고 무슨 까닭인지 구들 안쪽으로 기어들어간 것을 모르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가 누린내에 구들을 들어내고 죽은 개를 끌어낸 적도 있었다. 이 집은 개는 안된다고 당신의 누님이 일렀으나 아내는 다른 집에서 막 태어난 강아지 한마리를 눈을 가린 채 데리고 왔다. 아내는 개는 머리가 좋아서 데려올 적에 눈을 가리지 않으면 제 어미 곁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리 데려온 강아지는 마루 밑에서 아내가 주는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를 다섯배 여섯배 낳았다. 마루 밑에 열여덟마리의 강아지들이 우글거리며 산 적도 있었다. 봄이면 암탉이 알을 품도록 해서 깨어난 병아리 서른마리 마흔마리 중에 솔개한테 두어마리 채일 뿐 한마리도 죽이는 법 없이 키워낸 것도 아내였다. 텃밭에 씨를 뿌리면 다 솎아먹기도 벅차게 푸른 새싹들이 아우성을 치며 올라오고 감자를 거두고 나면 당근을, 당근을 거두고 나면 고구마를 쉴 새 없이 심어 수확하는 것도 아내였다. 가지를 모종하면 여름이 지나 가을까지도 보라색 가지가 지천이었다. 아내의 손이 닿으면 무엇이든 풍성하게 자라났다. 아내는 땀에 전 수건을 머리에서 벗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밭의 풀은 돋는 것과 동시에 아내의 손에 의해 뽑혔고 밥상에서 물려 나온 음식물 찌꺼기들은 잘게 잘게 바수어져 강아지들 밥통에 부어졌다. 개구릴 잡아 삶아 으깨 닭모이를 주었고 거기서 나온 닭똥을 받아다가 텃밭에 묻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아내의 손길이 스치는 곳은 곧 비옥해지고 무엇이든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오죽하면 뭔가 늘 아내를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누님마저 당신의 아내를 불러 밭에 씨앗을 뿌리게 하고 고추 모종을 해달라 하였다.

 

집에 돌아온 지 사흘째 되던 날 한밤중에 깨어나서 당신은 우두커니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 저게 무엇이더라- 당신은 장롱 위에 올려져 있는 태극무늬가 그려진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어느 새벽에 일찍 잠이 깨어 뒤척이던 아내가 당신을 불렀다. 당신은 깨어 있었으면서도 귀찮아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자는 모양이오이.

아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나보다 더 오래 살지는 마시우.

- ……

- 내가 수의도 다 장만해놨소. 저기 장롱 위 저 태극무늬 상자 안에 있소. 내 것도 있소. 혹시나 내가 먼저 죽으믄 허둥지둥하지 말고 저거 먼저 챙기우. 내가 호사 좀 부렸소. 최고로 좋은 삼베로다 마련했소. 직접 삼을 심어서 짠 베라 합디다. 보믄 당신도 눈부실 것이네. 아름답당게요.

아내는 당신이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주문을 외듯 중얼중얼거렸다.

- 저참에 담양 당숙모 돌아가셨을 적에 당숙이 눈물바람을 헙디다. 당숙모가 당숙한테 돌아가시기 전에 다짐을 받었다 합디다. 절대로 비싼 수의 마련하지 말라고. 혼인할 때 입었던 한복 잘 다려서 챙겨놓았응게 그거 입혀 보내달라고 했답디다. 딸애 시집도 못 보내고 먼저 가는 것도 미안헌데 자기 위해 돈 쓰지 말라고. 당숙이 나한티 기대 그 말을 하면서 어찌나 울어쌌는지 내 옷이 흠뻑 젖었어라오. 여태 고생만 시켰다고. 인자 좀 살 만헌디 죽어번졌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죽었는디도 좋은 옷 한벌 못 해주게 다짐받고 갔다고. 나는 안 그럴라요. 나는 좋은 옷 입고 갈라요. 한번 볼라요?

당신이 기척을 안하자 아내는 또 깊은 숨을 내쉬었다.

- 당신은 나보다 먼저 가시오이. 그러는 것이 좋겄소이. 이 시상에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따로 없다고는 헙디다마는 우리는 온 순서대로 갑시다이. 나보다 세살 많으니 삼년 먼저 가시오이.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든가. 나는 기냥 어찌어찌 이 집서 살다가 영 혼자는 못 살겠시믄 큰애 집에 들어가 마늘이라도 까주고 방이라도 닦아줌서 살겄지마는 당신은 어쩔 것이오? 평생을 넘의 손에 살어서 당신이 헐 줄 아는 게 무엇이오이? 안 봐도 뻔하오이. 말수도 없는 늙은이가 방 차지하고 냄새 풍기고 있으믄 누가 좋아라고나 하겄소이.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 없는 짐덩이요이.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허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믄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시오이.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 거기까지는 내가 할 것이니께는.

 

당신은 의자를 놓고 올라가 장롱 위의 태극무늬 상자를 끌어내렸다. 상자는 하나가 아니라 두개였다. 크기로 보아 앞에 있는 게 당신 것이고 뒤에 있는 게 아내 것인 모양이었다. 누워서 볼 때보다 부피가 상당했다. 당신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생전 이처럼 아름다운 삼베는 보지 못했다더니, 이걸 구하러 먼 걸음을 했다더니 뚜껑을 열자 눈부시게 흰 가제 보자기로 싼 삼베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당신은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보았다. 요를 싸는 베, 이불을 싸는 베, 발을 싸는 베, 손을 싸는 베들이 차례로 놓여 있었다. 나를 묻어주고 간다더니…… 당신은 눈을 껌벅거리며 죽은 후에 당신과 아내의 손톱을 쌀 주머니며 발톱을 쌀 주머니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샛문으로 들어온 아이 둘이 할아버지! 하며 당신 옆으로 우루루 달려왔다. 도랑가의 태섭이네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곧 당신에게서 떨어져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아내를 찾고 있는가 보았다. 대전에서 중국집을 한다는 태섭이는 무슨 일이 잘 안되었는지 나이 들어 자기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는 노모에게 아이 둘을 맡겨놓고는 얼굴 한번 보인 적이 없었다. 태섭이는 그렇다 치고 태섭이 처는 뭐 하는 인간인지 모르겠다고 아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동네 사람들은 태섭이 처가 주방장과 눈이 맞아 집을 나가버렸다고들 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먹인 건 애들 할머니가 아니라 아내였다. 한번은 밥을 못 먹고 있는 것을 본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아침밥을 먹였더니 아이들은 다음날 아침에 눈곱도 덜 떨어진 얼굴로 또 찾아들었다. 숟가락 두개를 더 놓고 아이들을 밥상 앞에 앉힌 뒤로 아이들은 끼니때마다 찾아왔다. 언젠가는 밥이 덜 되었을 때 와서 아예 배를 방바닥에 대고 둘이서 놀다가 밥상이 차려지면 상 앞으로 뽀르르 다가와 앉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볼이 미어지도록 밥을 먹었다. 당신이 어이없어하면 아내는 마치 숨겨놓은 손녀나 되는 양 애들 편을 들며 얼마나 배가 고프먼 그러겄소이. 옛날같이 먹고살기 힘든 때도 아니구… 애들이 찾아와주니 우리도 적적하지도 않구 좋구만, 하였다.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오기 시작하면서 아침상에 새로 쪄서 무친 가지나물이 올라오고 가스레인지 밑 그릴에선 아침부터 고등어가 구워지곤 하였다. 서울의 자식들이 집에 내려오면서 손에 들고 오는 과일들이나 케이크들을 아내는 상하지 않게 잘 챙겨두었다가 오후 네시쯤 아이들이 저 샛문으로 들어와 얼굴을 내밀면 들어와서 먹고 가게도 했다. 한두번 그러고 나니 아이들은 밥이 아니라 이 시간의 간식까지 바라게 되었고, 아내도 어느새 당연히 그리 챙겨줘야 하는 것이려니 여기게 되었다. 읍에 나갔다가 버스를 못 타고 버스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걸 지물포 하는 병식이가 데려오기도 하고, 텃밭에 열무 뜯으러 간다고 하고서는 철둑 너머 논에 나가 앉아 있는 아내를 지나가던 옥철이가 데려오기도 하던 때였다. 집에 오는데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고, 왜 논에 나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앉아 있었다고 하던 아내가 그 정신에 어찌 아이들 밥은 그리 챙겨 먹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저 아이들은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당신은 서울에 있는 동안 이 아이들 생각을 미처 해본 적이 없었다.

- 할머닌 어딨어, 할아버지?

우물이며 헛간이며 뒤꼍을 돌아보고 방문까지 열어보고 나서야 아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큰애가 당신에게 물었다. 묻기는 큰애가 물었는데 작은애가 더 바짝 당신에게 다가들며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묻고 싶은 말이다. 정말 당신은 어디 있는가? 이 세상에 있기는 있는가. 당신은 아이들을 기다리라 하고 쌀독에서 쌀을 퍼서 씻어 전기밥솥에 안쳤다. 아이들은 기다리지 않고 이 방문 저 방문을 열어젖히고 다닌다. 어느 방에선가 아내가 걸어나올 것만 같은 모양이다. 당신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 물을 어디다 맞춰야 할지 몰라 잠시 서 있다가 물을 반 공기쯤 더 붓고 밥솥 스위치를 콘쎈트에 꽂았다.

 

그날, 서울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에서 당신이 뭔가를 깨닫는 데는 몇분이나 걸렸을까. 지하철은 떠나는데 아내가 타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채는 데 흐른 시간들. 당신은 당연히 아내가 당신을 뒤따라 지하철을 탔을 것이라고 여겼다. 지하철이 남영역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어떤 충격이 당신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충격을 확인해보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절망이 당신의 뇌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당신의 심장 박동소리가 그 순간 당신 귀에 들릴 만큼 커졌다. 당신은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아내를 서울역에 두고 당신 혼자서만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왔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던 그 순간, 당신이 옆사람의 어깨를 쳐가며 뒤돌아보았던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의 일생이 심하게 손상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빨리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나서라도 바로 뒤를 돌아 확인했더라면 이리 되지 않았을까. 젊은 날부터 아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 어딘가로 동행할 때면 항상 걸음이 늦어 뒤처지곤 했던 아내는 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당신을 뒤따르며 좀 천천히 가먼 좋겠네, 함께 가먼 좋겠네… 무슨 급한 일 있소? 뒤에서 구시렁대었다. 마지못해 당신이 기다려주면 아내는 민망스러운지 웃으며 내 걸음이 너무 늦지라오? 했다.

- 미안한디… 그래도 남들이 보믄 뭐라고 하겄소.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한 사람은 저 앞서서 가고 한 사람은 저 뒤에서 오믄 저이들은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싶지도 않을 만큼 서로 싫은가비다 할 것 아니요. 남들한티 그리 보여서 좋을 거 뭐 있다요. 손 잡고 가자고는 안할 것잉게 좀 천천히 가잔게요. 그러다가 나 잃어버리믄 어짤라 그러시우.

당신은 아내가 마치 이리 될 것을 알고나 한 소리처럼 여겨졌다. 스무살에 만나 오십년이 흘러 이 나이가 되는 동안 아내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좀 천천히 가자는 말이었다. 평생을 아내로부터 천천히 좀 가자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째 그리 천천히 가주지 않았을까. 저 앞에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일은 있었어도 아내가 원했던 것, 서로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함께 걷는 것을 당신은 아내와 함께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아내를 잃고 나서 자신의 빠른 걸음걸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했다.

 

평생을 당신은 늘 아내에 앞서서 걸었다. 어느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모퉁이를 돌기도 했다. 뒤처져서 아내가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왜 그리 걸음이 늦냐고 타박했다. 그러는 사이 오십년이 흘렀다. 아내는 걸음이 늦긴 했어도 당신이 얼마간 기다려주면 뺨이 붉어진 채로 당신 곁으로 다가와서는 여전히 좀 천천히 가먼 좋겠네, 하며 웃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한 걸음이나 두 걸음 늦었을 뿐인 그 서울역에서 당신이 먼저 탄 지하철이 출발해버린 뒤로 아내는 여태 당신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설익은 밥인데도, 반찬이라곤 김치뿐인데도 정신없이 먹는 걸 보며 당신은 작년에 관절수술을 받은 다리를 마루에 올려놓았다. 수술 후에 꾹꾹 쑤시고 저린 느낌은 사라졌으나 무릎을 접고 앉는 일은 불가능해진 왼쪽 다리.

- 찜질 좀 해줘요?

귓전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도 대야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린 뒤에 수건을 뜨거워진 물에 적셔 짜서 당신의 무릎에 얹어놓던 그 검버섯 핀 손. 무릎에 얹힌 수건을 꾹꾹 눌러주는 그 투박한 손을 볼 적마다 당신도 아내가 당신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기를 바랐다. 당신이 죽은 후에 아내의 손이 마지막으로 당신의 눈을 쓸어주고, 자식들 앞에서 당신의 식어가는 몸을 닦아주고 그 손으로 수의를 입혀주기를.

 

- 대체 어디에 있소!

아이들이 밥을 먹고 쏜살같이 뛰어나간 후에 당신은, 아내를 잃어버린 당신은, 혼자 남은 당신은, 빈집의 마루에 다리를 뻗은 채 소리를 팩 내질렀다. 아내가 사라진 후부터 늘 목에까지 차올랐던 울음 대신이었다. 아들 앞에서 딸 앞에서 며느리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도 울 수도 없었던 분노인지 뭔지 모를 치받침으로 인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마을에 호열자가 돌던 시절에 이틀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를 사람들이 산에 묻을 때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를 묻고 산에서 내려올 때 춥고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기만 했던 당신이었다. 전쟁통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 소 한마리가 있었다. 국군이 마을에 상주하던 낮에 소를 끌고 논을 갈았다. 밤이 되면 산을 타고 인민군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과 짐승을 잡아가던 때였다. 해가 지면 당신은 소를 끌고 읍내까지 걸어가 파출소 옆에 묶어놓고 소 배에 기대어 잤다. 새벽이면 다시 소를 끌고 마을로 돌아와 밭을 갈았다. 인민군이 산에서 물러난 줄 알고 파출소에 가지 않았던 어느 밤에 인민군이 마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소를 끌고 가려 했다. 당신은 인민군의 발길에 걷어차이면서도 소를 놓지 않으려 했다. 몸을 던져 말리는 누님을 뿌리치고 소를 쫓아가다가 총대로 얻어맞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당신. 형사였던 작은아버지 때문에 반동분자로 몰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이 찬 논에 처박힐 때도, 죽창이 목을 쑤시고 지나갈 때도 울지 않았던 당신이 끅끅 소리내어 울고 있다. 당신은 아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바랐던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나를 이제야 깨닫는다. 그 마음이 아내가 깊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아내가 사실은 잠든 것이 아니라 눈을 뜨기조차 힘들 만큼 머리가 아파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개밥을 주러 간다면서 개집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우물가로 향한다는 것을, 어딘가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는 대문간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도로 방으로 돌아오기 일쑤라는 것을 당신은 알았다. 당신은 기진맥진한 듯 아내가 방으로 기다시피 들어와 겨우 베개를 찾아 베고 이마를 찡그린 채 드러눕는 것을 보기만 했다.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이었고 그런 당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아내였다. 어쩌다가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당신은 나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아프면 아내는 이마를 짚어보고 배를 쓸어보고 약국에서 약을 사오고 녹두죽을 끓이고 하였으나 당신은 약 지어다 먹으라고 하곤 그만이었다.

 

당신은 이제야 아내가 장에 탈이 나 며칠씩 입에 곡기를 끊을 때조차 따뜻한 물 한대접 아내 앞에 가져다줘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북 치는 일에 빠져 팔도를 떠돌아다니던 때였다. 보름 만엔가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딸을 낳아놓았다. 딸애를 받은 당신의 누님은 순산이라 했지만 아내는 계속 설사를 하는 중이었다. 뱃속의 것을 얼마나 쏟아냈는지 얼굴에 핏기는 고사하고 애를 낳은 여자가 붓기조차 없을 정도로 광대뼈가 앙상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탈진상태가 반복되었다. 그냥 뒀다간 아내가 잘못될 것만 같았다. 당신은 당신 누님에게 한약을 지어다 산모에게 달여 먹이라며 돈을 주었다.

 

빈집의 마루에서 울고 있는 당신의 끅끅거리는 소리가 더 높아진다.

 

그것이 평생 아내의 약값으로 당신이 내놓은 돈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누님은 한약 세첩을 지어다 아내에게 달여 먹였다. 가끔 장탈로 기진맥진할 때마다 아내는 그때 말이요,라고 말했다. 그 한약 두첩만 더 먹었으믄 그때 다 나았을 거인디. 친척들은 대부분 아내를 좋아했다. 누가 찾아오면 왔냐! 가면 가냐!라고밖에 할 줄 몰랐던 당신이었는데도 당신 집을 찾아오는 친척들이 많았던 것은 순전히 아내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내가 지어 내놓은 밥이 따뜻하다고들 했다. 아내가 텃밭에 나가 아욱을 쓱쓱 베어와 된장국을 끓이고 배추포기를 뽑아와 겉절이만 해 내놓아도 모두들 밥 한그릇을 맛있게 뚝딱 비워냈다. 국은 간이 맞고 겉절이는 고소하다고 했다. 방학이 되어 교복을 입고 놀러 온 조카들이 돌아갈 때는 살이 쪄 교복 단추를 채우지 못해 투덜거리곤 했다. 다들 당신의 아내가 짓는 밥은 살찌는 밥이라고들 했다. 모내기를 할 적에 아내가 밭의 햇감자를 캐다 갈치를 넣고 지져서 샛밥과 함께 내오면 일하던 사람들은 입이 미어져라 밥을 입에 밀어넣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멈춰서서 밥을 얻어먹고 갔다. 타동네 사람들도 당신집 일을 하러 오려고들 했다. 아내가 내오는 샛밥을 먹으면 뱃속이 든든해 일을 곱으로 하고도 배가 고프지 않다고들 했다. 식구들이 마루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참에 참외장수나 보따리 옷장수가 대문을 기웃거리면 아내는 자리 한귀퉁이를 내주고 밥을 먹고 가게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밥을 먹으며 허물없이 지냈던 아내가 유독 눈을 흘기는 이가 있었으니 당신의 누님이었다.

- 그때 한약을 두첩만 더 먹었시믄 좋겠더만… 무심헌 당신조차두 산모니께 깨끗이 나아야 쓴게 두어첩 더 지어다 먹이라고 했건만 애덜 고모가 그 쌩한 얼굴로 무신 약을 더 먹는다냐! 이만하면 됐담서 안 지어다 주었소… 그때 그거 두첩만 더 먹었시믄 이런 고생은 안할 것인디.

당신은 기억에도 없는 일을 아내는 이따금 장탈로 고생할 적마다 바로 어제 겪은 일인듯 얘기하곤 했다. 그런 소릴 들으면서도 당신은 장에 탈이 나 설사중인 아내에게 약을 지어다 준 적이 없었다.

- 약은 그때 더 먹었어야제. 인자는 아무 약도 듣질 않으요.

아내는 설사가 찾아올 적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곡기를 끊었다. 사람이 어찌 그리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며칠을 견딜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젊어서는 그것도 모른 척했고 늙어가면서야 당신은 뭘 좀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 물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표정으로 당신을 보며 말했다.

- 짐승들을 보면 안 그럽디여. 소두 돼지두… 지 아프면 일단 곡기를 끊더만. 닭조차도 말이우. 저 개만 봐두 어디 아프믄 일단 먹을 것을 끊잖우. 저놈은 어디 아프먼 암만 맛난 걸 줘도 쩝도 안하구선 지 집 앞의 땅을 두 발로 파헤치구는 거기에 배때기 대고 엎어져 있드만. 가만 지켜보믄 며칠 있다 훌훌 털고 일어나드만. 밥도 그제서야 먹읍디다. 사람이라구 다를랍디여. 뱃속이 이리 부글부글거리는데 이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아무리 좋은들 독이나 되겄지.

설사가 멎질 않으면 아내는 곶감을 갈아서 한 수저씩 떠먹었다. 도무지 병원에는 가려 하지 않았다. 고깟 곶감이 무슨 약이 된다냐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국에서 약을 타다 먹으라 해도 아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보다 못한 당신이 채근이라도 하면 내 병원엔 다시 안 간다 하지 않았소이! 서슬까지 퍼래지며 다시 말을 못 꺼내게 했다. 막내가 태어나고 몇년 뒤 당신이 여름에 집을 나갔다가 겨울에 돌아와보니 아내의 왼쪽 젖가슴에서 멍울이 만져졌다. 당신이 이상하다고 말했으나 아내는 무심했다. 젖꼭지가 함몰되고 분비물이 나올 때에야 당신은 머리에 땀에 전 수건을 쓴 아내를 데리고 시내의 병원에 갔다. 당장엔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었다. 검사를 받았을 뿐 결과는 열흘 뒤에나 나온다 하니 아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열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무슨 일에 빠져 있었기에 당신은 결과를 보러 가지 않았을까. 결과를 보러 가는 일을 왜 그리 미루었을까. 젖꼭지가 부스럼처럼 헐었을 때에야 당신은 다시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아내가 유방암을 앓고 있다고 했다.

- 암이라구라오?

아내는 안된다고 했다. 아파서 누워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의사가 말하는 유방암에 잘 걸릴 수 있는 모든 조건에서 아내는 비켜나 있었다. 늦게 출산을 한 것도 아니었고, 네 아이 모두에게 젖을 먹였으며, 당신과 결혼하던 해에 초경이 시작되었다 하니 초경을 일찍 치른 것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육식은 즐기지도 않지만 즐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아내의 왼쪽 가슴 자리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결과를 빨리 보러 갔으면 가슴을 도려내지는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가슴을 도려내고 붕대를 감은 채로 아내는 밭에다 감자를 심었다. 수술비를 위해 팔아버려 이미 남의 소유가 된 밭에다가 씨눈이 박힌 감자를 묻으며 아내는 낸 이승에선 다신 병원엘 가지 않겠소이!라고 말했다. 병원에만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당신을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생일을 지내러 서울에 가던 그즈음에도 아내는 장탈로 고생을 한 뒤였다. 기력이 너무 없어 서울에나 가겠나? 걱정하고 있는데 아내는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당신에게 읍에 나가 바나나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서울에 가기 전 세끼를 내리 곶감 두개에 바나나 반쪽을 섞어 간 것을 먹었다. 자식을 몇씩 낳았을 때에도 일주일 이상 방에 드러누워본 적 없는 사람이 이따금씩 찾아드는 장탈 앞에서는 열흘씩 방에 드러누워 있곤 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제삿날을 잊어버렸다. 김치를 담그다가도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당신이 왜 그러느냐 물으면 글쎄… 마늘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모르겄소… 힘없이 중얼거렸다. 청국장이 펄펄 끓고 있는 뚝배기를 생각없이 두 손으로 들어 손을 데기도 했다. 당신은 이제는 젊은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생각했다. 당신도 그 즐겨 치던 북 장단도 다 잊어버리고 살지 않는가, 생각했다. 이만큼 살았으니 몸이라고 젊은 날 같겠는가. 어디든 고장이 나도 나는 법이지, 여겼다. 이 나이에는 병하고도 친구가 되어 사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내도 그런 과정에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 안에 있는가?

당신은 누님의 목소리를 듣고 번쩍 눈을 떴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당신의 집을 찾아올 사람은 누님뿐이란 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깜박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였다.

- 나, 들어가네.

벌써 마루에 올라섰는지 말이 끝나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당신의 누님 손엔 쟁반이 들려 있고 밥그릇과 찬그릇이 흰 보자기로 덮여 있다. 당신의 누님은 쟁반을 윗목에 내려놓고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집에 함께 살다가 신작롯가로 집을 지어 나간 사십년 전부터 당신의 누님은 새벽에 눈을 뜨면 담배를 한대 피우고 머리를 매만져 비녀를 꽂고 일어서서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누님은 새벽빛이 어리는 당신 집을 한바퀴 빙 돌고는 다시 돌아갔다. 발소리도 죽인 채 앞마당으로 옆마당으로 뒤란으로 한바퀴 빙 돌고 있는 당신 누님의 발짝 소리를 아내는 용케도 알아내곤 했다. 아내에겐 당신의 누님 발짝 소리가 잠을 깨우는 소리이기도 했다.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눕다가 아내는 또 오시었네… 웅얼거리며 잠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당신 누님은 그저 집을 한바퀴 빙- 돌고는 돌아갔다. 지난밤에 당신 집이 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어려서는 위로 오빠 둘을 한꺼번에 잃고 부모마저 이틀 간격으로 잃고 전쟁중에 당신마저 잃을 뻔했던 것. 시가가 있는 마을로 가는 게 아니라 당신의 매부가 이 마을로 들어와 살다가 집에 불이 나 타죽어버린 상처가 당신의 누님에겐 뿌리깊이 박혀 고목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베어낼 수 없는 고목이었다.

- 이부자리도 안 펴고 잤는가?

자식 하나 없이 청상이 되었던 젊은 날엔 단호함을 넘어 매섭게조차 보였던 당신 누님의 눈매가 아래로 축 처져 있다. 착착 빗어 넘겨 비녀를 찌른 머리는 성성한 백발이다. 당신보다 나이가 여덟이나 많은데도 등은 당신보다 꼿꼿하다. 당신의 누님이 당신 옆에 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 담배는 끊지 않었소?

대답하지 않고 당신 누님은 읍내 어디의 술집 이름이 박힌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 개는 우리 집에 매두었네. 데리고 올라믄 데려오소.

- 당분간 거기 두세요… 아무리도 다시 서울로 가봐야 쓰겄네.

- 가서는?

- ……

- 찾아서 오제 혼자서 뭣 허러 와, 오길!

- 어째 여그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어서.

- 여가 있담 내가 진작 연락했지 안했겄는가?

- ……

- 사람이 어찌 그리 되었을꼬… 이 몹쓸 사람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냄편이란 작자가 안사람을 잃어버리고 온단 말인가. 혼자 뭔 염치로 온단 말인가. 그 측은한 인사를 어디다 두고.

당신은 백발이 성성한 누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의 누님이 당신의 아내를 두고 저리 말하는 것을 당신은 처음 듣는다. 언제나 당신의 누님은 아내를 보면 뭐가 못마땅한지 혀를 끌끌 차곤 했었다. 아내가 당신에게 시집온 지 이태 동안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다가 형철일 낳았을 때는 남들이 안하는 일을 했나? 그랬다. 밥을 지을 때마다 절구에 나락을 넣고 찧어 쌀을 만들어 밥을 해먹던 시절에 함께 살면서도 절구질 한번 해주지 않았던 이였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출산 수발은 또 다 거들었던 사람이었다.

- 내가 죽기 전에 한번은 말을 하고자 했었는디… 사람이 없으니 어따 대고 말을 하누.

- 무엇을 말이오?

- 한두가지인가, 어디……

- 누님이 사납게 군 거 말이오?

- 내가 사납게 굴었다고 그러든가? 형철 에미가?

당신은 웃지도 않고 그저 누님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아니란 말인가?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을 수는 있는 법이나 당신의 누님은 아내에게 시누이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다들 그리 생각했다. 당신의 누님은 그 말을 가장 싫어했다. 집안에 어른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했다.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

당신의 누님이 방바닥에 놓인 담뱃갑에서 담배 한개비를 또 꺼내 입에 물었다. 당신이 불을 붙여주었다. 담배를 물고 있지 않은 누님을 생각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아 더듬는 당신 누님의 손길은 온종일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먼저 담배를 찾았다. 어딘가를 가야 할 때도, 밥을 먹기 전에도, 잠들기 전에도. 지나치게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생각했으나 당신은 단 한번도 누님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그 불길에 매부가 타죽은 후 처음 본 당신의 누님은 불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앉아 있었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하는 일이 담배 피우는 일이었다. 당신의 누님 손에 담뱃진이 배어 가까이 가기도 전에 담배냄새를 먼저 맡기 시작한 것은 그 집이 불탄 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 내가 살먼 인자 얼마나 살겄능가.

누님이 쉰이 되면서부터 내뱉곤 하는 말이다.

- 이 시상에 와서 여태 살았던 거… 살면서는 참말 유독 나헌티만 가혹허고 서러운 것 같었재… 내가 자식이 하나 있나 뭐가 있나… 오라비 죽어나갈 땐 내가 죽어나가고 그이들은 살았어야 하는데 싶었는디 양친 보내고는 얼이 빠졌는디도 자네와 균이는 보이더만. 천지간에 우리뿐이네 싶은 것이… 불에 타죽은 그 인사랑은 정도 들기 전에 그리 되어버렸응게… 자네는 나한티는 동생이 아니라 자식이고 낭군이고 그랬구만……

그랬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당신이 중년에 풍으로 쓰러져 입이 돌아간 채 자리보전하고 있을 때 새벽이슬을 한 종지씩 받아서 마시면 낫는다는 얘길 어디서 듣고는 일년을 봄 여름 가을 종지를 듣고 이슬을 털러 논두렁을 헤매고 다녔을까. 해가 뜨기 전 이슬 한 종지를 털기 위해서 당신 누님은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누님에 대해 불평하지 않기 시작한 것, 당신의 아내가 당신 누님을 시누이가 아니라 시어머니 대하듯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당신의 아내는 질린 듯한 얼굴로 내는 당신한티 그러케는 못할 것 같으요! 하였다.

- 내 죽기 전에 형철 에미한티 두가지는 미안허다고 말하고 가렸는디.

- 뭔 말이오?

- 균이 일이랑… 살구나무 베었다고 지랄 떤 일이랑……

균이. 당신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의 누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이거 밥이니 배고프먼 먹소. 지금 먹으려나?

당신의 누님이 흰 보자기 덮여 있는 쟁반을 가리켰다.

- 아니오, 인자 일어나서 뭔 밥생각이 있겄어.

당신도 누님을 따라 일어섰다. 누님이 집을 한바퀴 빙 돌 때 당신도 따라 돌았다. 아내가 돌보지 않은 집은 사방이 먼지투성이였다. 당신의 누님은 장독대를 돌며 항아리 뚜껑 위의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 균이는 존 디로 갔을꺼나?

- 그아 얘긴 왜 꺼내오.

- 균이도 형철 에밀 찾는 모양이여. 갑자기 균이가 꿈에 봬. 그놈이 살았으믄 어찌 되焰을꼬.

- 누님과 나처럼 지도 늙었겄지… 어찌 되기는.

 

열일곱인 아내가 스물인 당신과 결혼했을 때 균이는 초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지 또래들 중에서 눈에 띄게 총명한 아이였다. 말귀 잘 알아듣고 인사성 밝고 공부 잘하고 이목구비가 훤칠했다. 누구라도 균일 한번 보면 뉘 집 자식일까? 싶어 뒤돌아보곤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못 가게 되자 균인 형이고 누나인 당신과 당신 누님에게 매달렸다.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학교 좀 보내줘, 형. 학교 좀 보내줘, 누나… 날마다 학교 좀 보내달라고 눈물바람을 하던 놈. 전쟁이 지나간 자리는 몇년이 지났어도 참혹했다. 어떻게 그렇게 가난할 수 있었는지. 가끔 당신은 그 시절이 꿈처럼 여겨진다. 당신은 전쟁통에 죽창으로 목을 찔리고도 용케 살아남았으나 어른이 없는 종가의 장남으로 식솔들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밥술을 책임져야 하는 벅찬 상황에 던져져 있었다. 그것이 힘겨워 이 집을 그리 떠나고 싶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생 학교 보내는 일보다 당장 목구멍에 밥술을 떠넣는 것도 어려운 때였다. 형인 당신과 누나인 당신의 누님이 말을 들어주지 않자 균인 형수인 아내에게 통사정을 했다.

- 형수 형수, 나 학교 좀 보내줘. 중학교 좀 보내줘. 그러면 내가 평생 갚을께.

아내는 저리 소원인데 균을 어쩌든 학교에 보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 나도 학교를 못 갔어! 그래도 저놈은 초등학교라도 다녔지.

학교를 못 간 건 당신의 아버지 탓이었다. 한의사였던 당신 아버지는 아들 둘을 전염병으로 잃은 후 당신에겐 사람 많은 곳이라면 학교고 뭐고 가지 못하게 했다. 당신 아버진 당신을 무릎 밑에 앉히고 한자를 가르쳤다.

- 형철 아버지… 삼촌 학교 보내줍시다.

- 무어로?

- 저 텃밭을 팔먼 될 것 아니요?

당신의 누님이 살림 말아먹을 여펜네!라며 당신의 아내를 처가로 보내버렸다. 열흘이나 지난 밤에 술에 취해 당신의 발걸음이 처갓집으로 향했다. 산길을 돌고 또 돌아 그 오두막에 닿았을 때 대나무가 우거진 뒤꼍의 방 봉창 앞에서 당신은 걸음을 멈췄다. 거기까지 온 것이 아내를 데리러 간 것은 아니었다. 쟁기질을 해주고 얻어먹은 술의 힘이 당신을 거기까지 가게 한 것이었다. 누가 내쫓았든 집에서 내보내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가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뭐해서 당신은 거기 그러고 서 있었다. 늙은 장모와 아내의 말소리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무슨 말 끝에 장모가 목소리를 높이며 그깟놈의 집구석으론 들어가질 말고 짐 싸들고 아예 나와버리라, 하니 당신 아내는 훌쩍이며 장모에게 대들었다. 죽어도 그 집으로 들어가 죽을란다, 하였다. 거기가 내 집인디 내가 왜 나오냐, 하였다. 당신 아내가 훌쩍이며 장모한테 내뱉는 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거기 그 담벼락에 기대어 대나무 숲에 새벽빛이 스밀 때까지 서 있었다. 아침을 지을 양인지 방에서 나오는 아내를 낚아챘다.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소눈만큼이나 커다랗던 아내의 검은 눈이 일자가 되어 있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데도 부은 눈은 일자였다. 그 길로 대나무 우거진 숲을 질러서 아내를 뒤세우고 이 집으로 돌아왔다. 대나무 숲을 지나서 아내의 손을 놓은 후론 앞서 걸었다. 이슬이 바지에 툭툭 떨어졌다. 그때도 뒤처진 아내는 당신의 등 뒤에서 좀 천천히 가시오잉! 벅찬 숨소리를 내며 당신을 따라왔다.

집에 돌아오자 형철이보다 균이 먼저 형수- 부르며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 형수… 나 학교 안 갈 텐게 인자는 집 나가지 마소!

무언가를 체념한 듯 균의 눈 속에 눈물이 그렁했다. 그래봐야 그때 겨우 열다섯이었던 균이다. 중학교를 못 간 균은 형수인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산밭에서 함께 일하다가 키가 큰 수숫대에 가려 아내가 보이지 않으면 균은 형수! 하고 불렀다. 왜애요? 당신 아내가 대답하면 균은 씨익 웃으며 또 한번 형수! 하고 불렀다. 균이 부르고 아내가 대답하고 균이 또 부르고 아내가 또 대답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부르고 대답하며 산밭 일을 해치우곤 했다. 바깥으로만 떠돌던 당신에 견주면 아내에게 균은 든든한 동반자였을 것이다. 균은 힘이 더 세지자 봄철이면 소를 몰고 나가 쟁기질을 했고 추수철이면 어느 일꾼보다도 먼저 논에 나가 벼를 베었다. 김장철엔 새벽에 나가 배추밭의 배추를 먼저 다 뽑아놓는 것도 균이었다. 논에 덕석을 깔고 홀태질로 나락을 훑던 때였다. 동네의 여자들은 모두들 홀태 하나씩을 끼고 그날 나락을 훑는 집 논으로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홀태를 세웠다. 그리고 해가 저물 때까지 홀태질을 했다. 어느 해던가. 균이 읍내의 양조장으로 일을 나갔다. 제 손에 돈이 들어오자 균은 홀태를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내밀었다.

- 이게 무슨 홀태라오?

아내가 물으니 균은 웃었다.

- 이 동네에서 형수의 홀태가 가장 오래돼서… 세워도 잘 세워지지 않는 것 같아서……

아내는 낡은 홀태라서 나락을 훑는 데 다른 아낙들보다 힘이 곱으로 든다고 새 홀태가 하나 있었으면 했었다. 당신은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말았다. 쓸 만한데 새 홀태를 뭐 하러 산단 말인가, 생각했다. 균이 내미는 새 홀태를 받아들고 아내는 균에게인지 당신에게인지 버럭 화를 냈다.

- 이런 걸 뭐 하러 사오요! 삼촌 학교도 못 보내줬는디.

균은 형수도 참! 하며 얼굴이 벌게졌다. 균은 아내를 잘 따랐다. 아내를 어머니로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홀태를 사오는 일을 시작으로 균은 돈이 생기면 살림살이를 곧잘 사들였다. 죄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양은으로 된 널벅지를 사들고 온 것도 균이었다. 멋적은 듯 다른 집 여자들은 다 이걸 쓰더만 우리 형수만 무거운 고무통을 쓰는 것 같아서… 하였다. 아내는 균이 사다준 양은 널벅지에 김치를 버무리고 깍두기를 버무리고 논에 샛밥을 내갔다. 쓰고 나선 꼭 빛이 나게 닦아서 선반에 올려두었다. 양은이 닳아서 하얗게 되도록 썼다. 당신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부엌 쪽으로 나갔다. 부엌 뒷문을 열고 다용도실로 쓰고 있는 곳 장대를 질러서 선반을 만들어놓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교자상들이 다리를 접은 채 올려져 있다. 그 끝에 사십년 전의 양은 널벅지가 가만히 놓여 있다.

 

아내가 둘째를 낳았을 때도 당신은 집에 없었다. 아내 곁엔 균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땔감이 없었다고 했다. 출산을 하고 차디찬 방에 누워 있는 형수를 위해 균은 집의 오래된 살구나무를 베어 장작을 팼다. 형수가 누워 있는 방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밀어넣었다. 그것을 본 당신의 누님이 산모가 누워 있는 방문을 발칵 열고 집 안의 나무를 함부로 베면 사람이 죽어나간다는데 어찌 이런 일을 벌였냐고 다그쳤다. 균은 내가 그랬소! 왜 형수한티 그러요! 소리를 치며 대들었다고 했다. 당신의 누님이 균의 멱살을 잡았다고도 했다. 형수가 베라고 하더냐! 이놈아! 이 못된 놈아! 그럼 아일 낳고 차디찬 방에서 얼어죽으란 말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형수 편을 들었다고 했다.

 

살구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였다.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간 균이 돌아온 지 스무날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균이 집에 돌아온 걸 가장 반긴 건 아내였다. 그사이 균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 따랐던 아내를 보고도 웃지 않았다. 당신은 바깥세상에서 뭣에 호되게 당했나 보다고만 생각했다. 어느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내가 윷판이 벌어진 가게 앞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삼촌이 이상하다고 빨리 집에 가보라고 해도 당신은 윷에 빠져 아내에게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넋이 나간 듯 서 있던 아내가 윷이 펼쳐진 덕석을 뒤집어버리며 악을 바락바락 썼다.

- 삼촌이 다 죽어간단 말이오! 빨리 가봐얀단 말이오!

아내의 행동이 너무도 거칠어 이상한 예감에 당신이 집으로 향했다.

- 빨리요! 빨리!

소리를 내지르며 아내가 앞장섰다. 아내가 당신보다 앞서서 뛰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살구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균이 몸을 뒤틀며 누워 있었다. 거품을 문 입 안에서 혀가 빠져나와 꼬여 있었다.

- 이놈이 왜 이려!

아내를 보았으나 아내는 이미 넋이 빠져 있었다.

맨 먼저 균을 발견한 아내가 경찰서에 수차례 불려갔다. 사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형수가 시동생에게 농약을 먹였다는 소문이 옆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당신의 누님이 눈이 벌게진 채 아내에게 내 동생 잡아먹은 년!이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형사의 조사를 받는 아내는 침착했다.

-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믄 물어보지 말고 나를 가두시오이.

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감옥소로 보내달라고 해서 형사가 아내를 집에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쥐어뜯곤 했다.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우물가로 달려가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했다. 당신은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아내가 조사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당신은 균아! 균아! 죽은 놈 이름을 불러대며 산으로 들로 미친 인간처럼 뛰어다녔다. 가슴에서 불이 번져 몸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은 자들은 그렇게 미쳐가던 때가 있었다.

 

불쌍한 사람. 당신은 이제야 당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를 깨닫는다. 당신의 아내에게 그 상처를 죄다 떠넘기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아내였건만 함구해버림으로 아내를 오히려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것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 와중에 사람을 시켜 균을 묻은 건 아내였다. 세월이 흘러도 당신이 균을 어디에 묻었는지 묻지 않으니 아내가 말했다.

- 어디에 묻혔는지 알고 싶지 않으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 그리 갔다고 원망 말우… 부모도 없이 당신이 형인데 때가 되면 찾아는 가보고 해야…… 선산에 자리잡아 다시 잘 묻어줬시믄 좋겄소.

당신은 아내에게 그 독한 놈 어데 묻혔는지 내가 왜 알아둬야 하느냐고 소리를 내질렀다. 언젠가 어느 길을 함께 가다가 아내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삼촌 묘가 여그서 가까운디 안 가볼라오? 물었다. 당신은 못 들은 척했다. 왜 그리 아내에게만 그 짐을 떠맡겼을까. 이태 전까지만 해도 균이 죽은 날이면 아내는 음식을 만들어 챙겨들고 균을 묻은 곳으로 찾아가곤 했다. 산에서 돌아오는 아내의 입에선 소주 냄새가 나고 눈이 벌게져 있었다.

 

균이 그리 되고 난 후에 아내는 달라졌다. 낙천적이던 사람이 웃는 일도 없어졌다. 어쩌다 웃다가도 곧 웃음을 흐렸다. 논일 밭일에 휘둘릴 때는 방바닥에 등을 대기만 하면 바로 잠에 곯아떨어지던 사람이 차츰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다. 몇십년 동안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던 아내의 머릿속엔 녹지 않은 수면유도제가 층층으로 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사이 옛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두차례 지었다. 그때가 구석구석에 처박아두었던 헌 살림들이 처분되는 때이기도 했다. 살림을 재정리할 때마다 아내는 다른 사람 손이 탈세라 저 양은 널벅지를 따로 챙겼다. 다른 살림과 섞여 있으면 어디로 숨어버려 못 찾을지도 모른다 여기는지 집을 지을 동안 임시로 쓰려고 비만 안 들어오게 쳐놓은 천막 안에 맨 먼저 그 양은 널벅지를 들여다 놓곤 했다. 새집이 지어진 후엔 맨 먼저 새집의 선반에 그걸 올려두었다.

 

아내를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균에 대한 당신의 침묵이 사는 동안 아내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을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와 옛일을 돌이켜서 그때 이러이러했었다고 말한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딸애가 엄마가 충격받은 일이 있냐고 의사가 묻던데요? 제가 모르는 일이 있어요? 물을 때도 당신은 고개를 저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길 권하던데요, 할 때도 당신은 정신과는 무슨… 하며 딸의 말을 묵살했다. 당신에게 균의 일은 늙어가는 동안 잊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고 이제는 잊은 듯 여겨졌다. 쉰이 지나서는 아내도 삼촌이 인자는 꿈에도 안 비네. 인자사 어디 존 디로 갔는가비네… 하였다. 당신이 그랬듯이 아내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리 잊은 줄 알았던 균에 대해 아내가 다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은 근년 들어서였다.

 

어느날 자다 말고 아내가 당신을 흔들어 깨웠다.

- 삼촌 말이오, 학교를 보내줬으면 그런 맘 안 먹었을까?

그에게 묻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모르게 중얼거리곤 했다.

- 이 집에 시집와서 나한티 젤루 잘해줬던 이는 삼촌인디… 형수가 돼놔서 그토록이나 가고 싶어하던 중학교 하나 못 보내주었소이. 다시 삼촌이 꿈에 봬요. 아직도 존 디로 못 갔는가비오.

당신이 끄응, 소리를 내고 돌아누워버린 후에도 아내는 어디 먼 길을 내다보고 있는 사람처럼 혼잣말을 해댔다.

- 당신은 그때 왜 그랬소이? 왜 삼촌을 학교에 안 보내줬소이? 그리 가고 싶다고 울어쌌는디 가엾지도 않었소이? 입학만 시켜주먼 어떻든 지가 알어서 하겠다고 했었는디.

당신은 균에 대해서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균은 당신에게도 상처였다. 살구나무는 베어졌어도 당신은 균이 죽어 있던 그 자리를 또렷이 기억했다. 어쩌다 아내가 자주 넋이 빠진 듯 그 자리를 바라보곤 한다는 것도 알았다. 당신은 상처를 후비고 싶지 않았다. 살다 보면 더 지독한 일도 많은 법이니. 당신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때라도 균에 대해서 아내와 허심탄회하게 얘길 나눌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는 생각이 아내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들었다. 텅 비어가는 아내의 가슴속엔 균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잠을 자다가 아내는 갑자기 세면장으로 뛰어나가 변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누가 질책이라도 하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난 아니오, 아니란 말이오, 소리를 지르곤 했다. 당신이 나쁜 꿈을 꾸었냐고 물으면 아내는 눈을 껌벅이며 방금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잊어버린 듯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점점 잦아졌다.

 

아내는 균이 때문에 경찰서를 들락거린 사람이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가해자로 소문이 났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을. 균의 일이 아내의 치명적인 두통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왜 이제야 하는가. 한번은 아내의 얘기를 들어줬어야 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해주었어야 했다. 그리 몰아붙여놓고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은 채 함구해온 세월. 그 억압이 아내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내는 어디서나 우두커니 서 있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뭘 하려구 했는지 잊어버려 이러구 있소, 하였다. 머리가 아파 걸을 수 없는 지경이면서도 아내는 한사코 병원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당신에게 자식들한테 자신이 머리가 아프다는 걸 절대로 알리지 못하게 단속했다.

- 알어서 뭐 한다요? 지그들 할 일만 못헐 텐디.

어쩌다 알게 되면 금방 어제는 그랬는데 인자는 괜찮다!며 덮어버렸다. 한밤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당신이 기척을 내면 그저 차가운 얼굴이 되어 당신은 나허고 여태 왜 살었소? 물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때가 되면 장을 담갔고 매실즙을 내려고 산매실을 사러 갔다. 일요일이면 당신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성당에 가기도 했으며 이따금은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며 반찬이 많이 나오는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자고도 했다. 계절마다 있는 제사를 합치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큰며느리가 제사를 가져갈 때는 여러 제사를 죄다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넘겨주겠으나 여지껏 해왔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이 지내겠다고 했다. 그럴 적의 아내가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제사상을 보러 갔다가 매번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 와서 제사 한번 지내려면 읍내에 네댓번은 나갔다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런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신새벽에 방 안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당신은 혹시 싶어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 아버지?

딸이다.

- 아버지?

- 그려.

- 왜 전화를 이제 받아요? 핸드폰은 왜 안 받구?

- 무슨 일이냐?

- 어제 오빠 집에 전화해보구 깜짝 놀랐네… 왜 갑자기 집에 내려갔어요? 가면 가야겠다고 말씀이나 하시지. 그리 가셔놓고 왜 전화를 안 받아요?

당신이 집에 내려온 걸 딸앤 이제야 안 모양이었다.

- 잤고나.

- 잤어요? 계속?

- 그랬는가 보다.

- 혼자 거기서 뭐 하시려구?

- 혹시 여기루 올랑가도 모린게.

딸이 잠시 침묵했다. 당신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제가 내려갈까요?

자식들 중 아내를 찾는 데 가장 열심인 건 큰딸이다. 아직 결혼을 안한 탓도 있을 것이다. 아내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전화도 역촌동 약사를 마지막으로 끝이었다. 아들이 신문광고를 더 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경찰조차 방도는 다 취해놓았다며 누군가로부터 소식이 오길 기다려볼 수밖에 없다며 손을 놓았어도 큰딸은 밤마다 병원 응급실을 찾아다니며 연고가 없이 실려온 환자들을 일일이 확인했다.

- 아니다… 뭔 일 있으면 곧바로 전화나 다오.

- 혼자 있기 그러시면 바로 올라와요, 아버지. 고모 오시라고 해서 함께 계시든가.

다시 들으니 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술을 마신 듯했다. 혀가 말릴 때나 나오는 소리였다.

- 술 마셨냐?

- …… 몇잔요.

이 신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단 말인가. 당신은 전화를 끊으려는 딸애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딸애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네! 대답했다. 수화기를 쥐고 있는 당신 손에 땀이 뱄다. 당신은 다리에 힘이 빠져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날 니 엄만 서울 갈 형편이 못 되焰다. 서울엘 가지를 말았어야 했는디… 전날 머리가 아프다고 세숫대야에 얼음을 가득 넣어놓고 그 속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누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밤에 보니 냉동실에 넣어둔 채로 서 있더라. 얼매나 아펐시믄 그랬겄냐. 아침밥 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있던 사람이 뭔 정신으로 서울은 가야 한다고 하질 않겄냐. 니덜이 기다린다고. 그리도 내가 말렸어야는디. 내가 늙어서 인자 귀도 얇아지고 판단력도 흐려졌는가비여. 그냥 마음 한켠으로는 이번 참엔 서울 가믄 억지로라도 병원에 입원시키야지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라믄 어쨌든 그런 사람을 데리고 갔시믄 잘 부축을 했어야 하는 것인디… 내가 니 에미를 환자 취급을 안하고는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내 혼자 내 걸음으로 앞질러 걸었다… 평생 그리 살다 보니 기냥 그 버릇이 나온 거여. 일이 이리 된 것이여.

자식들을 앞에 두고는 여태 하지 못한 말들이 당신의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수화기 저편에서 딸애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 아버지……

당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당신은 듣고만 있다.

- 사람들이 다 엄말 잊어버렸나 봐. 아무도 전화를 안해. 엄마가 그날 왜 그렇게 머리가 아프셨는 줄 알아요? 저 보고 나쁜년이라고 하셨거든요.

딸의 목소리가 꼬부라졌다.

- 니 엄마가 너한티?

- 네… 생신인데 저는 참석도 못할 것 같고 해서 제가 중국에서 전화를 걸어서 뭐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병에 술을 담고 계신다잖아요. 막내 갖다준다면서. 막내가 술 좋아하잖아요. 모르겠어요. 그럴 일도 아닌데 순간 너무나 화가 났어요. 막내는 진짜 술 좀 끊어야 하는데… 엄마는 그저 아들이 좋아하는 거니까 가져다주고 싶어서 또 챙기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엄마한테 그 무거운 거 가져가지 말라고, 그거 먹고 또 취해서 술주정하면 엄마가 책임질 거냐고 제발 좀 현명하게 굴라고… 그랬거든요. 엄마가 힘없이 그렇구나 하시며 그럼 읍내로 떡이나 맞추러 가야겠다고 하셨는데… 해마다 아버지 생신날 올라오시면서 떡 해오셨잖아요. 또 제가 떡은 무슨 떡이냐고 그 떡 해와야 아무도 안 먹는다고 엄마 앞에서는 나눠가지고들 가서 냉동실에 처박아놓는다고 촌스럽게 굴지 말고 그냥 올라가시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저보고 냉장고에 떡 처박아놨느냐고 물으시길래 그렇다고 삼년 전 것도 그대로 있다고 했더니 엄마가 우셨어요. 엄마 울어? 물으니까 엄마가 너는 나쁜년이다… 그러셨어요. 난 엄마가 좀 편히 움직이시라고 한 얘기였는데. 엄마한테 나쁜년이란 소릴 들으니까 제 머리꼭지가 돌았었나 봐. 그날 북경 날씨가 너무 더웠거든요. 신경질이 너무 나서 그래, 엄마는 나쁜 딸 낳아서 좋겠다! 그래! 나는 나쁜년이야! 소리를 팩 치구선 전화를 끊었지 뭐예요.

- ……

- 엄마 소리 지르는 거 너무 싫어하시는데… 모두들 엄마한테 소리 지르잖아요, 우리는. 전화를 다시 걸어서 사과하려고 했는데… 그만 밥 먹고 거기 구경 다니고 사람들하고 얘기하느라고 깜박 잊어버렸어요. 다시 전화를 드려서 사과만 했어도 엄마가 그리 머리가 아프진 않으셨을 텐데… 그랬으면 아버지 뒤를 잘 따라다니셨을 텐데.

딸이 우는 것 같았다.

- 지헌아!

- 예……

- 니 엄마는 너를 아주 자랑스러워했어.

- 예?

- 어쩌다 니가 신문에 나먼 고거 접어서 가방에 넣고 다님서 꺼내보고 꺼내보고… 읍내에 나가 누구 만나믄 보여주며 자랑허구 그랬다.

- ……

- 딸이 뭐 하냐고 물으면… 글씨 쓴다고 했지… 니 엄마가 니가 쓴 책을 저 남산동의 소망원 여자한테 읽어달라고 했단다. 니가 뭔 글을 쓰는지 엄만 다 알고 있었어. 그 여자가 읽어주면 엄마의 얼굴이 환해지고 웃음이 번지고 했었단다. 그러니까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씨를 잘 써야 혀.

- ……

-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겠거니 하며 살었어야.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 ……

- 지헌아?

- 예.

- 부탁헌다… 니 엄마… 엄마를 말이다.

딸이 참지 못하고 수화기 저편에서 어- 어어어 소리내어 울었다. 당신은 송아지 같은 딸의 울음소리를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들었다. 딸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수화기 줄을 타고 딸의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당신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딸은 기억할 것이다. 아내가 이 세상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을, 당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