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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기후변화의 지정학과 한국사회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화학. 저서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등이 있음. prlee@energyvision.org
1. 인류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기후변화
기후변화는 세계 최대의 핵심어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기후변화를 둘러싸고 수많은 말들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국제연합 창설 이래로 세계 각국에서 수천이 넘는 사람들이 십수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한곳으로 모여 말을 주고받게 만든 것은 기후변화밖에 없다.1 핵전쟁의 공포가 전세계를 뒤덮었을 때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지는 않았다. 기후변화는 핵전쟁보다 더 큰 핵심어적 지위를 지닌 것이다.
무엇 때문에 기후변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후변화의 결과가 다른 무엇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전지구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것이라 여겨졌던 환경문제들도 없지 않았다. 오존구멍, 산성비, 핵폐기물, 환경호르몬 등은 그동안 인류사회를 몇차례 뒤흔들어놓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멀어져갔다.
기후변화는 그 원인이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산성비나 오존구멍보다 불분명한 점이 훨씬 더 많았고, 아직도 많다. 20년 전까지도 그것이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1995년이 되어서야 인간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는 판정이 이루어졌고, 2000년에도 그 가능성은 66% 정도(likely)로 여겨졌다. 거의 확실히(very likely, 90% 이상) 인간에 의해 일어났다는 판정은 겨우 일년 전에 내려졌을 뿐이다.2 그런데도 그간 기후변화 담론은 지속적으로 자기 자리를 넓혀왔고, 그 논의기구인‘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위원회’(IPCC)가 노벨상까지 수상함으로써 20년 가까운 전세계적 논쟁 끝에 확고하게 인류의 핵심적 관심거리가 되었다.
지구적 문제, 특히 지구생태계의 미래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는 반응이 아주 느린 한국에서도 이제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기후변화를 의심하거나 그 결과의 심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언론, 정치인, 지식인 그리고 보통 사람들까지도 스스로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3 주류 언론에서도 2007년 IPCC보고서가 나온 후로는, 그전과 달리 적어도 드러내놓고 롬보르(Bjoern Lomborg) 같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를 찬양하거나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바다 속에 잠긴다는 환경론자들의 경고를 코미디라고 폄하하지 않는다. 이윤 추구에만 몰두해서 사회적 염치에는 무관심한 기업들조차 기후변화 이야기에는 고개 숙이는 분위기가 퍼져가고 있다.
2. 기후변화 억제-불가능한 기획
기후변화가 거의 확실하게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인류의 최대 핵심어가 된 시점을 전후해, 역설적이게도 이제부터 힘을 모아 파국을 막자는 소리보다 이미 때는 늦었다는 소리들이 더 커져갔다. 늦었다는 주장의 주된 내용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 당장 절반 이하로 줄인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으면 파국을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가장 급진적인 대변자 중 하나는 제임스 러블록(James Lovelock)이다. 그는 기후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tipping point)을 넘어섰으며, 이제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는 섭씨 8도 올라간 “기후의 지옥”(hell of a climate)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궁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기가 가기 전에 수십억이 사망하고 기후조건이 가장 좋아질 지금의 극지방에서 수백만명 정도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지 전일적인(holistic)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답지 않게 가끔 환원론적인 기술적 처방을 내놓는다.4 그 처방은 20년 안에 수천개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거나 심해수를 바다 표면으로 끌어올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도록 한 후 다시 바다 밑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다.
러블록만큼이나 이름이 알려져 있고 기후연구자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제임스 핸슨(James Hansen)도 비관론자에 속한다. 그는 나사(NASA) 소속 고다드(Goddard)연구소의 책임자이지만, 종종 공개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해 경고하고 미 행정부를 비판한다. 핸슨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대기중의 온실가스가 증가하면 2015년경에 지구 기후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할 것이고,5 해수면은 5미터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러블록과 달리 특별한 처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 기온이 2000년을 기준으로 섭씨 1도 이상 올라가도록 해서는 안되며, 그러려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300~350ppm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6 그런데 2007년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380ppm을 넘어섰다. 그의 주장이 맞을 경우, 대단히 획기적인 대책이 없으면 지구 기후는 곧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핸슨은 대다수의 기후연구자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자신과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7 그러나 그의 연구는 IPCC보고서 중 가장 심각한 내용이 담겼다고 하는 4차보고서에도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0%가량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한 IPCC의 최선의 씨나리오에서 제시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핸슨의 목표값의 최대치인 350ppm보다 50ppm이나 더 높은 400ppm이고, 현재 상태가 연장된 최악의 씨나리오에서는 그 값이 440ppm이나 더 많은 790ppm이다. 해수면은 최악의 씨나리오에서조차 최대 59cm밖에 상승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는 여전히 기후변화의 억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억제를 위한 각종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다.8 그런데도 또는 그래서인지 2007년 발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이었다.
갑자기 적응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이유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점점 큰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회의에서는 아무도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2013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기후변화 감축틀을 만들고 이 틀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나가자는 총론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론을 만들기 위해 아주 많은 회의가 열리고 말들이 오갔다.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부터라면 아무리 훌륭한 틀을 적용한다고 해도 핸슨의 목표 350ppm은 물론이고, 기온상승 섭씨 2도라는 목표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섭씨 2도는 기후변화 억제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숫자이다. 그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파국을 막아줄 수 있는 상한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2100년경에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전과 비교해서 섭씨 2도를 넘기면 기후파탄이 도래한다는 데 기후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탄을 막으려면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2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기온상승을 섭씨 2도 안으로 억제한다고 해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금도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전세계에서 피부로 느낄 만큼 강하다. 그런데도 섭씨 1도가 아니라 섭씨 2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선진국, 특히 유럽연합에서 그 정도의 피해와 경제적 대처 비용은 인류가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초로 기후변화 억제의 경제적 비용을 분석한 것으로 알려진 『스턴 보고서』(The Stern Review)에서 산정하듯이, 기온상승을 섭씨 2도로 억제하기 위해 매년 전세계 GDP의 1%를 투입하는 것은 감당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다.9 기후변화 억제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연합에서 기온상승 섭씨 2도 억제를 정책목표로 분명하게 설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금세기 말까지 기온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억제하려면, 2050년까지 전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하고 온실가스 농도를 450ppm으로 안정시켜야 한다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10 그래서 유럽연합 국가인 영국이나 독일에서 저탄소경제백서나 에너지전환 씨나리오를 내놓고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0~80%가량 줄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산업국가에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고 저개발국에서는 배출량을 조금씩 늘려나가면, 기온상승을 섭씨 2도로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만 되면 파국은 그럭저럭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계 환경운동가들의 대표격인 그린피스에서도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IPCC의장의 서문이 붙은 그린피스의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에너지혁명』(Energy Revolution)이라는 보고서에는 재생가능 에너지와 효율적인 에너지기술을 널리 활용하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0년경의 절반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그린피스도 현상태를 연장하면 2050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00년경의 두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11 보고서에는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씨나리오가 담겨 있는데, 이에 따르면 모든 지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고 전세계 인류의 일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3년의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화석연료 사용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중국에서조차 전체 에너지 소비는 늘어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은 조금도 증가하지 않는다. 일인당 배출량은 오히려 조금 감소한다. 인도의 씨나리오는 더 낙관적이다. 현재 추세를 연장했을 때는 에너지 소비가 2.5배가량 늘어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배로 증가하지만, 효율적 에너지기술과 재생가능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에너지 소비는 50%밖에 늘어나지 않고 일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60%나 줄어든다.
그린피스의 보고서는 매우 희망적인 담론을 선사하지만, 기후변화 억제가 불가능함을 분석적으로 종합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중국과 인도가 과연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의 40%가량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을까? 또한 2030년까지 석탄 소비를 3배 가까이 늘리고 이에 따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쏟아낼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에서 그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남은 20년 동안 갑자기 수백개의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모험을 감행할까? 영국이나 스웨덴 또는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율을 크게 늘리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그린피스나 EU국가들이 희망하듯이 1990년의 20~30%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의지와 기술과 국민적 호응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2020년까지 석유 제로(zero) 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독일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에 40%, 2050년에 80% 줄이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이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에서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고, 그다음에 소비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석탄 발전도 거의 증가하지 않는 가운데 재생가능 에너지가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더 많이 이용되리라는 것은 희망의 스케치로 그칠 것이다.
그린피스의 보고서는 핵발전 이용을 완전히 배제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핵발전소 수천개를 속히 건설하자는 러블록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의 제안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결코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린피스의 보고서와 비교하면, 어쩌면 현존하는‘더럽고’위험한 기술을 좋은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자는 그의 제안이 더 현실적이고 정직한 것인지 모른다. 그의 제안은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줄이기 위해 2000만톤의 황을 성층권에 뿌린다거나 수십억개의 거울을 지구 주위 우주공간에 띄운다거나 석탄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거두어서 땅속에 파묻자는 많은 과학자나 공학자들의 제안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 핵발전은 마음만 먹으면 활용가능한, 이미 대부분 검증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 위험도 앞의 지질공학(geoengineering) 기술들보다 더 크다고 볼 수는 없다. 성층권을 채운 황은 오존층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고, 지구 주위의 수십억개 거울은 제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지구 기후를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른다. 석탄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땅속에 파묻는 기술도 현실성을 지닐 때까지는 아직 수십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매우 값비싼 기술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발하고 훌륭한 제안들이 나오고 어떤 것이 더 나은지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온실가스 농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2007년에 이미 그 농도는 440ppm가까이에 도달했고, 인류가 현재 추세를 계속 연장하면 금세기 말에는 1000ppm으로 올라간다. 그렇다면 온실가스 농도를 450ppm으로 안정시켜서 기온상승을 2도로 억제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판단이다. 500ppm을 최대 상한선으로 본다고 해도 2020년경이면 그 선도 뚫리고 만다.12
3. 기후변화 불평등-유발자와 피해자
세계의 에너지 소비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수십년간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이와 함께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200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유가도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인류의 에너지 갈증을 채우기 위해 값싼 석탄 사용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단기적으로 그전보다 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지난 수년간 석탄 소비는 다른 에너지원보다 더 크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기온상승을 섭씨 2도로 묶어둠으로써 인류가 그런대로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기후변화를 억제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앞으로도 발리와 방콕의 후속회의에서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말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부 대표자들은 쿄오또협약 다음 틀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거듭할 것이고, 환경단체들은 각국 정부에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더욱 강력한 행동을 촉구할 것이다. 기후변화 적응 이야기도 사방에서 터져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말잔치 이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쿄오또협약은 사실상 실패한 협약이다. 말만 많이 만들었지 아무런 성과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쿄오또협약에서 감축 의무를 부여받은 수십개 국가 중 2012년까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국가는 10개밖에 없다. 그중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구 사회주의권 국가를 빼면, 순수하게 온실가스 감축에 성공한 나라는 영국, 스웨덴, 독일, 프랑스, 핀란드 5개국인 것이다.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1990년 대비 2005년의 증가율은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는 25% 이상, 미국과 일본도 각각 16%, 6.5%나 되었다. 기후변화 억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유럽연합 15개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감축 의무가 없는 국가까지 합해서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90년 이래 20%나 증가했다.13 쿄오또협약도 결국 말잔치로 그친 것이다.
2013년부터 발효될 새로운 기후변화 틀도 쿄오또협약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한계에 달할 때까지 현재 추세를 계속 연장하려 할 것이고, 이 상황에서 새로운 협약이 발효된다고 해도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더 늘어나리라는 것이다. IPCC의 씨나리오에 따르면, 현재 추세가 연장될 경우 지구 기온은 2100년에 섭씨 5도 이상 올라간다. 결과는 기후재앙이다. 이렇게 억제가 가능하기는커녕 재앙이 불가피하다면, 적응 또는 준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사실 지구 기온이 상승중이라는 것은 수십년 전부터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 영향으로 지난 20년간 전보다 더 큰 기상재해가 더 자주 일어났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사상 초유의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어서 사상 초유의 싸이클론 나르기스가 발생하는 식으로 재해는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이미 그때부터 기온상승의 원인이 인간이든 아니든 적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올바른 접근이었을지 모른다. 15년 이상 많은 논의를 거쳐서 결론-기후변화의 원인이 인간일 가능성이 90%라는-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동안 기후변화는 그에 상관없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리 기후변화회의에서 다룬 또 한가지 주요 의제는 기후불평등(불공정)이었다.14 불평등(불공정)은 기후회의 때마다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발리 이전의 회의에서는 저개발국들의 이산화탄소 배출 권리도 산업국가와 마찬가지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평등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저개발국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잔뜩 사용하여 기후변화를 유발한 선진국이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불공정한 억압행위라고 공격했다. 그런데 발리회의부터는 산업국들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지역별·국가별로 대단히 불평등하게 돌아간다는 것이 불공정의 주요 내용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유발자들이 아니라 엉뚱한 국가와 지역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입힐 것이다. 아주 불공정하고 대단한 아이러니지만, 유발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산업화 이래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대기에 쏟아부은 중부유럽과 북유럽은 앞으로 적어도 10여년간은 기후변화로 인해 오히려 이익을 얻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이들 지역의 사람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늘어난 맑은날과 높은 온도를 즐기고 있다.15 곡물수확도 북부로 확대된 경작지와 늘어난 일조량, 강수량으로 당분간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대서양으로 올라가는 난류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지만, 영화 「투모로우」에서 경고하는 것처럼 난류가 끊어지는 일은 100년 안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수십년간은 기온상승이 난류의 약화로 인한 기온하강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16 가끔 강한 폭풍과 해수면 상승으로 전보다 더 큰 기상재해가 닥치겠지만, 유럽 선진국들은 이들 재해도 미리 준비한 대비씨스템을 통해서 쉽게 극복할 것이다. 이 점에서도 불평등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똑같이 강한 재해를 당한다고 해도 선진국에서는 잘 갖추어진 대비씨스템과 충분한 재원을 이용해서 쉽게 극복하겠지만, 저개발국에서는 복구를 거의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니제르 델타의 인구 1700만의 도시 라고스가 해수면 상승과 해일로 물에 잠긴다면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되겠지만,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 그런 피해를 입는다면 빠른 시일 안에 복구되리라는 것이다. 나르기스로 10만명이 목숨을 잃고 1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버마(미얀마) 남부도 복구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는 한 국가 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카트리나로 폐허가 된 뉴올리언즈에서도 백인 부자들은 대부분 부서진 자기 집을 복구하고 돌아왔지만, 가난한 흑인들은 대부분 집과 삶터를 포기하고 아예 다른 곳으로 이주해버렸던 것이다.17
IPCC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중부 이북의 유럽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자체로 인해서 입게 될 자연적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시장의 축소와 피해지역 원조액의 증가, 난민 유입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의 증가 등으로 발생할 사회경제적 손해는 매우 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선진국에서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억제에 나서고 있을 텐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개인 차원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기후변화를 즐긴다는 의구심도 든다. 기후변화가 다루어지는 회의에서 도덕의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국가는 유럽 선진국들이다. 같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미국은 항상 방어적이다.18 2007년 독일에서 열린 G8회의에서도 기후변화 억제라는 당위를 내걸고 미국을 압박한 국가는 독일과 영국이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기후변화 이슈를 놓고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함과 동시에 스스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책임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쥔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19
기후변화 논의에서 유럽 선진국들이 자발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는 것은 도덕적 우위에 서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배후에는 경제적인 계산도 자리잡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실천방안의 중심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기술과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술들을 가장 잘 활용하고 보급할 수 있는 국가들이 유럽 선진국이다. 이들의 계획대로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 이러한 기술이 보급되면 그들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은 분명하다. 기후변화는 이들 국가의 날씨만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국제무대에서의 지위와 경제도 데워줄 수 있는‘즐거운’현상인 것이다.
유럽 선진국은 이렇게 지구생태계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경제적 계산도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아직 시간이 조금 있으니 어서 함께 실천의 길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계산 위에서 저개발국에서 늘어나는 피해에 대처하는 일이나 기후변화 적응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발리회의 등에서 앞으로 늘어날 피해의 복구를 위한 펀드를 만들어서 미리 대처하자는 제안도 이들로부터 나왔다. 기후변화로 인해서 발생할 국제정치적 문제에 대한 우려와 대처방안을 다루는 문건도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들 국가에서 나오고 있다.
4. 분쟁과 전쟁의 격화
기후변화가 가져올 국제정치적 문제는 국가간 분쟁과 국제분쟁으로 비화될 일국 내의 혼란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을 크게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이용 가능한 물과 식량의 양은 크게 줄어들 것이고, 에너지에 대한 접근도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막의 확대와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에 적합한 땅도 줄어든다.20 지금 이미 물과 식량은 희소자원이다. 세계인구 중 거의 10억이 만성적인 기아로 고통받고 있고, 2025년에는 12억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2억에 달하는 인구는 물이 심하게 부족한 지역에서 살고 있고, 2025년에 그 숫자는 18억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21 이렇게 극심한 상황 악화의 원인이 기후변화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비극은 상황이 크게 나빠진다고 해도 선진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쉽게 복구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반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저개발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IPCC의 4차보고서는 기후변화로 발생할 지역별 피해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는데, 이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는 일반적으로 가뭄이 심해질 것이고, 아시아는 강한 태풍과 몬순(monsoon)으로 심하게 고통받을 것이며, 중남미는 강한 허리케인과 가뭄을 겪을 것이다. 식량과 물 부족이 심화될 것이며, 그 결과는 물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과 경작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난민의 증가로 나타날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수단의 다르푸르 내전도 기후변화로 사막이 남쪽으로 크게 확대되고 이와 함께 유목민이 남하하여 남부의 정주 농민들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벌인 분쟁으로 촉발된 것이다.22 최근에 일어난 이집트, 아이띠, 필리핀의 식량폭동이나 2007년 멕시코의 시위는 식량부족이 가져올 국가적 혼란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기후변화가 점점 진행될수록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히말라야 주변은 물분쟁이 가장 심하게 일어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히말라야는 지구 전체 빙하의 15%로 뒤덮여 있는 물저장고다.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인더스강, 갠지스강, 메콩강, 양쯔강 같은 아시아의 큰 강에 물을 공급한다. 이 물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구는 약 5억에 달한다.23 그런데 IPCC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아내려서 2050년에는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당연히 주변 지역의 물부족은 심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 내부의 혼란이 증가할 것이며, 인더스강을 공유하는 두 적대국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든 분쟁이 벌어질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렇게 인류 삶의 조건을 점점 나쁘게 몰아가고 있지만, 이로 인해서 발생할 국제정치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저개발국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도 기후변화 유발자인 선진국의 공세로 해석하려 한다. 결국은 이러한 논의의 결론도, 그것이 대규모 기술이전이 되든 원조액의 증가가 되든 기후변화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에 저개발국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다. 저개발국과 중국, 인도의 국가엘리뜨들이 원하는 것은 선진국이 누리는 것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생존이 가능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지 모른다면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저개발국 국민들의 생존 자체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생존이 가능한 새로운 삶터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에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수만명이 목숨을 내걸고 고무보트를 이용해 유럽으로 건너간다. 다른 길을 이용해서 건너가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더 많다. 멕시코에서는 2006년에 110만명이 미국으로 넘어가다가 붙잡혔다.24 이들 이주민이나 난민의 숫자는 기후변화의 진행속도가 더 빨라짐에 따라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커다란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들에게 기후변화 앞에서의 평등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안정적인 생존이 가능한 산업국가의 한구석이나마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25
5. 기후변화와 한국의 선택
기후변화가 자연재해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한 국가의 계획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한다. 문화적 접근의 주제로도 기후변화는 상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기후변화는 이들 중 어디에서도 진지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90%는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걱정했지만, 이는 일종의‘립써비스’에 불과하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터져나오니까 이에 편승해 너도나도 손해볼 것 없는 말에 한표를 던진 결과이다. 한국인들에게 기후변화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주 서서히 다가오는 것일 뿐이다. 지난 수십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고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지리라는 것은 현재의 삶이나 계획에서 주요 변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유발될 국제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한국도 큰 변화를 겪을 가능성은 높다. 한국인들 상당수는 여전히 스스로 개발도상국 국민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개발국에서 보기에 한국은 선진국이다.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고, 대단히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그럼으로써 수준 높은 생활을 누리는 산업국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한국은 한편으로는 피해 유발국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주 대상국이다.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 모방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바로 한국이다. 선망의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수는 2007년에 70만명에 달했고, 결혼을 목적으로 이주한 여성도 10만명이 넘었다.26 북한 출신 이주민도 1만명이 넘는다. 외국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2%이다. 한국사회는 다민족사회로 변화하는 중이다. 빠르게 진행중인 기후변화는 이 변화에 크게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러한 전망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준비’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이 준비의 핵심은 물질적·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를 정하는 것이 준비의 기초이자 핵심이다. 기후변화는 동남아나 중국으로부터 많은 난민을 남한으로 밀려들게 할 수 있고, 북한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휴전선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다. 북한과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한국사회는 불안정한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잠재된 불만이 어떤 계기로든 대규모 폭력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중국인 수천명이 시위를 벌이고 한국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 한국도 이러한 분쟁에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신적·문화적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는 그러한 작은 폭력이 큰 분쟁을 촉발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이 지향하는 사회는‘남한사람 중심의 민주적 경제성장사회’이다. 민주화 이래 지금까지 어떤 정권도 다른 사회를 지향하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도 다르지 않았고, 이는 세계화와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이명박정권은 바로 이 강화된 지향의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한국인은 현재가 진하게 연장된 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종착점은 결국 파국이다. 자원고갈과 기후변화의 가속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한국은 지금 도핑에 의존하는 운동선수와 같다. 도핑중에는 아주 빠르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도핑이 끝난 다음 그 파괴적 결과는 10, 20년에 걸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에너지자원이란 약물 투입의 경제적 성과는 금방 나타나지만, 기후변화라는 파국이 닥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주 길다.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후변화의 결과가 아무리 파괴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인간의 단순한 시간감각으로 인지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에 대비한 준비는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에 대한 힘든 논쟁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정신적·문화적인 대비가 진행되며, 실천적인 작업이 계속 이어져야만, 이스터섬 주민과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있다. 이스터섬은 15세기 즈음에도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이 숲은 수백년 만에 완전히 사라졌고, 이와 함께 이스터섬 문명도 종말을 맞았다. 이스터섬 주민들은 섬의 마지막 나무를 베어넘기면서도 특별한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27 그저 그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무 베는 일을 계속했던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를 뒷받침해주어야 할 중심가치는 지속가능성이다. 한국에서는 지속가능성이 엉뚱하게 변형되어서 지속가능한 성장, 지속가능한 경제라는 말이 퍼졌지만, 지속가능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생태와 공정성이다.28 이러한 두가지 가치가 가장 잘 실현되는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일 것이다. 생태적 전환과 동시대의 인류와 후손에 대해서 공정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후변화의 결과로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기상재해뿐만 아니라 북한과 동남아시아에서 몰려들 난민으로 인해서 유발되는 문제를 그런대로 감당할 수 있다. 가령 이주노동자나 난민에 대해서 보편 인권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후변화에 상당한 책임이 있으므로 그들에게 우리 속의 한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다는 논의들도 준비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만일 그런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이런 일이 닥치면 체념, 혼란, 폭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속가능성 가치를 중심에 둔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는‘어떤 사회인가’에 관한 어려운 논쟁의 길을 거쳐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시에‘말’을 넘어서는 구체적 실천의 지속적인 수반을 요구한다. 준비에 합당한 물질적인 토대를 하나하나 쌓아가야 하는 것인데,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의 성취에 대한 세밀한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고 해도 반드시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도 바이오연료는 석유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기후변화도 완화해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이제 그것은 열대우림 파괴, 곡물가 급등을 초래한 애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태양광발전도 한국에서는 어느새 산과 들판을 조금씩 잠식함으로써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줄어들 식량 생산과 경쟁적인 관계가 되었다.29 이 두가지 예는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이라 해도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치열한 논쟁 없이 적용될 때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오연료나 태양광발전도‘경제대국’이라는 지향과 만나면 그러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진 물질적 프로젝트 중에서 지속가능성의 기준에서 볼 때 가장 평가받을 만한 것은 서울의 대중교통씨스템 개혁이었다. 생태와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놓고 따질 때, 서울의 새로운 교통씨스템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이 시기 동안 국가를 운영한 세력은 소위 진보진영이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오지는 않았다.30 국민의 정부 시절 동강댐 건설계획을 포기한 일이 있었지만,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었다. 역설적이지만 서울의 새로운 교통씨스템은 이들보다 더 강하게‘경제대국’을 지향하는 반대진영의 성취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과거의 성취에 대해 평가할 때 정치적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울의 교통씨스템은 처음부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 없이 추진되었고 지금은 그저 주어진 것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는 또 한편으로 지속가능성의 기준에 부합하는 일을 추진하는 데서도 가치에 대한 논쟁 없이 진행될 때는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에 대한 준비는 가치지향에 대한 논쟁과 물질적 기획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사례들이 하나하나 축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지만 피해갈 수도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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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회의(The United Nations Climate Change Conference of Parties)는 1995년 베를린에서 제1차 회의가 열린 후 매년 개최되고 있다. 발리 회의는 제13차 회의였고, 참가자 수는 정부 대표와 민간단체 대표를 합해 모두 1만명에 달했다. 쿄오또협약의 내용은 1997년 일본 쿄오또에서 열린 제3차 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다.↩
- IPCC 『기후변화 보고서』(2000, 2007). 1990년의 첫 보고서에서는 자연적인 기후변화 원인에 대한 논의가 더 많았다. 2000년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쿄오또협약을 비준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제시한 근거 중 하나도 바로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 2007년 환경부 조사에서는 국민의 90% 이상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 한국에는 러블록이 가이아 이론을 폐기했다는 소문이 돌지만, 필자는 어디에서도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러블록은 2006년 『가이아의 복수』(Revenge of Gaia)라는 책을 썼고, 여기서도 가이아 이론에 입각해서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 빌 매키븐 「지구온난화의 파국은 얼마나 가까이에?」, 『창작과비평』 2006년 겨울호 381면 참조.↩
- 2000년 기준 섭씨 1도는 산업화 이전을 기준으로 하면 약 섭씨 1.6도이다.↩
- James Hansen, “Huge Sea Level Rises Are Coming-Unless We Act Now,” NewScientist.com News Service, 25 July, 2007.↩
- 더 심각한 내용은 미국과 중국의 반대로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 Nicholas Stern, “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 The Stern Review, London: HM Treasury 2006.↩
- M. Meinshausen, “What Does a 2°C Target Mean for Greenhouse Gas Concentrations? A Brief Analysis Based on Multi-Gas Emission Pathways and Several Climate Sensitivity Uncertainty Estimates,” H. Schellnhuber et al., eds., Avoiding Dangerous Climate Change, Cambridge Univ. Press 2006, 265~280면. 여기서 450ppm은 이산화탄소 농도만이 아니라 다른 온실가스 농도를 이산화탄소 농도로 환산하여 모두 더한 값이다. 450ppm에 대해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턴 보고서』에서는 550ppm도 허용되는 것으로 보지만, 이 경우 지구 기온이 섭씨 2도 이상 올라갈 확률은 63~99%이다. 그런데 2005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379ppm, 온실가스 전체 농도는 약 430ppm이었다.↩
- 이 보고서에서 그린피스는 2050년에 세계 인구가 90억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현재 추세를 계속 연장할 경우 일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3년의 3.7톤에서 5.1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에 에너지혁명 씨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의 일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톤으로 감소한다. 지역별로는 유럽 7.4톤에서 2.3톤, 북미 15.6톤에서 3.0톤, 한·일·호주 9.4톤에서 3.8톤, 중국 2.5톤에서 2.3톤, 남미 1.8톤에서 0.7톤, 남아시아 0.8톤에서 0.5톤, 아프리카 0.9톤에서 0.6톤, 중동 5.5톤에서 1.4톤, 러시아 등 7.8톤에서 2.5톤으로 줄어든다. 이렇게 중국까지 포함된 전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어야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0년 동안 절반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전세계 인구의 일인당 배출량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 현재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해마다 2ppm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홈페이지(www.unfccc.int).↩
- climate injustice또는 climate inequity를 번역한 것이다.↩
- 2003년 여름 유럽을 휩쓸고 간 열파에 대한 생태주의자 볼프강 작스(Wolfgang Sachs)와‘회의적 환경주의자’롬보르의 반응은 시사적이다. 그때 작스는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자전거 타기 등을 하면서 날씨를 즐겼다고 필자에게‘고백’했고, 롬보르는 어떤 인터뷰에서 당시 여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지만 겨울이 따뜻해짐에 따라 추위로 죽는 사람은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추위로 죽는 일은 서유럽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동유럽에서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가스공급 분쟁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동사자가 크게 늘어나리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 겨울 기온이 상승하면 동사자의 수는 크게 줄 것이다.↩
- IPCC Working Group 1, Summary for Policymakers, 2007.↩
- Harald Welzer, Klimakriege, Fischer, S., Verlag 2007.↩
- 2005년에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인도 등이 참여해서 만든‘기후변화 아시아태평양 파트너십’(APP)도 유럽연합에 대한 대항적·방어적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다.↩
- WBGU, Politikpapier, 2007; 독일 환경부의‘기후변화 안내문’, 2007. 이들 문헌에서는 모두 유럽연합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2007년 2월 뮌헨에서 열린 세계안보회의에서 독일 외무장관은 “기후변화와 에너지안보는 독일이 정치적 주도권과 지구적 책임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이슈임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Die Zeit, 2007년 19호.↩
- 방글라데시에서는 해수면 상승 등으로 경작 가능한 땅이 해마다 1%씩 줄어든다. Der Spiegel, 2008년 20호.↩
- FAO, “Coping with Water Scarcity Challenge of the Twenty-first Century,” 2007, http://www.unwater. org/wwdo7/downloads/documents/escarcity.pdf.↩
- Welzer, 앞의 책 96~99면.↩
- “Die Klima-Kriege,” Die Zeit, 2007년 19호.↩
- Welzer, 앞의 책 20~21면.↩
- 전세계 인구 중 27억이 사는 46개 국가가 기후변화의 결과에 대단히 취약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할 국가로 분류된다. International Alert, A Climate of Conflict, 2007.↩
- 국가통계포털 홈페이지 http://www.kosis.kr/static/teen/teen02/1172950_1499.jsp↩
- Jared Diamond,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Penguin 2005.↩
- 영어로는 sustainable development, sustainability라는 용어가 쓰이지만, 한국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이 변형되어 정치인과 경제인들 사이에서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말은 2002년초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퍼뜨린 것이다. 이 말은 모순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발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모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장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계가 분명한 지구라는 계 안에서 성장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성장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인들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아주 잘 드러낸다. 지속가능을 앞에 붙임으로써 한편으로는 도덕성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방점은 명백하게 성장에 놓여 있다. 이 글에서 필자가 선택하는 용어는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성은 경제(economy)를 무시하지 않지만, 생태(ecology)와 공정(equity)을 크게 중시한다.↩
- 현재 한국에서 가동중인 상업용 태양광 발전소는 약 30MW, 계획중인 것은 300MW이다. 이들 발전소는 거의 모두 논밭이나 산에 세워진다. 태양광발전소 1MW를 세우는 데 필요한 땅의 면적은 대략 15,000m2이다.↩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오히려 새만금 사업, 원자력발전 확대, 핵폐기장 건설 등 지속가능성에 반하는 기획이 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