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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이명박정부의 의료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이창곤 李昌坤
한겨레신문 사회부문 부편집장. 저서로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등이 있음. goni@hani.co.kr
1. 핵심을 비껴간 동문서답식 논란
의료민영화를 두고 논란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한 이 논란은 2008년 대한민국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시금석으로 주목받았던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이 제주도민의 반대로 무산1되면서 논란은 잠시 주춤할 듯하지만,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히 농후하다.
지난 7월말 보건의료노조 산별파업의 핵심 구호는 의료영리화 반대였다.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올해 우리의 가장 큰 요구는 의료영리화 반대”라고 말했다. 또 촛불집회를 이끌어온 170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모임인‘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지난 7월 5일‘5개 국민요구사항’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 다섯 중 하나가‘의료민영화 반대’였다. 6월 23일부터는‘1인 릴레이시위’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한동안 이어져왔다. 6월 19일에는 이 주제를 내건 별도의‘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2천여명의 시민들은 서울 시청앞 광장에 모인 뒤, 보건복지가족부가 있는 계동 현대사옥 쪽으로 거리행진을 벌였다.
온라인에서는 논의가 더 활발하게 불붙었다. 포털싸이트‘다음’의 토론방‘아고라’에서 의료민영화는 내내 핵심쟁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의료민영화 반대 온라인서명운동이 벌어져 짧은 시간에 10만명이 넘게 동참하기도 했다. 의료민영화반대 시민연합 등 각종 싸이트와 까페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토론회도 잇따랐다.‘촛불’현장에선 간이토론회가 수시로 열렸고, 시민단체나 정당이 개최한 공식 토론회도 줄을 이었다. 7월 10일 건강연대가 주최한‘정부의 의료정책: 선진화인가 민영화인가’라는 토론회는 주목할 만했다. 이 논란과 관련해 정부 쪽이 처음으로 참여한 토론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토론회에서는 의료민영화 논란의 양태가 잘 드러났다. 이날도 정부는 “의료민영화는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고, 시민단체 등은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를 질타했다. 논란의 한쪽 편인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를 외치는데, 다른 한쪽 편인 이명박정부는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도 양쪽으로 갈려 가세했다. 보수성향 신문들은 사설과 칼럼 등에서 이를‘괴담’이라고 일축해온 반면, 진보성향 신문들은‘의제’화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큰일 날지 모르니 그만두라’는 쪽과‘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웬 난리냐’는 쪽이‘동문서답’식 대립각을 세우며 논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2.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나
이런 모양새는 논쟁 당사자가‘한다, 안한다’는 식으로‘사실(fact) 자체’부터 달리 보고 있는 측면이 크다. 한쪽에서는‘의료민영화’를 말하는데, 다른쪽에서는‘건강보험 민영화’를 얘기하니 접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의료민영화와 건강보험 민영화, 둘은 서로 다른 뜻이다. 마치 한쪽에선 빵이라고 하는데, 다른쪽에선 밥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의료민영화란 개념을 두고서도 양측이 서로 달리 이해하거나 숫제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의료민영화’를 영리의료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포괄하는 일련의‘의료영리화’흐름으로 이해한다. 이에 견주어 정부 쪽에서는 이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오히려 이들 흐름은‘의료선진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 21일 복지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이런 정부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정부는 당시 자료에서 “정부가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여 미국형 의료보장씨스템을 도입하려 한다는 과장 왜곡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건강보험의 민영화는 검토한 바도 없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이 발표대로라면,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터무니없이 정부를 공박해온 셈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논하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법이다. 이명박정부는 출범 이후 건강보험 민영화를 안한다고 밝혔지만, 기실 출범 이전부터 의구심을 살 일을 벌였다. 안한다고 한‘건강보험 민영화’도 추진했다가 반대여론이 비등하자 접었고, 영리병원 도입도 제주도에 사실상 시범적으로 해보려 한 바이며,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정책도 착착 추진해왔다.
그 증거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인 『성공과 나눔』을 보면, 135면 「능동적 복지」 편‘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 구축’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요양기관(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그동안 사유재산제도의 침해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향후 국민에게 불편함이 없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는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인수위의‘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개정’2이란 언급은 곧‘폐지 또는 완화’방침으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언론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저지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건강보험제도는 국민건강권의 최후의 보루란 인식이 급속히 확산됐으며, 이를 폐지하려는 정부여당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시민단체들은 한발 나아가 정부의 방침은 곧 국민건강보험의 붕괴나 다를 바 없는 정책이라며 날을 세웠다.
거센 반발이 일고 4월 총선을 앞둔 마당이다 보니 정부는 마침내 복지부 장관 이름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민영화의 괴담은 바로 이런 정황의 산물이다. 이후 정부의 거듭된 당연지정제 천명이 있었지만,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상황만 허락된다면 정부가 언제든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좀체 의구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3. 의료민영화, 그 정의 및 함의
왜 이명박정부 들어 의료민영화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을까? 이는 이명박정부의 정책 브랜드가 바로 민영화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정부는 출범과 함께 공기업 구조조정 및‘민영화’3방침을 내세웠다. 이는 이 정부의 시장지상주의 철학과 상통하는 것으로서 곧바로 사회적 의제가 됐다.
‘의료민영화’는 이렇듯 공기업 민영화 논란과 궤를 같이하면서 나온 말이다. 내용상으로는 사실 노무현정부 때 나온 의료산업화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산업화란 말은 대중적으로 긍정적 의미로 읽힐 여지가 많고, 내용의 본질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고 보는 견해가 적잖았다. 이 때문에 의료영리화, 의료상업화란 말을 선호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렇듯‘의료민영화’는 엄밀한 학술적 개념은 아니며, 반대 주체들이 선택한 다소 전략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의료선진화를 주창하는 보수성향의 학자들이나 정부 쪽은 숫제 이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그 정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가 나름의 정의를 시도했다. 의료민영화란 “점진적으로 민간보험회사가 주체가 되는 민간의료보험이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과 경쟁 혹은 대체될 수 있도록 성장하고 영리법인 허용 등의 조처를 통해서 자본시장으로부터 의료기관에 대한 자본조달 기전(mechanism의 의학용어-인용자)을 합법화하여, 이윤추구를 존재이유로 하는 의료기관과 민간보험회사 간에 자율계약을 통해 의료써비스 비용을 결정하고 공급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의료민영화,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가」, 민주당 주최 토론회‘의료민영화, 재앙인가 대안인가’, 2008.6.19)
다소 어렵게 정의했지만 핵심은 세가지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의료법인 설립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추진 등 3대정책을 의료민영화의 실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당연지정제는 정부가 추진할 뜻이 없다고 잇따라 밝힘에 따라 시민단체 등도 더는 거론하지 않는다. 당연지정제 논의는 위험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깔린 것 같다.
진보성향의 보건의료 전문연구소인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이명박정부의 의료민영화 10문 10답」이란 글에서 “의료보험 민영화, 건강보험 민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부가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마당에 이 논의를 계속하면, “모르면서 괴담을 퍼뜨리는 것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연구소는 또 “의료민영화라고 표현하면 이명박정부가 하려는 (의료)정책의 본질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네티즌, 진보성향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이 개념을 선호하는 까닭에는 이런 포석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중적으로 두루 쓰이고 있는데다, 본질을 쉽게 드러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4. 의료민영화, 두 실체
그렇다면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의 실체는 무엇이며, 현재 그 구체적 양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두 정책으로 집약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영리의료법인(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두 정책은 노무현정부 당시 이미‘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나온 것이지만,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그 양상은 조금 달라졌다.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띠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및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경제성장론과 맞물리면서 경제부처가 거리낌없이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다. 발원지는 제주도다.4 지난 6월 3일 국무총리 산하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가 제주도에 국내 영리병원5 설립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곧바로 제주대 의대 교수진 등에서 거센 반발이 나왔으며, 이들은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마침내 제주도민들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으나, 영리병원 설립은 현정부 내내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반대하는 쪽의 이유는 간명하다. 병원들의 돈벌이 운영이 더 극심해져 가뜩이나 허약한‘의료의 공공성’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뚫린 영리병원 허용의 파고가 경제자유구역으로 확산돼, 종국에는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영리병원 허용은 가뜩이나 수익성을 좇고 있는 병원들의 행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환자는 어디까지나 돈벌이용 고객일 뿐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써비스가 나아지고 의료관광이 활성화돼 국가성장의 엔진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댓가는 끔찍하다. 병원들은 지금보다 더욱 생명보다 돈을 중심으로 환자를 상대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고급 장비에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초특급병원이 등장할 것이고, 수익성을 좇는 의료기관의 무한경쟁도 극심해진다. 의료비는 더 높아지고, 가난한 이들에게 병원 문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영화 「식코」, 아니 그보다 더한 상황이 언젠가 올 수 있다는 걱정이 영리병원 허용 반대의 배경인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에 대해 정부 안에서도 온도차를 보인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는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공식 언급을 피하고 있다.6 하지만 제주도와 일련의 법개정 움직임은 기획재정부쪽 입장이 정부의 진짜 속내란 인상을 다분히 주고 있다. 또 지난 6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의료법 개정안이나 의료채권에 관한 법률 등도 결국은 이런 수순을 위한 일환이 아닌가 하고 보건의료단체 등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비록 제한된 범위이긴 하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병원의 인수합병 및 영리추구를 위한 부대사업을 허용한 것 등은 결국 영리병원 허용을 포함한 의료민영화로 나아가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의료법 개정안에 담긴‘병원경영지원회사’(MSO) 설립 허용은 주목할 부분이다. MSO는 병원과 계약을 맺어 댓가를 받고 구매, 인력관리, 진료비 청구, 마케팅 등 경영지원써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이런 회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허용돼 있지 않다. 몇몇 학자들은 이 회사는 향후 민간자본, 특히 거대 보험회사가 병원업에 진출하는 고리 구실을 할 수 있으며, 병원영리화의 전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본다.7
의료민영화의 또 하나의 실체는 이른바‘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다. 인수위 백서 『성공과 나눔』에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적고 있다. “민간보험의 활성화를 통해 국민들의 의료비용을 함께 담당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의 협조를 통해 국민들에게 불편부당함이 없도록 조속히 법안을 개정할 계획이다. 법안에는 상품개발과 관련된 내용, 관리감독체계, 정보공유 등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될 것이다.”
의아해하는 이도 있으리라. 민간보험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판매되고 있는데, 활성화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또 왜 반대하는가라고. 여기서 활성화하겠다는 민간의료보험은 국민들이 접해온 기존의 암보험 같은 정액형 보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손해보험도 아니다.‘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즉‘제3의 보험’이라 할 수 있다. 이 보험상품은 암 등 질병에 걸렸을 경우 실제 발생한 의료비 중에서 건강보험이 지불한 금액을 뺀 나머지 전부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사실 실손형 의료보험이 아니더라도 보험상품은 이미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여기서 복잡한 논의를 다 할 순 없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낮은 보장성, 지나치게 까다로운 보험금 지급요건, 고령자나 기존 병력소유자 및 장애인 가입 배제, 소비자들이 알기 힘든 상품의 복잡성, 고지의무 위반의 위험을 가입자에게 전가하는 등의 문제점을 열거한다.
더욱이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한 나라일수록 국민의료비 규모가 크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저소득계층일수록 부담이 더 크고, 써비스의 질도 더 떨어지며 아예 써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흔히 발생한다. 또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영리병원 도입 및 확산의 방아쇠 구실을 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보험자본의 의료기관 통제가 확대되는 일도 예상된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종국에는 건강보험 위축이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몇몇 보험회사에서 이미 관련상품을 출시했다. 아직은 그 영향을 두고 봐야겠지만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이처럼 많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는 “정부의 민간의보정책에 따라 출시된 이른바‘실손형’의료보험상품들이 가뜩이나 재정이 악화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범위가 아직도 그리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하면 의료보험 가입자와 미가입자의 의료이용의 접근성 차이는 더욱더 커질 것”이란 경고도 놓치지 않는다.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이런 비판에는 아직도 취약한 부분이 많은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을 우선적으로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민간보험의 역할이 설정돼야 한다는 입장이 뒷받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거센 비판과 비관적 전망에도 왜 정부는 집요하게 이른바 의료민영화정책을 추진하는 것일까?
5. 이명박정부의 의료정책 방향과 문제점
이는 이명박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의료 또는 의료정책을 바라보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경제부처 관료들의 인식이 여기에 결합하면서 한차례 더 상승작용을 한다. 그 기저에는 이 정부의 금과옥조인 경제성장과 효율이 깔려 있으며, 의료가 바로 이 목표에 기여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인식이 놓여 있다.
이런 인식은 현정부가 내놓은 여러 자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2월 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5개 국정지표 192개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 구축이 그중 하나다. 그 하위과제로 민간보험 활성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완화 또는 폐지 검토,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의 경쟁요소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써비스업 경쟁력강화 방안 중에는 신성장동력으로 의료산업 육성이 있는데, 그 세부과제로는 의료채권제도, 영리의료법인 허용, 해외환자 유치 활성화, 의료써비스산업 해외진출 지원 등이 있다.
지면의 한계로 낱낱이 논할 수 없지만, 이런 과제의 추진 및 검토에는 의료써비스를 산업과 성장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잔뜩 묻어 있다. 시장과 경쟁의 논리는 당연히 여기에 따라붙는다.‘경쟁을 통해서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현재의 체계는 독점적인 공공부문 중심으로 이뤄져 매우 비효율적’이란 사고인 것이다. 따라서 의료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구조로 재편돼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의 경쟁요소 도입이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재개정 등 현정부가 내건 정책과제들은 이런 흐름 속에서 추진됐으며, 추진되고, 추진될 것이다.
백서 『성공과 나눔』에서는 “지속가능한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의료써비스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또 이를 위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며, 구체적으로 의료채권제도나 영리의료법인 도입 검토, 프리랜써 의사 등 다양한 형태의 의료법 허용, 소비자 선택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도입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효과에 대해, 백서는‘건강 관련수지 적자개선, 고용창출과 국부증진’등을 명확히하고 있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주요국의 써비스산업 육성동향 및 정책적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는 의료관광을 특히 강조한다. 본보기로 이 보고서는 태국을 든다.‘영리의료법인 허용을 통한 의료산업 투자 촉진’의 사례다.
현정부의 이런 인식과 흐름은 철학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끼칠 수 있는 현실적 영향 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다. 이는 윤리적으로나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현재 큰 이슈 중 하나다.‘부자일수록 건강하고, 가난할수록 건강하지 못하며, 가난하면 암에 더 잘 걸릴뿐더러, 치료받을 기회조차 충분히 얻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영리병원 도입이나 민간보험 활성화 등 이른바‘의료민영화정책’은 가진자들을 위한 고급의료는 발전시킬지 모르지만(사실 이 전망도 비관적이긴 하지만), 서민의 의료접근을 더욱 가로막고 상대적 박탈감을 더 높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게다가 의료의 공공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변화는 무엇보다 더 커질 의료비 부담일 것이다. 의료의 영리화·상업화는 필연적으로 의료비 부담을 늘릴 것이며, 이는 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따지고 보면 효율적이지도 않다. 불필요한 비용을 치러 국민 전체비용을 결국은 높이기 때문이다.8
6. 한국 보건의료의 현실과 대안
사실 의료민영화 논란의 다른 한편에서 우리 사회가 진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국민이 맞닥뜨리고 있는 의료의 현주소이다. 나아가 이 근본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가 보여준 미국인들의 의료현실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덕분에 그나마 그 양상이 전면적이 아닐 뿐이지, 우리 사회의 적잖은 서민들이 그와 다를 바 없이 실제 겪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선 가족 중 누군가가 큰 병에 걸리면 가계가 심각한 파산상태에 빠진다. 암 등 중병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지속적으로 높아져왔지만, 그래도 한 가계가 부담하기엔 너무나 벅차다. 중산층이 질병에 따른 부담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며, 빈곤층에게 병원 문턱은 너무나 높다. 이런 현실은 모두 의료체계와 정책이 그 근원이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등 나름의 역사성과 독특한 모델을 갖고 있다.9 다만 의료자원의 공급 측면에서만 보면 시장형에 가깝다. 의료자원을 주로 민간에서 공급하기 때문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은 고작 10% 수준에 그친다. 나머지는 다 민간병원이다. 병상 수로 따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해 기준으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전체 병상의 18%에 불과하다.
민간의료 중심의 자유기업형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는 미국(33.2%), 일본(35.8%), 대만(33%)조차 공공병상 비율은 모두 30%를 넘고 있다. 캐나다가 99.3%, 영국이 95.8%, 이딸리아가 72.6%, 프랑스는 69.4%를 차지하고 있고 멕시코조차 70%가 넘는다. 의료이용의 형평과 사회책임을 중시하는 유럽 대다수 국가들은 적어도 60%에서 100% 가까이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병원 대다수가 공익모형이기보다 이윤극대화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병원들로서는 수익이 최고인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병원들은 돈이 안되는 시골보다 도시에 집중되고, 예방보다는 치료 위주이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고가의 진단의료장비를 도입하거나 치료와 별 관련이 없는 내부 인테리어 등에 투자하는 경향을 띤다.
병상도 만성질환자를 위한 장기요양보다는 대체로 급성기 병상을 더 채우고 있다. 우리나라 급성기 의료병상 수는 2003년 기준으로 인구 1천명당 5.9개다. 이런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2개보다 훨씬 많다. 의료기관의 영리화, 이윤추구화 경향으로 인해 고가의 의료장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게 되었으며,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 않거나 다른 저가의 진단 또는 치료방법이 있어도 수익성을 이유로 고가의 장비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국민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런 현상은 모두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의료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갖춘 우리나라에서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우리의 보건의료현실을 어둡게 만드는 또다른 주요 요인으로 의료재정체계10가 지목되고 있다. 전체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정 비중이 매우 작은 상황을 가리킨다.‘국민의료비 지출 중 공공지출의 비율’의 경우 2004년 기준으로 OECD국가 평균은 71.6%이다. 우리는 절반을 간신히 넘긴 51.4%에 그친다. 이는 미국 44.7%, 멕시코 46.4%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보장성이란 쉽게 말해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선진국의 경우 85~90%에 이르지만, 우린 2006년 현재 64.3%이다.11 낮은 보장성은 본인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많고, 또 법적으로 정해진 본인부담금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가 현시점에서 가장 고민해야 할 대목은 바로 이런 보건의료현실이 아닐까? 의료정책 방향도 이런 구조를 개혁하는 쪽으로 세워져야 진정 국민을‘섬기는’자세일 것이다. 공연한 의료민영화 논란에 휩싸여 힘을 빼기보다, 국민이 정말로 원하는 의료체계와 정책이 무엇인지를 깊이 되짚어보는 게 지금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 핵심방향은 무엇보다 국민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인 건강권을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보장성의 지속적인 확대가 필요하며, 건강보험이 포괄하지 못하는 비급여 항목도 차차 급여화해야 한다. 돈이 없어 틀니를 하지 못해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차별받는 의료이용과 건강불평등을 줄이는 각종 대책도 여기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누구나 필요할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는 결코 상상 속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렇게 추구하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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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해온 제주도가 지난 7월 24~25일 도민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반대 39.9%, 찬성 38.2%가 나왔다.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도민의 뜻에 따라 관련법 개정안에 영리병원 도입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여건이 성숙되면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 논란은 현 정부가 도입 불가방침을 공식 천명하지 않는 한 좀체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 의료기관 당연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을 지탱하는 보루로서 건강보험법 제40조 1항에 명시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개설된 모든 의료기관은 당연히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써비스 제공 계약을 맺도록 한 제도다. 즉 국내 모든 병·의원, 약국 등 의료써비스 공급기관이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요양기관’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함을 뜻한다. 건강보험 환자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연지정제 폐지는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뿌리를 뒤흔드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민영화란 정부 등 공공이 맡았던 일을 민간에 넘긴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긍정과 부정의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 등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그 본질을 잘 드러내려면 사유화란 말이 더 적확하다며, 민영화란 말을 기피한다. 하지만 사유화란 말이 어렵고 민영화란 말이 이미 일반화돼 있어 민영화라는 개념이 여전히 더 많이 쓰인다.↩
-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특히 적극적이다. 그는 임시반상회와 각종 찬성광고를 통해 도민을 설득해 9월 정기국회에는 영리병원 허용이 포함된 제주특별자치도 3단계 제도개선안을 제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제주도가 내거는 핵심적 논리는 외국인 환자 유치를 통한 경제활성화와 도내 의료써비스의 질 높이기다. 하지만 이 목표는 비현실적이며, 되레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현행법상 병·의원은 비영리법인과 의료인만이 운영할 수 있다. 의료행위는 적어도 공익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현실을 놓고 보면, 낯간지러운 이야기이긴 하다. 왜냐하면 의료써비스 주공급자가 공공이 아닌 민간이며, 대부분의 민간병원들은 수익을 좇아 운영되는 사실상‘영리병원’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 복지부 쪽은 내부적으로 편차는 있지만, 내심은 해봄직하다는 입장에 가깝다. 몇몇 관계자는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을 실험적인 시각에서 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다. 해보고 문제투성이면 말고, 성과(?)가 많으면 확대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료법인이 장관령으로 정하는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49조, 의료기관의 인수합병 도입을 허용한 51조, 외국환자 유치를 위한 유인 및 알선을 허용하는 27조 등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을 의료민영화 추진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 가천의대 임준 교수는 영리병원 허용 등에 대한 현정부의 의료정책적 판단을 자본의 병원산업 진출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그는 의료채권 발행 등에 주목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주식시장을 통해 영리추구적 재원을 조달하려는 시도로 나타날 것이며, 거대 병원자본과 대형 다국적 민영보험회사나 금융기관들이 그 자본을 이윤추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의료산업복합체의 출현이다.↩
- 의료체계는 나라마다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여러 양태로 나타난다. 크게는 공공형과 시장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국민들에게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방식이 공공에 기반을 두느냐 시장에 기반을 두느냐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써비스(NHS)가 대표적인 공공형이다. 시장형은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없다. 국민들은 민간보험회사와 계약해 병원의 의료써비스를 이용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NHI)이란 방식을 취하고 있다.↩
- 제주대 의대 이상이 교수는 「국가의료제도, 의료민영화, 그리고 국민건강권」(한겨레 제3차 시민포럼)에서, 의료재정체계의 문제와 함께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과다한 비급여 본인부담 영역, 구조적인 의료과잉과 급증하는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꼽는다.↩
-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2004년 61.3%, 2005년 61.8%, 2006년 64.3%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였다. 암환자의 경우에는 2004년 49.6%, 2005년 66.1%, 2006년 71%에 이르렀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낮은 수치다. 문제는 현정부가 보장성 확대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