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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최승철 崔丞喆
1970년 전북 남원 출생. 2002년 『작가세계』로 등단. sijagmemo@hanmail.net
토기 굽는 사람
위성안테나를 설치하는 기사의 손은
유연하게 전선을 끊어 단자에 접지시킨다
가스렌지를 점화하자 중심은 뚝배기를 감싸고
제 몸짓에 놀라 더욱 푸르러지며 불길을 연다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가장(家長)은
나사를 돌리는 방향으로 밤하늘에 조여들며
빠른 속도로 우주에 휘감긴다
접점에 선 기사의 등에서 땀이 흐른다
가스불은 견고하게 뚝배기에 닿는다
베란다에 안테나를 고정시키자
중심은 허공을 향해 주파수를 찾는다
자신의 피가 불에 닿아 구워지는 것을
단단하게 앓아야 피가 물을 담아낼 수 있는
불의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토기 굽는 사람은 알았을 것이다
중심을 잡아당기며 오목해진 토기에서
물 한 방울 불로 건져올릴 수 있을까?
뚝배기에 닿던 푸른 불길로 토기 굽던 손길이
찌개를 감싸안으며 보글거린다
위성을 찾으려는 안테나의 방향으로
수위는 깨진 유리창을 모으고 있다
바람은 떠나가는 쪽에서
자신이 긋던 흔적을 지운다
도마뱀 꼬리
벽에 붙어 있는 달력 한 장은 밀림이다.
네모난 방을 넘으며 도마뱀이 꼬리를 자른다. 자정 무렵 하나의 담을 기어오르기 위해 도마뱀은 혀를 말아올린다. 나는 벽을 넘어오는 도마뱀의 혀를 쿡― 압핀으로 찍어놓는다. 이브가 훔친 선악과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나는 오늘의 방 안에서 뒹굴거린다. 도마뱀들이 빠르게 네모난 방의 공기알들을 훔쳐 사방으로 달아난다. 쫓으려 하면 더 잽싸게 태양의 열매를 품고 달아난다. 한쪽 벽면에 쿡― 찍어놓은 혀가 등 뒤에서 발버둥친다. 나는 귀찮아져서 도마뱀의 꼬리에 순간접착제를 발라버린다. 네모난 기억의 방에서 밀린 도마뱀들이 우글거린다. 제곱수로 늘어난 고개를 자꾸 지금의 방으로 내밀려 한다. 나는 거대한 압핀을 자정의 방 한가운데 박고 위로 올라간다. 압핀을 잡고 도마뱀들이 나를 거쳐가려고 쫓아온다. 꼭짓점에 가까워질수록 도마뱀의 숫자가 늘어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도마뱀들이 압핀의 정상에 도달하기 전 나는 꼭짓점을 먹어버린다. 도마뱀들이 머리를 두리번거린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꼬리가 잘린 말들이 분절된다.
내 몸은 거대한 시간의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