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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참여연대 평화군축쎈터 엮음 『2008 평화백서』, 아르케 2008
발로 뛰는 시민의 대안적 평화투쟁기
이정철 李貞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rheeplan@empal.com
국제정치에서 이상주의적이라는 말은 욕에 다름 아니다. 무정부상태의 국가간 관계에서 한가로운‘도덕’논리를 들먹이는 것이 씨알이나 먹히겠느냐는 지적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상식이 되었다. 정치와 윤리의 분리를 강조하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운동의 논리가 힘을 받지 못한 것은, 안보담론이라는 현실운동 밖에서 성장한 윤리운동으로 평화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쎈터가 발간한 『2008 평화백서-시민,‘안보’를 말하다』는 이같은 통념에 대한 통렬한 도전이다. 이 책은 이론 부문에 해당하는 1, 2장에서 평화국가의 인식론적·존재론적 기초를 검토함으로써 기존 안보담론의 안과 밖을 싸잡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으로서 평화국가와 그 헌법원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비판적 평화연구’의 관점에서‘한국적’평화운동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구갑우(具甲祐)는 현실주의 안보담론의 인식론적 기초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안으로부터의 비판과 그 구성주의적 대안으로서의 국제안보 담론을 검토한다.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는 모든 국가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탈근대적 정치체인‘평화국가’를 기획한다. 평화국가는 폭력을 존립근거로 하는 근대국가와 속성상 폭력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평화, 이 두 개념 간의 형용모순을 극복하고‘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방법론적 모색인 것이다.(26면)
탈근대적 평화국가론이 비현실적이라는 반론에 대한 저자들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비도발적 방어(non-provocative defence)에 입각한다면 선(先)군축을 통해 안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고, 안보의 대상을 국가에서 사람으로 이전시키면 시민사회의 평화역량에 의거한 전쟁억지와 윤리외교가 가능하며, 나아가 구조적 폭력이 제거된 축적체제를 구축한다면 평화국가를 위한 내적 재생산조건이 마련된다.(27~28면) 이렇게 현실화된 평화국가가 다시 평화적 생존권 개념과 그것의 자유권적·청구권적 확장(35~40면)이라는 고안물을 제도화한다면, 평화국가 기획은 마침내 완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연구가 “끊임없이 물으면서 가는 우연한 발견의 길”이라는 술회(15면)에 이르면, 평화국가론의 서슬 퍼런 논리도 어쩌면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양심적 지식인의 한탄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주의자는 허무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던가.
평화주의의 극단적 확대가 허무주의를 양산한다는 비아냥보다, 평화국가론에 대한 건강한 평가는 아마도 평화국가가 남북문제와의 관계설정에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일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평화주의자들은 국가로서의 북한은 말할 나위 없겠지만, 그에 포획된 북한 주민들을 용인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평화적 생존권이나 평화국가라는 탈근대적 기획이 성숙한 근대사회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면, 한반도 주민이 시민 아닌 민족으로서 가지는 정체성과의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이 점에서 감히 평화국가 기획에 경과적 규정을 제안코자 하는 비례(非禮)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종북주의 논란도 마다하지 않으며 진보진영이 평화의 가치를 전유하려 했지만, 평화의 가치는 그렇게 독점될 수 없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평화운동은, 그것이 남북통일론이 지향하는 규범과 접맥되지 않으면 제대로 토착화하기 어려운 이중의 가치라는 현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같은 교훈에서 출발할 때에만,‘미국의 핵우산 제거와 미군철수를 짚지 않은 채 북한의 핵개발을 성토하는 것이 평화운동의 자충수’라는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3, 4장은 평화국가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외정책 수립의 원칙과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 그리고 한미군사동맹의 전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3, 4장은 노무현시대의 복잡다단했던 외교안보 현안들을 한번쯤 정리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되는 진보진영의 역사적 기록이다. 특히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서의 은폐 왜곡(195면), 작전통제권 반환협상의 사기성(338면) 등에 대한 서술들은 노무현정부의 “정신분열적” 평화관(284면)을 드러낸다. 이같은 맹렬한 비판을 읽은 후, 조성렬(趙成烈)의 미래 한미동맹론을 읽으면 한미동맹의 민주화에 대해 성숙하고 차분한 토론이 가능해질 듯하다.
사례분석에 해당하는 5장은 시민행동의 다양한 현상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대북지원론, 군 인권문제, 국내의 군사기지 반대운동, 해외의 반전평화연대, 국내외의 반핵·반군사연습 운동, 갈등관리와 평화교육 등 우리 시민사회가 전개하는 다양한 시민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시민이 주도하는 평화국가운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5장을 읽다 보면 우리 시민사회의 평화역량에 속이 후련해지고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의 평화역량을 과소평가해왔음을 새삼 반성하게 된다. 물론 대추리 투쟁(263~69면)같이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흔히들‘일독을 권한다’로 서평을 끝맺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주제넘지만 필자는 이 책의‘이독’을 권하고 싶다. 어눌한 서평으로 이 책에 누를 끼친 주제에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평화백서』는 두번은 읽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편집에 이끌려 일독하다 보면 마음이 산뜻해지고, 진보진영의 입장을 인용할 필요가 있을 때 참고할 만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부록의 기록들은 평화운동의 좌표를 한눈에 살피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다.
하지만 진정 평화‘백서’라는 제목의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은 이 책을 두번째 읽을 때이다. 이독을 하다 보면 시험이든 리포트든 강제로라도 학생들에게 정독하게끔 하고 싶어진다.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안보, 이를 위해 발로 뛰는 시민의 수평적 논리가 수직적 권력의 일방적인 선전공간을 허무는 모습을 이토록 잘 보여주는 대안적 투쟁이 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권력정치의 일방적 선전공간인 정부 발간 백서가 그리 지루한데도 권력자들은 이를 왜 쉴새없이 재생산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저자들이 스스로의 주저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백서’라는 이름을 단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당당함’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덧붙일 점, 하나! 안보언설의 남성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주의는 없다는 경고(66면)는 「Fucking USA」 노래에 생각 없이 재밌어했던 분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회개(?)의 기회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