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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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기념

 

황동규 黃東奎

1938년 서울 출생.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어떤 개인 날』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풍장』 『꽃의 고요』 등이 있음.

 

 

 

겨울밤 0시 5분

 

 

별을 보며 걸었다.

아파트 후문에서 마을버스를 내려

길을 건너려다 그냥 걸었다.

추위를 속에 감추려는 듯 상점들이 셔터들을 내렸다.

늦저녁에 잠깐 내리다 만 눈

지금도 흰 것 한두 깃 바람에 날리고 있다.

먼지는 잠시 잠잠해졌겠지.

얼마 만인가? 코트 여며 마음 조금 가다듬고

별을 보며 종점까지 한 정거를 걸었다.

 

마을버스 종점, 미니 광장 삼각형 한 변에

얼마 전까지 창밖에 가위와 칼들을

바로크 음악처럼 주렁주렁 달아놓던 철물점 헐리고

농산물쎈터 ‘밭으로 가자’가 들어섰다.

건물의 불 꺼지고 외등이 간판을 읽어준다.

건너편 변에서는 ‘신라명과’가 막 문을 닫고 있다.

 

나머지 한 변이 시작되는 곳에

막차로 오는 딸이나 남편을 기다리는 듯

흘끔흘끔 휴대폰 전광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

키 크고 허리 약간 굽은,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무엇인가 외우고 있다.

그 옆에 아는 사이인 듯 서서

두 손을 비비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서리 가볍게 치다 만 것 같은 하늘에 저건 북두칠성,

저건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아 오리온,

다 낱별들로 뜯겨지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여자가 들릴까 말까 그러나 단호하게

‘이제 그만 죽어버릴 거야,’ 한다.

가로등이 슬쩍 비춰주는 파리한 얼굴,

살기(殺氣) 묻어 있지 않아 적이 마음 놓인다.

나도 속으로 ‘오기만 와봐라!’를 반복한다.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들은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앉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으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누가 헛기침을 참았던가,

옆에 누가 없었다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할 뻔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별들이 스쿠버다이빙 수경(水鏡) 밖처럼 어른어른대다 멎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구도나루 포구

시인 오정국, 박주택, 박만진과 함께

 

별 내용 들어 있지 않은 민짜 여행시를 하나 쓰자.

잘난 경치도 없고

타곳에서 불현듯 돋을새김되는 삶의 요철 쓸어보고

그동안 뭘 살았지? 하며 맥 놓고 버스에 오르거나

숨 막히는 경관에 마음 쩌릿쩌릿하지 않고

보통 풍경과 그저 한때 같이 보낸 시.

 

2008년 5월 중순 어느 오후 서산시 서쪽,

팔봉산을 등 뒤에 부려놓고 나앉은 구도나루,

가로림만이 눈앞에 호수처럼 떠 있고

건너편 언덕들이 담채(淡彩) 그림자를 물 위에 드리우고

배들이 충청남도 말씨처럼 천천히 들락날락하는,

그렇다고 예찬(倪瓚)1의 속도 줄인 물 그림이 풍기는

쓸쓸한 고요도 없는,

별 볼일 없이 편안한 곳.

 

며칠 동안 철모르고 서해안에 몰려든 광어떼

식당 속까지 헤엄쳐 들어와

시인 넷이 5만 8천원에 소주 한잔 곁들여

회와 매운탕을 띠 풀고 먹은 곳.

 

일하는 후배들 먼저 가고 혼자 남아

포구의 저녁과 버스 막차시간이 남아

갈매기 불규칙하게 나르는 조그만 부두를 거닌다.

하늘 한가운데로 점점 높이 솟던 봉우리 구름 꺼지고

기다렸다는 듯 저녁별 하나 건너편 하늘에 돋는다.

잔잔한 바다가 들판처럼 어두워진다.

제 느낌을 타려다 타려다 채 못 타는

외로움 이전의 날외로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울려 걸은 곳.

 

 

태안 두웅습지

 

 

저녁 무렵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한차례씩 걸은

지난해 늦가을 기름 벼락 맞은 태안군 신두리 모래언덕

맨발로 걸으면 점점 되살아나는 발바닥의 감촉,

모래의 질긴 삶이다.

 

계속 옆구리 치는 물결소리에 밀려난 좀보리사초들,

뭉개진 둔덕 위에 올라가 모여 있다.

펜션에서 환히 웃고 있는 유채들보다

촘촘한 삶.

 

그들과 한바탕 만나고 빠져나오다가 만난

두웅습지,

바다와의 두차례 질펀한 대면 끝에 만난 손바닥만한 물,

조그만 얼굴, 어디선가 눈뜨고 잃어버린.

 

연잎 열몇장 물 위에 올라 있고

건너편엔 흰뺨검둥오리 하나

새끼 서넛 뒤에 단 채 천천히 헤엄치고

무늬 다른 나비들 뒤섞여 날고

새들이 새로 울고 있다.

도중에 풀과 웅덩이가 길을 뭉개

조그만 한바퀴 돌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더 서성인다.

불편한 삶, 뭉개진 삶이, 더 질기고 촘촘하던가? 더 그립던가?

휘파람새가 역시 서툴게 울던가?

마음 다시 설레고

평생 얽히고 긁힌 연(緣)과 상처의 끄나풀과 헝겊 나부랭이들이

휑하니 꿰뚫려 뵈기도 하던가?

 

 

 

삶에 한번 되게 빠져

고흐의 최후 작품 「밀밭 위의 까마귀」에 붙여

 

하늘은 진회색 검정 물감 덩어리들이 모여

컴컴하게 웅크린 숲,

두어군데 터지려다 만 공터도 보인다.

땅은 해가 어딜 가고 없는데

해 거죽처럼 싯누렇게 타고 있는 밀밭,

흑점 같은 것도 두어 구석 박혀 있다.

마지막 붓을 든 채

고흐가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있는가,

혹시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양편에 길고 넓은 녹색 견장을 붙인 붉은 흙길

왼편 아래쪽에서 흘러들어와

밀밭 속으로 들어가다 급정거,

피스톨 목청 한마디!

 

까마귀들이 풍경을 엎지르며 나른다.

한데 눈 팔아도, 눈을 감았다 떠도, 한참 딴청하다 봐도

쉬지 않고 떼 지어 날고 있다.

막 떼쓰는 이명(耳鳴)?

 

귀 속에서 고흐가 속삭인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삶에 한번 되게 빠져

머릿속 생각들이 일시 역류(逆流)하면

하늘과 땅이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하지.

곁에 아무도 없어 몸서리친 긴긴 겨울 저녁도

아침나절 봄기운에 얹혀 창가에 머물던 잔잔한 기쁨도

누런 밀밭 가득 까마귀 나르는 미치겠는 여름 오후도

모두 땅의 일.

나 같은 자가 이 세상에서 한 일은

하늘과 땅을 위아래 두지 않고 산 것,

하늘보다 더 환한 땅도 있었어.

까마귀는 극락조와 핏줄이 같은 새,

땅 하늘 밀밭을 가리지 않고 날았어.

 

 

 

밝은 낙엽

 

 

그래, 젊음 뒤로 늙음이 오지 않고

밝은 낙엽들이 왔다.

샤워하고 욕조를 나오다

몸의 동체(胴體)를 일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숨 한번 크게 쉬었다. 늙음을 제대로 맞으려면

착지법(着地法)을 제대로 익혔어야?

 

그래, 기(氣)부터 채우자!

가을바람 기차게 부는 날

용의 등뼈 능선 사자산을 찾아 나선 길

긴 굽이 하나 돌자 얇은 반달 하나 하늘에 박혀 있고

나무들이 빨강 노랑 갈색 깃들을 쏟아붓는 마른 개울가엔

누군가 돌부처로 새기려 드는 걸 온몸으로 막은 듯

목과 허리에 깊은 상처 받은 바위 하나 서서

품으로 날아드는 색깔들을 밝은 흐름으로 만들고 있다.

어떤 나무의 분신이면 어떤가,

착지, 착지, 땅이 재촉하는데?

밝음 하나를 공중에서 낚아챈다. 바람결에 놓친다.

착지, 착지, 땅이 재촉하는데

밝은 몸 한장

땅 어느 구석에 슬그머니 내려앉지 않고

뒤집혔다 바로잡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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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 원(元)시대 화가. 그의 호 운림(雲林)은 허소치의 화실 이름을 운림산방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