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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소현 鄭昭峴
1975년 서울 출생.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twas94@naver.com
폐쇄되는 도시
삼은 C시로 가지만, 그곳이 이 나라의 어디쯤 있는지 모른다. 그녀는 열살 이후 단 한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다시 돌아왔을 때, 집이 사라지고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출근용 정장 차림에 짐가방을 하나 들고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삼의 직장인 은행과 점심을 먹던 식당,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앞을 지나칠 때, 그 풍경이 아주 생경하게 느껴졌다. 열살부터 지금까지 조용한 M시에서 보낸 세월이 버스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고, 삼은 오히려 아주 오래전 C시에서 보낸 짧은 시절만이 몸으로 겪은 유일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준비하며 습관적으로 켜놓은 텔레비전에서는 C시 시민들의 집단이주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C시는 인신매매와 매춘, 강력범죄 등으로 늘 시끄러웠는데, 국가에서는 그곳을 친환경 관광신도시로 전면 재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빈민연대와 세입자연합 등의 끝없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계획안은 통과되었다. 시민들에게는 보상금과 이주비가 지급되었고, 이주가 끝나면 도시는 폐쇄되고 곧 철거에 들어간다고 했다. 카메라는 도시 중심부에 삼십년째 C시의 상징처럼 버티고 서 있는 흉물스러운 시민아파트를 비추었다. 삼은 언덕 위의 아파트가 자신이 한때 살았던 곳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곳은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낡고 구질구질했다. 삼은 그 아파트가 C시에 있다는 사실을 뉴스를 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삼은 여섯살에 유괴되어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 할머니와 복이라는 또래 남자아이 그리고 많은 여자아이들과 함께 사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인신매매 같은 일에 관여되었던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부모는 이미 헤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수염을 덥수룩이 기르고 이산 저산 떠돌아다니는 도인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한 신흥종교의 교인이 되어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모에게만은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용서받고 싶었으나 부모 모두 딸의 이야기를 들어줄 형편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업이라 생각하고 다 잊으라 했고, 어머니는 다 용서하고 잊자고 했다. 부모는 그러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 거라고 했다. 그녀는 부모 모두 자신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평화를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 다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어 그녀는 부모를 잘못 찾은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녀는 부모의 말대로 그 시절을 모두 잊어버리기로 했다.
삼은 유괴당하지 않고 자란 아이들보다 이년 늦게 초등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작은 집을 얻어주었고, 어머니는 가끔 찾아와 밥을 사주었다. 그녀는 가족이 헤어진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에게서 방치된 채로 자랐지만 그런 형편을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사년의 공백과 부모의 부재를 다른 이야기들로 채웠다.‘아버지는 항해사예요. 어머니는 선교사인데 씨에라리온에 가 있어요. 저도 사년 동안 엄마와 함께 그곳에 있었답니다. 너무 위험하다고 엄마가 혼자 돌려보냈어요.’삼은 그 거짓말이 반쯤은 진실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본 굶주림과 고독, 밀림과 사막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그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좀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보다 책을 더 가까이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며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도 결국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들킬까 두려워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자기를 드러내 보일 대상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외로워졌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아파트를 보자 잊으려고 애썼던 그 시절의 감각이 모두 되살아나는 듯해 괴로웠다.
삼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C시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C시는 시외버스로 세시간 거리에 있었다. 어린애가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그때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외버스 안에서 꿈을 꾸었다. 집에 돌아온 후 주기적으로 꾸었던 꿈이었다. 골목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나는 사람은 항상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아 꼼짝 못하게 했다. 팔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다가 깨어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말할 수 없이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그 팔의 온기가 그리워 서글퍼졌다.
C시는 M시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무척 시끄럽고 공기가 좋지 않았다. 터미널은 떠나는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 주택들과 오래된 저층 빌딩들로 이루어진 도시는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회사에서 이십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가 왔다. 삼은 배터리를 뺀 휴대폰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터미널에서 택시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시민아파트가 있었다. 택시기사는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이 없다며 왕복요금을 요구했다. 그는 이 도시에서 기사 노릇 하다가는 언제고 흉한 꼴을 당할 것 같다며 다음주부터는 다른 도시에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버스정류장과 상점가가 있었고 번화했던 그 거리에는 가끔 차만 지나다닐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로 가는 오르막에 있던 아주 오래된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몇채는 부서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보다 더 황폐했다. 오층짜리 복도식 아파트 네 동이 둘러싼 마당에는 주민들이 집을 떠나며 버려놓은 쓰레기들, 부서진 가구와 문짝들, 깨진 변기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칠이 벗겨진 외벽에는 철거반대, 세입자에게도 보상을, 같은 문구들이 씌어 있었다. 삼은 똑같이 생긴 네개의 건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신이 살았던 곳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텅 비어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이리저리 오가는 그녀의 발소리만 타닥타닥 울렸다. 그녀는 보일러실로 쓰이는 단층 건물을 보고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던 날을 기억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조그만 할머니의 손을 잡고 보일러실 지하의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그 할머니에게 어디서 어떻게 유괴되었는지,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그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강당처럼 넓은 그 방에는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밀림 속 동물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었다. 온갖 장난감과 실내용 미끄럼틀, 그네 같은 것들이 가득했고 삼보다 어린 여자아이들 예닐곱명이 소꿉장난을 하거나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을 놀이터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우르르 달려왔고 삼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며 울었다. 할머니는 삼의 눈물을 닦고 꼭 끌어안았다. 다른 아이들도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다. 얘들아, 엄마가 버렸어도 슬퍼하지 말아라. 할머니가 꼭 엄마 찾아줄게. 아이들은 할머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울음을 멈췄다. 삼은 부모의 이름과 집주소, 전화번호를 할머니에게 또박또박 말하며 집을 찾아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연락해보겠다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초콜릿과 과자를 마음껏 먹고 텔레비전 만화도 마음껏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소꿉장난과 인형놀이를 하고 할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가 금방 갔다. 자고 일어나면 가끔 아이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는 부모가 아이를 찾아갔다고 했다. 부모를 잃은 새로운 아이들이 계속 들어왔기에 놀이터는 늘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곧 찾아올 거라고 믿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읊었고 할머니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함께 걱정해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한달이 조금 넘게 머물다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다.
그녀는 보일러실 문에 귀를 대고 안쪽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확인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곳에 아이들이 없는 것 같아 안심이었다. 보일러실 옆동 일층에 그녀가 할머니와 함께 사년을 살았던 집이 있었다. 그녀가 살던 동의 현관 앞에는 쓸 만해 보이는 낡은 소파와 칠이 벗겨진 탁자 같은 것들이 여러개 놓여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할머니 두명이 소파에 앉아 삼이 하는 일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삼은 할머니들을 뒤늦게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할머니들은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노쇠했는데, 한명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한명은 머리카락이 온통 은빛이고 허리가 꾸부정했다. 가까이 가서 할머니들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그녀가 찾고 있는 할머니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유괴한 할머니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으나, 알아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지팡이를 든 뚱뚱한 할머니가 물었다. 누구고? 우리 쫓아내러 왔나? 이자 갈 데도 없데이. 여기서 다 죽을 끼다. 삼은 대답했다. 아니에요. 사람을 찾고 있어요. 고현자라는 할머닌데, 여든 가까이 됐고요, 복이라는 남자도요. 옆에 있던 은빛머리 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복이는 우리랑 사는데, 할머니는 잘 모르겠네. 들어와서 찾아볼 텐가.
복과의 관계를 묻는 할머니에게 동생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복이 곧 들어올 거라고 했다. 삼은 할머니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들의 집은 복도의 끝이었다. 그곳은 그녀가 살았던 곳이다. 방 두칸에 부엌 겸 거실이 있는 그 집은 그대로였지만, 할머니가 쌓아두었던 고물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집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할머니는 수집벽이 있어 물건을 잘 버리지 않았고, 밖에서 쓸 만한 물건을 보면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집 안 구석구석에는 잡동사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집에는 열명이 넘는 할머니들이 살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이기 뭐가 많노. 옆집도 다 할매다. 뚱뚱한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몸이 불편해 보였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 웅크리고 누워 있는 할머니,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앉을 수 있는 할머니들은 둘러앉아 생밤과 생고구마로 점심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몸이 성한 할머니들은 누워 있는 할머니들 입에 깐 밤을 넣어주었다. 혹시 여기 고현자 할머니 안 계세요? 할머니들은 귀가 어두워 삼의 목소리를 잘 못 들었다. 그녀는 할머니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 검버섯 피고 쭈글쭈글한 얼굴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게다가 그 비슷한 얼굴들 사이에서 할머니를 구분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의 목소리, 옷, 머리모양 같은 것이지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할머니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흰머리 할머니는 복을 안 만났으면 집도 절도 없이 길에서 죽었을 거라고 했다. 어떤 할머니들은 맞장구를 쳤고, 어떤 할머니들은 입을 앙다물고 고구마를 오독오독 씹다가 그놈이 우릴 잡아왔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라 무슨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삼은 한쪽 구석에서 가방을 베고 누워 복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해가 지자 할머니들은 전기가 끊어진 집 안에 촛불을 켰다. 할머니들은 일찌감치 방과 마루에 이불을 널찍하게 펴고 나란히 눕더니, 금세 잠이 들어 코를 골기 시작했다. 말없이 누워 있기만 했던 이가 다 빠진 할머니 하나가 삼이 있는 곳으로 기어와 손을 꼭 잡더니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데여다 줘…… 지비…… 데여다 줘. 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할머니, 왜요? 무슨 일이에요? 할머니는 계속 집에 데려다 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잠결에 그 소리를 들은 은빛머리 할머니는 삼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라. 여기 정신 온전치 못한 노인네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삼은 신경이 쓰여 이가 없는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는 그녀의 귀에 대고 작은 쇳소리로 전화번호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는 번호를 수첩에 적으며 휴대폰 버린 것을 후회했다.
밤이 깊어도 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아 촛불을 하나 들고 복도를 오가며 빈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에도, 벽지와 장판이 모두 뜯겨나간 집에도, 사람 냄새는 모두 지워져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은 단 두 집뿐, 할머니들이 빽빽이 누워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기괴해 그녀는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작은 몸집의 할머니들은 밟으면 파삭 하고 쉽게 바스라질 것 같았다. 이 중에 할머니가 있는 걸까. 삼은 할머니도 이런 모습으로 늙어 있기를 바랐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복이 돌아왔다. 그는 코끝이 뾰족하고 속쌍꺼풀이 깊게 져 있어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보다 겨우 한뼘 정도 컸고 호리호리한 편이라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낯설게 변한 외모 때문인지 그녀는 그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한 할머니를 번쩍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와 이불 위에 앉혔다. 할머니는 접힌 가느다란 다리가 펴지지 않아 편하게 앉아 있지 못했다. 할머니는 방 안에 있는 자기와 비슷한 할머니들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 복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할머니들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김밥과 쌘드위치, 음료와 생수가 들어 있었다. 별 일 없었지? 먹을 게 별로 없으니까 대충 나눠서 배나 채워둬요. 그는 할머니들에게 무신경하게 말했다.
복은 꼬질꼬질한 정장을 입은 낯선 그녀를 경계했다. 삼은 할머니를 찾아왔다고 했다. 여기 많으니까 찾아보세요. 복이 할머니들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고현자씨요. 복은 삼을 쏘아보며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 할머니를 어떻게 알아요?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는 눈을 피했다. 역시 못 알아보는구나. 그녀는 왠지 섭섭했다. 그는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당신, 누구야?
삼이야. 할머니는 그녀를 지하 놀이터에서 집으로 데리고 올라와 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에 씌어 있는 숫자 3을 보고 지은 이름이었다.
삼이 누군데? 복은 이름을 듣고도 기억하지 못했다.
네 동생이었잖아. 네가 버린 동생. 할머니는 복에게 삼의 손을 쥐여주며 말했다. 너희는 남매야. 복이가 오빠니까 잘 돌봐줘야 해. 할머니가 놀이터에서 지내던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처음이었다. 복은 그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금방 남매가 될 수 있는 것이 의아했다. 삼은 복의 귀에 대고 할머니 몰래 속삭였다. 나는 버려진 게 아니라 유괴당했어. 난 집에 가고 싶어. 복은 할머니에게 금세 고자질했다. 그는 할머니가 칭찬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놀이터 애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 부모한테 가는 게 아니야. 어딘지는 가보면 알지. 자꾸 그런 소리 하면 보내줄게.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말했다. 삼은 할머니 눈 주위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무서워 집에 돌아가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나 전화번호와 주소, 부모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바닥에, 손바닥에 몰래 썼다가 지우곤 했다. 할머니는 삼이 어려서 죽은 딸과 똑같이 생겼다며 무척 예뻐했다. 복은 할머니가 그녀를 아끼는 것이 못마땅해 친손자 행세를 하며 텃세를 부리곤 했다. 그녀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넌 엄마가 버렸잖아. 난 너랑 달라. 엄마가 꼭 찾으러 올 거야. 복은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보다 할머니의 친손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슬펐다. 할머니는 삼에게 머리핀, 구두를 사다 주었다. 복이는 오빠니까 이런 거 필요 없지. 할머니는 글을 아는 삼이 기특해 연필과 노트를 가져다주었다. 복이는 글자를 모르니까 저런 건 없어도 되지. 삼에게 할머니가 새 동화책 쎄트를 가져다준 날, 복은 그녀를 먼 곳에 있는 놀이공원 입구로 데리고 갔다. 그녀가 신기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복은 자취를 감췄다. 그녀는 해가 지고 놀이공원이 폐장할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혹여 복이 자신을 시험하는지 몰라 쉽게 다른 곳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버리지 않았다면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하, 삼이. 정말 못 알아보겠다. 그건 장난이었는데, 다시 데리러 가려고 했어. 그렇게 사라질 줄 몰랐다고. 우린 네가 없어져서 얼마나 슬펐는데. 복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실실 웃어댔다. 삼을 잃어버리고 할머니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복은 속이 후련했다. 할머니는 삼을 찾아 나섰지만 복이 잃어버린 위치를 거짓으로 알려주는 바람에 찾지 못했다. 할머니는 속이 상해 며칠 동안 앓아누웠다. 복은 자기가 죽으면 할머니가 더 슬퍼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 할머니의 두통약을 모두 털어 먹고 사경을 헤맸다.
고마웠어. 덕분에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아니면 나도 여기서 이 모양으로 살았겠지. 삼은 조금 더 독하게 말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래. 잘 돌아갔다니 다행이네. 좋아 보이는구만, 뭐가 아쉬워서 온 거야?
여기가 사라진다기에 그냥. 할머니는 어디 있어? 이제 애들은 없는 건가?
없지, 그럼. 언젯적 얘길 하는 거야? 할머니는 떠났어. 벌써 오년이나 됐네. 노인네, 종이 한장 남기고 갑자기 사라졌어.
정말이야? 어디로 갔는데? 삼은 그 많은 할머니 가운데 복의 할머니가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복의 대답이 너무 담담해 이상했다. 복이 할머니를 얼마나 많이 따랐는지 삼도 알고 있었다. 복은 뒷주머니의 지갑에서 조그맣게 접은 쪽지를 꺼내 폈다. 아데우스! 아떼 마이스 따르지! 종이에 한글로 비뚤비뚤하게 적어놓은 글씨였다.
브라질어로 안녕. 헤어질 때 쓰는 말이야. 복은 삼에게 과시하듯 말했다. 삼은 그것이 뽀르뚜갈어라고 금세 정정해주었다. 그 정도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브라질어였다.
배웠다고 위세를 좀 떠는군. 할머니랑 닮았네. 할머닌 아마 브라질에 갔을 거야. 거기에 남편이 있는데, 가야 한다고 노래를 했거든. 거기서 잘 살고 있을 거야. 할머니는 결혼한 지 육년 만에 딸이 죽고, 남편은 봉제공장을 차려놓고 부르겠다며 브라질로 떠났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할머니를 부르지도 않았다. 복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할머니는 습관적으로 말했다. 너도 다 컸으니 난 이제 브라질로 갈 거다. 할머니는 폐지수집장에서 주워온 뽀르뚜갈어 교본이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브라질 말을 공부했다. 뚜두 벵, 꼬무 바이 씨뇨르, 방 오브리가두, 이 보쎄, 무이뚜 쁘라제라, 이구아우멘찌. 할머니는 뽀르뚜갈어 위에 작게 한글로 씌어 있는 발음을 매일 밤 따라 읽었다. 복은 할머니가 상냥하고 다정하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할머니가 아데우스, 하고 떠날 것 같아 불안했다. 결국 할머니는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복은 할머니의 노트에서 이별인사를 써놓은 부분을 찾아 지갑에 넣어두었다.
찾아보지는 않았니? 그렇지 뭐. 어떻게 찾아. 그는 할머니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기에 찾아봤자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미국도 프랑스도 아닌 브라질이라니, 잔머리를 굴린 흔적이 보여 우스웠다. 자신이 콩고나 남아공이 아닌 씨에라리온이라는 이름을 빌려온 것과 같은 심리였을 것이다. 복이 혹시 어린 시절처럼 할머니를 독차지하기 위해 많은 할머니들 속에 자신의 할머니를 숨겨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파트 마당에 몇명의 남자가 찾아와 복을 불러내 더 이야기할 수 없었다. 복은 그들과 한참 이야기했다. 뚱뚱한 할머니는 그들이 자신들을 쫓아내려고 한다며 걱정했다. 할머니들은 이곳이 곧 철거되며 모두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삼은 공중전화를 찾아 길을 나섰다. 거리에 있는 크고 작은 상점들은 문을 닫았거나 짐을 꾸리고 있었고, 목재나 고철, 폐가전제품 등을 줍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공중전화는 대부분 수거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빈 공중전화 부스는 유리가 깨져 있거나 프레임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걸어 주택가까지 가서야 공중전화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전날 밤 할머니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번호는 없는 번호였다.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눌러봤지만 없는 번호가 맞았다. 복이 그녀를 버렸을 때까지도 그녀는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수십번 전화번호를 눌러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말만 돌아왔다. 다행히 주소를 외우고 있던 까닭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외우고 있던 주소는 이미 그녀의 집이 아니었기에 주소를 추적해 겨우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신흥종교의 기도원에 기거하고 있어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이 빠진 할머니의 가족들은 아마 이미 도시를 떠났을 것이다. 그녀는 마음이 쓰려 길을 한참 배회했다. 많은 버스정류장이 철거되고 표지판에는 폐지된 노선을 알리는 공고가 붙어 있었다. 주택과 빌딩 곳곳에 사다리차와 포장이사 차량들이 서 있었다. 길을 건너다가 아파트 쪽에서 내려오는 복과 마주쳤다. 그녀는 그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아르바이트. 예전에 우리가 같이 했던 일인데 너도 같이 갈래?
너, 아직도 그러고 사는 거야?
삼은 부끄러워 신경질을 냈다. 삼과 복은 버려진 아이를 줍곤 했다. 원래 할머니가 하던 일이었으나 삼이 함께 살게 된 후로는 둘이 하게 됐다. 할머니는 온종일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버려진 아이와 부모를 잃은 아이를 구분할 때는 관찰할 시간이 필요했다. 유난히 잘 차려입고 한자리에 오래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이는 대부분 버려진 아이였다. 한참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아이가 자신이 버려진 것을 눈치챘을 때, 손을 내밀며 안심시키면 된다. 복이 엄마를 꼭 찾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옆에서 삼이 정말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면 아이들은 대부분 따라나섰다. 할머니는 버려진 아이를 줍는 것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섣불리 다가가 사탕이나 초콜릿으로 유인하는 것은 유괴범이나 하는 짓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녀는 유괴범을 혐오하는 할머니가 왜 버려지지도 않은 자신을 유괴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삼은 주워온 아이들이 훗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언젠가 자신은 벌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배운 게 이것뿐이니 뭐. 내가 살인을 배웠다면 지금쯤 청부살인을 하고 있을 거야. 하긴, 그게 돈은 더 됐겠다. 안타깝군. 그는 자조하듯 웃더니 휴대폰을 뒤져 전송받은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 할머니를 찾아가는 거야. 관절염 때문에 못 걷는대. 눈꺼풀이 처져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인데, 정면사진이라 영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삼은 그와 함께 가기로 했다.
인간들이 이사가면서 노인네들을 얼마나 많이 버리고 가는지 아냐? 시에서 그걸 숨기려고 용역 써서 노인네들을 줍는 거야. 밖으로 알려지면 개발방식이 틀렸고 어떻고 하면서 시끄러워지니까. 근데 웃긴 건, 이 용역업체 놈들이 직접 자식들한테서 돈을 받고 노인네를 데려가. 그리고 시에다가는 주운 노인이라고 수수료를 받는 거야. 이중으로 받아 처먹는 거지. 그러니까 나 같은 놈도 돈을 버는 거긴 하지만. 버리는 인간들 아주 뻔뻔해. 버린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두었을 뿐이란다. 미친.
복은 그런 인간들에게 화가 났다. 자기도 그런 식으로 버려진 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여름 엄마는 표를 사가지고 온다며 그를 짐가방과 함께 역전에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아스팔트의 열기에 지쳐 다 쓰러지게 되었을 때 그의 앞에 고물이 가득 담긴 리어카를 몰고 할머니가 나타났다. 아가 이리 온. 할머니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닦아주더니, 꼭 안았다. 복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고물들 위에 그를 태우고 그곳을 떠났다. 할머니는 복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갔다. 길에는 버려진 개들이 그들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재활용 업자들이 빈 다세대주택의 창틀과 대문을 떼어내고 있었다. 복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목은 이리저리 꺾이다가 갈라졌고 삼은 자칫 길이라도 잃게 될까 복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는 이 도시의 뒷골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주 어린 그를 리어카에 태우고 매일 골목을 쑤시고 다니며 고물을 주웠다. 할머니는 심한 길치라 그가 길잡이를 하지 않으면 항상 다니던 길도 헤매기 일쑤였다. 그들은 갈림길을 세번 지나 큰 감나무가 한그루 심어진 공터에 다다랐다. 나무 밑에는 바퀴 달린 의자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한명 앉아 있었다. 복은 할머니의 얼굴을 확인하고 용역업체에 찾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할머니는 앞에 나타난 낯선 두 사람을 경계했다. 복이 의자를 밀자 할머니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바짝 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아들, 아들이. 할머니는 끝내 완전한 문장을 말하지 못했다. 복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마주보았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아드님 찾아드릴게요. 복은 커다랗게 말하며 삼을 옆에 끌어다 앉혔다. 삼은 얼떨결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요, 할머니. 꼭 찾아드릴게 걱정 마세요. 할머니의 눈은 여전히 불안하게 움직였지만 더이상 힘을 주고 버티지 않았다. 그는 할머니가 앉은 의자를 밀기 시작했다. 이건 완전 거저 돈 먹는 일이야. 찝찝하니까 다들 안하는 거지만 나는 전문가니까. 그는 낄낄 웃더니 잠시 주춤거리며 말했다. 돌아와서 기쁘다. 꼭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그리고 그땐 미안했어. 너한테 그런 말 들으려고 온 건 아니야. 삼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네가 정말 싫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녀의 말에 그는 금방 가볍게 대꾸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내가 싫어. 그러니까 우리는 동지야. 그녀는 복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유일하게 자신의 과오를 알고 있는 사람이자 공범이었다.
복은 빈집을 뒤져 남겨진 할머니들을 찾아다녔고, 직접 연락을 받고 찾으러 가기도 했다. 간혹 버려진 할아버지를 발견하면 할아버지들을 수거하는 사람에게 인도하고 수수료를 받았다. 복은 회사에서 식대를 주지 않는다며 할머니들에게 삼각김밥과 빵만 사주었다. 그는 어떤 할머니도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고 정을 주지도 않았으며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휴대폰의 사진과 얼굴만 일치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태도를 보면 할머니들 가운데 삼이 찾는 할머니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할머니에 대해 물어보면 그는 화를 내며 할머니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폐점하는 슈퍼마켓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솥과 냄비를 찾아내 마당에 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했다. 몸이 성한 할머니들은 그녀를 도와 각자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듯 음식을 만들었다. 복은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투덜거렸지만 열려 있는 마트를 찾아 장을 봐주기도 했다.
삼은 복에게 왜 이곳을 떠나지도 않고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지 물었다. 그는 보상금도 이주비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았기에 C시의 시민이 아니었고, 뒤늦게 신고한다고 해도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위조여권과 항공권을 손에 넣기 위해 큰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태료만 조금 물면 늦게라도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그녀가 조언하자 그는 말했다. 여기서 떠나면 여기 일은 다 잊어버릴 거야. 굳이 이곳에서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 그녀는 말했다. 그런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는 일이 되진 않아. 완전히 잊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할머니들은 화투를 치고, 담배를 피우고, 노래를 불렀다. 몸이 덜 불편한 할머니가 더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해 마당으로 나와 함께 해바라기를 했다. 어떤 할머니들은 버려진 화분의 흙을 모아 현관 앞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마당 곳곳에 머리를 내민 잡초와 꽃들을 옮겨 심었다. 가끔 말다툼을 하고, 공간이 좁고 전기도 안 들어온다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할머니들은 그 생활에 적응했다. 누워서만 지내던 할머니가 어느날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가끔씩 용역회사 사람들이 나와 할머니들의 신원을 조사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는 할머니들과 전혀 모르는 할머니들을 구분해 체크했다. 두 집단은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자신들을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봐주는 것을 고마워했다.
삼은 아주 가끔 M시를 생각했다. 자신이 앉아 있던 은행창구에 같은 유니폼을 입은 동료가 앉아 있고, 자신의 책상은 정리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홀가분했다. 아무도 그녀가 M시에서 사라진 것을 알지 못할 터였다. 가끔 회식자리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뿐일 것이다. 매일 텅 빈 집에 들어가 혼자 밥을 지어 먹고 혼자 숙제를 하고 혼자 잠이 들었던 어린 시절, 대학을 다니고 은행에 취직해 날마다 출근했던 일, 성인이 되자 연락을 끊어버린 부모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찾아가지 않았던 생활. 그녀는 그 모든 것이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아득했고 자신과 관계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주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관공서도 모두 다른 지역으로 임시 이전됐다. 숨어 있지 말고 모두 나갈 것을 권유하는 방송이 매시 정각에 시보처럼 거리에 울려퍼졌다. 옆 도시의 경찰과 용역업체까지 동원되어 빈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순찰했다. 주인이 떠난 빈집에서 기거하던 부랑자들이 시 밖으로 추방되었다. 시내버스 대부분은 폐선되었고, 기차와 시외버스의 운행시간이 대폭 축소되었다. 거리에는 경찰차와 응급차, 재활용쓰레기 수거차량과 동물보호쎈터 차량들이 바쁘게 오갔다.
복의 일도 모두 끝났다. 할머니의 인원수만큼 돈을 받아들고 돌아와 할머니들에게 말했다. 할머니들, 이제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어요. 자제분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전기도 들어오고 물도 잘 나오는 곳에서 살 수 있게 나라에서 도와준대요. 이제 겨울이 오니까 여기선 못 살아요. 할머니들은 동요했다. 할머니들은 다른 곳으로 가면 자식이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게 된다며 C시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는 자식과 살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니까 여기서 살다가 죽어도 된다며 그냥 놔두라고 했다. 복은 할머니들에게 차마 C시 전체가 철거될 것이고 이미 사람들 모두가 떠나버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용역회사에서는 여러대의 이송차량을 보내왔다. 할머니들은 상태에 따라 여러 도시의 복지관과 노인병원, 호스피스 마을 등으로 분산 수용될 계획이었다. 아파트로 올라오는 오르막길은 콘크리트 잔해로 좁아져 있어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다. 복과 삼은 걸을 수 있는 할머니들을 데리고 아파트 밑 큰 도로로 내려갔다. 을씨년스럽게 폐허가 된 거리를 보고 할머니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복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모두 안아서 옮겼다. 할머니들은 큰길에 모여 서서 차량을 기다렸다. 차량이 모두 도착했고 탑승을 시작했다. 치매가 온 할머니들은 차를 탄다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삼과 함께 음식을 하고 화투를 쳤던 할머니들은 앞만 보고 앉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친해졌던 사람들과 떨어지게 되어 안타까운 할머니들은 업체 직원들에게 함께 보내달라고 떼를 썼고, 차에 타지 않겠다고 난리를 치는 할머니도 있었기에 모두 그곳을 떠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삼은 자기가 그들에게 잘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파트에 남은 삼과 복은 마당의 소파에 아무 말 없이 앉아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해바라기를 하며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니? 여권이 준비되는 대로 브라질로 떠날 거야. 복은 다시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정말 거기 있는 거야? 할머니랑은 상관없어. 어렸을 때 기차역 앞에서 브라질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온종일 들은 적이 있어. 그 나라 말이 너무 상냥하고 다정해서 그곳으로 가고 싶었어. 다른 이유는 없어. 나한테 그게 가장 중요해. 삼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는 곧 돌아가겠지? 그녀도 그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떻게 생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안 나. 그는 관심없다는 투로 말했다. 나도 오래돼서 기억 안 나. 엄청 늙었겠지. 할머니 얘긴 하지 말자. 그녀는 이 아파트와 도시가 사라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마지못해 보일러실 문을 열고 지하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어차피 다 없어질 것들이군. 복이 문 앞에 놓인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었다. 그곳은 기억보다 넓지 않았다. 삼이 떠나고 할머니는 더이상 아이 같은 것은 줍지 않겠다고 복에게 약속했다. 복만이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그러나 삼과 아이들 모두 함께 지냈을 때처럼 행복한 얼굴은 다시 볼 수 없었다. 할머니의 수집벽은 점점 더 심해져 집 안은 물론이고 아파트 복도까지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 복이 쓰레기를 버리려 하자 할머니는 복을 때리며 울었다. 남들이 나를 손가락질해도 넌 그러면 안된다. 세상천지에 너랑 나랑 단 둘뿐이다, 이놈아. 복은 할머니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급기야 아이들이 놀던 놀이터는 할머니의 잡동사니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이들과 놀아주던 것처럼 그곳에서 잡동사니들을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노인네가 여기 들어와보지도 못하게 해서 많이 싸웠어. 성질나서 절대 안 들여다볼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그곳에는 할머니가 모아온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아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삼이 있을 때 집 안에 쌓여 있던 물건들도 그곳에 고스란히 옮겨와 있었다. 가끔씩 그녀에게 보여주던 남편의 은단케이스, 담배 은박지, 구두칼, 어려서 죽은 딸의 배냇저고리, 빨간 에나멜 구두, 한쪽만 남은 끈 달린 벙어리장갑 등 보물이라고 부르던 것들 그리고 수십권의 스케치북, 살이 나간 빨래 건조대, 삼십여개의 우산, 십여개의 모자, 네대의 텔레비전, 열개의 리모컨, 수많은 바가지들, 물에 불어터진 책 묶음 등이 낯익은 모습 그대로 있었다. 둘은 사진을 찾으려 짐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할머니가 사준 머리띠, 복과 번갈아가며 입었던 옷들, 그녀가 이곳에 올 때 입고 있던 3자가 그려진 티셔츠, 그녀가 도화지에 그렸던 그림들, 달력 뒤에 또박또박 써놓은 글씨들, 그녀는 자기도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들을 발견하고 놀랐다. 세상에 이런 것까지 다 가지고 있었네. 또 한쪽 구석에는 브라질에 갈 때 가져가겠다며 길에서 주운 낡은 재봉틀 여러개, 자투리 옷감, 색실들, 찌그러진 골무들이 쌓여 있었다. 뽀르뚜갈어 공부를 했던 노트와 뽀르뚜갈어 교본도 여러권 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네. 그녀가 가장 너덜너덜한 뽀르뚜갈어 교본을 집어들자 책 사이에 끼어 있던 여권이 툭 떨어졌다. 할머니의 여권이었다. 복은 가슴이 철렁했다. 할머니가 구청에서 여권을 찾던 날, 이제 브라질로 갈 수 있다며 좋아하는 할머니를 길에 버려두고 혼자 돌아왔다. 할머니는 늘 다니던 길을 두시간 넘게 헤매다 돌아와 말했다. 아무래도 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할머니 원래 길치잖아요. 그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여권을 신주단지 모시듯 몸에 지니고 있었기에 복은 당연히 할머니가 그것을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은 여권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할머니가 맞아? 못 알아보겠네. 복도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얼굴인지 헛갈렸다. 쌓인 잡동사니 사이에서 앨범을 꺼내 펴보았지만 모두 다른 얼굴들이 든 사진이었다.
용역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탑승하는 과정에서 할머니 한명이 사라졌으니 찾아달라고 했다. 몸은 건강한 편이나 치매가 심하게 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던 할머니였는데, 차량을 기다리는 사이 집에 사진을 가지러 가야 한다며 어딘가로 갔다고 했다. 복은 이제 자기 손을 벗어난 일이라며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해가 지고 있어. 삼은 그를 다그쳐 할머니를 찾아 나섰다. 둘은 이십여분을 걸어 할머니를 데리고 왔던 동네로 갔다. 골목 바깥라인의 집들이 모두 철거되어 큰 공터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만약 골목 안의 빈집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면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고를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해는 금세 졌고, 가로등은 물론 달조차 없어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계속 걷다 보니 어둠에 조금 익숙해졌다. 그들은 할머니를 부르며 골목과 빈집을 기웃거렸지만 작은 짐승들만 골목을 이리저리 가로질러 다닐 뿐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복의 가슴은 내내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복은 길을 자주 잃곤 했던 자기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가 영영 사라졌을 때, 복은 두번 버려졌다는 생각에 할머니를 찾지 않았다. 그때 그는 열여덟살이었다. 이렇게 찾아보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어쩌면 할머니는 길을 잃고 어딘가를 오랫동안 헤매느라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어두운 골목에서 할머니가 툭 튀어나와 거참, 뭔놈의 골목이 이리 많냐, 나올 때마다 별천지네, 하고 웃을 것 같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할머니를 찾으며 골목을 달리고, 빈집을 뒤졌다.
삼이 빈집을 들여다보는 사이 복은 그녀를 앞질러 갔다. 갈림길에서 둘은 완전히 헤어졌다. 그녀는 생전 처음 와본 동네의 골목에 갇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건물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긴 단층주택이라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걸어도 큰길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큰 소리로 복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그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 골목에 서서 누군가를 울면서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할머니가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었고, 복이 리어카 한쪽 자리를 내주었다. 엄마와 함께 처음 C시의 놀이공원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 엄마는 큰길로 가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에서 걷다가 엄마는 마술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엄마가 장난치는 줄 알고 깔깔 웃으며 온 골목을 헤집고 다녔지만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깊숙한 골목이 많은 C시에서 그녀가 자주 목격했던 흔한 일이었기에 그녀는 그 기억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는지, 책에서 읽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주운 아이들의 이야기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눈물을 닦아주는 할머니의 손바닥이 서걱거리던 기억만은 진짜였다. 그녀는 복이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 겨우 길을 찾았다. 그는 땀범벅이 되어 곧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못 찾았어. 그 노인네 길에서 뭔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냐. 그들은 큰길로 나왔다.
골목 입구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의 씰루엣이 보였다. 아까는 없었는데, 할머니 맞나? 그들은 웅크린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그 사람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삼이 조심스럽게 부르자 앉아 있던 사람은 고개를 빠끔히 들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간과 입가의 깊은 주름, 쪼글쪼글한 뺨, 아래로 축 처진 눈은 그들이 찾고 있는 할머니와 비슷해 보였다. 어, 할머니네. 그가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살피더니 말했다. 아니야. 완전히 다르게 생겼잖아. 그녀가 다시 들여다보니 그들의 할머니 같기도 했다. 그녀는 복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 할머니 아니야? 그는 반신반의하며 웅크리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할머니예요? 그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웃음 띤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복은 그 사람의 얼굴이 자신이 주웠던 할머니들 모두의 얼굴을 조금씩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다시 들여다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아이인지 노인인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았다. 삼이 복에게 속삭였다. 이 사람 뭐지? 그들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복이 삼에게 속삭였다. 몰라, 정말 뭐지? 이렇게 깜깜한데 우리는 어떻게 저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네 얼굴은 안 보이는데……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무서워져 얼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자 말없이 앉아 있던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나도 데리고 가요. 아주 가느다랗고 느린 목소리였다. 그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따라오라고 했다. 왠지 불길해 보였지만 두고 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따라오세요. 둘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 사람이 몸을 털고 일어났는데 키가 복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고 있나요? 복이 물었다. 뒤에서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그럼요.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조금 더 빨리 걸었다. 삼이 물었다.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요? 조금 더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도시의 거리에 셋의 발소리만 타닥타닥 울려퍼졌다. 그들은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웠지만, 그 존재가 따라올 수 있도록 조금씩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길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아직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연행하겠다는 경고방송이 울리고 있었다. 도시가 폐쇄되기 하루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