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문화평
오, 사랑! 진부한 사랑!
영화 「너는 내 운명」
성은애 成銀愛
단국대 인문학부 교수, 영문학 easung@dku.edu
남녀간의 연애를 다룬 영화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사랑의 신비로운 힘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거나, 반대로 그 믿음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란 사실 이기적인 욕망을 번지르르하게 감싼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냉소적인 영화보다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 앞에 경배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랑의 주인공이 「너는 내 운명」(박진표 감독)의 우직한 농촌총각과 에이즈 걸린 티켓다방 아가씨든, 「오아시스」의 뇌성마비 장애인과 사회 부적응자이든, 「파이란」의 위장결혼 커플이든, 사랑은 힘이 세다. 각양각색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선물상자 같은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이리저리 펼쳐진 산만한 플롯을 하나로 모아주는 요소 역시 모든 것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그리고 이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 혹은 냉혹한 세상, 그 어려움에 눈물짓는 가련한 연인과, 그들에게 공감하여 덩달아 눈물짓는 관객들…… 이러한 설정의 드라마를 흔히 사람들은 ‘신파(新派)’라 한다. 메이지유신 시대의 ‘새로운’ 유파의 연극이 식민지 조선에 들어와서 어떻게 하다가 그 정치적인 색깔을 벗어던지고 ‘정형화된 감정의 과잉을 드러내는 가정 비극’이라는 의미로 변했는지야 문학사가들이 밝혀낼 일이지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이러한 신파조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울린다. 왜 관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다 알려진 감정의 복받침에 심신을 내맡기고 기꺼이 손수건을 적시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너는 내 운명’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험한 세상에 맞서 순정을 지켜내려 발버둥치는 가련한 주인공의 안타까운 삶을 만나게 될 것을 예감한다. 지나치게 순박하고 착하고 우직한 농촌총각 석중(황정민 분)이, 산전수전 다 겪고 시골 티켓다방까지 흘러들어온 은하(전도연 분)에게 반한 순간,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도 대충 짐작한다. 따지고 보면 「너는 내 운명」의 어느 한대목도 새로운 이야기는 없으며, 기억에 남을 만한 대사도 한마디 없다(비음이 많이 섞인 전도연의 목소리로 해야 제맛인 “진정?” 정도는 예외로 해주자). 티켓다방과 유흥업소, 그리고 사창가로 이어지는 성매매의 현장과, 젊은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기에는 썩 적합하지 않은 농촌의 문제, 에이즈 감염자의 문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인권문제, 선정주의적인 언론의 문제 등이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진부함을 지워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순박한 노총각 석중이 보여주는 굳건하고 우직한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기보다, 현실 속에서 그러한 순정이 불가능함을 이미 알아버린 스스로에 대한 회한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석중은 황정민의 열연으로 꽤 실감나게 그려지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썩 현실적인 인물은 아닌 거다. 관객들은 그런 석중을 보면서 현실적인 장애에 직면하자마자 포기해버렸던 사랑, 훌쩍 뛰어넘기에는 너무나 높아 보였던 벽,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좋아하던 상대보다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는 쪽으로 얄밉게 돌아가던 머리, 자신의 약빠른 결정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던 그 수많은 관습과 제도와 여론들, 혹은 그러한 계산속 때문에 버림받고 상처입어야 했던 아픈 기억들, 사랑이란 도대체 저렇게 힘든 것인가 하는 아득함,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 혹은 했던 사랑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석중의 영화다. 노총각 친구들과 여자에 관한 농담을 하면서 노닥거리는 와중에도 “여자가 짜장면이냐? 먹게?”라고 꼬박꼬박 반박하는 석중의 설정은 어떻게 보아도 비현실적이지만, 석중의 캐릭터는 사실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그는 그냥 바보스럽거나 우직하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 매우 강한 인물이다. 그는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것만을 향하여 곧바로 나아간다. 그가 선택한 여인이 공교롭게도 폭력과 비굴함을 겸비한 과거의 남자와 에이즈라는 어려운 난관을 제시했지만, 그는 사회로부터 냉대받고 격리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초상집에 모인 사람들조차 한일월드컵 8강전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쳤던 유쾌한 그날 밤, 석중은 못 마시는 술을 들이켜고는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 역시 그가 은하를 선택했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운명’이다.
은하는 석중에게 노래가사처럼 ‘햇빛’이기도 했지만, 그녀 때문에 돈과 가족과 목소리와 고향을 잃어야 했던 무거운 ‘운명’의 굴레이다. 아마도 석중의 심정은 뱀의 유혹으로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를 보고 그 행위가 곧 낙원에서의 추방을 의미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선악과를 함께 먹은 실락원의 아담이 느꼈던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지옥임을 알면서도 동행하는 것, 그것이 소위 사랑의 힘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소심함을 너끈히 돌파해주는 석중의 용기가 가상하고, 그의 고난이 안타까워 석중을 응원한다. 그것이 수백번 보아온 뻔한 신파라고 해도.
「너는 내 운명」은 행복한 가정을 꾸릴 권리를 봉쇄당한 농촌총각과 에이즈에 걸린 채로 성매매를 했다 하여 언론의 가십거리로 전락한 여성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껄끄럽다고 모른 척 외면하는 사람들에게도 엄연히 서로 좋아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도 석중은 은하를 사랑한다. 그러니 우리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실화에서 스토리를 빌려왔다는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은 사실 여성의 출옥 후 헤어졌더라는 안타까운 후일담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그게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긴 하지만, 우리는 거기까지는 차마 보고 싶어하지 않으며 차라리 “그대는 나의 태양”이라는 결말의 노래처럼, 잠시나마 사랑의 당의정(糖衣錠)을 맛보고 싶어한다. 우리가 아는 한, 현실은, 그리고 현실 속의 남녀관계란 이미 충분히 씁쓸하니까 말이다. 오, 사랑, 케케묵은, 그러나 충분히 강력한 진통제, 혹은 마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