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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현대경제연구원 2008

불평등의 원인?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조영철 趙英哲

국회 예산정책처 산업예산분석팀장 cfa20@nabo.go.kr

 

 

촌평_폴크루그먼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예상한 외 옮김)의 원제는‘어느 리버럴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다. 리버럴이란 진보적 개혁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를 말한다. 영국이 보수당과 자유당 양당구조일 때 리버럴이란 보수당보다 좀더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이던 자유당 지지자를 의미했다. 자본가들(특히 금융자본)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했던,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John M. Keynes)는 시장의 불완전성과 국가개입 필요성을 주장한 자유당 지지자였다. 물론 현재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구조다.

미국에서 리버럴이란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성향의 자유주의자를 의미한다.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와 함께 신케인스주의 경제학을 이끌고 있는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당연히 리버럴이다. 리버럴을 자유주의자로 번역했다면 독자들이 시장만능주의와 작은 정부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로 오독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리버럴을 진보주의자로 번역한 것은 적절했다.

크루그먼은 “나는 1953년에 태어났다”고 첫 문장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동시대 젊은이들이 미국에 태어난 것을 특별히 감사하지 않았으며 미국사회에 만연한 부정 등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자신이 자랐던 1950~60년대 미국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물질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수준의 풍요를 누렸던 중산층 중심의 사회로서 잃어버린 낙원이었던 듯하다고 회상한다.(17~19면)

한국도 마찬가지다. 20년 전 1988년에 한국 젊은이들도 불완전한 민주화와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사회를 비판했지만, 그래도 당시가 지금보다 불평등이 덜 심각했고 서민들이 살기에도 나아 중산층 사회에 더 가까웠다. 미국에서는 레이건 공화당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중산층 사회가 붕괴했다. 1980년대 미국 시민들이 대기업의 이익을 중시하는 공화당정부를 선택한 결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정당이 집권하면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점이 좀더 비극적이다.

경제학자들은 20세기 후반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을 주로 세계화, 기술변화 등 경제적 요인들로 설명했다. 즉 세계화 경쟁에 적응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에 양극화가 이루어졌다는 세계화 경쟁 가설, 정보화 같은 기술변화로 고학력 노동수요는 증가한 반면 저학력 노동수요는 줄어들어 양극화가 생겨났다는 기술변화 가설 등이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 사회가 붕괴한 것은 경제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시장만능주의로 급속히 우경화한 공화당의 정치적 급진화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 기술 발달이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정설은 학자들이 자료를 더 자세히 연구하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아마 가장 충격적인 연구결과는 고학력 미국인들 대부분의 수입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입이 급증한 사람들은 극소수 엘리뜨집단으로서 인구의 1퍼센트 또는 그 미만에 그쳤다. (…) 많은 학자들은 평등을 장려하던 사회규범과 제도가 침식되고, 마침내 미국 정치의 보수회귀로 인해 구축된 것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게 되었다.(23~24면)

 

20세기 미국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두번 있었는데, 대공황을 극복하려는 로우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개혁과 1980년대 뉴딜개혁을 뒤엎었던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이다.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불렸던 19세기말~20세기초는 지금처럼 노동자 권리가 취약했고 불평등이 심각했던‘모던 타임스’와‘위대한 개츠비’의 양극화시대였다. 크루그먼은 도금시대의 부자들이 사라진 이유가 대공황에 의한 금융손실과 로우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개혁으로 노조가 활성화화고 세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92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이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 그러나 뉴딜정책 이후 (…) 소득세 상한은 로우즈벨트 대통령의 첫번째 임기 때는 63%까지 올라갔고 두번째 임기 때는 79%까지 올랐다(오늘날에는 35%). 1950년대 중반 미국은 냉전비용 충당을 위해 91%까지 세금을 올렸다.(68면)

 

크루그먼이 이 책에서 도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1백년 미국 역사를 살펴본 의도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두번째 도금시대를 살고 있다”(58면)고 말하고픈 것이다. 즉 로우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개혁이 도금시대를 종식시키고 중산층 사회를 만들었듯이, 미국 시민들이 정치적 결단을 한다면 두번째 도금시대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크루그먼은 이것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크루그먼은 공화당의 급진 우경화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공화당은 처음에는 뉴딜개혁에 반대했지만, 뉴딜이 미국사회의 대세로 자리잡자 아이젠하워에서 닉슨에 이르기까지 실용주의 중도우파 정당으로 변신해 뉴딜과 중산층 사회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는 여전히 시장만능주의와 작은 정부가 지배하던 도금시대가 이상(理想)사회라고 믿는 급진 우익세력이 존재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보수주의자의 칭송을 받는 것은 공화당 급진 우익세력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현실화함으로써 반(反)뉴딜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급진적 우경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종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남부 백인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링컨의 당”이라 보았고 남부가 북부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경제적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1960년대 민주당이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인종적인 면에서도 평등정책을 추구하자 남부의 민주당 지지 전통은 흔들렸고, 남부는 점차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91면)

민주당의 트루먼 대통령이 제안한 국민의료보험안이 실패한 이유도 가난한 백인들이 의료혜택을 받는 것보다 백인들의 병원에 흑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더 꺼려한 인종주의 때문이었다.(227면) 인종주의는 뉴딜개혁이 유럽 같은 보편적 복지연합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잔여적·선별적 복지제도로 귀결된 주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지역의식이 계급의식을 흐려놓듯이 미국에서는 계급문제와 인종문제의 얽힘이 진보세력의 연대와 전진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2008년은 클린턴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안이 실패했던 1993년과 다르다고 본다.(291면) 즉 지금 미국인들은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뿐 아니라 미국 교육제도와 경제사회의 불평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노조 되살리기가 진보정책의 최종 목표라고 주장한다. 세계화 경쟁으로 노조가 쇠퇴했다는 것은 허구다. 다른 나라들도 세계화 압력을 똑같이 받았지만 미국에서만 노조가 급속히 쇠퇴했다. 예를 들어 미국과 비슷한 경제구조인 캐나다의 노조 가입률은 그대로이다. 따라서 크루그먼은 보수주의 운동에 의한 정치풍토 변화가 미국 노조 쇠퇴의 주 원인이라고 본다.(330면) 최장집(崔章集)은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문제점이 노동자의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당·정치구조에 있다고 했는데, 노조의 쇠퇴가 위기에 처한 미국 민주주의를 반영한다고 보는 크루그먼의 인식과 통한다.

크루그먼은 주택거품과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찍부터 지적한 학자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불평등 문제에 집중하면서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인 금융 세계화와 자유화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금융자본주의 문제를 거론했다면,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를 더 강력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도도한 흐름은 효율적 자본시장과 금융 자유화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써브프라임 사태 이후 바로 이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신화가 허구라는 것이 드러났다.

올해 폴 크루그먼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역대 어느 수상자들보다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았다. 그의 노벨상 수상에 시장만능주의의 퇴조 그리고 국가·공공성·민주주의의 귀환이라는 시대적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리버럴의 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