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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신자유주의를 넘어 어디로?
신자유주의, 정말 끝났는가
임원혁 林源赫
KDI경제개발협력실장. 저서로 『경제위기 10년: 평가와 과제』(공저) 등이 있음. wlim@kdi.re.kr
자유주의가 전제권력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주창한 사상이라면,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자본가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사상이다. 신자유주의 철학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대한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시장자유화의 대상을 실물뿐 아니라 금융부문에까지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대공황 이후 확대된 정부의 사회·경제적 개입을 비판하면서 사유화, 규제완화, 누진과세 철폐와 노조 무력화를 옹호해왔다. 소득창출과 분배에 대해 신자유주의는‘감세를 통해 일할 유인을 증진시키면 경제활동이 활성화되어 하위소득층도 그 혜택을 볼 것’이라는 이른바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영국의 새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책으로 수용된 신자유주의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세계경제의 통합이 급속히 진행된 1980년대 말 이후 수년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금융위기가 증폭되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복지국가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폭넓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는 여러 나라에서 진보정치가 다시 주도권을 잡게 만들었고, 금융감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요인이 되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확인된 진보정치의 부상과 세계 금융위기의 확산은 정부의 사회·경제적 기능 강화와 국제 금융질서 재편을 촉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에 충실하지 못한 유권자의 투표행태,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정부의 영향력 감소와 국가들간의 규제완화 경쟁, 그리고 금융시장 자유화를 둘러싼 국가들간의 이해대립으로 인해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쉽사리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선언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1.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지적 기반
용어 자체의 구성만 보면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억압적인 중세 사회질서에 대한 대항원리로 등장한 이후 상당한 진화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복원하려는 자유주의가 어떤 자유주의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유주의는 전제권력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주창하는 사상으로 출발했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자유주의는 권력에 대한 통제라는 소극적 입장을 넘어 민중의 참여를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단순히 절대권력을 타파하고 권력의 절대화를 견제하면서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사상의 한계를 극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보편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자유주의의 이상은 현실의 변화를 촉발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인종이나 종교, 재산의 유무와 관계없이 투표권과 시민권이 확대되면서 정치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지배이념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반면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자유방임(laissez-faire)을 표방했지만 빈부격차 확대와 공황 발생이라는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 영역에서와는 달리 확고한 위치를 점하지 못했다. 자유주의는 정치권력에 결탁된 경제권력과 중상주의를 타파하고 무역과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가 정치적 영역에서만큼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존중하는 것은 아니었고, 기회균등의 원칙을 외치는 것 외에는 빈부격차에 대한 실질적 해법도 별로 제시하지 못했다. 공황 발생에 대해서도 자유주의는 방관적 입장을 취했다. 19세기 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실질적인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적극적인 복지·조세정책과 반독점 등 경쟁·규제정책이 일부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빈부격차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고 공황 발생은 시장경제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1920년대 말에 발생한 대공황은 자유방임주의를 재검토하게 만드는 전기가 되었다. 기업과 은행이 연쇄 파산하고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상황에서 빈부격차 확대와 공황 발생을 자연스런 현상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지적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정치적으로는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다. 실제로 자유방임정책은 대공황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독일이나 일본에서 민주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전체주의가 확산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 등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자유방임노선을 수정하여 대공황에 적극 대처하는 대안을 선택했다. 미국 로즈벨트 행정부의 뉴딜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유방임노선에서 벗어나 추진된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실업을 구제하고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했으며 누진과세를 강화했다. 미국 연방소득세의 경우, 최상위 1% 소득계층에 대한 평균세율이 1920년대 24%에서 로즈벨트 행정부 1기에는 63%, 2기에는 79%로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또한 대공황에 따른 금융위기를 해소하고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금본위제에서 탈퇴하여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했고, 금융감독을 강화해 금융씨스템을 안정화하는 한편, 적자재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은행에 대해 예금보험을 도입하고 예금보험의 대상이 되지 않는 금융기관은 은행에서 분리함으로써,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주의 예금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 점이 금융씨스템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적극적인 복지·조세정책 및 통화·재정정책 도입과 더불어 경제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노동조합의 입지가 커진 것도 대공황 이후의 일이었다.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대공황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독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 학파는 시장경제라는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질서자유주의를 주창했다. 그들은 독일제국과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자유방임체제가 경쟁제한과 정경유착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나찌정권에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치·경제적 자유를 수호하고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사적 권력의 발흥을 억제할 수 있는 시장경제질서가 확립되어야 하고, 정부가 이러한 질서 확립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라이부르크 학파는 일정한 범위 내의 누진세와 사회안전망 제도는 시장경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정부가 재정을 자의적으로 운영하거나 과도한 복지정책을 폄으로써 자원배분에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경제질서를 잠식한다고 보았다. 정부의 역할을 재산권 보호에 관련된 법제를 정비하고 치안을 확보하는 데 한정하는 자유방임주의에 비해, 질서자유주의는 경쟁·규제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복지·조세정책의 필요성을 일정부분 인정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지지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재정운영을 통한 총수요 조절을 정당화하는 케인즈 이론과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를 추구하는 복지주의를 수용한다면 사민주의와 비슷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신자유주의는 대공황 이후 확대된 정부의 역할을 다시 축소하고 자유방임주의를 복원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신자유주의의 지적 기반을 제공한 하이에크(F.A. Hayek)는 맑스는 물론 케인즈도 비판하면서 정부 개입이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는‘예종에의 길’(the road to serfdom)로 치닫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정부 개입이 자유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정당화된다 해도 그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과 지식으로 설계한 제도로는 사회를 개선할 수 없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자생적이며 점진적인 진화를 통해서만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정보와 유인의 문제 때문에 계획은 시장기제보다 열등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격기구를 통한 정보 전달과 발견과정으로서의 경쟁을 강조한 그의 견해는 시장경제의 작동메커니즘을 꿰뚫은 탁견이었지만, 시장기제의 장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측면도 있다. 반면에 1930년대에 기업이론을 만든 로널드 코즈(Ronald H. Coase)는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원리로서 시장기제와 계획 또는 내부거래의 장단점을 좀더 균형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반민주적 편향과 지적 극단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물론 지식인들에게 수용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2. 신자유주의의 화려한 부상과 실망스런 성과
대공황과 2차대전 이후 선진국들은 하이에크가 주창한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질서자유주의 또는 사민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나 복지국가 모형을 선택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 위에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정치·경제체제는 하이에크의 경고와 달리‘예종에의 길’로 치닫기는커녕 폭넓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에 따르면 서유럽의 1인당 소득은 1950년에서 1973년 사이에 연평균 4.08% 증가했는데, 이것은 1870~1913년의 1.32%, 1913~1950년의 0.76%, 1973~1998년의 1.78%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전체적인 소득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누진과세와 친노동적 정책은 빈부격차를 완화하고 견실한 중산층을 양성하는 데 기여해, 소득계층간의‘대압착’(great compression)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 모형은 노동과 자본 양쪽으로부터의 정치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1943년 마이클 칼레츠키(Michal Kalecki)는 설령 총수요 조절을 통한 완전고용정책이 이윤 제고에 도움이 된다 해도, 자본가는 노동자 해고의 위협을 통한 규율효과를 중시하여 완전고용정책에 반대하고 경제위기 상황만 넘기면 다시 자유방임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지속된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은 노조의 교섭력을 강화했고, 임금 및 노동조건에 대한 과도한 요구로 연결되었다. 대공황과 2차대전 기간에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누진과세의 부담에 불만을 가졌던 자본가들은‘복지병(病)’등 복지국가의 폐해를 부각시키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에 이어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은 복지국가체제를 더욱 위협했다. 물가에 연동된 임금인상과 통화팽창으로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복지국가의 번영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일반 대중은 실업과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사회안전망을 여전히 소중하게 여겼지만, 복지국가의 과도한 부분을 축소하고 경제를 활성화할 대안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새처나 레이건 같은 정치인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었음을 인식하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옹호하는 레토릭과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을 조합하여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는 식의 에피소드적인 사례도 유권자들을 자극했고, 레이건의 경우에는 이와 더불어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적인 정서를 은근히 부추김으로써 선거에서 대승할 수 있었다. 취임 이후 새처 총리는 장기파업으로 국민들의 신망을 잃은 노조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면서, 누진과세를 약화시키고 사유화와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레이건 대통령도 항공관제노조 파업을 분쇄하는 등 강경책을 펴면서 대규모 감세정책과 규제완화를 통해 복지국가를 해체하려 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데이비드 스톡먼(David Stockman) 예산국장은 정부를 짐승에 비유하며 마치‘짐승을 굶기듯이’(starving the beast) 감세정책으로 세입을 감소시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한다는 방침을 공공연히 천명하기도 했다.
1970년대 말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추진된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상당한 부작용도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영국의 경우 과거 국유화되었던 산업분야에서 공기업을 매각하여 경영효율을 제고하고 감세에 따른 세수감소를 보전했다.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카터 행정부 때부터 항공·트럭운송 등 과거 정부규제가 엄격히 적용되던 산업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요금이 인하되고 써비스가 향상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전력산업 등 경쟁 도입이 용이하지 않은 네트워크산업 부문에서 추진된 규제완화는 가격급등과 수급불안 등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했다. 또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사례에서 보듯이, 건전성 감독이 전제되지 않은 금융부문의 규제완화는 부실채권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공급중시 경제학을 기반으로 추진된 감세정책은 기대만큼 경제활동을 진작하지 못해 재정에 부담을 주었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공기업 매각에 따른 재정수입도 없었고, 복지지출을 크게 줄일 수도 없었으며, 소련과의 군비경쟁으로 군사비 지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감세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규제완화와 감세정책 전체를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자유방임주의를 복원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이 영국과 미국에서 이룬 경제적 성과는 그리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은 1980년대 말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함에 따라 정부축소와 시장확대를 주창하는 사조가 더욱 힘을 얻게 되고, 세계경제 통합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노조가 약화되고 정부의 영향력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를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은 개발도상국과 체제전환국에 대대적으로 전파되었다. 재정수지 및 경상수지를 맞춰 거시경제를 안정시키고 공기업 매각을 통해 민간참여를 유도하며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경쟁을 활성화하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정책권고가 줄을 이었다. 1990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은‘안정화·사유화·자유화’(stabilization, privatization, liberalization)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이 우월하다는 데 대하여 이제 경제학자들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하면서 이를‘워싱턴 컨쎈서스’라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실제 경제개발 과정에서 당면하는 문제들을 간과하고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편향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당면하는 문제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국가와 개인 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재산권 침범으로 인해 생산적인 활동을 할 유인이 저하되지 않도록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즉,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유망한 품목에 대한 수요가 파악되고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투자와 생산이 조율되어야 한다. 조율실패(coordination failure)로 인해 경제활동에 차질이 생기면 그만큼 경제개발은 지체된다. 셋째, 지식의 형성·축적·확산과 관련된 공공재가 공급되어 학습 및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자유방임주의나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은 세 과제 중 재산권 보호에 대해서는 그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조율실패의 방지나 지식과 관련된 공공재 공급에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해왔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이 개도국과 체제전환국을 상대로 선진국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유인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시장경제가 발달한 선진국의 관점에서 경제개발 문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선진국에서는 시장경제가 발달한 덕분에 시장거래를 통해 각종 원자재와 부품을 조달하고 경제활동을 조율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민간기업이 학습 및 혁신을 주도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 반면 개도국이나 체제전환국에서는 시장거래로 경제활동을 조율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고 기업의 학습·혁신역량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주도하에 민관협력으로 경제개발을 촉진할 여지가 상당히 존재한다. 이처럼 워싱턴 컨쎈서스는 경제개발 과정에서의 정부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한편, 시장자유화의 편익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군중효과와 씨스템 리스크로 인해 변동성이 큰 금융시장을 자유화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간과했다.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축이 결합되어 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하바드대학의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이 지적한 대로, 워싱턴 컨쎈서스를 수용한 개도국과 체제전환국의 경제적 성과는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안정화·사유화·자유화정책을 추진했지만, 1990년대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1950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간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중남미 경제개혁의 상징이던 아르헨띠나의 경우 2002년 외환위기를 맞기도 했다. 워싱턴 컨쎈서스를 수용하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한 동유럽의 체제전환국들도 장기간 공황을 겪었다. 반면 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을 비롯하여 중국과 베트남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시장경제의 기반 위에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고도의 동반성장’(rapid, shared growth)을 달성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이 실망스런 성과를 낳자 과거 개도국과 체제전환국을 상대로 워싱턴 컨쎈서스를 전파하던 세계은행마저 2005년에 발간된 『1990년대의 경제성장』(World Development Report-1990)이라는 보고서에서‘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최선의 정책 집합은 없다’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3.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대안의 모색
신자유주의 정책노선은 영국과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개도국과 체제전환국에서도 폭넓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과거 자유방임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빈부격차 확대와 공황 발생에 대해서도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안을 모색하는 시도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진보성향의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복지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제3의 길’을 찾으려 했다.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수정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빈부격차 완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경쟁·규제정책 집행과 관련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1990년대 초 당선된 영국의 블레어 총리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이같은 정책조합을 추진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민의 세금을 마구 거둬 쓰기만 한다(tax and spend)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규율을 확립했고, 생산적 복지(workfare) 개념을 도입하여 사회안전망 제공이 수혜자의 노동유인을 지나치게 낮추지 않도록 조정했다. 경쟁·규제정책과 관련해서는 급진적인 조치를 피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자유화 기조를 유지하는 노선을 택했다. 일례로 클린턴 행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분리를 강제하는 조치를 완화한 바 있다. 이처럼‘제3의 길’노선은 진보성향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의 상당부분을 수용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충분한 대안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제3의 길’노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희석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유권자들은 클린턴 행정부 8년을 경험한 후 신자유주의에 더 충실한 정책을 표방한 부시 행정부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부시 행정부는‘정부는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문제일 뿐’이라는 철학에 기초하여,‘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의 감독기능을 약화시켰다. 예를 들어 2002~2006년 동안 광업활동이 9% 증가했음에도 광산안전재해청(MSHA)은 안전관련 검사요원 수를 전체의 18%인 1백명이나 감축함으로써 같은 기간 광산사고가 빈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금융부문에서는 시장의 자정기능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각종 파생상품 도입을 허용하는 한편, 투자은행의 자산-자본비율(레버리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5년간 국립보건연구소(NIH)의 예산을 동결하는 등 정부의 역할을 소홀히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은 정부는 무능과 부패의 온상이라는 믿음을 실현하려는 듯 무능하고 부패한 사람들을 정부요직에 등용하기도 했다. 아라비아 경주마 심사관 출신으로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책임자로 발탁되어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의 수습에 실패한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 대표적인 예다.
이같은 정책은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3~2000년 모든 소득계층의 가구소득이 최소한 15% 증가했고 중위 소득도 7748달러 늘어난 반면, 부시 행정부 때인 2000~2007년에는 생산성이 연평균 2.5% 증가했으나 중위 소득은 오히려 2010달러나 감소했다. 이라크전쟁 수행과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정책을 장기간 유지함에 따라 부동산가격이 급등했다. 금융기관은 각종 파생상품을 도입하고 자산-자본비율을 높이는 한편, 채무자에 대한 자격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출을 해줘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더욱 부채질했다. 하지만 부동산가격 상승은 계속 지탱되지 못하고 2006년 7월을 정점으로 기세가 꺾이면서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도 빈부격차 확대와 공황 발생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빚어낸 참혹한 결과로 말미암아 진보성향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좀더 진보적인 색채가 뚜렷한 정책노선을 주창하게 되었다.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 한국어판 제목은‘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에서 폴 크루크먼(Paul Krugman)이 지적했듯이, 세계경제 통합이나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보다는 정치·이념적 요인이 빈부격차 확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인식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회·경제부문에서 오바마 진영의 두뇌집단 역할을 한 미국진보쎈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2008년 미국 대선 직후 공개된 『미국을 위한 변화』(Change for America)라는 보고서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적인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소득불균등 심화와 경제불안으로 인해 사회가 양분되는 것을 막고 미국 국민이 번영을 공유하여 동반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새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과제라고 전제하면서, 네가지 중요한 진보적 가치가 실용적인 정책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4대 진보적 가치는 번영의 공유, 경제적 존엄성 확보, 신분상승을 위한 실질적 기회 제공, 출생신분과 상관없는 균등한 기회 부여다. 특히 현재 미국에서 직장과 연계되어 있는 의료보험, 연금저축, 자녀들의 고등교육 기회를 직장에서 분리해 보편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중산층 붕괴를 막고 기본적인 사회협약을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에너지 효율 개선,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포괄하는 녹색성장전략을 추진함과 아울러, 연구개발예산을 늘리고 인재를 확충하여 국가의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배양할 것을 제언한다. 통상과 관련해서는 노동과 환경에 대한 규범을 확립하고 호혜적인 거래에 기초한‘공정한’자유무역을 지향한다. 보고서는 새 정부가 금융위기에 적극 대처하고, 금융뿐만 아니라 보건·안전·환경분야에서 부시 행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규제완화정책을 재검토할 것도 주문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회·경제부문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제반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그 강도를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신자유주의의 향방
신자유주의가 폭넓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고 진보적인 대안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긴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볼 때 비록 신자유주의가 빈부격차 확대나 공황 발생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국가들간에도 이해 대립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사회·경제적 기능 강화와 국제 금융질서가 재편되는 데는 상당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일국 단위의 민주주의 작동방식, 국경을 넘는 세계화의 파급효과, 국제질서를 둘러싼 국가간 대립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정치적 영역에서 자유주의가 지배이념으로 입지를 굳힌 국가들 내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유권자들의 선호를 전달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중위유권자이론(median-voter theory)에 따르면, 투표에서 유권자들의 선호를 차례대로 배열했을 때 중간 위치에 있는 유권자가 전체 결과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민주주의체제에서 유권자들이 인종이나 종교 등 경제외적 요인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투표한다면, 복지·조세정책은 중위 유권자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소득이 적은 다수의 유권자가 소득이 많은 소수의 유권자와의 숫자싸움에서 이겨 부유층에 중과세하고 복지혜택을 누리는 결과를 상정할 수 있지만, 중과세는 일할 유인을 저하해 전체 국민소득을 낮추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고, 부유층도 이런 가능성을 부각시켜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기업의 이주를 원활하게 함으로써 정부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국가들간의 규제완화 및 감세경쟁을 부추겨 복지국가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는 복지국가 와해의 요인이 되었던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만약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투표를 한다면,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국가들간의 규제완화 경쟁을 감안하면서도 실직 및 질병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고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수준으로 복지·조세정책이 조정될 수 있다.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투표와 함께 노동조건 등에 관한 국가간 조율과 국제규범 확립도 이른바‘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를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금도 적고 규제도 적은 곳으로 이주하겠다면서 기업이 정부를 압박할 때는, 일정수준의 복지·조세정책이 확립되어야 우수한 인적자원과 투자환경을 확보할 수 있고 이것이 국제규범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정부가 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유권자들의 투표와 노동조건 등에 관한 국가간 조율이 전제된다면, 복지·조세부문에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인종이나 가치 등 경제외적 요인이 유권자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었고, 유권자들이 비교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투표를 함에 따라 진보적인 대안이 힘을 얻게 되었다. 진보적 대안은 번영의 공유, 경제적 존엄성 확보, 실질적 기회 균등을 강조함과 동시에‘공정한’자유무역의 기치하에 노동·환경분야의 국제규범도 확립하려고 힘쓰고 있다.
복지·조세정책의 조정에 비해 국제 금융질서 재편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기축통화를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금융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에 근본적인 이해대립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금융위기가 신흥시장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지만, 그렇다고 미국이나 유럽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기득권까지 포기하는 방향으로 국제 금융질서의 재편을 추진할 유인은 없다. 단지 금융거래에 대한 정보공개와 감독을 일부 강화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기능을 보완하여 금융세계화의 부작용을 줄이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금융시장에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부문의 요직을 맡은 인사들이 과거 금융감독 완화를 적극 추진한 전력이 있다는 점은 이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