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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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 시대는 어떤 인문학을 요구하는가

 

정치적 올바름은 미학적 품격과 만날 수 있는가

창비식 글쓰기에 대한 몇가지 단상

 

 

권성우 權晟右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UCI) 동아시아어문학과에서 디아스포라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학자로 체류중. 저서로 『비평의 매혹』 『낭만적 망명』 등이 있음. nomad33@sm.ac.kr

 

 

1. 쇄신

 

『창작과비평』은 창간 40주년을 맞이한 2006년부터 대대적인 쇄신과 변화를 모색한다. 당시 참여정부의 위기와 연동되어 사회 각부문에서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가치가 위협받고 있던 상황에서 안팎으로부터 다양한 문제제기와 제언을 받아온 창비의 지면 혁신은 필연적인 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덧붙여 민족문학의 퇴조, 상업주의 출판자본의 전면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문단지형과 출판 인프라의 변화 역시 창비의 변화를 추동한 요인일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사회 분위기와 변모된 문단환경에서 창비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고 어떠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창비의 생존과 갱신에 직결된 문제였던 것이다.

창간 40주년 기념호(2006년 봄)에는 이러한 변화와 쇄신에 대한 창비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가령 편집주간 백영서는 「운동성 회복으로 혁신하는 창비」(책머리에)에서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다.

 

90년대 이후 이념적 지형이 변하고 다양한 전문저널이 등장한 상황에서도 『창비』는 문학지와 정론지의 두 역할을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사회를 볼 수 있는 지적 자양을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애써왔다. 특히 자본주의적 근대가 추동하는 전지구화의 대세에 한민족 및 동아시아인으로서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담론 개발을 꾸준히 계속해왔다고 자부한다. (…)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부터 타성을 떨치고 우리시대의 요구에 헌신하는 과제 수행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서려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과 위의 내용에서도 나타나듯이 창비가 새로운 변화를 위해 내세운 화두는‘운동성 회복’과‘자기쇄신’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노력은‘운동성을 담은 새로운 글쓰기’로 구체화되어 계간지 지면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실제로 창비는 이 무렵부터 인터넷으로 『창비주간논평』을 발간하면서 현실에 밀착된 신속한 대응력을 키워왔으며,‘도전인터뷰’코너 등을 통해 이른바 논쟁적 대화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대개의 문예지와 시사학술지들이 제도적인 관성에 매몰되어 전반적인 현실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창비의 이런 지속적 자기갱신의 노력을 기본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이라는 대목도 창비가 아니라면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후 3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사이에 정권이 교체되었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한파가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으며 양극화로 서민들의 생활은 한층 악화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으며 신공안정국이 다시 한국사회의 저항적 움직임을 옥죄고 있다. 개혁과 변화를 위한 지혜를 다시 근본적으로 모색하고 성찰할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창비가 창간 40주년을 즈음하여 선언한 운동성 회복과 자기쇄신의 기치가 창비 지면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중간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백영서는 창비에서 간행한 『이중과제론』(이남주 엮음) 『87년체제론』(김종엽 엮음) 『신자유주의 대안론』(최태욱 엮음) 등‘창비담론총서’의 발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가 계간지 창간 40주년을 맞아 약속한 것을 돌아본다. 창비가 우리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제 수행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서되, 단순히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일을 넘어‘창비식 담론’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창비식 담론’은‘창비식 글쓰기’에 의해 뒷받침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창비식 글쓰기’란 현실 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를 뜻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문학적 상상력과 현장의 실천경험 및 인문사회과학적 인식의 결합을 꾀하는 창비가 남달리 잘해야 마땅한 일이다. 우리는 그 일에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기대에 보답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우리는 여기서‘창비식 글쓰기’, 즉 “현실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가 과연 효과적으로 구현되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은 창비가 주창한‘운동성 회복’과‘자기쇄신’이 과연 얼마나 구체적인 실감과 현실적인 동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탐문하는 도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창작은 제외하더라도 창비의 문학비평이나 민족문학론은 물론이거니와 분단체제론, 동아시아론, 이중과제론, 신자유주의 비판론, 87년체제론, 변혁적 중도주의론 등을 포괄하는 창비의 사회인문학 담론 전반에 대한 탐문과 평가가 요청될 것이다. 이 각각의 담론들 중 특정한 주제 하나에 대해서 글을 쓰는 데에도 엄청난 공력이 요구될 터인데, 내게는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창비담론 전반에 대해 살펴볼 능력도 식견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은 2006년 봄에 이루어진 창비의 혁신 이후 계간 『창작과비평』이나 『창비주간논평』에 발표된 몇몇 글을 중심으로 내게 소중하게 다가왔던 이른바 창비식 글쓰기를 둘러싼 몇가지 주제와 쟁점들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미학적 품격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글은 창비담론에 대한 포괄적인 고찰이라기보다는 내 비평 안테나에 포착된 창비의 어떤 글들에 대한 주관적인 단상에 가깝다. 그러니 독자들은 창비식 글쓰기, 혹은 창비담론이 공유하는 특성보다는 창비 필자 개인간의 차이가 더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서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2. 실감

 

대부분의 문예지와 학술지에서 다뤄지는 현실 속에 정치적 현실은 삭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43년에 이르는 창비의 역사는 문학지와 정론지의 성격을 아우르는 그 성격상 필연적으로 현실정치와의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80년 계간지가 정치권력에 의해 폐간되는 아픔도 있었거니와, 저자와 편집진의 구속, 판매금지, 압수, 출판등록 취소 등 정치권력과 빚은 갈등은 창비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대목이자 자존심의 근거이기도 할 것이다. 작년에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네티즌의 글 「이것이 아고라다」를 문제삼아 『창작과비평』 2008년 가을호의 배포금지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한 사건은 창비와 정치권력의 갈등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창비는 흔히 민족문학의 산실로 불리지만, 어떤 면에서 창비가 걸어온 길은 여러 정치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저항과 갈등, 투쟁, 제휴, 연대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2006년을 기점으로 창비 지면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1998년 국민의 정부 등장 이후 2005년에 이르는 동안 창비 지면에서 현실정치와 연관된 첨예한 의제는 적극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주로 통일문제, 동아시아론, 탈냉전, 반전평화운동 등 좀더 원론적이며 광범위한 시야가 요청되는 담론들이 지면을 장식한다. 생각건대 이러한 측면은 그 기간에 현실정치와 창비의 입장 사이에 근본적인 괴리가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즈음 창비가 “이미 주류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일 것이다. 당시 창비가 민감한 논쟁을 회피하고 정론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혁신 선언 이후 최근까지 창비 지면에는 주로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양극화, 한미FTA체결, 그리고 이명박정권의 퇴행적인 경제정책과 4대강 개발공약, 악화되는 남북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다수 수록되었다. 이런 변화는 참여정부가 보여준 일정한 한계와 현재 이명박정권이 노정하는 총체적 난맥상을 생각할 때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1 이에 덧붙여 이른바 진보의 위기, 개혁의 위기라는 사태에 봉착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창비의 입장이 현실정치와의 접속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요컨대 2006년의 혁신 이후‘운동성 회복’과‘현실 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는 것을 강조해마지 않았던 창비는 현실정치나 민감한 의제에 대한 비판적 대화를 통해 정론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그러한 창비의 사회인문학 담론의 취지와 내용에 대체로 동감하면서도 비판의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어떤 아쉬움이 있다. 여기서 창비의 대표적인 논객 백낙청이 스스로 밝힌바, “지식인의 담론은 정권이 책임질 대목과 누가 해도 힘든 대목을 식별하는 정교한 비판이 되어야 한다”2는 합리적인 전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창비의 비판이 스스로 내건 그런 “정교한 비판”을 충족시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보기에 특히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창비에 수록된 상당수의 글들은 당위적인 일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령 노무현 개인의 자질과 한계, 정치권의 역량,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 자본주의 일반의 문제, 주류언론과의 적대적인 불화 등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것이 참여정부의 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라면, 그 각각의 한계 층위들이 미치는 규정력과 영향력에 대한 세밀한 운산(運算)이 필요하다. 바로 그러한 운산에 기초하여 정권 자체의 한계와 미국에 종속된 분단 자본주의라는 태생적인 한계, 언론과의 불화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성취 등을 좀더 엄밀하게 준별할 수 있을 때 비판의 실감과 설득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라는 잣대로 비판하는 글들과 한미FTA를 비판하는 글들이 이런 점에서 아쉬웠다. 물론 이남주는 “현재 노무현정부가 보여주는 한계는 상당부분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분단체제 등의 제약요인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3라고 정당한 주장을 펼치지만, 창비의 담론에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이런 인식이 비판적 글쓰기에 성공적으로 녹아 있는 글은 드물었다. 비판이 정치(精緻)할 때, 그에 적합한 대안이 모색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유종일의 「참여정부의‘좌파 신자유주의’경제정책」(2006년 가을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한국경제」(2007년 가을호)는 그 비판의 강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대안 모색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가령 유종일은 “정체성이 분명한 진정한 정책정당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진보적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 참여정부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되어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기를 바랄 뿐이다”4라며 글을 맺는데, 지금 진보정당의 지리멸렬한 현황을 보면 이런 진단의 구체적인 현실성을 되묻게 된다.

아마도 이런 한계에 대한 인식의 당연한 수순으로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모색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정승일의 「신자유주의와 대안체제」와 서동만의 「대안체제 모색과‘한반도경제’」(이상 2007년 가을호), 최태욱의 「신자유주의 대안 구현의 정치제도적 조건」(2007년 겨울호) 등은 시의적절한 논점을 담고 있다. 이 글들의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당위적이며 원론적인 비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야를 펼쳐 보인다. 다만 그 대안들이 과연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어느 정도 현실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2009년의 새로운 촛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백낙청의 발언이 나에게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오지 못한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관건은‘촛불소녀’로 상징되는 발랄함과 유쾌함이 한층 절박해진 군중과의 결합을 통해 또 한번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중의 토론과 합의를 이어받아 언론과 여러 전문집단, 권익집단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정당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국정에 기여하는-단순한 시위참여가 아니라 국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자면 길을 닦는 작업이 상당정도 미리 진척되어 있어야 하며, 그랬을 때 한국사회에서 국민주권과 민중자치, 그리고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 2009년의 새로운 촛불과 함께 큼직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5

 

백낙청의 제안과 기대대로 현실화되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재로서는 촛불시위와 국가 거버넌스 참여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리고 그 촛불과 국민주권, 민중자치,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거대담론 사이에는 더욱 길고 먼 중간과정과 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2009년의 “한층 절박해진 군중”이 언론이나 여러 전문집단, 권익집단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는 다소 막연한 차원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러자면 길을 닦는 작업이 상당정도 미리 진척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데, 역으로 이 점이 현실에 대한 당위적 낙관주의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당위적 원론은 옳지만 지루하고, 현실에 대한 낙관은 시원하지만 불편하다. 이를테면 한국사회의 전망과 저항운동에 대해 언뜻언뜻 자기 생각을 내비쳤던 재일 디아스포라 논객 서경식(徐京植)의 내면에 드리워진 짙은 비관주의에 나는 더 진한 공감과 진정성을 느낄 때가 많았다.

창비 논객들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변혁에 대한 열정, 분단체제 극복을 향한 지난한 노력, 신자유주의에 대한 단호한 비판 등에 대해서는 늘 경외의 마음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마음 한자리에는 그들이 보여주는 투철한 비판, 건강한 낙관주의, 의연한 당위의 세계에 드리워진 또다른 그 무엇을 보고 싶은 욕구가 늘 내게 있었다. 그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실존의 그늘이 드리워진 비판적 이성이 더 진실하고, 짙은 비관이나 허무의 심연을 통과한 낙관과 당위가 더 문학적이라고. “문학적 상상력과 현장의 실천경험 및 인문사회과학적 인식의 결합을 꾀하는 창비”(백영서)이기에 하는 말이다.

 

 

3. 언론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박연차 비자금 사건을 보며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강 권력은 언론이다. 국민 대다수가 매일 구독하는 몇몇 신문의 지면 편성과 논조와 보도 내용을 지배하는 사주와 그 대리인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한다. (…) 그들은 선출되지 않으며 신임을 묻는 일도 없다. 교체되지도 않으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6라는 주장을 다시 한번 제대로 실감하게 된 것은 나만의 체험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인용한 내용은 이제 낯익고 얼마간 상투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낯익다고 해서 그런 주장에 담긴 생생한 통찰력의 중대성이 반감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례로 앞의 두 사건에 대한 보도에는 극단적으로 이중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박연차 비자금 사건을 보도하듯이 삼성 비자금과 BBK, 장자연 사건을 보도했다면 어떤 결론에 이를까. 거대보수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KBS를 위시한 공중파방송까지 심각할 정도로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독립성을 잃어버린 검찰조사가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적하는 언론의 역할이 살아 있다면, 과연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가 그렇게 쉽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적어도 언론이 현대통령의 BBK스캔들을 비롯한 여러 의혹과 문제들을 지금의 박연차사건만큼이나 집요하게 파헤치고 실시간 중계방송하듯이 전파했다면, 아니 최소한 공정한 척도로 보도했다면 과연 이명박정권이 탄생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창비는 언론문제를 방기하고 있는 다른 주류 문예지와는 달리 이에 대한 자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편집위원 김종엽은 거대보수신문의 편향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꾸준히 보여주었으며 백낙청 역시 『창비주간논평』에서 “언론이 자신의 탐욕 때문이건 정부의 탄압 때문이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7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창비주간논평』에는 이밖에도 이명박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이나 MBC및 YTN,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외부 필자들의 글들이 수록돼 있다. 시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른바 안티조선운동이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던 2000년 여름 계간지에는 임영호의 「언론개혁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글이 게재되었으며 2001년 가을호에는 「언론개혁,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좌담이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창비가 언론문제와 정면대결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창비 논객들이 주장하는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은 소박한 일반론 차원의 지나가는 식의 문제제기에서 크게 멀지 않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창비주간논평』에 수록된 관련 글들은 일종의 면피용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최근의 창비 지면에서 언론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의식은 거의 발견할 수 없다. 2000년 무렵의 기고문과 좌담도 당시 안티조선운동의 열기에 마지못해 편승한 것처럼 보인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주류언론과 척지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출판사를 거느린 모든 문예지의 숙명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문제를 수동적으로 추인하는 한, 문학에서는 언론문제에 관한 어떤 저항과 비판의 공간도 가능하지 않다. 시대의 모순과 온몸으로 대결한 빛나는 문학이 늘 그러했듯이 그 심리적 저지선을 돌파하는 담대한 과정에 진정한 문학적 상상력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여기서 나는 김지하의 「오적(五賊)」의 상상력을 다시 생각해본다.

더구나 창비가 주장하는 “현실 문제에 직핍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의 모범”이 어떤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바로 거대보수신문을 중심으로 한 언론권력은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창비식으로 말해서 이 문제를 천착하지 않는 진보담론은 우리의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로부터 진정한 대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예를 들어 대안언론의 가능성과 현황, 거대보수언론 문학기사의 프레임 분석, 문학상과 언론의 관계, 일간지 서평의 문제점 등 수많은 과제를 분석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물론 창비가 전개해온 분단체제론, 신자유주의 비판, 동아시아론, 이중과제론 등은 모두 그 자체로 중요한 의제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지당한 주장 못지않게, 편향적인 거대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항상적으로 탐구되는 독립적인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긴 싸움에서 승리할 방도”(백낙청)를 추구하는 입장이라면, 그리고 창비가 단지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문예지로 남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진정 그 긴 싸움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입장이라면 거대보수언론의 편파적인 프레임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비에서 그토록 힘들여 주창하는 분단체제론을 비롯한 여러 사회인문학 담론마저도 거대보수신문의 프레임 속에서 용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창비의 입장에서는 역으로 분단체제론의 프레임으로 언론문제의 실상을 조망할 수도 있으리라. 이를테면 분단체제가 그들의 이데올로기, 운용방식, 족벌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언론의 문제점들을 어떤 방식으로 확대시키고 파생시켰는지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백낙청이 김종철을 비판하면서 “그의 이번 글에서 분단체제에 관해 일언반구가 없는 점도 심상치 않다”8고 말할 때 나로서는‘분단체제’대신에‘언론’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른바 거대보수언론에 대한 일반시민과 네티즌의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조성된 이즈음이야말로 지난 안티조선운동의 편향과 오류9를 냉철하게 되돌아보면서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언론개혁운동을 조직적으로 시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러한 일을 창비 혼자 감당할 수는 없으리라. 암울한 역사적 시기마다 늘 빛나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희망의 불씨를 지폈던 창비가 그런 역할에 힘을 보탠다면 언론개혁운동은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언론문제가 이렇게 악화된 것도 창비 같은 신뢰받는 지식인 집단이 이 문제를 소홀히 취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4. 논쟁

 

창비 2009년 봄호에 수록된 비평가 손정수의 글 「진정 물어야 했던 것」을 읽었다. 그전의 2008년 겨울호 문학특집에 대한 반론의 형식을 띤 이 글은 백낙청의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한기욱의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전면적이며 직설적인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놀라운 점은 백낙청, 한기욱, 그리고 창비에 대해 “손쉬운 단정” “엉뚱한 비판” “무반성적인 의식구도에 갇혀 있는”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등의 표현으로 다소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 글이 다름아닌 창비 지면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창비 지면에서 창비나 창비 편집위원들의 논지를 비판하는 글들은 간헐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비판들은 창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차원은 아니었고, 필자들 역시 대개는 넓은 의미의 창비 진영에 속하는 논자들이었다. 이번 글처럼 창비와 대척적인 위치에 있는 비평가의 강도높은 비판을 수록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창비의 어떤 자부심과 자신감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또한 논쟁과 연관된 지적 전통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창비의 상대적인 진보성과 대화성, 열린 태도는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생각건대 이러한 창비의 면모는, 다른 두 에콜과는 달리 창비가 수십년에 걸친 치열한 문학논쟁을 성실하게 수행한 텃밭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민족문학 논쟁을 비롯한 끊임없는 논쟁과 상호 비판의 체험을 축적하면서 비판과 논쟁에 단련되어왔다는 지적 전통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권성우 「열린 진보와 권위주의 사이」, 『사회비평』 2001년 가을호)

 

그야말로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한계와 대면하겠다는 의지 없이는, 논쟁적 대화에 대한 부단한 성찰 없이는 손정수의 반론을 수용하는 창비의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창비의 선택이 우리에게 신선함과 놀라움으로 다가온다면, 이 점은 역으로 대부분의 문예지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거의 용납하지 않는 편협한 관행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가를 역력하게 드러내주는 증거이리라. 가령 『문학과사회』나 『문학동네』에서 정과리나 이광호, 남진우나 황종연을 비판하는 글을 자기 지면에 수록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할 여지는 전혀 없다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논쟁을 통한 대화야말로 한국문학의 내성을 키우고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게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온 내 입장에서는 창비의 이런 고무적인 태도에서 대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노력을 읽을 수 읽었다.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과 녹색담론에 관한 김종철과 백낙청의 논쟁 역시 창비가 최근에 수확한 논쟁문화의 소중한 성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조영일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도서출판b 2008)에서 이루어진 비판에 대한 창비의 견해는 무엇인가. 내 생각에 조영일의 평론은 최근 나오는 다양한 형태의 창비 비판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이며 세밀한 논거를 담고 있다. 조영일은 창비진영이 카라따니의 근대문학의 종언론을 생산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문학사적 맥락을 치밀하게 살피며 창비 역시 진보적인 정체성을 상실하고‘문학동네화’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조영일은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창비 스스로 자발적인 해체를 감행하여(언인스톨하여) 그로 인해 확보될 공간(또는 언덕)을 새로운 전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문학’을 제2자연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평가들은 이제 창비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만약 앞으로의 문학에 어떤 희망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 창비 너머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창비 슈퍼스타스의 팬클럽 역시 해체될 때가 된 것이다.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156면)

 

아마도 이런 지적은 지금까지 창비가 받아온 비판 중에서 가장 혹독한 차원의 것일 듯하다. 이 인용문의 어떤 표현들은 창비 구성원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체로 본문에서 이루어진 조영일의 창비 비판은 일본현대비평사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과 구체성을 동반하고 있다.10 그렇다면 조영일의 문제제기가 나온 지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백낙청과 창비가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은 창비진영이 천명한 투철한 논쟁적 태도에 비추어볼 때 의외이다. 물론 소모적인 비판에까지 창비가 답변할 의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비의 정체성이나 이론적 정당성과 연관된 문제를 문학사적 맥락에 근거하여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조영일의 평문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5. 차이

 

문학담론과 사회인문학담론은 창비 담론을 구성하는 마주보는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서로의 존재에 빛을 던지는 그런 관계이다. 창비의 문학은 창비의 사회인문학으로 인해 그 권위를 더욱 보장받았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창비 사회인문학담론의 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진보적인 논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어도 내가 이번에 읽은 바로는 보수적인 필자가 등장한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신자유주의나 한미FTA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적이며, 이명박정부는 물론이거니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대부분 비판적이다. 그러다 보니, 창비의 사회인문학담론은 현실과 제도,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비판’을 글쓰기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그에 비해 최근 창비에 수록되는 문학비평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문학작품에 대해, 특히 창비에서 발간된 작품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예컨대 고은, 황석영, 신경숙, 박민규, 김애란 등 창비와 가까운 문인들이 발간한 신작에 대한 비평은 대체로 긍정적인 맥락에서 씌어졌다.

그리고 문학창작과 문학비평 쪽의 필자들은 다양한 입장과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적 필자들이 대부분인 창비의 사회인문학담론과 구별된다.

2006년 이후로 한정하더라도, 시인 황동규 정진규 오탁번 신달자 김명인 박주택 정끝별 김언희 황병승, 소설가 정미경 권지예 하성란 윤성희 이기호 김태용 박형서 편혜영 윤이형 정한아 김사과 등이 창비 지면에 등장하는데 이들은 우리 기억의 창고에 존재하는 창비적 세계에 부합되는 문인들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우호적으로 해석하자면 “이제 진영 개념의 비평적 위력은 대세의 흐름에 의해 거의 소멸된 듯하다.‘민족문학 진영’으로 명백히 분류가능한 작가들의 작품에만 국한하다 보면, 그러잖아도 위기설에 휘말린 민족문학의 빈곤을 스스로 부각시키는 결과밖에 안되기 때문이다”11에서 보듯이 실제 작품의 부족도 이러한 변화를 낳은 요인이리라. 여기서 더 나아가 문학의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창비진영에 더 확대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미 오래전에 김영현 논쟁(1990)을 통해 나는 그러한 견해를 드러냈거니와, 정치적 진보-보수의 개념을 문학이나 예술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운동권 청년의 내면의 흔들림과 번민을 밀도 깊게 형상화한 김영현의 소설은 도식적인 노동소설보다 더욱 진보적이며 열린 문학인 것이다. 실존적 내면의 흔들림을 새로운 어법으로 보여준 뛰어난 서정시는 통일을 타성적으로 노래한 시보다 더욱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동시에 창비의 이러한 변화가 자신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고 있으며, 결국 창비의 문학지면은 『문학과사회』나 『문학동네』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되었다는 시각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제 창비적인 문학은 없다고 주장할 법도 하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왜 창비의 문학비평은 사회인문학담론과 달리 이 시대의 문학장에 대한 비판, 문학을 규정하는 제반 씨스템에 대한 성찰을 방기하고 있는가. 창비의 문학비평은 가령 분단체제론에 비판적인 견해나 김종철의 논리를 겨냥한 비판의 열정만큼 고은이나 황석영, 신경숙, 박민규, 김애란 등에 대한 정교하고 섬세한 비판을 전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과정이 창비의 고유한 문학세계를 일구어가는 길이 아닐까. 창비의 비판문화는 안선재가 『창비주간논평』에서 피력한 다음 주장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모든 작가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자기에게 너그러운 것이다. 사려 깊고 도전적인 비평 없이 어떤 작가가 기량을 연마하고 약점을 고치고 성숙한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희망할 수 있겠는가?‘체면’과‘명성’이 핵심 고려사항인 한국 같은 문화에서 정직한 비평은 자주 거부된다. 이건 큰일이다.12

 

만약 창비의 고유한 문학세계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리하고 섬세한 비판과 작품의 만남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비판을 견디면서 자기갱신을 이룩한 작가만이 창비와 함께 호흡하는 작가가 될 수 있는 그런 자격을 갖춘 것 아닐까. 아름다운 작품을 아름답다 말하는 것은 물론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것은 적절한 비판과 조언이 있었다면 더욱 아름다워졌을 작품들의 살아 있는 가능성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와 시인을 성찰하게 만들며 그들의 문학이 더 깊고 넓은 세계로 가게끔 생산적으로 유도하고 자극하는 그런 비판이 지금 창비에 필요하다. 아니 한국문학 전체에 필요하다.

언젠가 백낙청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훌륭한 창작을 어렵게 만드는 여건이 출판과 언론매체들의 거의 전면적인 상업화일 경우,‘중개상’으로서의 비평가에 대한 수요는 전에 없이 커지게 된다. 다시 말해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을 임무를 띤 비평가에게 이 잘못된 풍토에 이바지하라는 압력이 도리어 집중되고 그렇게 하는 비평가의 영향력도 증가하는 것이다.13

 

12년 전에 발표된 이 글 앞에서 나는 다시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이 발표된 이후 백낙청이 지적한 “잘못된 풍토”, 즉 비평이 상업주의에 굴복하면서 중개상 역할에 자족하는 풍토가 현저하게 일반화되었다. 실제로 지금 평단에서‘중개상’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비평가일수록 영향력이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의 백낙청의 언급에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리하여 “‘중개상’으로서의 비평가에 대한 수요”가 분명 “잘못된 풍토”라면 창비가 이러한 풍토를 조장하는 문학집단에 대한 단호한 비판적 대화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창비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방기했기에 이즈음 평단은 자정능력과 논쟁에 대한 감수성이 현저하게 퇴화된 것이 아닌가. 어떤 면에서 1997년 이후 전개된 창비의 문학비평은 백낙청이 지적한 비평의 “잘못된 풍토”에 창비 스스로 조금씩 오염되기 시작한 과정은 아니었을까.

 

 

6. 스타일

 

일본의 비판적 잡지 『젠야(前夜)』의 편집위원 타까하시 테쯔야(高橋哲哉)는 창비 40주년을 기념하는 글에서 「젠야 선언」을 소개하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문화·예술분야의 비평에 특히 힘을 기울이고, 장르의 벽을 초월한 새로운 비평의 스타일을 창조한다. 지금처럼 비평정신이 쇠약한 상태로는‘밤’을 견디고 신생의 때를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14(강조는 인용자)라는 대목이 내게는 대단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비평문화는 지나치게 글의 내용에 편향적으로 경도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스타일과 결합된 내용의 올바름이 글쓰기의 진화와 갱신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창비 역시 “새로운 비평적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얘기를 해볼 수 있겠다. 근 한달에 걸쳐서 최근 5년간 창비에 수록된 이른바 창비담론 70여편을 읽으면서 많은 공부와 자극이 되었다고. 그러나 그 지적 자극의 짧은 시간은 기나긴 지루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발견한 섬광과 같은 것이라고. 아마 모든 문예지와 시사지가 그러하리라. 그래도 이 지면은 온전히 창비를 위한 것이니, 다시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진정으로 아쉬웠던 것은 오히려 창비담론의 내용 못지않게 형식(스타일)에 있다.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도 아닐진대, 창비에 수록된 상당수가 저자 이름을 지우면 과연 누가 쓴 일인지 판별하기 힘든 글, 말하자면 실존적 주체의 체취와 고유한 무늬를 감지할 수 없는 개성 없는 글들이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비판론을 비롯하여 사회과학적 주제를 담은 글들이 대체로 그러했다.

가령 이런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나 한미FTA체결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창비의 몫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노무현의 심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노무현에 대한 나의 애증은 어떤 차원의 심성에서 연유하는지, 내가 한미관계를 비롯하여 국제적 역학관계를 면밀하게 살필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입장이었더라도 이라크 파병을 과연 단호하게 반대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창비담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런 시도가 인문사회과학 학술지와 문학지 창비의 차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올바름이 개성적 문체와 심미적 품격에 실려 전달되는 그런 아름다운 창비식 글쓰기를 좀더 많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아울러 다양한 글쓰기 장르와 형식 실험, 예컨대 일기, 단장, 에쎄이, 기행문, 단상 등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그런 열린 창비담론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와 연관하여 나는 창비가 기존의 문학적 분류나 장르 구획에서 탈피하여 글쓰기 방법에 대해 한층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문체와 스타일이 단지 형식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창비식 글쓰기의 주류는 의외로 보수적이며 교과서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거둘 수 없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는 것이다. 뒤집어보자면 이런 글쓰기 형식의 보수성과 상투성이 창비에 아직 강력하게 잔존하는 어떤 닫힌 사유의 반영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비평적 문체와 스타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창비의 지면을 한결 풍성하게 만들 논객들, 예컨대 강준만, 김정란, 김영민, 김진석, 고종석, 유시민, 박노자, 서경식, 진중권, 김선우 등의 글을 앞으로 창비 지면에서 좀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백낙청의 「외계인 만나기와 지금 이곳의 삶」(2007년 여름호), 김종철의 「민주주의, 성장논리, 農的 순환사회」(2008년 봄호), 한홍구의 「현대 한국의 저항운동과 촛불」(2008년 가을호), 박노자의 「한국 대학사회의 슬픈 단상들」(2007년 가을호), 백지운의 「무라까미 하루끼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기억」(2005년 겨울호),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15(2008년 겨울호) 같은 글이 지닌 개성적 문체와 예리한 현실인식, 미학적 품격, 탄탄한 내용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는 점을 여기서 밝혀두고 싶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아름답고 개성적인 글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라고.

 

 

7. 맺는 말: 창비의 몫

 

2001년의 「열린 진보와 권위주의 사이」 이후 8년 만에 다시 창비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8년은 개인적으로 창비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시간들이었다. 사람과의 만남도 그러하듯이 자꾸 만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인가. 여전히 창비의 어떤 부분은 나에게는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안개로 쌓인 성벽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창비의 입장이었더라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공감의 순간도 있었다. 그 점이 나에게는 작은 위안이기도 하고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애틋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음에 창비와 내가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게 될지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에게는 창비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가 그만큼 컸던 모양이다. 가끔씩 “창비마저도”라고 탄식하곤 했으니까. 그‘탄식’이 앞으로 “역시 창비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깊은 신뢰’로 바뀌기를 염원한다.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나 많은 얘기를 한 것 같다. 처음 이 글을 구상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버린 형세를 보니, 민망한 마음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글도 나 자신의 흔적인 것을.

시대가 하수상하다. 신공안정국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다시 80년대가 돌아왔다는 풍문도 있다. 촛불은 다시 타오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모멸의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이 시대에 창비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이즈음 저 태평양 건너편에서 바라본 내가 돌아가야 할 한국사회의 슬픈 모습이 계속 눈에 선하다.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 지식사회에서 냉소와 오만의 대명사로 변해버린 진보와 개혁의 이미지를 원래 그 의미대로 온전히 되돌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참여정부의 오만에서 비롯되었건, 아니면 진보진영이 지닌 본원적인 한계에서 연유했건 간에 지금‘진보’와‘개혁’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치명적으로 오염되어버린‘진보’와‘개혁’, 그것을 아름다운 진보와 성찰적인 개혁의 이미지로 되돌려놓는 과정에서 창비가 감당해야 할 몫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몫 중 하나는 정치적 올바름과 심미적 품격이 결합된 아름다운 글이 창비에 더 자주 실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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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근식의 「2007 남북정상회담을 결산한다」(『창작과비평』 2007년 겨울호)와 강태호의 「변화하는 한미관계와 노무현 독트린의 운명」(『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은 예외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역시 다수의 글은 비판적인 각도에서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창비 지면에서 이명박정부에 우호적인 글은 아직까지 한편도 수록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2. 백낙청 「곱셈의 정치는 가능할까」, 『창비주간논평』(magazine.changbi.com) 2006.6.6.
  3. 이남주 「한국에서의‘진보’와 동아시아 협력」, 『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 358면.
  4. 유종일 「참여정부의‘좌파 신자유주의’경제정책」, 『창작과비평』 2006년 가을호 311면.
  5. 백낙청 「거버넌스에 관하여: 2009년을 맞이하며」, 『창비주간논평』 2008.12.30.
  6.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돌베개 2009, 194면.
  7. 백낙청 「거버넌스에 관하여」, 『창비주간논평』 2008.12.30.
  8. 백낙청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 『창작과비평』 2008년 여름호, 452면.
  9. 생각해보면 당시의 안티조선운동은 여러가지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기고자들에 대한 지나치게 감정적인 단죄 위주로 전개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이런 방식은 운동의 선명성을 얻는 대신‘배제의 효과’를 가져와 감정적인 반발과 이탈을 동반했다.
  10. 우리시대의 문제적인 두 신진비평가인 조영일의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한국문학과 그 적들』,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 열정적인 두 젊은 비평가의 길항과 차이야말로 지금 한국문학비평의 가장 뜨거운 대목 중 하나일 것이다.
  11. 백낙청 「200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한 단상」,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창비 2006, 185면.
  12. 안선재 「외국독자들은 한국문학을 어떻게 읽을까」, 『창비주간논평』 2007.5.15.
  13. 백낙청 「비평과 비평가에 대한 단상」,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창비 2006, 456면.
  14. 타까하시 테쯔야 「파국의 전야를 신생의 전야로」,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30면.
  15.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가 지닌 문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졸고 「문학의 운명, 혹은 패배한 자의 아름다움」(『문학수첩』 2009년 여름호)을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