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스탠리 코언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창비 2009
불편한 진실에 대한 부인과 외면
주정립 朱晶立
5·18기념재단 상임연구원 cclhm@hanmail.net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States of Denial: Knowing About Atrocities and Suffering)은 영국의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Stanley Cohen)의 역작이다. 번역을 맡은 성공회대 조효제(趙孝濟) 교수는 오래전부터 인권문제와 이론적으로 씨름하며 『인권의 문법』 『인권의 풍경』 등의 저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역자는 애초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부인(否認)’의 메커니즘이 옅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에 출판계획을 접어”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새 정부가 들어서며 “우리사회 여러 분야에서‘부인’이 핵심적인 부조리로 다시 등장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번역을 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 스탠리 코언은 이 책에서 다양한 차원과 영역에서 일어나는 부인현상의 근원과 구조를 천착한다. 그것은 이른바‘불편한 진실’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이‘불편한 진실’은 파트너의 외도 같은 가까운 데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아이들 모습처럼 먼 남의 나라 일일 수도 있다.‘불편한 진실’에 대한 부인은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국가가 역사 혹은 현재의 사실에 대해‘공식적 부인’(official denial)에 나설 경우 “사건에 관한 진실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이 된다.” 더 민주적인 사회라고 해서‘공식적 부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건을 윤색하고, 공적인 의제를 선점해버리고, 진상을 비틀고, 미디어에 정보를 흘리고, 상대하기 쉬운 피해자들만 골라 관심을 기울이는” 등 한층 교묘한 방식이 취해질 뿐이다. 얼마전 이명박정부가 용산참사를 도시 테러리스트에 의한 불법폭력으로 호도하여 진상을 왜곡하고, 강호순 사건으로 여론의 관심을 돌려버리고, 거짓된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경찰관의 죽음만을 부각하는 일련의 과정은‘공식적 부인’이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이다.
코언은‘공식적 부인’과 더불어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진행되는‘개인적 부인’에 이어‘문화적 부인’(cultural denial)이라는 범주로 일상화된 부인현상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체 사회가 어느 선까지 기억하고 시인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불문율 같은 합의에 도달하곤 한다”는 것이다.‘문화적 부인’의 범주로 바라보면 집단학살 같은 반인륜 범죄의 가해자나 방관자가 책임을 부인하는 현상은 이들이 나고 자란 문화적 토양이나 일상적 언어관행, 국가가 장려하는 정당화 논리 등을 통해 가능해짐을 알 수 있다. 홀로코스트의 주역 중 하나인 아이히만이 자신의 법적·도덕적 책임을 부인한 것도 당시 유럽에 만연한 반유대주의를 배경으로 독일 엘리뜨들이 유대인 학살을 지지하는 행태를 보였기에 가능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반공이 국시(國是)인 문화(!) 속에서‘빨갱이 없애기’에 국가가 발벗고 나서면서 얼마나 많은 살육과 고문이 자행되고 사후에도 그 책임이 완강히 부인되었던가?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사례를 들어 부인 과정이 사후뿐 아니라 사전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인다. 유대인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아우슈비츠를 향해 굴러가기 전에 이미 무엇을 속일 것인가에 대한 지시와 함께 부인전략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연루된 자들은 일종의 언어적 공모로써 사안을 은폐했다. 그들에 따르면 희생자들은‘특별행동’을 위해‘노동수용소’로‘이송’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찌는 홀로코스트의 “의미를 부정할 수 있었고, 청중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코언은 집단학살과 고문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와 이를 소극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들이 보이는 부인현상의 다양한 유형과 기제를 분석한다. 그러나 저자에게 정작 중요한 일은 “부인의 증거를 더 수집하는 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시인하고 그것에 대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러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 “우리의 정치적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고통에 침묵하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거꾸로 왜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부인하기를 거부하는가를 묻는다. 곤경에 빠진 이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돕는 구조자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본능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는 “가장 깊숙한 내면에 존재하는 가치와 신념”의 발로였을 뿐이며, 이들은 “내재적으로 남을 돕도록 되어 있는 자아”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예외적인 사람들의 “덕의 평범성”이 진정으로 평범한 것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부인의 문화’를‘시인(是認)의 문화’로 전환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일상의 삶에 녹아 있는 문화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코언은 인권교육, 법적인 강제, 호소, 시인의 통로를 만들어주기 등의 “정치적 전략”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자신의 체제에 “불필요한 존재”를 양산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부인하며, “배제와 분리의 전략”을 펼치면서 총체적인‘부인의 문화’를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보망의 세계화를 통해 좀더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인식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시인의 문화’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여기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더 많이 제공함으로써‘시인의 문화’를 촉진해야 하는 과제가 지식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저자는 남아공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한때 이스라엘에서 인권운동에 열정을 바친 바 있으며, 이 책에서도 범죄적 정책을‘부인’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 정치학계와 유대인사회에서 소외된 핀켈슈타인(N. Finkelstein) 같은 학자가 비통함과 증오에 찬 비난을 뿜어내는 데 반해,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웠던 코언의 비판은 그 신랄함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인간애를 발산한다. 또한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박학다식, 생생한 서사적 글쓰기는 부인현상에 대한 이론적 시야를 틔워주는 동시에 종종 숨막히는 긴장 끝에 한숨을 내쉬게 하는 독서체험을 제공한다. 이 분야의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한 이론서이자 인권교육 및 인권운동의 교본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실천적 지침서인 이 책이 2002년 영국 학술원이 선정한‘사회과학 저술대상’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극복되지 않고 있는 한국현대사의 국가폭력과 그에 대한‘부인’을 어두운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게 하는 탐조등의 역할을 훌륭히 해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