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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긍정, 한없는 긍정의 상상력

정한아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노대원 魯大元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지하미궁, 그 지독한 악몽으로부터의 탈출-『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의 공간 상상력」이 있음. naisdw@empal.com

 

 

정한아의 소설은‘모조보석’의 빛으로 반짝이는 세계다.‘모조(模造)’라는 수식어에는 허위성과 인위성이라는 부정적 함의가 쉽게 달라붙는다. 뿐만 아니라 원본과 진품에 비해 열등하다는 가치판단이 거의 항상 따라붙는다. 그런데, 모조보석의 세계라니?

정한아는 이미 장편 『달의 바다』(문학동네 2007)에서‘하얀 거짓말’로 인해 한결 온기를 머금게 된 세계를 그려낸 바 있다. 자신을 우주비행사로 꾸며낸 고모의 가짜 편지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달나라 이야기’다. 그러나 고모를 만나겠다고 미국 여행을 감행한 주인공 은미가 목도한 그녀의 현실은 황량한 지상의 삶 그 자체였다. 집으로 돌아온 은미는 고모가 선물한 월석(月石)이라며 회색 돌멩이를 할머니께 건넨다. 그 순간, 보잘것없는 돌멩이는 (신비로운 보석처럼) 반짝, 빛을 낸다. 꿈과 현실의 아픈 균열이 가짜 월석의 빛으로 봉합되고 회복되는 순간이다. 그때 월석이라는 이름의 이 모조보석은, 멀리 있는 꿈과 지극히 가까운 간난한 현실 사이의 이음매다. 달의 꿈을 폐기하지 않음으로써 지상의 삶을 삶답게 이어나갈 수 있게 한다. 그러니 가짜 보석이지만 진짜 광채를 뿜어내는 것이다. 이 가짜의 진실(물론 그것은‘소설’의 다른 이름이다)이 발휘하는 힘을, 정한아는 믿는다. 작가의 첫 단편집 『나를 위해 웃다』(문학동네 2009) 역시 그런 믿음과 긍정의 기록들이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불우하고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의 삶이 보석처럼 빛난다고 믿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절망의 방식을 선택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보석을 발굴하거나 발명해낸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모조보석 세공사다. “모조보석은 대개 2100°C이상의 고열에서 만들어진다. 원료를 녹여서 결정화시킨 뒤 냉각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물건이 들어오는 날에 가게는 유난히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보석을 손에 쥐어보면 그 속에 뜨거운 불길이 갇혀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댄스댄스」 166면) 정한아의 젊은 인물들이 보석 속에 갇힌 불길을 인식하고 그 열기에 감응하는 이 순간, 그들은 제 삶에서 보석의 광채를 획득한다.

「댄스댄스」의 주인공‘나’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우리는 꿈꾸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살아갔다”(154면)고 담담하게 진술한다. 다리가 불편한 실직상태의 아버지와 생활고 속에서 잠시 흔들리는 어머니, 따돌림을 당하는 수재 동생, 모조보석 액세서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나’로 구성된 이 가족은 자주 위태로운 지경까지 가곤 한다. 초라한 집안을 아버지는 매일 모짜르트의 선율로 장식한다. 그는 딸에게 호숫가 고성(古城)에 자리한 신부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모든 걸 다 잃어도 품위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한다. 어머니를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의 자전거 운전이‘나’에게는 균형 잡힌 춤으로 보인다. 품위라는 아버지의 유일한, 위대한 유산 덕분이다.

「마테의 맛」의 주인공 역시 곤궁한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대학원 등록금을 벌기 위해 힘겨운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데, 불안한 마음에 심지어 꿈에서도 온몸이 아파오도록 맹렬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댄다.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없”(118면)는 삶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만 운좋게도 그녀의 아버지 또한 이른바 일상의 심미주의자이며, 인생의 좋은 스승이다. 그는 일년에 하루, 아르헨띠나식으로 요리를 하고 직접 말린 마떼 차를 우려낸다. 아버지의 아르헨띠나식 요리는 이민생활 중 불행하게 숨진 동생을 기리는 추모의식인 셈이다. 그녀의 고된 하루를 그린 이 소설의 매듭에서는 힘겨운 자전거 꿈 대신 “먼 나라의 차 향기가 그녀를 감싸안”는다(120면). 아버지가 우려낸 마떼의 그윽한 향기와 맛은 일상을 장식하는 심미적 효능은 물론 상실감과 불안을 달래는 치유효과까지 발휘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웃다」와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앞의 두 소설 속 여성들보다 한층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을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그녀들에게는 메마른 삶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발견하는 법을 가르쳐줄 멋진 아버지나 가족들이 없기에, 더 불행하다. 일종의 여성수난사에 근접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절규와 탄식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난과 고통을 불행의 조건이 아닌 성장과 치유의 조건으로 전환시킨다. 이 성장과 치유의 이야기들은 완료형으로 닫혀 있지 않다. 그녀들을 짓누르는 삶의 곤란은 결코 완벽하게 해결되거나 완료되지 않지만, 현재진행형의 과정 속에서 부단히 삶과 꿈의 금간 데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정한아 소설에서 빛을 발하는 모조보석들이란 본질적으로 최소한의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한 물적 조건이 아니라 삶을 한없이 긍정하는 희망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이 세계에서는 삶의 암담한 조건들이 불행과 파탄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긍정의 상상력이 발아하는 풍요로운 토양이다. 세계와의 화해와 포옹은 감각적 이미지로써 상징적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이국적인 공간으로의 여행(「첼로 농장」)이나 타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의자」 「휴일의 음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이즈음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무기력한 개인들이 삶을 견디는 방식인 비애와 체념 혹은 환상과 유머처럼, 긍정 또한 현실과의 소박한 화해 내지 자기위안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단지 개인이 취하는 긍정의 정신만으로 지금 여기의 삶을 낙관할 수 있을까? 긍정의 연금술이 오히려 작가의 문학적 시야를 제한할 수 있다. 개인의 정신적 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갈등이나 삶의 극단적인 고통 등은 소설의 원재료 선택과정에서 애초에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긍정을 잠시 미루더라도 더 넓은 시선에서 바라본 고통과 갈등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결하는 소설을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막에서」는 정한아 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예시한다. 상처와 상실에 시달리는 청년의 정서는 다른 소설들과 유사하나, 본격적인 노동과 사회활동에 진입한 인물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시야의 확장을 시도한다. 방수포 생산업체의 중국지사에 근무하게 된 주인공‘나’는 회사가 미국 대형마트와의 거래에서는 가격을 내리고 구호용품의 가격은 높이는 횡포를 목격한다. 재계약에 실패해 결국 실직하게 된‘나’는 천막 안에 들어가 비를 피하다가, 수재를 당한 동남아 사람들이 나오는 꿈을 꾼다. 위협적인 세계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는‘천막’(긍정)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변주해왔던 정한아 소설에서, 그것조차 결코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천막은 이별과 실직의 곤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줄 피신처이면서 동시에 타자들에 대한 윤리적인 연민의 출발점이 된다. 요컨대, 정한아 소설은 “나를 위해 웃다”의 자기긍정에서 출발해서 “천막에서”함께 아파하는 공존의 윤리적 감수성을 체득해나가고 있다. 작가는 그녀의 인물들과 함께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