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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호연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아침이슬 2009
북미 국가의 폭력적인 우생학 정책
김명진 金明振
성공회대 강사, 시민과학쎈터 운영위원 walker71@empal.com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그의 저서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과학사적으로 매우 뜻깊은 해이다. 이를 기념해 다윈 진화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학술회의와 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전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다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들이 잇따라 개최되었다. 6월 27일에는 한국과학사학회와 한국서양사학회가 공동주최한 심포지엄‘역사 속의 진화론’이 열렸고, 7월 2일과 3일 양일간에는 관련 11개 학회가 함께 마련한‘다윈 진화론과 인간·과학·철학’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지방에서 1박2일 휴가를 내고 올라와 행사를 지켜본 청중도 제법 있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들 학회에서는 다윈 이후 진화론의 발전과 확장 과정을 보여주는 주제뿐 아니라 그 사회적 함의를 다룬 발표와 토론도 여럿 진행되었다. 이 중에도 진화론의‘응용과학’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사회적 파급효과를 낳은 실천활동이기도 했던 우생학(優生學)과 관련된 발표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출간된 역사학자 김호연(金鎬淵)의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는 바로 이런 내용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특히 이 책은 번역서가 아니라 이 주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국내 학자의 저작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뜻깊다.
이 책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걸쳐 영국, 미국, 독일 세 나라를 중심으로 각국의 주요 우생학자들의 사상이 형성되고 그에 입각한 사회적 실천들이 전개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생학을 과학과 이념, 사회적 실천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 제시한다. 국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19세기 말에 우생학이 등장해 사회적 영향력을 넓혀간 배경에는 당시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와 사회갈등, 불황에 따른 빈곤 확산 등이 공통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생존경쟁과 최적자생존을 내세운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다윈주의, 그리고 생물학의 이름으로‘적자’(the fit)와‘부적자’(the unfit)를 가려내 전자를 키워내고 후자를 제거함으로써 당면한 사회문제를‘해결’하려 시도했던 프랜씨스 골턴(Francis Golton)의 우생학적 사고방식이 태동하고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였다. 영국에서 발생한 우생학은 다른 산업국가들로 전파되어 지배적인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거나(미국) 기존의 봉건제적 유제에 대한 신흥세력의 도전에 힘을 실어주는(독일)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별로 나타난 사회적 배경의 차이는 각국의 우생학 연구와 실천에 뚜렷이 각인되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우생학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저자는 몇가지 흔한 선입견을 바로잡는다. 먼저 우생학은 한마디로‘틀린’과학이론이고 정치화된 2류 과학자들이 주로 수행하던 사이비과학이라는 식의 성격규정이다. 이는 사실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물론 우생학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틀린’과학적 전제에 입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우생학뿐 아니라‘한물 간’과학이론 대부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맥락에서 볼 때, 우생학은 (오늘날 우리가‘맞는’과학이론으로 알고 있는) 유전학과 나란히 발전한 당대의‘첨단과학’이었으며,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저명한 과학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깊숙이 관여한 생물학의 주요 분야 중 하나였다. 결국 우생학에 대한 지금 같은 성격규정은 2차대전 말 나찌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주류 과학계가 우생학과 거리두기를 시도하면서 뒤늦게 나타난‘흔적 지우기’의 산물이며, 과거의 모든 과학이론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현재주의적 사고방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둘째로 저자는 우생학에 입각한 사회적 실천과 정책의 폐해가 나찌 치하 독일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통념도 잘못되었음을 폭로한다. 나찌가 시행한 일단의 우생학적 조치들이 그 극단적 형태를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전까지 학계나 대중교양 차원에 머무르던 우생학을 국가정책으로 탈바꿈시켜 현실에서 힘을 갖게 만든‘원조’는 미국을 위시한 북미 국가들이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민간재단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경험적인 우생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사회적 효율 제고와 국가정체성 강화라는 목표를 내건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의해 이민제한법, 혼인법, 불임법 등이 차례로 통과되어 우생학적 정책을 도입하려는 다른 국가들에 하나의 모델을 제공했다. 서로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이른바 사회적 부적자 집단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시술을 규정한 이들 법률은 1970년대초까지 유지되면서 수십만명의 희생자들을 낳았다. 1920년대 이후 독일의 우생학자들은 이러한 미국의‘선행연구’들을 자기네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삼았고, 미국의 불임법을 모범사례로 들며 독일에서도 유사한 입법이 필요함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 유전학의 어두운 과거를 조명하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 이 책은 기존에 발표된 몇편의 논문들을 한데 묶으면서 내용을 확장했다고 권말의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본문이나 각주에서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 여러군데 눈에 띈다. 또한 우생학 사상의 형성과정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미국과 독일에서 전개된 우생학적 정책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다루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그런 정책의 폭력성이 조금은 묻혀버린 듯하다. 불임이나 안락사 같은 우생학적 실천이 몰고온 비극을 단순한‘숫자’로만 다루기보다 구체적인 피해사례들로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가령 부모에게서 줄곧 학대를 받다가 1959년 정신지체아 수용시설로 끌려간 후 IQ검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제 불임시술을 당한 캐나다 여성 레일라니 뮈어(Leilani Muir) 같은 사례를 북미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우생학적 실천이 개인적 실존에 가한 폭력성을 좀더 생생하게 그려냈다면 이 책의 주제의식이 한층 분명하게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