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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
2009, 젊은 세대의 결혼식 풍경
‘스드메’는 잊어버려
정소영 鄭素永
창비 계간지팀 편집기자
“조그만 교외에서.”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장남 결혼식을 청첩장도 돌리지 않고 조용히 치렀다며 언급한 곳이다. 그런데 문법에도 안 맞는 이‘조그만 교외’가 6성급 호텔 야외 결혼식장임이 드러나면서 여기저기서 울컥하는 사람이 많았다. 비슷한 때 결혼한 내 여고동창 S도 마찬가지였다. 무난하게 식을 치른 S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혼식을 그렇게 평범하게 치르다니 좀 아쉽다고 했더니, 자조적인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누구나 결혼식은 특별하게 하고 싶다고 꿈꾸지? 6성급 호텔에서 하면 신선할 수 있겠지, 게다가 청첩장도 안 돌리고 프라이빗하게 했다잖아. 좋았겠네. 축의금 받아서 결혼식 비용 메워야 하고 돈 모자라면 결국 고만고만하게 하게 돼. 시부모가 골라놓은 낡은 웨딩홀에서, 얼굴도장 찍으러 온 사람들한테 인사받고 신속히 입장했다가, 화촉 밝히고, 은사님의 주례, 양가 부모님께 인사, 마찬가지로 신속한 행진 후 행진이 무색하게 곧바로 다시 돌아와 사진촬영. 하객은 이미 식권 받아 밥 먹고 있음. 끝. 다 그런 거야. 결혼은 부모 행사야.
정말 다 그런 걸까 싶어, 주위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2008년 한국여성의 초혼 평균연령인 28세가 되고 보니, 친구들 중 유부녀가 절반쯤이다.) 우선 평소의 까칠한 성격으로는 S못지않던 E에게. 결혼 축하해. 이제 와서 얘긴데, 너마저 그렇게 평범하게 결혼식을 하다니 니 성격을 아는 친구로서 좀 서운했다. 왜 그런 거냐?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나도 당연히 근사하게, 독특하게 하고 싶었지. 그런데 예를 들어 드레스는 이게 예쁘니까 여기서 하겠어! 하고 정하면, 거기랑 연결된 촬영 스튜디오가 있고 메이크업 해주는 데도 있고…… 이런 식으로 풀 패키지가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호텔에서 결혼한 친구 P에게도 물었다. 결혼식에서 말인데, 정말 어색하던 샴페인샤워는 굳이 할 거 있었어? 시부모님이 하는 게 좋겠다셔서 거스르기 어려웠지. 부모님한테 손 벌려서 하는 결혼인데, 부모님 뜻대로 해야지. 게다가 이미 그때쯤에는 거의 포기상태였고. 어차피 패키진데 뭘.
패키지? 대체 어떻기에…… 결혼관련 정보가 많다는 모 웨딩포털에 가입해보기로 했다. 본인인증을 마치고 가입을 완료하자마자 상담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신부님.”(헉, 대뜸 신부님이라고!) “상견례는 하셨나요?”“아뇨”“결혼은 언제쯤으로 생각하시나요?”“뭐 올해 안에는 하지 않을까요(사실은 남자친구도 없지만)”“어머, 그러시면 얼른 상견례부터 하셔야 해요, 요즘 주말 프라임 타임에는 워낙 예약이 많으셔서요. 일요일보다는 토요일, 12시부터 2시까지가 선호되시고요, 이런 시간대는 이미 연말까지 차 있으시거든요.”“아 네. 근데 결혼하는 데 얼마나 드나요?”“어떤 컨鴉을 생각하시느냐에 따라 다르세요, 신부님.”“컨鴉이요?”
상담원과 통화한 결과 알게 된 것 몇가지. 예식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뉜다. 호텔, 일반적인 웨딩홀, 프리미엄 웨딩홀, 전통혼례용 공간. 그리고‘스드메’라고,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와 메이크업은 하나의 패키지로 이뤄진다. 이게 싫다면 웨딩플래너 없이 개별적으로 고를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워킹’이라고 한다.
“그런데요, 좀 특이하게 하는 결혼은 없을까요?”“유니크한 스타일 찾으시면, 하우스웨딩이 있으세요, 신부님.”“오, 그게 뭐예요?”“외국 파티 분위기로 연출하시는 스타일인데요, 주례도 생략 가능하시고요, 드레스도 끌리는 게 아니라 짧은 드레스로 많이들 하시고요, 예식시간을 넉넉히 잡기 때문에 피로연까지 같은 공간에서 하실 수 있으세요.” 주례도 없고, 드레스 뒷자락을 잡아 끄는 번거로운 도우미도 없다고? 어 이거 좋잖아! 솔깃해져서 하우스웨딩 견적을 뽑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하우스웨딩이란 건, 바로‘조그만 교외’에서 하는 예식이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예식장일 뿐이었다. 그리고 많이 비쌌다. 많이. 돈이 모자라면‘유니크한 퍼스낼리티’를 드러낼 수도 없고‘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는 웨딩을 경험할 수도 없단 말인가? 취향은 돈에 매여 있고, 거기서 한발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이것 참 입맛이 쓰잖아.
그렇다면 다른 예신(예비신부)들은 어떻게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인테리어와 살림팁, 결혼관련 정보가 모여 있다는 어느 인터넷까페에는 포스팅이 줄줄이 올라온다. 드레스투어(신부 취향에 맞는 드레스샵을 고르러 다니는 행사), 예단 삼총사(이불과 반상기와 은수저), 웨딩 헤어로는 업스타일보다 반만 올리는 게 대세다 등등, 가히 새로운 세계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한가지 놀란 것은, 예비신부들은 자기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고 드레스 스타일 하나하나까지 사진을 올리고 의견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불필요하다 생각해 망설이는 일들, 예컨대 스촬(스튜디오 촬영) 등에 대해서도 “꼭 해야 하나요?” 하고 질문을 올리면 대체로 “하시는 게 후회 없으세요~”라는 답글이 올라온다. 젠장, 하고 싶으면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하면 될 텐데.
겉보기에는 개성적이고 자의식도 강하다고 여겨지는 젊은 세대인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닥쳐서는 불안해하며 사회와 기성세대의 틀에 안주하는 것 같다. “결혼식 때 눈밖에 나면 나중에 애 맡기기도 어렵잖아”라고 고백한 친구도 있었는데, 결국 결혼도 88만원세대가 겪는 경제적 문제와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고리타분하고 판에 박힌 틀을 넘어서려는 용기를 가지면 어떨까. 단지 결혼식을 튀게 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계기를 통해 좀더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길이 될 테니까.
결혼식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패키지 웨딩을 하지 않고 발로 뛰어서 그야말로 결혼식을 자체기획한 어느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드레스도 만들어 입고 웨딩홀이 아닌 강당을 하나 빌려서 치렀는데, 주례사 대신 양가 부모님에게 덕담을 들은 뒤 신랑신부가 앞으로의 다짐 등을 얘기했다고 한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작은 기획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간 다녀본 결혼식 중에는 웨딩홀에서 틀어주는 신랑신부의 연애시절 사진 동영상을 신부가 직접 편집한 경우도 있었고, 청첩장에 자작시를 적어넣은 신랑, 대기실에서 기다리지 않고 직접 하객을 맞으러 나와준 신부도 있었다.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과 하객들이 다함께 축가를 부르기도 했고, 성당에서 결혼한 후배는 화환 대신 쌀을 받았다. 이런 시도들이 참석한 모두의 기억에도 오래 남고, 당사자들에게도 줏대있게 한 가정을 시작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아직 결혼 못한 또다른 내 친구 K얘기로 글을 마칠까 한다. 그녀는 대학때 드럼을 배웠는데, 자기 결혼식에서 꼭 짧은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 쓰고 드럼을 치리라 벼르고 있다. 아무쪼록 그렇게 되길. 미래의 신랑님도 이해해주고, 시부모님 되실 분들도 스네어를 차르르 울리는 며느리를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