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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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환 魏瑄煥

1941년 전남 장흥 출생. 2001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새떼를 베끼다』등이 있음. yago30@hanmail.net

 

 

 

거미줄

 

 

잔 날개 떠는 날벌레나 비늘가루 묻은 나방이나

티끌들만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붙박이별 몇이 드문드문 돋는 것 하며 초록별이 자리를 못 잡고 떠도는 것 하며 살별의 꼬리가 흐르는 것 하며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이 걸렸다

몇천光年이 된다는 먼 거리나 눈으로는 못 쫓는 빛의 속도도 걸렸는데

함께, 검푸른 궁륭과 밤새워 우는 풀벌레 소리도 걸려 있다

걸린 것들 중에는 오히려 사람이 눈멀고 깜깜해지는

한밤중이라야 보이는 것이 있다

고기가시같이 뼈가 희고 고인 눈이 물속같이 둥그런 한 영혼을 내가 본 것은

내가 아주 깜깜해져버린, 한참 뒤다

 

 

 

무지개

 

 

소낙비였다 내 가장자리가 씻기면서 바깥에서 자라는 사과나무가 내다보였다

 

뚝 뚝 뚝 빗물 떨어지고 풋사과 알들이 떨어지고 떨어지는 것들을 쫓아서 돌멩이들이 떨어지고

 

돌멩이들을 쫓아서 새가 떨어졌다 소낙비가 그쳤다

 

돌멩이의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힌 새는 깨어나 발톱을 세우고 걸어갔지만

 

그렇게만 끝나지 않았다

 

볕 들자 당장 새가 찍고 간 발톱 자국을 쫓아서 강이 흐르고 강 위로 나비들이 날고

 

강은 길게 휘고 오래 굽은 큰 굽이를 돌아서 하늘 가까이로 흘렀다 하늘에 강이 비치고

 

하늘 강에 큰 굽이로 굽은 나의 등허리가 비쳤다 등허리 너머로 가지런히

 

빗발에 밀리는 빗물 냄새가, 풋열매의 떫은 무게가, 돌멩이가 긋는 궤적이, 높이 뜬 새의 눈초리가, 강이, 강에 스치는 나비의, 날개 끝에 닿은 강의 떨림이

 

비치고, 수천마리로 불어난 나비 떼가 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