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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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화

1957년 전남 순천 출생. 1984년 공동신작시집 『시여 무기여』로 등단. 시집 『인부수첩』 『우리들의 사랑가』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 등이 있음. kimhaehwa@com.ne.kr

 

 

 

가난한 꽃편지

 

 

개망초 까마중이 애기나팔꽃 며느리밑씻개

내 삶보다 환한 꽃 피어 차마 뽑아낼 수 없습니다

캄캄하게 누워 뒤척이다 일어난 자리 돌아보니

시 한편 드러누울 만합니다

 

철근쟁이 스물몇해 사람노릇 못하여

시가 될 말 한마디 챙기지 못했습니다

녹슨 쇠토막 갈고 닦아 서둘러 만든 말

세우고 엮어 시를 짓습니다

 

사는 일 느을 하루살이

새벽밥 먹고 나가 돌아오지 못한 내 목숨

대충 헤아려도 수천입니다

지금 나가면 또 한목숨 버려질 일

마음 급하여 비뚤어지고 어긋납니다

 

아 참, 노동이 마지막 남은 삶의 끈입니다

새벽밥 한그릇이 노동의 시작입니다

열어본 밥통에 밥이 없습니다

새벽밥 지어야겠습니다

짓던 시를 버립니다

 

개망초 까마중이 애기나팔꽃 며느리밑씻개

환한 꽃이나 우거지겠습니다

 

 

 

사랑은 함께 길을 가는 것

박영근에게

 

 

형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장난인 줄 알았다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해쌓드만

미안하다 그래서 장난으로 대답했다

형 나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야

 

함께 길을 가는 것

나란히 손을 잡고 갈 수도 있지만

남남인 듯 나뉘어 갈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만큼 앞서 가고 뒤따라갈 수도 있고

그러나 마음은 함께 길을 가는 것

내 사랑이 그러함으로

 

길 위의 사랑이라—

너는 고개 푹 수그리고

울었다 형 나 많이 외로워

영근아 지금 너 가는 길 얼마나 외로우냐

 

친구들 등에 업혀

병원에 가 누웠다는 소식 뒤로 자주 비 내렸다

진창이 된 공사장 엿새 만에 일 나가 철근 세우는데

너 길 떠났다고 김청미가 전화했더라

 

자꾸 눈물나더라 일하다가

고개 푹 수그리고 울었다

내가 길을 바꾸지 못했으니

니가 건너지 못한 길은 나도 못 건너겠지

그래도 사랑은 함께 길을 가는 것

사랑한다 영근아

 

오늘은 가버린 너를 보러 서울 가야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자꾸 늦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