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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존 벡위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그린비 2009

황우석 열풍이 진짜 위험했던 이유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과학사회학  shkim67@gmail.com

 

 

과학과사회운동사이2005년 5월 어느날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는 이례적으로 한 과학자의 귀국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대 수의대 교수 황우석(黃禹錫) 박사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전날 런던에서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연구팀이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 결과가 『싸이언스』지에 출판될 것임을 밝혔던 참이었다. 런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한국사회는 황우석의 ‘쾌거’에 찬사를 보내는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의 귀국을 취재하기 위해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드는가 하면,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과 과학기술부 관계자들이 공항으로 마중 나오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일제히 환영 논평을 쏟아냈다.

문제의 논문이 조작으로 드러난 지금, 많은 이들이 이른바 ‘황우석 열풍’에 동참하거나 동조했던 것을 자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로 연구 부정(不正)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억울함에 기인하는 것 같다. 연구결과의 조작만 없었다면, 당시 한국사회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보냈던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가? 물론 아니다. 과학의 발전이 늘 그러하듯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급속한 진전은 사회·문화·정치·경제·건강 등 다양한 차원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들에 대한 공적 검토와 토론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황우석 열풍이 정말 위험했던 이유는 이같은 공적 논의의 공간 자체를 인정하지도 허용하지도 않으려 했다는 데 있다.

이런 문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하버드 의대 존 벡위드(Jon Beckwith) 교수의 자서전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68에서 게놈프로젝트까지』(Making Genes, Making Waves: A Social Activist in Science, 이영희·김동광·김명진 옮김)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저자는 1969년 생물체의 염색체에서 온전한 유전자를 최초로 분리해낸 이래 미생물유전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업적을 남긴 저명한 과학자인 동시에 자본주의 정치경제질서와 미국의 대외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좌파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얼핏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두 영역을 관통하는 벡위드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이 책은 과학을 사회적 맥락에 위치시켜 이해하고 그로부터 얻어진 통찰을 바탕으로 과학의 발전을 좀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여느 과학자와 다를 바 없던 저자가 점차 과학을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기술된다.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이라는, 불평등한 사회관계가 과학의 생산과 활용에 침투할 위험에 맞서 조직된 좌파운동단체의 의장까지 역임했던 그이지만, 처음부터 그같은 길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과학 ‘안’의 사회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자신이 사용한 유전자 분리기술의 오용 가능성을 놓고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면서부터다. 대장균에서 유전자를 분리해낸 연구결과가 『네이처』지에 출판되기 직전,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과학자들은 (…) 연구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의사결정에 대한 통제력을 요구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

‘국익’과 ‘난치병 치료’라는 과장된 수사로 가득한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이 환영받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과학의 사회적 응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벡위드의 이 기자회견은 과학공동체 내외로부터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저자에게 과학은 “결함과 미덕을 동시에 가진” “놀랍도록 인간적인” 활동이었고, 따라서 새로운 과학연구가 널리 확산되기 전에 그 사회·문화·정치·경제·건강·환경적 영향을 공적으로 검토하고 토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는 또한 과학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안전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의 현실에 대한 그의 겸허한 성찰은 오히려 ‘반과학적’인 것으로, 과학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곤 했던 것이다.

책의 후반부가 생생히 전하듯이 물론 그런 어려움도 벡위드를 위축시키지는 못했다. 저자는 1970~80년대에 이루어진 IQ와 XYY 염색체에 관한 일부 연구와 사회생물학 등이 지배적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한편, 유전정보의 오용이 야기하는 ‘유전자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과학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부분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한 1990년대에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제도권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사회·법·윤리적 함의(ELSI)를 다루는 실무그룹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 예다. 벡위드는 그러나 제도권 안에서도 과학의 사회적 파급효과와 과학에 미치는 사회·문화·정치적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굳건히 견지해나갔다. 불편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ELSI 실무그룹이 유전자검사 결과를 고용 결정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해낸 이면에는 그런 뒷받침이 자리하고 있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황우석 박사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일부) 진보적 사회운동진영의 비판은 인간개체의 복제나 배아의 도덕적 지위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논문조작이 쟁점으로 부각되기 이전까지 (실은 그후에도) 우생학적 인간유전공학의 위험, 난자의 일상적 사용이 여성 건강과 인권에 미칠 영향, 난치병 치료에 대한 강조로 인해 장애인이 동등한 사회주체이기보다 의료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문제, 세포치료로 대표되는 ‘개인맞춤형 의료’가 의료의 상업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 등 다양한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비록 거칠기는 했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들은 새로운 과학연구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당한 우려였다.

저명한 과학자 벡위드조차 과학 ‘안’의 사회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욱이 한국사회에 광범하게 공유되고 있는 개발민족주의의 상상은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개발하여 ‘바이오산업강국’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하여 제기됐던 어떤 이슈들보다도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믿음을 뿌리내리게 했다. 논문조작 파문 이후에도 황우석 박사에게 제2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다수 존재했던 점이나 정부 줄기세포연구 지원정책의 기본방향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일반대중, 지식인사회, 사회운동, 그리고 과학공동체 모두가 과학의 사회적 의미, 영향과 책임의 문제를 스스로의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풍토였다. 과학 외부로부터의 문제제기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과 연구윤리 문제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과학자들의 모습이나, 다른 사안들에는 나름 주류에 반하는 시각을 취하면서도 과학 특히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런 비판적 검토 없이 지지를 보내기에 급급했던 일부 진보진영의 모습은 그 폐해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국사회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과학의 사회적 의미, 영향과 책임에 대한 온전한 해득력을 확보하기까지는 아마도 많은 시간과 노력, 고통과 분란을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는 그 과정을 단축시키는 매우 유용하고도 값진 지침서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원서가 나온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이를 번역 출간해준 역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