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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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철 尹載喆

1953년 충남 논산 출생. 1981년『오월시』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아메리카 들소』『그래 우리가 만난다면』『세상에 새로 온 꽃』『능소화』등이 있음. sokpari@hanmail.net

 

 

 

목축의 시간

 

 

그대 그리운

목축의 시간이여

가난했지만 한가로웠던

그 목축의 시간이여

 

뒤뚱뒤뚱 재봉틀 의자에

까치발로 올라서서

나비 모양의 쇠걸개로

드르륵 드르륵 태엽 감아 돌리던

괘종시계

 

보름치였던가 한달치였던가

시계 바늘이 느려지면

시계가 배고픈가 보다

시계 밥 좀 줘라

드르륵 드르륵 밥 주던 시계

 

긴 시계 불알로

뎅뎅뎅 종소리처럼도 울었던가

대청마루 까만 마룻바닥

그 적막 속을

가난한 하루가 가고

 

지금은 시간이 나를 먹는가

시간이 나를 몰고 가는가

그러나 마른 벌판에 나 홀로 서 있어

이제 다시 그리운

그 목축의 시간이여

 

 

 

아버지 수염은 지금도 자라고 있을까

 

 

감옥에 있을 때

형집행정지로 잠시 나와

아버지 초상 치를 때

검사는 부의금 쥐여주며 쫓아나오고

형사 두명 따라붙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아버지 염습할 때

아버지 이미 눈감은

차가운 얼굴 쓰다듬으며

그 하얗고 검은

꺼칠한 수염 어루만지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제 내가 아버지 나이

그때 아버지 입에 쌀알 물려드렸을까

손에 지전 들려드렸을까

그 차가운 얼굴에 꺼칠한 수염은

늘 두 손바닥에 남아 있는데

이제 눈물은 나지 않는다

 

죽어서도 수염은 자란다는데

흙 덮고 누운 저 따뜻한 어둠 속

아버지 수염은 지금도 자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