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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해영 『낯선 식민지, 한미FTA』, 메이데이 2006

시민사회의 힘으로 세계화에 대비하자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국제정치학 eacommunity@hallym.ac.kr

 

 

낯선-식민지

이해영(李海榮)의 『낯선 식민지, 한미FTA』는 이 시대를 고민하는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읽어 마땅한 책이다. 한미FTA를 순수한 마음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찬성 입장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품게 될 것이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이념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마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한미FTA체결의 무모함과 그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중론자나 반대론자 들은 그동안의 궁금증이 상당부분 해결되었다는 기쁨에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책의 1, 2부에 나오는 한미FTA의 거의 모든 쟁점사항(추진과정, 거시경제효과, 제조업·써비스업·농업 등 주요산업에 미칠 영향, 투자 및 지적재산권 문제, 군사안보적 함의 등)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과 분석은 가히 압권이다. 반대의 논리와 근거는 이 책 안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저자는 한미FTA논의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부당성과 폭력성을 고발한다. 초국적 자본과 그와 결탁한 신자유주의 권력에 의해 추동되는 세계화는 ‘강자의 보호주의’일 뿐이다. 강자는 이미 “비교우위에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것이다.”따라서 “개방하면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단 개방하면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망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는 강하다”고 볼 수 있을 뿐이다.(243면) 이렇게 진행되는 강자의 세계화과정에서 “국가의 모든 규제장치는 한갓 비관세장벽 이상도 이하도”아니다(245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정부의 정책자율성, 즉 국가주권의 약화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그 일반적 결과는 공공성의 희생과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사회경제적 약자계층의 몰락이다. 반면 미국에게 FTA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완성하기 위한 정책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미FTA가 ‘미국형’으로 체결되어 발효될 경우, 그것은 한국의 “신자유주의에 의한 포괄적 식민화를 의미한다”(78면).

이 지점까지 읽어내려간 독자들은 일종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야기할 한미FTA가 이미 2차협상까지 진행된 싯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3부의 제목 ‘ ‘엎질러진 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고 희망이 있으리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책의 끝까지 가도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책의 맨 마지막 문장은 오히려 독자에게 공을 넘기는 셈이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248면). 절망스러울 뿐이다.

이해영의 비관론은 현재 주어진 조건들을 모두 상수(常數)로만 보는 데서 기인한 듯하다. 그가 간과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잠재력이다. 물론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한미FTA만 보더라도 적어도 가장 중요한 하나의 변수가 남아 있다. 바로 시민사회의 견제력이다. 한미FTA의 초기 추진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철저히 배제됐다. 정책결정과 (지금까지의) 수행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전혀 의미있는 변수가 아니었다. 정보도 없었고 결집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한미FTA의 문제점을 인식해가고 있고, 몇몇 언론매체와 시민단체를 통하여 그들의 의사와 요구가 점차 모아지고 있다. 여론이 동원되면, 즉 일반시민들이 적극적인 정책행위자로 참여하게 되면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정부의 독주에 대한 민주적 견제가 강화되어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제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제 자국의 실력에 걸맞은 FTA디자인을 내놓을 법하다”(240면)고 말한 것이다. 다만 디자인하기에는 이미 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현재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우리의 사정에 맞게 ‘낮은 수준의 제한적 FTA’로 변경시킬 수 있다. 즉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가능한 많은 유예품목과 예외조항 등을 만들고 자유화의 이행기간도 최장기로 잡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안에 대한 국민들의 민감성을 의식한 보건복지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고수하겠다고 하여 한미FTA 2차협상을 파행으로 마치게 한 것은 좋은 예이다.

우리 정부가 ‘낮은 수준의 제한적 FTA’로 가겠다고 한다면 이에 반발하는 미국의 몽니로 인해 협상은 파행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TPA(Trade Promotion Authority, 무역협상권한) 시한을 넘길 수도 있고, 한—칠레 FTA의 경우처럼 발효까지 근 5년이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완전히 결렬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은 일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한미FTA뿐만 아니라 세계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한미FTA협상이 어느 싯점에 타결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행기간의 경과에도 이를테면 15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 결국 잘하면 총 20여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세계화의 관리능력을 대내외 양쪽에서 동시에 키워가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스스로의 계획에 따라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구조조정 노력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턱없이 부족한 사회안전망과 복지 및 보상체계를 충분히 확충해놓아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세계화에 대한 지역주의적 공동 대응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일국경제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압력을 감당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의 사정을 감안한 낮은 수준의 제한적 FTA를 ‘맞춤형’으로 디자인해간다면 교착상태에 있는 한일FTA의 협상 재개도 가능하며, 한중FTA의 조기체결도 가능하다. 한·중·일 3국은 이미 각각 ASEAN과 FTA를 체결했거나 체결할 예정이다. 이런 식으로 우선 낮은 수준의 FTA망으로라도 동아시아지역을 하나로 엮어놓으면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협력 기제가 마련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동아시아적 대안은 그후에 차츰 모색할 일이다. “낯선 식민지”의 공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낯선 이상향”의 건설에 매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