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최귀묵 『베트남문학의 이해』, 창비 2010
동아시아문학으로 가는 길
최병욱 崔秉旭
인하대 사학과 교수, 베트남사 choibyungwook@inha.ac.kr
베트남 안에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함께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한문학이 성한 것은 동북아적 전통이고 산문보다 운문적 서사가 발전한 것은 동남아적 면모다. 양 지역 전통이 통합된 베트남문학은 접근이 다소 어렵지만, 일단 친해지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힌다.
‘베트남문학의 이해’(‘베트남문학사’가 아닌)라는 제목에는 수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생산물에 대한 저자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투영되어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최초로 베트남문학사를 정리했다는 자부심이며 이 책으로 베트남문학의 맛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시대별, 주제별로 매우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저자 최귀묵(崔貴默)은 거의 모든 작품을 직접 번역해냈다. 어림잡아도 200개가 넘는 한문 및 베트남어 작품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베트남문학사에 눈뜨는 과정이며 베트남인들이 2천년간 만들어낸 문학작품의 맛을 음미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베트남문학사’라고 했지만 사실 이 책의 의미는 한국을 넘어선 곳에서도 찾아져야 한다. 외부자의 시각에서 베트남 연구서가 씌어진 일은 매우 적다. 일찍이 모리스 뒤랑(Maurice Durand)과 응우옌 쩐 후언(Nguyen Tran Huan)이 쓴 Introduction la Littrature Vietnamienne (베트남문학 입문, Maisonneuve et Larose 1969)와 그것을 영역한 An Introduction to Vietnamese Literatur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5)가 베트남문학사에 접하려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읽혀왔다. 동남아시아학의 전통이 두터운 일본에는 몇권쯤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의외로 전무하다. 중국에서는 9년 전 『越南文學史』(于在照, 軍事誼文出版社 2001)가 출간되었다. 그런데 뒤랑의 책은 고전 한문학에 거의 접근하지 못했고 『越南文學史』는 개설적 소개서임을 감안한다면, 각 작품을 직접 번역하고 해설까지 곁들이며 충실하게 주석 작업을 한 『베트남문학의 이해』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독보적이다. 심지어 베트남 내에서 생산된 관련 서적들과 비교해도 현격한 비교우위를 갖는데, 이는 베트남의 문학자들은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한문학 작품을 모두 타인(한문학자)의 번역에 의존하는 데 반해 최귀묵은 동아시아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기초해 직접 번역하고 해설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베트남문학의 전반적 특징’에서 베트남문학의 범주, 역사적 전개, 시대구분 문제, 미의식의 특성 등을 논한 후, 2장부터는 시간 순서대로 구비문학, 한문학, 쯔놈(한자를 합성해 음과 훈으로 입말을 표기하는 방법)문학, 국어(로마자화된 현재의 표기법)문학을 각 장별로 서술하고 있다. 국어문학의 출현은 근대문학의 시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1945년 독립까지의 근대문학을 다룬다. 1975년 전쟁 종결까지 남북에서 달리 전개되던 문학 경향까지를 다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책의 분량이나 정치적 사정에 대한 고려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뚜옹이나 쩨오 등 전통 악극(樂劇)에 대한 소개도 매우 흥미롭고 충실하여 이 아쉬움은 상쇄된다.
이 책에서 나처럼 역사를 연구하는 이에게 가장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은 한문학을 다루는 3장이다. 역사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남긴 한시를 접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니! 베트남 한문학이 “중국과 비교해도 손색없이 발전시키려는 미학적 요구보다는 민족의 삶과 긴밀히 결합시키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려는 요구가 더 강했다”(47면)라는 저자의 진단을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을 만나는 일은 각별히 흥미롭다. 18세기의 유명한 학자 오시사(吳時仕, 1726~80)가 죽은 아내를 두고 쓴 시는 그 한 예다. “당신을 사랑해 오래전부터 당신의 모습 그려두고 싶어서,/몇번이고 도성의 화공을 불렀잖소./참모습 그려내려면 나이들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하더니,/어찌하여 고운 모습 바삐도 떠나가버렸단 말이오.//휘장을 반만 걷고 외로운 잠자리 어미 잃은 아이를 안고 누워,/온종일 당신 생각에 눈물을 참는다오(…)”(214~15면). 번역도 참 곱다.
베트남문학사에서 한문학보다도 더 중요한 장르는 쯔놈문학이다. 『베트남문학의 이해』의 가장 큰 의의는 이 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해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베트남 쯔놈문학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완유(阮攸, 1766~1820)의 취교전(翠翹傳)에 대한 해설이 빼어나다. 저자에 따르면 “취교전은 베트남사람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500면). 그는 이 작품을 2004년에 번역 출간해(『취교전』, 소명출판) 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는데, 『베트남문학의 이해』에서는 이때의 해설보다 더 깊이있게 창작 배경, 시어 배열, 문학사적 의의 등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동아시아문학 연구라는 거시적 시각을 견지하는 저자는 이 작품이 중국, 한국, 일본이 공유하는 자산임을 발견했다. 이로써 취교전은 “동아시아인의 내면을 비교해서 이해하는 길로 들어서게 해주는 입구”(같은면)로 새로운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받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원래 베트남문학 전공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전공자들도 못한 일을 해냈기에 경이롭다. 한국고전문학이 그의 원전공이지만 비교문학에 관심이 많던 그는 1980년대 말부터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1999년 하노이로 가 1년 동안 베트남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4년 만에 그는 『취교전』을, 그로부터 6년 뒤에 다시 700면에 달하는 묵직한 『베트남문학의 이해』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
그는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을 포괄하는 거대한 동아시아문학사 연구라는 구조물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때문에 그의 베트남문학 연구는 한국학 연구자의 여업(餘業)이 아니다. 한국학을 뛰어넘어 동아시아학으로 가는 여정의 초기생산물이다. 한·일·중·베트남의 문학을 직접 읽어내면서 (현지 장기체류를 통해 습득한 언어능력으로써) 문학의 갈래를 비교하고 동일한 흐름을 찾아내는 적극적 방법론은 월등한 지적능력과 성실성이 없이는 수행 불가능한 것이다. 최귀묵은 그 일을 해내고 있다.
다만 책의 도입부에서 책을 만든 이유, 과정, 방법론 등을 납득할 만하게 설명해주었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문학 연구자가 왜 베트남문학사를 썼는지, 신용할 수 있는 저작인지를 의심하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에필로그 한두 페이지 분량 정도 넣어주었더라면 더 완전한 책이 되었겠다.
앞으로 한 세대 안에는 다시 이런 책이 나오기 힘들 것 같은데, 부디 훗날 동아시아문학 연구가 완성될 즈음 최귀묵 교수가 베트남문학으로 다시 돌아와 이 책을 더욱 정제되고 우미한 고전으로 업그레이드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