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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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아

1974년 서울 출생. 200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수상한 꽃』이 있음. ahnsea74@hanmail.net

 

 

 

무덤

 

 

사람은 태어나 발목에 적응한다

시간의 관념을 정의하며

날씨에 대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비극이라고 단정하는 대부분은

뒤돌아보았을 때 더 선명해진다

 

내가 숨기는 건 배꼽 말고도

꽃으로 말하는 방식,

한번도 지하를 꿈꾸지 않은 나뭇가지와

낯선 새가 우는 평범한 유형 아래

무게를 앉힌 사물들이 침묵한다

 

아찔하게 완성되는 의혹처럼

계단은 아래로만 뻗어 있다

나와 손톱자국 사이에서 놓친 리듬은

심장이 처음 익힌 박동

 

가장 죽기 좋은 방을 떠올린다

귀를 틀어막은 채 문을 열지 않는

손잡이의 그 방

일인칭에 연루된 출구들이 끝내

금지된 기록 안에 갇힌다

 

 

 

아득한 독백

불임

 

두번째 펼친 노트가 과거가 된다

 

피돌기를 하는 왼쪽은

 

가임에 적합한 호흡으로 싱싱하게 죽어 있다

 

누군가 들어가 나오지 않는 문

 

비밀통로를 나눠 갖듯

 

내가 통과한 이름들을 들춰낸다

 

시간은 죽음을 향하여 기억을 벗는다

 

자궁은 평생 터득한 경로로 수축하고

 

우리는 온몸을 긁으며 피어나는 종소리를 앓는다

 

탄생의 엇박자를 몸에 새기는 순간

 

입꼬리 어디쯤 자화상이 완성될 것인가

 

촛농처럼 굳어가는 과거를 떠올린다

 

어둠은 대사를 잘 소화하고 있다

 

심장으로 시작해 심장으로 끝나버리는

 

나는 다시 또 태어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