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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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李炳一

1981년 전북 진안 출생. 2007년『문학수첩』신인상으로 등단. onestar1010@hanmail.net

 

 

 

꽃잠

 

 

봄 山에 꽃 보러 간다. 연초록이 눈을 콕콕 찌른다. 내 몸이 팔짝 뛰고 뒤로 자빠질 것만 같다. 진달래꽃 정령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꽃잎 속에 나보다 먼저 꽃구경 나온 벌 나비가 한가로이 가부좌 틀고 있다. 하루를 공친다, 空山에 들어설 때까지. 저렇게 꽃잠에 취해 魂을 도둑맞은 사람도 있겠다. 천지간에 온갖 花冠들이 현현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정상에 오른 나는 절로 무릎을 친다, 꽃구경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금방 꽃빛 마신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맨드라미

 

 

화단 앞에서 수탉 두마리가 싸우고 있다.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며 서로의 대가리를 콕콕 쪼아대는데, 벼슬에서 피가 잔모래처럼 쏟아진다. 싸움에는 퇴로가 없다. 기세등등한 부리가 화살이자 곧 과녁이다. 장벽으로 마주보고 있다가도 다시금 치고받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삶을 벼랑으로 밀고 가는 싸움이겠다. 급기야 수탉이 이승 너머까지 나아가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른다. 수탉의 대가리에서 붉디붉은 맨드라미 활짝 핀다. 그때 대숲에서 은둔하던 족제비 부부가 수탉 한마리씩 물고 논길로 사라진다. 한 됫박의 피 흘리고 간 수탉의 저승길처럼 화단의 맨드라미가 막무가내 꽃 피우는 일도 혼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