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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로버트 M. 피어시그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문학과지성사 2010

유령과 싸우기 위한 삶의 관리술

 

 

최정우 崔晸宇

작곡가, 비평가 sinthome@naver.com

 

 

10229우리는 이 두꺼운 책의 제목에 맞닥뜨릴 때부터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란, 보통 우리가 두개의 서로 다른 생경한 단어의 묶음,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두개의 동떨어진 개념의 다발을 마주할 때 겪게 되는 당연한 의아심일 것이다. ‘선(禪)’과 ‘모터싸이클 관리술’이라니, 아니 그보다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이라니! 그러나 이 책은 예를 들어 폭주족이 지녀야 할 어떤 키치적 품성으로서의 도(道)를 말하는 모터싸이클의 매뉴얼도 아니고, 최고(最古)의 종교적 자세와 최신(最新)의 공학적 기술 사이에서 표피적인 조화를 목표로 하는 얼치기 오리엔탈리즘류의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정어법을 차용한 이러한 변호적 언사들 속에는 일말의 진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에 한해서 말하자면, 저 제목이 나타내는 모순과 역설 가운데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이 한줌의 진실이 오히려 더 중요할 것 같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An Inquiry into Values, 장경렬 옮김)은 분명 하나의 ‘매뉴얼’이며, 또한 질적 가치에 대한 어떤 ‘관리’와 ‘종합’을 추구한다. 아마도 일차적으로는 하나의 여행기이자 소설이겠지만, 그러한 장르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철학적 중핵 혹은 징후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매뉴얼이며 또 무엇을 위한 종합적 관리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책이 공학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학기술’이라는 단어와 담론을 둘러싼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선’과 ‘공학기술(모터싸이클 관리술)’은 이 둘을 순접관계로 이어주는 조사(‘~과’) 혹은 접속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어떤 긴장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 전체의 ‘미국적’ 성격을 규정하는 무언가가 바로 이 질문에 들어 있을지 모른다. 이때 ‘미국적 성격’이라는 말은 ‘속류 대륙철학’의 이식에서 비롯하는 뒤틀린 속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속류적인 것에 다시금 맞서는 이중의 부정, 그 부정의 어떤 긍정이라는 형태를 띤다. 이런 점이 책의 주제와 소재, 그리고 서술방식을 독특하게 만들어준다. 모터싸이클이라는 기표가 상징하는 하위문화적인 것, 그리고 그러한 문화/문명을 이용한 ‘여행’이라는 소재가 연상시키는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여기에는 이른바 ‘합리적 과학기술과 계몽주의’에 즉각 반발하는 비트족과 히피의 방식에 대한 비판, 그리고 또다른 형태로 발전했던 뉴에이지 운동이나 환경주의의 사상사적 위치 설정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사이에서 관습적이거나 타성적으로 구성되었던 어떤 허구의 대립, 그러나 허구인만큼 오히려 강력한 실제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되는 대립을 문제삼는다. 아마도 우리는 이 책을 이런 대립에 대한 가장 미국적인 반성이라는 맥락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한가지 더 생각해볼 점은 장르의 문제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이 책은 허구와 사실을 혼합한 여행기이자 자전적 소설이며 로드무비 형식을 차용한 철학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따져보려 하는 장르의 문제란 이런 복합적 성격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문제를 더욱 단순화(혹은 세밀화)하여, ‘픽션(소설)’과 ‘논픽션(비소설)’을 가르는 가장 미국적인 분류법을 떠올려보자. 이 책은 이런 전형적인 분류법 안에 존재하는 동시에 그러한 분류법의 경계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바로 이 책의 가장 ‘문제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어째서 그런가? 문학과 철학을 생산적인 형태로 혼합하거나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해체적인 형태로 산개하는 ‘포스트모던적인’ 특성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책이 저 ‘미국적’ 도서분류법의 징후적 성격 자체를 드러낸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령에 관한 화자의 장광설을 떠올리게 된다.

유령이라는 대화의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유령을 찾아헤매던 과거의 자아를 ‘파이드로스’라는 이름으로 아들에게 처음 언급하는 장면(71~81면), 그런 유령의 존재론이 일종의 결론을 보는 장면(398면), 그리고 그 파이드로스가 건너왔던 어떤 철학의 길이 이성과 변증법의 기획에 맞서 질(質)의 원리와 삶의 총체성을 옹호하는 탁월성(아레테)의 개념으로 마침표를 찍는 장면(29장, 특히 654~680면) 등, 나는 이 책이 하나의 유령을 말하기 위해, 그 유령을 관리하거나 그 유령과 싸우는 매뉴얼을 제시하기 위해 —마치 그들의 모터싸이클이 그랬던 것처럼— 힘겹지만 즐거운 샛길을 내고 우회로로 에둘러가는 여정을 제시한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장 ‘미국적인’ 방식, 곧 가장 ‘미국적인’ 문제의식의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저 모든 ‘미국적인’ 생활방식과 사유형태를 비판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속류 문명비판서나 선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예찬과는 다르게 만드는 독특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추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철학이 지닌 ‘현대적 진부함’이 아니라, 이 책이 가장 ‘미국적인’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바로 그러한 ‘지정학적’ 위치로부터 ‘미국적’ 성격 그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유령을 이야기하는 방식, 그것은 이 책이 속해 있는 세대의 어떤 ‘시대의식’ 혹은 ‘정신세계’—그리고 이 ‘정신세계’란 아마도 가장 ‘유물론적’이고 ‘역사적’인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텐데—가 과거 어떤 지점을 지나고 있었으며 또한 현재 어떤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술방식일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을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겪었던 ‘변화’의 여정을 그린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와 비교해볼 수 있을까? 이 다소 생경한 질문은,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의 연결이 문제됐던 첫 의문에서처럼, 소위 혁명과 모터싸이클의 여정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까 하는, 마찬가지로 생경한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묻는 것은 단지 ‘모터싸이클’ 그 자체의 실제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도 아니고 ‘북미’와 ‘남미’ 사이의 어떤 지정학적 차이도 아니다. 그 샛길과 뒷길 사이로 나 있을지 모르는 어떤 ‘연대적’ 사유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거듭 강조되는 “야외강연”(Chautauqua)이라는 단어를 차용해서 말하자면, 그리고 이 책이 저자의 말처럼 “문화를 옮겨 나르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이 맞서기를 종용하거나 사유하기를 권유하는 것은 아마도 바로 이러한 유령일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저 유령에 대한 하나의 ‘야외강연’, 유령을 옮겨 나르는 여행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